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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Praying prey 25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6 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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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엘사와 멜리사는 어느덧 서로에게 관심이 생겼다. 안나가 있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멜리사는 당차게 주제를 꺼내면, 엘사는 멜리사의 말에 조곤조곤 답하는 형식으로 대화는 진행되었다. 한 층 마음이 놓인 안나는 두 여동생에게 전화 좀 하고 오겠다고 말한 뒤, 모텔 스마트폰과 핫라인 스마트폰을 복도로 가져왔다.



물자 지원이 필요했다. 일단 엘사의 방탄복은 멀쩡했지만, 멜리사의 것은 이미 배신을 당하면서 등에 여러 발 맞은 적이 있었다. 보통 성인이 방탄복을 입어도 총알을 맞으면 최소한 멍이 들었다. 이동이 힘들지라도 엘사와 멜리사는 방탄복을 두 벌 겹쳐 입혀야 했다. 모자, 아니 헬멧 또한 필요했다. 군용 백팩과 새로운 무기 또한 안나의 머릿 속 주문서에 적히기 시작했다.



안나는 모텔 스마트폰을 이용해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새벽이지만 그 사람은 깨어 있을 터였다. 안나는 기억나는대로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접촉을 시도했다. 수화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안나의 전화를 받았다.

"....이 새벽에 누구세요. 장난전화면 총 맞을 줄 알아요."

"나야, 스칼렛."

"스...칼렛? 이거 누구 폰이야? 정보가 안 뜨는데?"

"에리얼, 그건 일단 중요하지 않아. 계속 부탁만 해서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줘야겠어. 물자적으로."

"....에키바스투즈 건을 네가 만들었나 보구나?"

에리얼은 목소리에서 잠을 털어냈다. 전화기 너머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거. 뭘 원하는데?"

"NIJ 레벨 3+ 등급 방탄복... 5장하고..."

"뭐? 잠깐, 잠깐잠깐!"

에리얼이 언성을 높였다. 안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귀에서 멀리했다.

"테러라도 벌일 셈이야? 너 진짜 미쳤구나? 어?"

"아니요, 이 미친 자이.. 아니 미친 아가씨야. 나 한벌, 내 동... 패키지 2명에게 입힐 거 각각 두 장씩 필요해서 그래."

굳이 에리얼에게 엘사와 멜리사가 동생임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걸로 약점을 잡아 뭘 뜯어낼 지는 에리얼 빼고 아무도 모른다.

"그것만 있으면 돼? 아니면 뭐, 또 필요한 거라도."

"지금 말하면 언제까지 구해줄 수 있어?"

"일단 거래소를 비상 운영해서 긁어 모아줄게. 항목에 없는 거면 최대한 가까운 걸로 구해다 줄 수 있어. 랩터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너 지금 어딘데 그런 말 하는거야?"

다행이 에리얼은 별 말 없이 안나를 지원하려는 심산이었다. 후불로 이루어질 테고, 그 가격이 바가지를 씌우겠지만, 부동산 말고 온라인 송금으로 합의를 본다면 수월할 일이었다. 에리얼도 지금 당장 안나에게 가치 있는 물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가.. 치르디테?"

"치데르티겠지...정확히 어디 있는데?"

"그건 말 하기 힘들고, 재머 켜둘 테니 그 랩터한테 통신 유지하라고 전해줘."

에리얼이 그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길었는지 무전기에 대고 입바람을 불 때 생기는 잡음이 생길 정도였다.

"너도 참 바쁘게 산다. 바쁘게...."

"안 바쁜게 미친 거지."

"아니, 그냥 너도 나도 미친거야. 빨리 카탈로그나 말해."

에리얼의 마지막 말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에리얼은 원하지 않게 용병집단 거래소의 리더가 되었고, 안나도 원하지 않게 총과 칼을 들고 있었다. 원치 않는 일을 계속 해 은연중에 미친 두 여자가 서로 건넬 것은 외강내유적인 말들 뿐이었다. 에리얼도 그 사실을 알고, 안나도 그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처지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알았어, 일단 아까 말한 방탄복에, 물에 담겨진 뇌산수은 5팩, 그리고 22구경짜리 소총 내지 권총 한 자루, mp5 전용 소음기 2개에 권총형 마취총과 마취탄...한 20발 정도와 방탄 헬멧 좀 가져다줘. 양안식 야투경도 하나 필요해. 아, 수류탄하고 연막탄, OTF나이프 한자루도 부탁해."


안나는 이후 추가적인 물품들을 띄엄띄엄 생각이 나는 대로 에리얼에게 부탁했다. 에리얼은 천천히 말하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안나의 카탈로그를 완성시켰다.




