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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19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08 21: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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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유혈]

2화[고어]

3~4화[고어]

5~7화(1)

5~7화(2)

8~9화

12~13화[유혈/고어]

14~15화[유혈/고어]

16화

17화

18화





66.

엘사는 계속 눈을 감았다. 어찌나 세게 감고 있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혀 있을 정도였다.

"무서워요....."

플래시는 엘사에게 있어 총과 같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아마 연구소에서 있었을 때, 플래시와 비슷한 섬광에 학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울프독 씨, 저러다 저 애 사진 못 찍어요."

말끔한 와이셔츠 차림을 한 에리얼의 부하가 카메라의 셔터를 문지르며 말했다.

"눈 포토샵은 안 돼요?"

"불가능한 건 아닌데, 당신이 요구하는 시간보다 더 길어집니다. 어떻게, 포토샵이라도 하시겠어요?"

안나는 핫라인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13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이래저래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예정된 여권 발급 시간에 맞춰 피노키오 카페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엘사의 타의적인 비협조는 눈에 띄는 걸림돌이었다. 안나는 에리얼의 부하 옆에서 엘사에게 손짓을 했다. 엘사가 의자 밑에서 내려와 쪼르르 안나에게 달려왔다.

"엘사, 음. 저 번쩍이는게 무섭지?"

"네, 이따만큼 무서워요."

엘사가 팔을 벌려 무서움의 정도를 추상적으로 설명했다.

"그럼...이렇게 해보자. 언니가 카메라와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을 테니까, 카메라 불빛 말고 언니만 바라보는 걸로 하자. 어때, 할 수 있겠니?"

"언니는 번쩍이지 않으니까 좋아요!"

엘사가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은 감출 수 없었다. 안나가 엘사의 손을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그럼 다시 한 번 해보자."

안나는 부하에게 양해를 구하고 엘사의 눈동자가 치우쳐지지 않게 최대한 카메라에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부하가 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업계의 미친개의 행동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셔터를 눌렀다. 다행이도, 이번엔 엘사가 눈을 감는 일은 없었다.

"잘 나왔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부하가 안나에게 목례를 했고, 안나 또한 덩달아 그에게 목례를 했다. 엘사가 다시 안나에게 다가와 다리를 안았다. 안나는 잘했다는 듯 엘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로라의 사진 촬영까지 마치자, 엘사와 오로라는 에리얼의 또 다른 부하인 '랩터'에게서 여권에 기입할 양식이 든 종이를 받았다. 오로라는 성실히 써내려갔지만, 엘사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안나가 끼어들어 엘사의 양식서를 대신 써 주어야 했다.


가장 어려웠던 항목을 안나에게 물어보자면, 안나는 당연히 국적을 외쳤을 것이다. 안나는 전쟁통에 고아가 되어서, 중동을 떠돌다 NFF 사람들에게 거둬졌다. 그 이전에, 가족이 있었을 때는 사막이 아닌 한적한 바닷가에서 살았던 것 같았다. 사막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안나를 속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쟁의 폭격은 기억의 요리사였다. 어떤 기억은 버리고, 새로운 기억을 넣거나, 아니면 순서를 뒤바꿔 미치게 만들었다. 그 덕분인 건지, 가끔 멍할 때가 있었다.


엘사도 안나를 따라하는 것처럼 눈에 초점을 잃고 있었다. 도저히 엘사에게 맞는 국적을 생각할 수 없었던 안나는 국적 란에다 '영국'이라고 적었다. 엘사처럼 백금발을 가진 사람이 흔치는 않지만, 적어도 다른 대륙의 국적을 빌려 하얀 코끼리 취급을 받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었다. 랩터에게 종이를 제출한 어른 두 명은, 곧이어 테이블 위로 서빙된 텀블러에 빨대를 꽂았다. 매캐한 냄새들이 사진관에 따로 설치된 공기청정기로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지하의 물냄새는 지울 수 없었고, 오로라는 이따금 얼굴을 찌푸렸다.

"으, 이거 민트초코잖아요. 안나, 저랑 바꿔먹어요."

오로라가 자신의 텀블러를 안나에게 밀자, 안나는 다시 오로라에게 돌려 주었다.

