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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좆같은 이웃 03

EAO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20 18: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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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이웃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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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설주의



끔찍하고 거지같은 하루가 지났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나는 아직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정말 꿈이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손에 붙은 밴드를 보니 어제 미친듯이 싸운 것이 꿈이 아님을 알았다. 아야… 밴드를 살살 때니 상처난 손이 굉장히 쓰라려왔다. 우선 쓰라림을 뒤로 하고 아침 먼저 먹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손이 아프니 어쩔 수 없이 샌드위치로 결정했다.


"정말 쓰레기같네."


샌드위치의 속이 아무리 봐도 사기친 수준으로 빈약했다. 나는 결국 일회용 비닐 장갑을 착용하고 샌드위치의 속을 손수 더 채우기로 결정했다. 달걀이랑 베이컨 정도면 충분하려나?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요리를 시작했다. 이런 것이 익숙치 않아서 한참 해맸지만, 그래도 고생한 끝에 나름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새하얀 우유 한잔을 컵에 가득 따르고 나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진작 이렇게 좀 먹을걸…."


샌드위치는 예상외로 맛있었다. 베이컨이 조금 타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배부른 식사를 끝내고 잠깐 앉아서 TV를 보았다. 이른 아침에 해주는 프로그램들이라 볼만한 것은 없었지만, 재미없는 것이 시간때우기엔 최고였다. 어느정도 보다가 TV를 끄고 씻기 시작했다. 물에 닿을때마다 상처난 부위가 쓰라리고 아팠지만, 아픔을 꾹 참고 빠르게 씻었다. 느긋하게 씻기엔 벌어진 상처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랬지?"


깔끔하게 씻고 나와서 상처난 부위에 밴드를 붙이면서 든 생각이었다. 정말로 왜 그랬을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집앞까지 찾아가서 주먹다툼을 한거야? 밴드로 도배된 손등은 그야말로 초토화였다. 양손 합쳐서 적어도 10개 이상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요리하다 다쳤다고 핑계를 댈까도 싶었지만, 이미 내 친구들은 내가 요리는 정말 하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


어제와는 다른 생각. 하지만, 정말로 말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엘사라는 애와 말다툼을 하고 싸웠다는 사실은 어제 말해서 이미 애들도 알고 있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당일날에 주먹다툼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그런 것보단 차라리 TV에서 해주는 B급 막장 드라마가 더 현실성 있겠다. 으아… 존나 앞뒤로 꽉 막혀서 엄청 답답하고 막막했다. 답답함을 뒤로하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 채로 다시 소파에 주저 앉았다.


"지금 몇시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55분, 버스가 오려면 아직 5분이나 남았다. 나는 집 밖으로 나서며 그 5분동안 오늘 학교에 가서 내 손에 있는 밴드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제발 좀 굴러가라 이 돌대가리야! 하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야속하게 이런 상황 만큼은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결국 8시 정각이 되었고, 버스가 도착했다.


"시발…."


나는 모든걸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잔뜩 숙이고 매일 앉는 자리에 앉았다. 안녕, 안나. 어제 그 애가 인사를 건넸다. 나도 일단 안녕이라고 말하며 인사를 건넸다. 제인이 버스에 없는 것이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오늘 제인이 앉아 있었으면 손은 왜 그러냐며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어서 버스 안이 소란스러웠겠지. 지금 옆에 앉아있는 애가 손이 왜 그러냐고 묻지 않는 것이 내심 고마웠다. 나는 속으로 최선을 다해 그 애를 향해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 손에 관심 안가져서 고마워! 하고 말이다.


"안나! 안나! 손 왜그래? 어?"


그런 감사한 마음도 잠시, 교실에 들어오니 화이트 제일 먼저 내 손을 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이런 시발… 화이트 덕에 다른 애들도 내 손을 쳐다보았다. 나는 최대한 시선을 무시하며 묵묵히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애들이 몰려 들어서 내 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묻는 덕에 귀가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닥치라고 시원하게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그녀들은 일렬히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설명 할테니까 좀 닥치고 있어줘. 제발."


