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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어느 바랑인 노병의 이야기(4편)

파르바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22 21:38:35
조회 197 추천 2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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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이 재미없게 돌아가는군...'


떠들썩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거리를 바라보던 크리스토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국혼이 추진될 거라는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꽃이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이 팔리고, 음식과 술도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집집마다 대문과 창틀을 꾸몄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화려해졌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복잡한 정치 싸움 같은 건 일반 백성들이 알 바 아니었다. 


자문단도, 로마의 유력 귀족들도, 주변의 강력한 나라들도 저마다 어떻게든 국혼을 유리하게 추진하려고 애를 썼다. 단 한 명만 빼고는.

크리스토프에게 국혼은 그 자체가 재앙이었다.


'전쟁중에 혼사를 치를 수는 없겠지... 한스, 그 멍청한 놈을 이용할 수밖엔 없겠군...'

********************


"부르셨습니까, 크리스토프 공."

"...그대도 국혼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헌데... 지금 이대로라면 폐하께서 외국인과 결혼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소."


"분하지만, 그 말씀엔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뭔가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가 전에 말했듯이... 그대가 악역을 맡아야 하오. 셀주크 이교도 놈들을 끌어들입시다.

국경 지대에서 적당히 소요사태를 일으키면 그놈들도 가만히 있진 않을거요."


"으음... 과연 그걸로 그놈들이 군대를 동원할까요?"

"그래서 그대에게 부탁하는거요. 셀주크가 쳐들어오면 그대가 내부에서 호응할 거란 헛소문을 퍼뜨리시오.

그리고 그놈들이 낚이면, 그대가 멋지게 뒤통수를 쳐서 이교도들을 섬멸하는거지.

그러면 국혼이 다시 추진될 때, 그대도 충분히 후보가 될 수 있소."


한스가 씨익 웃었다.

만약 황제와의 혼사가 이뤄지기라도 한다면... 아르이로스 가문의 부흥은 일도 아닐 테니까.


그리고 크리스토프도 씨익 웃었다.


'남은 건 그 돌대가리, 파비 뿐인가... 그래도 그놈은 가끔씩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8

동쪽 국경이 소란스러워지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들뜬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격퇴한 셀주크가 로마를 이길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황제와 대소신료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언제든지간에 제국은 양면전선을 강요당할 수 있으니까.

엘사도, 자문단도, 총대주교도, 안나도 마음을 졸이며 전쟁을 준비하던 바로 그 시각, 크리스토프는 뜬금없이 베네치아에 가 있었다.


***********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도제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궁금하군. 로마 황제께서 아시면 어떤 표정을 지으시려나..."


"하하, 너무 겁주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로마에서 독일놈들을 몰아내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무슨 소리인지, 이 늙은이는 도대체 모르겠구먼..."


"도제께서는 안코나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오리오 도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농담이 지나치시군. 누굴 바보로 아는가? 그리고, 자네가 무슨 수로?"


"어차피 독일놈들도 안코나를 노리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 로마도 독일과 베네치아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건 부담스럽습니다. 오히려 베네치아와 로마가 손을 잡고 독일에게 대항하는 게 유리하지요."


"자네 말대로 한다고 해도, 우리가 무슨 수로 안코나를 공략한단 말이오?"

"시칠리아와 손을 잡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더구나 우리 로마는 동쪽 이교도부터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서쪽에 보낼 전력이 모자랍니다. 그리고... 도제님이 마티아스의 목이라도 날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만."


*****************

"저 자를 믿어도 될까, 엔리코 공?"

"저렇게 속이 시커먼 자는 저도 처음 보는군요, 도제님. 허나... 한번 걸어볼만합니다. 안코나를 손에 넣는다면... 아드리아 해는 우리 것입니다."



9

"라스카리스 공, 로마의 임페라토르로서 명하겠소. 아나톨리콘, 부켈라리온, 트라케시온의 부대를 이끌고 저 이교도들을 섬멸하시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자주색 망토를 두른 엘사가 동방원정군 사령관에게 군기와 검을 하사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미 이빨빠진 이교도들이 도발한다는 상황 자체가 의심스러웠지만, 로마의 힘은 그런 걸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출정식이 열리고, 성 소피아 대성당의 종이 울렸다.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병사들에게 꽃을 뿌렸다.

군기를 든 기마병을 필두로 장군들이 행진했다. 그 뒤를 5천여 기의 카타프락토이와 1만 명의 스쿠타티가 따랐다. 이들은 아나톨리아로 들어가 안키라에서 1만 명의 타그마와 합류해 동쪽으로 진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열광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는 황제의 마음은 무거웠다. 엘사의 성정은 피비린내나는 전쟁과는 맞지 않았으니까. 한숨을 내쉬는 엘사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안나도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폐하, 너무 걱정 마세요. 적군은 예상보다 훨씬 허약하다고 해요. 곧 승전보가 도착할 거예요."

"응... 그렇겠지...?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도대체 뭘 믿고 군대를 일으킨 걸까...? 설마 살라흐 앗 딘, 그자가 돕는 걸까?"


"에이, 아녜요. 아이깁투스에 가있는 첩자가 몇인데요? 그자는 움직일 기미가 안 보여요."

"그래... 제발 무사히 끝나야 할텐데...

...여기서 자식을 잃을 부모들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난... 이런 게 싫어..."


안나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지만,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전쟁이 싫다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하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대한 서방 왕국과 혼인하라고.


황궁의 정원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엘사의 얼굴이 안나의 눈에 시리도록 아름답게 비쳐졌다.

안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엘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스르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엘사의 머리를 안나는 그저 감싸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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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가원수. 본문의 엔리코 단돌로는 후에 4차 십자군을 이끌고 동로마를 박살냄(작중에선 도제가 되기 전).

안코나: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로 군사적 요충지임. 작중 시점은 대략 1180년경인데 이 직전에 베네치아는 안코나를 공략하려다 여러 번 실패함. 안코나는 독립적 도시국가였는데, 이 시기에 동로마는 신성로마제국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안코나를 사들인 상태였음.

임페라토르: 로마의 군 통수권자. 여기서 '엠페러'가 나옴.

아나톨리콘, 부켈라리온, 트라케시온: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던 동로마의 테마(군관구) 중 3곳의 이름

카타프락토이: 중갑기병

스쿠타티: 큰 방패와 창, 검으로 무장한 보병

타그마: 기병 비율이 높은 기병화 연대

안키라: 현재의 앙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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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해설이 너무 많네...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 불안한 엘사의 마음이 잘 표현됐는지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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