80.

안나가 나간 이후, 엘사와 멜리사에게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서로 싫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된 성격에서 찾아온 미묘한 소통의 부재는 두 사람이 서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엘사는 멜리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손가락을 만지고 있었고, 멜리사는 사탕 통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먹으면서도, 엘사에게 사탕을 줄지 말지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저기...""


동시에 둘이 말하고,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먼저 말해..."

엘사가 한 발 양보했다. 멜리사는 엘사와 손가락으로 집은 사탕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엘사에게 불쑥 사탕을 내밀었다.

"너 쥴게."

엘사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멜리사가 내민 사탕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엘사의 작은 볼이 개구리처럼 빵빵해졌다.

"교먀워..."

엘사의 뭉그러진 발음을 듣고 멜리사가 푹, 하고 웃었다.

"왜 한수 삼촌이 널 찾와갔는지 알 것 같타."

"한수 삼촌이 누군대...?"

멜리사가 사탕을 까득 씹었다. 엘사의 어깨가 흠칫 들썩였다.

"누군지 몰라? 정말?"

엘사는 고개를 저었다.

"한수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그 있잖아. 얼굴은 엄청 큰데, 잘...생기진 않았고! 이이렇게 생긴 사람 말이야."

멜리사는 두 손으로 볼을 한껏 우그러뜨렸다. 엘사는 그 모습을 이 우스운 듯 소리내며 웃었다.

"그런 사람은 못 본 거 같아. 사실, 잘 모르겠어. 난 다른 개체들만 기억나지, 어른들 중에 누가 누구인지는 잘 몰라."

"너 바보구나."

멜리사가 사탕 통의 뚜껑으로 엘사의 머리를 힘 없이 통 하고 두드렸다. 엘사는 맞은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래도 웃음은 잃지 않았다.

"맞아, 나 바보인 거 같아."

"그래서 한스 삼촌이 널 찾아간 거일지도 몰라. 넌 바보지만, 나와는 다르게 착하잖아."

"멜리사는 안 착해? 음...."

엘사는 손가락을 턱에 짚으며 멜리사와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분명 그 때 멜리사는 나쁜 아이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멜리사는 한스라는 나쁜 아저씨에게 속았고, 안나와 함께 도망치면서 엘사를 구해주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엘사의 두려움은 소심한 착각이었다.


"난 널 때리려고 했어. 안나 언니를 죽이려고도 했고. 난 나쁜 애가 맞아."

멜리사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엘사가 고개를 돌렸을 때, 멜리사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미안해 엘사, 정말 죽을 죄를 졌어."

멜리사가 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엘사는 갑자기 손을 잡혀 당황스러웠다. 엘사는 이미 멜리사를 용서했고,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이젠 가족이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테니까, 더 이상의 잘못을 말하는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갑자기, 엘사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으음...멜리사가 그랬었어? 난 기억이 안나는데..."


뜻밖의 말에 멜리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엘사의 손에 얼음이 피어났지만, 나쁜 얼음이 아니었다. 눈가루가 살랑살랑 멜리사의 손등에 떨어졌다.


"난 멜리사가 나하고 앙나 언니를 구해준 거 밖에 몰라.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게 더 나빠. 멜리사는 날 구해줬어. 그렇지?"


똑, 똑, 눈가루에 물이 떨어졌다. 멜리사의 것이었다. 엘사는 멜리사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멜리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얼음 한줄기가 멜리사의 이마를 타고 흘러 올랐지만, 멜리사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엘사는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아 내심 놀랐지만, 안나가 했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엘사가 팔을 벌려 멜리사를 안았다.

"멜리사는 천사야. 내 천사. 날 구해주고, 맛있는 사탕도 준 내 가족이야. 그러니, 울지 말고 웃어줘..."

엘사가 멜리사의 등을 토닥이면서 쓸어내렸다. 엘사에게 안긴 멜리사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런 착한 애를 왜 증오했는지, 왜 때리려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멜리사는 다른 사람을 증오하며 억울해야 했지만, 정작 엘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씻지 못할 것 같았던 멜리사의 행동을 보듬어주기까지 했다. 이토록 착한 애인데, 이토록 얻고자 했던 가족인데! 멜리사는 반성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나 언니와 엘사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겠다고.


가족들의 울음을 대신 마시고, 웃음을 대신 나눠주겠다고.

"누가 멜리사를 울게 했을까아, 그 사람이 진짜 나쁜데에..."





81.

"누구십니까?"

필립스는 막 커피 믹스 넣은 컵에 뜨거운 물이 담긴 커피포트를 기울이고 있었다.