화이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빨리 말해달라고 보챘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제 있던 일들을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그래도 사실을 털어 놓으니 나름 속은 시원했다. 물론 그 여파로 벨과 메가라는 다시 내 잘못이다, 아니다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만 좀 싸워라, 썅년들아! 나는 정신없이 말다툼 하는 둘을 때리면서 겨우 때어 놓았다. 화이트는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끼어들어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때리면 못 써, 안나! 네 잘못이야."


"으… 이러면 존나 어제랑 다를게 뭐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데자뷰인가? 직접 겪으니 생각 이상으로 좆같았다. 그런 와중에 제인이 불쑥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제인, 감기는 다 나은거야?"


"다 낫긴 했는데… 왜 이렇게 화가 나있냐?"


나는 제인에게 다시 한번 어제 있던 일들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제인은 내 얘기에 한참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나한테 손가락질 하며 100% 내 잘못이라고 소리쳤다. 그럴거면 고민은 왜 한거야? 내 대답에 제인은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으, 그래. 시발 다 저의 잘못입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결국 오늘도 나의 잘못을 인정했다. 정말 하나 같이 마음에 안들어… 좌절한 상태로 엎드려 있다보니 벌써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엎드린 채로 있다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선생님을 흘긋 쳐다보았다. 엎드린 채로 있어서, 그리고 앉아있는 애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누군가 선생님의 뒤를 따라왔다. 새로운 전학생이라도 되는 걸까? 제발 엘사만 아니면 다 좋을텐데.


"자, 오늘 새로운 전학생이 왔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새로운 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기소개를 해달라 부탁했고, 그 학생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내곤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전학오게 된 엘사 카밀라 라고 합니다. 편하게 엘사라고 불러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엘사 카밀라? 잠깐, 엘사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니 자기 소개를 하는 여자는 내가 아는 그 원수지간 옆집의 좆같은 이웃, 엘사가 맞았다. 오 씨발, 신이시여! 씨발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좆같은 재앙이란 말입니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존나 역대급 최악의 상황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종교는 없지만, 오늘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이 한 몸 바쳐서 신에게 빌고 싶었다.


제발 이 좆같은 상황이 제발 꿈이길 바란다고, 제발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상상속에서 일어나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가 무색하게도 선생님은 내 자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빈 자리가 있으니, 엘사는 저기에 가서 앉으렴."


내 옆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에 순간적으로 든 기분은 다 필요 없고, 오로지 하나. '좆됐다'였다. 정말 진심으로 좆됐다. 내 머릿속에서나 상상했던 좆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정말로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같은 학교, 같은 반, 거기다 옆 자리? 존나 토 쏠리는 상상이 현실로 일어나다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했는데, 이건 설마가 사람을 잡는 수준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밀어서 죽이는 수준이잖아?


"맙소사…."


나는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절망했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보다. 내가 사는 나라를 말아먹고 다른 나라까지 말아먹고 다닌 수준으로 큰 죄를 저질렀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병신같은 일이 현실이 될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 컸나보다. 눈 앞이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시발…."


이번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절망했다. 그러면 뭐하나, 이미 엘사는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선생님이 시켰는걸! 나는 이제 끝장이다. 지금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이 좆같은 상황에서 누가 나를 좀 구해줬으면 좋을테지만, 그런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허망한 꿈이다. 나는 결국 체념하고 이 좆같은 현실을 내 몸으로 직접 받아드리기로 결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그러면서도 겁이 잔뜩 났다. 저 미친 년이 나한테 맞았다면서 동정을 사면 어떻게하지? 시발, 갈수록 끔찍하고 꿈도 희망도없는 생각만 하고 있잖아? 하지만, 그게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웠다. 누가 뭐라해도 엘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기만 해도 표정이 절로 찡그려지는 역대급 원수지간 관계니까 말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가 사전에 있을까?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가 내 머릿속 사전에 한가지 있긴하다.


'좆됐다'였다.


───


정말 안나는 큰일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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