"차라리 고폭탄을 주지 그래요. 어디 보자...내 건...아."

텀블러의 음료를 한 모금 마신 안나는 그만 사레가 들어 강아지처럼 캑캑대기 시작했다.

"언니, 등, 등!"

들썩이는 안나의 등을 엘사가 두드렸지만, 오히려 엘사의 몸이 들썩이고 있었다.

"뭐 이상한거 들었어요? 루테피스크?"

"아니...그게...  이거 얼음물이잖아요."

"얼음물이 뭐 어때서요.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안나는 겨우 기침을 멈출 수 있었다.

"예전에 작업 하나 잘못하다가 잡힌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마약을 일주일 동안, 천천히 주사기로 주입시키는 고ㅁ...나쁜 짓을 당했죠. 탈출은 성공했지만, 약 기운을 뺀다고 이틀을 얼음물 속에서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죽을 것 같아요."

안나의 손이 벌벌 떨렸다. 오로라는 안나의 텀블러를 자기에게 가져왔고, 말없이 민트초코가 들어있는 텀블러의 빨대를 물었다. 투정을 부리기엔, 안나의 얼음물 혐오는 극한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엘사는 울먹거리며 안나의 기침이 멈추어도 계속 등을 토닥였다. 안나는 괜찮다고 말한 뒤, 주먹을 쥐고 눈을 감았다. 주위의 소음이 다시 뭉개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이 발작이 빨리 지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안나의 얼음은 바람처럼 빠르게 녹아내렸다. 엘사가 두 눈을 감고 안나의 볼에 손을 대자 얇고 따뜻한 얼음 한 줄기가 안나의 볼을 타고 머리로 거슬러 올라갔다. 잠시 뒤, 모든 소리가 다시 명확하게 들렸고, 시야도 또렷해졌다. 빨라졌던 심장 박동은 다시 원상태로 느려졌다.

"...이젠 괜찮아요?"

엘사가 피곤한 듯 축 처진 목소리로 안나에게 말했다. 겉의 상처만이 아닌, 안의 상처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엘사...이젠 그런 거 안 해도 돼. 언니는 너 아픈 거 싫어."

"그냥 더운 것 뿐이에요. 나 안 아파요."

엘사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나의 이마를 치유해 주었을 때도, 보이지 않았지만, 엘사는 땀을 흘리고 있었으리라. 안나는 엘사의 작은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능력을 쓰면 엘사의 온 몸이 차가워지는 듯 했다. 엘사의 몸이 일반인의 몸과 동일한 상식에서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별도의 특수성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안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랩터에게 부탁한 담요를 엘사의 몸에 두르는 것 밖에 없었다.







67.

예정보다 30분 빠른 90분 뒤, 엘사와 오로라의 손엔 위조 여권이, 안나의 손에는 에리얼이 원래 면허증 대신 준 헌터킬러 '리트리버'의 면허증이 들려있었다. 새로이 인쇄된 안나의 사진을 보며,  울프독이 아닌 리트리버란 글자가 쓰여있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사람을 죽이는데 합법화된 그 수첩 같은 면허증에, 왠 순박한 개 이름이 들어있었다. 나가기 전에 에리얼에게 '넌 존나 자일리톨만 씹으며 살아라.'라고 핀잔을 줬을 걸 하고 후회했다. 그리고 엘사에게 '내 별명이 리트리버였어'라고 말한다면, 엘사라도 화를 낼 것이고, 오로라는 놀릴 게 분명했다. 알려주지 않는게 정신적으로 이로웠다.