"농장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누추한 분이 누추한 곳에 왜 이 시간에...그리고 누구신지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싶습니다?"

필립스와 그의 관리 팀들이 있는 아즈 수크나흐는 저녁과 밤의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하루 영업을 마치고, 침대에 이르기 전까지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워라밸이 적절한 시간이었다. 필립스는 자기 전까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그가 최근 읽는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다. 그가 살아가는 업계에서 가장 필요없는 개념을 다루는 책이어서, 필립스는 더더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업계와 비슷하게 정의를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국가 기관이 필립스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전 공작국 소속의 메가라라고 합니다."

"메가라...메가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요."

"제 이름이 흔하지 않은데, 많이 들어 보셨다면 접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평행선이 될 수도 있고요."

두 사람은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정세가 그렇게 좋지 않은데, 농장에서 컨택이 온다는 건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네요."

"맞아요.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여러 기업에 컨택을 넣어봤는데 모두 저희 의뢰를 거절했거든요."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뭐....울프독이자 스칼렛 위커 암살을 사주하는 건 아닐 테고."

메가라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속으로 적잖이 당황한듯 숨소리가 떨렸다.

"...대체 그 애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그 애 말이에요, 농장에서 별 이상한 일들을 겪어서 얻은 트라우마가 있었다는거 아시죠? 그 트라우마를 억제해준 사람이 제 전 직원이었던 뮬란이었어요. 그 뮬란도 죽고 잃을 것도 없어진 스칼렛을 그렇게도 괴롭히고 싶으십니까?"

"저도 스칼렛을 살리고 싶어요. 하지만.... 저도 상관이 있는 관리자예요.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무슨 일을 했습니까? 혹시 엊그제부터 뉴스피드를 장식한 러시아 크로..스크 작업하고 에키바스투즈 총격전 말하는 겁니까?"

"저희 농장에서 블루라운드에게 MI5와 합동으로 의뢰를 했거든요. 그게 어쩌다 보니까 사전에 유출된 모양이에요."

"결국 당신들 잘못인데... 애꿏은 사람 하나 잡고 끝내시겠다... 이 말이잖아요?"

"국가의 정의를 위해서 조직이 유지되는 법 아닌가요?"

메가라의 말은 냉정했지만, 그 속은 슬픔이 들어있었다. 억지로 쥐어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요. 제 생각은.... 국가의 정의를 우선하기 보단 개인의 정의를 존중해 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믈렛을 만들려면 달걀부터 깨뜨려야지, 오믈렛을 사와버리면 그게 뭐가 됩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대답은 거절이다, 이 말이 맞죠?"

"네, 메가라 씨, 끊기 전에 제가 업계의 작은 지식 하나 알려드릴게요. 다른 기업들이 당신들의 제안을 거절한 게 뭐냐면요. 다 각자만의 프라이드가 있어요. 뭐 서로 의뢰 수주 따내려고 이리 저리 정보 모아서 치열하게 경쟁해도, 그 울프독이란 아이는... 거의 불가침영역 수준이죠. 왜냐면, 그 아이야말로 최고의 인재니까요. 그 인재를 죽이겠다 뭐하겠다 하면, 나중에 혹시라도 자기 회사에 들어올 지도 모를 그 가능성을 저버리기엔 그 아이가 너무 아까워요. 아마 다른 곳에서도 이런 말을 했지 않았을까... 싶네요."

"여길 포함해서 네 곳이 거의 비슷한 말을 해주더군요. 역시 이쪽 업계는 속을 도저히 알 수 없다니까요."

메가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필립스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적당히 따뜻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전쟁도 비즈니스니고, 우리도 일단 법인이자 기업이에요. 세금도 제때 내고 있고요. 뭐든지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해야지 않겠어요?"

"그 말도 맞네요. 거절해줘서 고마워요. 이름이...펠렙스?"

"필립스입니다. 캡틴 필립스 할 때 필립, 제 거절이 고맙다니 무슨 소리죠?"

"아뇨, 별 거 아니에요. 그냥... 그 친구가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바쁘실 텐데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영업 종료 시간이고, 뭐...가급적이면 울프독을 살렸으면 좋겠네요."

"글쎄요. 그건 불가능할 거에요."

메가라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무슨 부탁거리나 있으면 다시 연락해줘요. 울프독 친구가 나가서 머리 좋은 사람이 필요해졌거든요."

필립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메가라는 필립스가 볼 수 없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살다 보면 도움 받을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마음에 담지 마세요."








