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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에서

Heavy.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9.09 23:57:11
조회 31 추천 0 댓글 0

 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하면 늘 비가 온다. 예기치 못한 일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처럼, 마음 닿는대로 되는 일은 잘 없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그 와중에도 가속페달은 꾸준히 웅웅대어, 삼십여분이 걸리지 않아 선본사 오르는 길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 자주 찾지는 않았지마는, 기력도 이젠 여남은 듯한 어르신들은 무어 그리 욕심이 많으신지 매주 산을 찾으시는 것 같다. 그 곳에는 아베마리아를 읊는 할머니도 있고, 약사여래불을 읊는 할머니도 있다. 욕심을 좇는 길은 여러 갈래인가보다.

  불로동으로 오르지 않고 와촌 쪽으로 오르면, 대부분은 계단으로 된 등산로가 펼쳐진다. 난간은 그리 급하게 오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완만하고 한계단한계단이 그리 좁지 않아 쉬이 오를 수 있다. 조금은 젖은 셔츠일랑 벗어서 허리춤에 두르고, 조금은 민망한 민소매차림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가 내리니 옆을 지나는 작은 계곡에는 제법 물이 흐른다.

  관봉쪽으로 계속 오르지 않고 옆 길을 택하면, 곧장 선본사가 나온다. 큰 노력 없이 불당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금은 쉽게 생각할 수도 있건만, 기도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제법 진중했다. 멀리서 보아도 정성을 들이는 내음새가 제법 난다. 들어도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는 염불 소리를 들으며 잠시 땀을 식히노라면, 나도 세파에 치여 늙어버린 한 마리의 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마침 절을 지키던 동자견도 조르르 달려와 아는 체를 하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희멀건 하늘을 치어다본다. 하늘에는 무어가 있어서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님은 이제 머리로도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또다시 쓸데없는 공상을 하고, 몇마디 말을 건다. 하늘을 보고 말을 거는 것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일지라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있다. 얼마간 쓸데 없는 말을 지껄여도, 하늘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

  내려오기 전에 동자견을 한 번 쓰다듬어주니 사천왕문 밖까지 좇아온다. 얼른 들어가라며 손사래를 치면 그 견은 꼬리로 오히려 날 배웅한다. 오는 이 많은 절인데도 개사육집 큰 아들을 알아보는 재주가 개들에게는 있는가보다.  조금은 뭉툭해진 허벅지를 이끌고 천천히 산을 내려오면 이젠 거의 다 젖어버린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수밖엔 없다. 주차장까지는 십여분을 걸어야하는데, 한 발 재겨 딛고 붙잡을만한 난간이 그 곳엔 없다. 여느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길인데도 멀게 느껴진다. 기왕지사라고 생각한 것, 천천히 내려가며 지난 주에 흘린 게으름과 미련을 줍는다. 그러나 몇 개 줍지는 못한다. 주머니가 가득찬 까닭과 내린 비가 씻어버린 까닭이다. 씻겨버린 아스팔트를 바라보다 문득 하늘을 본다. 그리고 눈을 씻는다.

  아마 다음에 올 적에는 동봉엘 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덧 산이 좋아지기 시작한 듯 하다. 산은 정말로 그리움이었다. 계곡에는 눈물이 흐르고 하늘엔 얼굴이 떠있는, 가슴같은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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