룹촙스크를 빠져나온지 1시간 뒤, 세 사람을 태운 다츠컴뱃은 국경의 검문소에 도착했다. 검문소의 철망에 위태롭게 달린 확성기에서 '총기 소지자는 곧바로 직원에게 신고 후 반납'을 재차 외치고 있었다. 검사를 받는 창구에는 불펍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이 입구마다 서 있었고, 지붕에는  DShK기관총이 모래주머니 위에 거치되어 있었다. 안나는 혹시 몰라 세이프하우스에서 챙겨온 무기부터 오로라의 CZ권총까지 컴뱃 내부의 수납장에 모든 총기를 넣어 두었다. 탐지기에도 적발될 확률은 극히 낮았다. 안나 일행의 차례가 되자, 안나는 엘사와 오로라의 여권에 자기 것까지 끼워 검사 요원에게 건넸다. 검사 요원은 여권들을 몇 번 만지고, 햇빛에 비춰본 뒤, 다시 안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탐지기가 차 전체를 스캔했다. 이상 없다는 청명한 알림이 울렸다. 국경을 통과할 자격이 주어졌단 뜻이었다. 철망과 장벽을 지나자, 여지껏 불안했던 안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았다. 적어도 고비 중 하나는 넘긴 것이었다. 앞으로도 더 큰 고비가 있을 테지만, 안나는 지금 이 하나를 극복한 것만으로도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재머와 바디캠, 그리고 엘사와 패키지 3와 함께 피노키오 카페로 간다. 그 다음, CIA 지부로 가 신변을 확보한다. 이상적이었다. 엘사의 일이 잘 마무리된다면, 적어도 엘사는 더 나은 곳에서 생활하게 될 테고, 안나도 자주 만나러 갈 것이었다. 진짜 엘사의 행방을 찾기위해 이따금 작업을 치루겠지만, 이번 연구소 건처럼 최악의 작업은 가려가면서 받을 것이라 안나는 다짐했다. 이두나가 안나의 바램에 동의해 작업 건수를 잡아주기를 바랬다.





67.


"한스 삼촌!"

한스의 방에 경호원들과 함께 찾아온 사람은, 2호 개체의 푸른 눈을 가진 검은 스파이키 컷의 작은 아이였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 모습은 마치 고딕 양식에 염두를 두었다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멜리사!"

한스는 겉으로는 짐짓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다만 경호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들이 입은 검은 정장 곳곳에는 날카로운 얼음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걸로 경호원들은 자칫 잘못했다간 이 아이의 얼음 송곳에 목이 뚫려 꼬챙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 근데 왜 불렀어?"

"응, 다름이 아니라 아저씨가 우리 멜리사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한스는 테이블 위의 양철 통에서 크고 붉은 사탕을 꺼내 멜리사라고 불린 아이에게 물려주었다. 멜리사는 먹이를 달라는 새끼 새처럼 사탕을 받아먹어 콧노래를 부르며 입안에서 사탕을 또륵 또륵 굴렸다. 

"뭉데?"

"음...우리 멜리사, 능력은 익숙해졌니?"

한스가 멜리사의 코를 톡 톡 두드리자 멜리사는 간지러운듯 코를 긁었다.

"웅, 당연휘 익숚해졌쥐."

사탕 때문에 멜리사의 발음이 부정확했다. 멜리사가 손을 뻗자, 공중에 작고 뾰족한 얼음조각이 만들어졌다. 멜리사가 팔을 들어 무언가를 던지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얼음조각은 총알처럼 한스의 귀를 스쳐 날아가 유리벽에 박혔다.

"어뛔? 대단하지이이."

멜리사가 팔짱을 하며 엣헴 가오를 잡았다.

"드디어 제어할 수 있구나. 대단해졌어, 우리 멜리사?"

한스는 이번엔 하얀 사탕을 꺼내 멜리사의 손에 놓았다. 멜리사는 폴짝 폴짝 뛰면서 세상을 다 가진 아이마냥 좋아했다. 2호 개체와 달리 보통의 또래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당연한 감정을 멜리사는 가지고 있었다. 다만, 1호 개체  멜리사에겐 관점에서의 단점이 있었다. 멜리사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얼음 능력을 발현했을 때에도 얼음 총알과 눈보라를 만들어 실험 연구원 셋의 어깨를 날려버렸고, 환풍구 속이 궁금하다고 눈 계단을 만들어 오르다 데굴거리며 넘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끝내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수습팀 멤버의 말을 빌리자면, [작은 미친년] 멜리사는 그 피바다 속에 서 있었다고 한다. 광기, 멜리사는 방황하는 광기를 품고 있었고, 한스는 개체들에게 실시하지 않았던 사회 학습을 멜리사에게만 시켰다.


