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2-10-13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부장주의"만큼 부정확하게, 그리고 안일하게 쓰이는 용어는 없는 걸로 보인다. 가부장주의 핵심은 남자가 여자와 가족을 전적으로 먹여살리고 책임지는 걸 말하는 것이므로, 가부장주의를 비판하거나 이 해체를 주장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각자 벌어먹거나", "여자가 남자를 먹여살리는" 것의 실천을 타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책임의 많은 영역을 남성에게 미루고 있다는 데 주의하자.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 집값 문제를 남자에게 아직도 미루는 등과 같은 소소한(?) 영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의 책임 문제인 병역마저도 여전히 남자에게 돌리면서 가부장주의가 해체되었다고 한다면 이걸 믿을 수 있겠나.

  실제로 과거보다 여성들이 더 많은 헤택을 누리는 건 가부장주의가 해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많은 남자들이 가부장주의를 수호하고 싶은 마음에 여성들을 '달래고 있다' 정도로 보면 된다. 물론 남자들이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이 이득인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2000년간 이어진 가족 양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리스크가 크다는 점에서는 이걸 바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진보란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분명한 건 가부장주의가 해체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전후를 뒤흔들었던 페미니즘적 양식이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처럼 하나의 실패한 실험인지가 아직도 불분명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당사자가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몸소 실천한다라는 것만으로 진보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첫째, 명분상 타당한가, 둘째, 실리적인가, 셋째, 기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적어도 이 세 가지 조건은 충족해야하는 것이다.

  특히 둘째의 경우는 사회적 생산구조의 변화까지 수반하느냐하는 것. 가령 페미니즘이 기존 생산-소비 양식의 모순을 해결하고 더 고차원적 형태로 이행하는 걸 보장해주느냐 하는 것이 언급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니 진보이니 하는 것들은 '구호'로만 점철된 경우에는 대부분 비참한 독재로 끝났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 여성주의는 현안 과제인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자본주의 예찬자들이 간과했던 현상 중 하나인 저출산을 심화시킨 건 다름 아닌 저 여성주의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여성들의 지위 향상이나 자아 실현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주의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굴러가기 위한 '새로운 수요창출적 차원'에서 이뤄진 시장 확장에 불과하다는 걸 부인할 수 있을까(그게 아니라면 봉건주의 시대에 군주들의 문화적, 성적 욕망을 위한 삐에로 차원이거나).

  고로 현재 남성들의 고민은 그런 여성주의적인 양식을 고집하는 여성들의 주장을 철부지들의 헛된 주장으로 치부할 건가, 아니면 새시대를 열기 위한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걸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상의 여성 혐오증"이라고 표방할 뿐인데, 이런 식의 딱지 붙이기를 볼 수록 소위 진보 지식인의 책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는가만 실감할 뿐이다.

  사견을 적자면 난 이 여성주의가 이미 80년대 공산주의 꼴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복지제도를 받아들인 자본주의처럼 가부장주의도 '변형된 형태'에서 더 악랄해졌다고 생각된다. 남성들은 자기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여성들은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없는 게, 이제는 직장 여성과 현모양처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요구받는 상황에 처하게 됨으로써 더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