81.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핫라인이었지만, 어느 정도 당텍과 접촉할 수 있을 전량까지 충전되었다. 당텍에게 가는 컬러링은 아무것도 없는 무색건조한 통화음이었다. 20초 뒤, 컬러링이 끊겼다.

"스칼렛?"

"아, 당텍."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

당텍은 드물게 화를 내고 있었다. 대체 왜?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안나는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당텍의 목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어... 왜 화 내시는 거에요?"

안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전화기 너머에서 거친 심호흡이 들렸다. 4초 호흡법처럼 일정하게 간격을 두고 들이내쉬는 박자가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정보를 제공받은 제 관리 요원들이 일을 그르쳤거든요. 그리고 제 직원이 오렌지맛 초콜릿에다 화이트 초콜릿을 감싼 것을 제게 주고 갔어요. 그것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담배라도 피고 싶네요. 그래서 지금 어디시라고요?"


"여기가... 어디더라."


안나는 원래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만 사전에 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카자스흐탄까지 도망쳐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지형지물을 파악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지금 카자흐스탄 쪽에 있어요. 아마...에키바스투즈 남쪽에 있었던 거 같은데."

"도대체 어쩌다가 그쪽으로 간 겁니까...?"

당텍의 말에는 놀라움이 묻어나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에키바스투즈에서도 총격전이 일어나 그 일대를 수색중인데, 혹시 스칼렛 당신 작품입니까?"

자문 기업의 정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총격전으로부터 약 6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업계엔 안나의 일에 대해 퍼져버렸다.

"벌써 거기까지 아신 거에요?"

"아뇨, 뉴스에 떴거든요. 근처에 TV 있어요?"

"모텔이 오래되서 TV는 없어요. 그게 공중파를 타버렸다니..."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당텍이 물었다. 안나는 CIA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위해 접선장소로 나갔다가 적의 습격을 받았고, 이와중에 어린이 한명을 추가로 더 데리고 도주중이었다는 10시간 동안의 일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당텍은 이따금 음, 으흠 같은 의성어를 지어내며 안나의 경험을 경청했다.

"이제 떠오른건데, 지금 치데르티? 거기인거 같아요."

"그 외진 곳까지 도망간 것도 능력이면 능력이네요."

당텍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어이가 없어진 안나도 어설프게 웃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뭡니까? 작업은 엎어졌는데 묘수라도 있어요?"

당텍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일단... 어떻게든 한스를 찾아야 겠어요.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그 사람의 정보는 제한적이에요.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죽이려 들 보안부서 인력을 보낼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찾아줘요. 최대한, 그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는 사진 쪼가리라도 좋으니까, 당텍 당신이 최대한 찾아서 전해주면 안 될까요?"

"...애초에 이 작업을 포기했어야 했어요. 그럼 다 좋게 끝날 텐데.... 알겠어요. 알겠어. 일단 최대한 찾아볼 테니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추천해요. 그 주변에는 저희 세이프하우스가 없거든요. 몸이라도 잘 사리고 계세요."

스마트폰 너머에서 칙, 칙, 라이터 소리가 들렸다. 당텍이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

"고마워요, 당텍. 그리고 담배는 많이 피지 말아요. 그러다 훅 가니까."

"제가 훅 가는 것보다 스칼렛 당신이 훅 가는 거부터 걱정해요. 국가 공인 킬러들이 당신 잡으려고 난리인데...."

"제 팬들이 엄청 많아졌네요."

"반달리즘을 지향하는 러다이트 안티팬들인게 문제죠."

"그럼... 일단 끊고, 무슨 정보라도 있다면 바로 전해 주세요."

"예, 그럼 끊습니다."




당텍과의 통화를 마친 후, 안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은 아까의 자지러지는 소란과 달리 조용했다. 엘사와 멜리사는 침대에서 서로의 손을 잡으며 잠에 들어 있었다. 안나는 엘사와 멜리사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두 아이의 손에 묻은 눈가루를 확인했다. 엘사의 눈가루였다. 분명 안나가 나간 사이에, 엘사가 멜리사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기특한 마음에 안나는 엘사와 멜리사의 머리를 잠에 깨지 않게 쓸어내린 다음, 장비를 정비할 준비에 착수하기로 했다. 랩터가 오려면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인적이 드문 곳의 호텔이니, 재머를 켜 두어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재머를 켜두면, 도로를 타면서 통신을 유지할 랩터가 금방 안나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방탄복 파우치 속에서 mp5 탄창과 재머를 꺼낸 안나는, 재머의 스위치를 눌렀다. 삐리릭 하는 전자음과 함께 재머가 작동함을 알리는 작은 초록색 불빛이 재머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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