2호 개체는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소심한 성격이라면, 이 멜리사는 약간의 사회성을 축적시켜 미친 것보다 활발한 아이로 만들으려 했다. 이 아이는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멜리사는 능력 제어에 출중했을 뿐,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1호 개체였다. 사회 학습이 실패한 후, 한스는 멜리사보다 2호 개체를 만나러 가는 횟수를 늘렸다. 2호 개체는 그 사람을 쏙 빼닮았고, 멜리사보다 순수했다.


최근 한스는 멜리사보다 2호 개체를 더 학습시키면 한스를 위한 배우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미친 알파킬러가 2호 개체를 납치했다. 한스는 생각했다. 멜리사는 능력이 아까웠지만, 그에게 있어 버림패나 다름 없었다. 멜리사를 안타까워할 그레이는 죽었고, 그의 연구팀도 대거 쓸려나갔다. 멜리사의 실질적인 소유권은 이제 한스에게 있었다. 버리든, 죽이든, 멜리사를 위해 슬퍼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멜리사, 저번에 얼음으로 사람 죽인 거, 기억나니?"

"응, 젤리처럼 터져버렸어. 케첩이 물처럼 막 나오고, 처음엔 무서웠는데. 나중엔 재밌어졌어."

"잘 기억하고 있구나,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일을 해야 하는데,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니?"

"사탕 몇 개 줄거야? 예전부터 안 줬잖아. 난 삼촌이 주는 사탕이 제일 좋은데."

멜리사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한스는 그런 멜리사의 까치집처럼 삐죽 솟아오른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사탕 통을 집어, 멜리사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일을 잘 끝내고 나면, 한 통 더 줄게. 할 수 있겠니?"

"응! 할 수 있어. 열심히 해올게!"

멜리사가 사탕 통을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마치 전통 춤을 추는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근데 누구 죽이면 돼?"

멜리사가 물었다.

"그건 네 뒤에 있는 아저씨들을 따라가면 알게 될 거란다. 저 아저씨들이 알려줄 테니, 몸 조심하렴."

한스가 멜리사의 두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멜리사는 그 손길이 그리웠는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멜리사가 들뜬 마음으로 방을 나가자, 한스는 멜리사의 뒤에 있었던 경호원들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저 아이가 알파킬러를 죽인다면, 곧바로 저 아이도 죽이도록 해요."

"회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한 거 알지만... 저 애가 우릴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애를 죽이라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한스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건장한 사내들은 금방이라도 저 아이의 목을 꺾을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은 다수인데다가 총을 가지고 갈 터였다. 

"간단해요. 정말 간단해요. 여러분이 늘 하던 일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어린애라고 부담 갖지 마세요. 어차피 그 애는 폐기해야 하니까요."

"가치가 없어진 건가요?"

경호원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 애의 유통기한은 엿같은 개새끼를 죽일 때 까지만 입니다."

한스의 입에서 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68.

"오로라, 자고 있어요?"

다츠컴뱃이 쿠르차토프를 막 지나고 있을 때, 안나는 엘사가 잔 것을 확인하고, 오로라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안 자는데요.... 궁금한 거 있어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그...제 작업에 사용된 무기들 말이에요."

"네, 거기서 두 개는 케메로보 세이프하우스에 남겨졌고요."

안나는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출처가 어떻게 돼요?"

"말했잖아요. 믿을 만한 친구들을 통해서 받았다고."

"그 친구들이 누군데요?"

"지금 나 의심하는 거에요?"

오로라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안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 당텍이 말했던 것처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로라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믿어줄 거라 생각했던 친구의 입에서 의심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의심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의심하는게 아니고 뭔데요."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엘사가 일어나 있었다면 울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핸들을 쥔 안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솔직히, 약간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냥 얘기하면 될 텐데, 왜 오로라는 말을 돌려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아니..."

"고프닉 친구들이에요. 제 카페에 자주 들르던 애들을 통해 대리로 구매한 거였어요."

오로라가 먼저 한 수 접고 얘기했다.

