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용사 안나는 눈을 떴어. 앞뒤로 온몸이 따끈따끈하니 나른해져서 어느 순간 잠들었나봐. 얼마나 잠든건지 햇빛이 없으니 가늠이 안 되네. 안놔랑 올라프가 서로 따땃한 바위 옆에 붙어 자고 있는 걸 본 안나는 나중에 움직이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는걸 짚어보자면 엘사의 입술을 본 것이었는데 그 후에는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워. 자는 사이에 누군가 뒷통수라도 때려댄 것처럼 지끈지끈하기까지 하고. 잠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런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그때 안나는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어.


그리고 마주한게 엘사의 푸른 눈동자. 안나가 하는짓을 빤히 보고만 있었나봐. 눈이 마주치니 깜짝 놀라서 잠이 확 달아나. 온몸의 털이 삐쭉 솟아 오르는 듯했어. 놀란 기색이 역력해. 엘사는 안나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어.

"언제부터 일어나있었어?"
"아까 전에."
"그 아까가 언제야?"
"안나가 일어나기 전에."

그럼 자고 있는 모습까지 전부 봤다는 소리인가봐. 아까 일어날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꼼꼼히 따져보게 되겠지. 입술 생각? 오, 안 돼! 그 생각을 하고난뒤 안나는 아차 했어. 엘사가 지금 전부 알아버렸을거야. 남 잘 때 입술 쳐다봤다고 변태취급을 받을거야!


그러나 안나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엘사의 반응은 무덤덤했어. 왠지 그런 반응이 안나를 더 조급하게 할거야. 입술을 봤다는 것에도 아무렇지 않아한다는 뜻은 곧 그것보다도 더한 짓을 해봤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야.

"안나."
"...어?"

지금 이름을 불리는 것 자체로 용사 안나를 충분히 조였어. 식은땀이 저절로 나기 직전이었지. 머리를 쓰담쓰담 하는 손도 멈추고 안나의 얼굴을 보는 눈은 더 다가왔어. 안나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여. 지금 안나가 어떤 상태인지도. 자는 사이에 자기 입술을 쿡쿡 찌르기까지 했나봐.

"뽀뽀하고 싶어?"
"응?!"
"전에 나한테 뽀뽀해줬어. 안나도 좋아했어."
"내가? ...정말?"

역시나 만진것보다 더한짓도 했었구나. 엘사의 눈빛에 확신이 차있었어. 그럼에도 안나는 왜 자신이 벌써 뽀뽀를 하려는 것처럼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건지 그 소리가 엘사에게 들리진 않았는지 걱정투성이야. 안나는 뽀뽀하기 전에 항상 걱정이 많아. 어차피 하고 난 뒤에는 안나가 좋아하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싶었어.

"안나 뽀뽀해줘."
"뽀뽀?! 그건!...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거야!"
"안나가 나는 안나랑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해도 돼."

나랑 정말 진도 많이 나갔었구나. 이러니 인어랑 인사할때 기분이 별로 안 좋아할만해. 손을 그렇게 잡은것도 알 것 같았어. 엘사가 거짓말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포옹도 하고 뽀뽀도 하는 걸테지.


적극적인 애인은 부끄러움 많은 용사님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 기억도 사라져서 거의 초면같은 용사에겐 큰 도전같은 거였어. 그래도 저렇게나 기대하고 있는데 안 하면 또 슬픈 얼굴을 할테고, 나쁜 짓이라도 한 것 마냥 용사님 양심이 따꼼따꼼 할거란 말이야.


안나가 뽀뽀를 할 것 같아 보였어. 기억이 안 나도 뽀뽀는 하려고 하니 왠지 기대가 돼. 안나가 부담스럽지 않게 해주려? 엘사가 먼저 쪽 하고 안나의 뺨에 하면 화들짝 놀라서는 웃긴 얼굴이 될거야.


부끄러움을 겨우 견딘 용사님도 답례를 할텐데 입술을 대긴 하는데, 이건 쪽 수준도 아니고 그냥 뺨을 입술에 붙인 정도야. 안나가 하고 나면 엘사가 다시 쪽. 그리고 또 답례. 엘사는 용사님이 다시 입술 뽀뽀를 하기 위해서 단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