"직접 구매하는 것도 벅차고, 주문해도 스칼렛 당신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고요. 웃돈까지 얹어줬다니까요?"

오로라의 말이 기관총의 총알처럼 안나의 귀에 박혔다. 일단 오로라는 결백해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아파트에서 진즉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것도 연극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안나가 오로라에게 사과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거든요. 의심을 줄여야 하는 건 아는데, 동시다발로 퍼진데다, 자칫하면 3차 대전 스캔들까지 터지기 직전이에요."

"아니에요.... 제가 말 안 한게 더 잘못인데요."

안나는 담배와 술을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안나는 한 개비의 담배와 맥주 한잔이 절실했다.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받은 상황에서, 발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암세포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화내서 미안해요."

오로라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믿음직하지 못해서..."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차의 엔진 소리에 고로롱 코를 고는 엘사의 잠이 섞였다. 하늘은 차내의 상황과는 다르게, 회색 하늘에 푸른 구름을 띈 꿈처럼 괴리감이 있었다. 만일 이 모든 것들이 꿈이었다면, 창문을 조금 열어 메마른 바람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잔혹해서, 안나는 달려야만 했다. 뭐가 되었든, 이 일의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다시 가슴이 옥죄어지기 시작했다. 발작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오로라와 자리를 교대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스칼렛, 왜 그래요. 또 안 좋아졌어요? 엘사 깨울까요?"

"아뇨... 그냥 자게 둬요. 엘사는 제 진통제가 아니에요."

"약이라도 먹을래요?"

"무슨....약인데요."

"항우울제가 몇 알 있는데, 이거라도 먹어봐요."

오로라가 종이컵에 물을 따랐고, 안나의 입에 하얀 알약 캡슐 하나를 넣어주었다. 안나가 물을 마시고, 컵을 오로라에게 돌려주었다.

"오로라, 내 속사정을 좀 털어야 하는데.... 들어 주실 거죠?"

"뭐든 못 들어줄까요. 속 시원하게 얘기해 봐요."

"엘사는 자고 있죠?"

오로라가 엘사의 얼굴에 귀를 가져갔다. 몇 초 뒤, 룸미러를 통해 오로라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 얼음물. 기억나시죠?"

"네, 마약 빼려고 이틀 동안 빠져있으셨다면서요."

"네, 근데....그걸로도 후유증이 안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농장을 나갔어요. 제 상사는 일시 휴직이라고 우기긴 했지만, 앞으로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해서."

"다른 일은 알아보셨어요?"

"나가기 전에 CIA 내부 인사 파일들을 챙겨 나갔어요.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패로 써먹으려고요, 근데...샐리맨더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서... 들어갔죠. 그쪽 회사로."

"샐리맨더라... 거긴 블루라운드처럼 군사 기업이잖아요. 왜 들어갔어요?"

"이 일로 먹고 살았는데... 다른 일엔 손이 안 잡혀요. 그나마 작업을 하면서 틈틈히 글쓰기를 배우긴 했는데...영..."

"글이 하루 아침에 잘 써지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처음에 커피 만들면서 이런 저런 실수가 많았는데, 지금은 나름 잘 만든다구요. 그리고 스칼렛은 일이 힘들잖아요."

오로라가 운전석의 어깨부분을 잡고 안나에게 몸을 뻗었다. 순수한 웃음이 안나에게 보여졌다.

"잘 끝나면, 다시 펜을 잡아보는 건 어때요?"

오로라가 넌지시 권유했다.

"다시 쓴다라... 좋죠. 근데...아직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해서 금방 잡을지는 모르겠어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껏 그 어려운 일들을 헤쳐 오셨잖아요?"

긍정의 말을 들어도 안나는 착잡했다. 국경은 넘었다. 오로라는 정황상 배신자가 아니다. 그 두 가지를 빼도, 여전히 많은 위협과 의심이 남아있었다. 

"잘...할 수 있을 거에요. 스칼렛, 난 당신을 믿어요."

오로라의 갯벌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진주같은 진지함을 찾았다.

"그 패키지들만 잘 넘기면, 다 끝날 수 있잖아요."


'글쎄요, 저는 안 끝날 텐데.'


안나가 속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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