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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Stolen Ice 26 (해커엘사, 사기꾼안나)

설공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5 00: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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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6*: Friction, Part the Second

(마찰, 두번째)



두 소년과의 만남이 유쾌했던 것만큼 안나는 호텔로 돌아가 제인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안나가 전시장에 있을 때 태양이 용기 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한밤중에 뒤집어진 벽돌을 비추는 손전등 같았고, 수백의 기어다니는 생물들이 불빛을 향해모여드는 것 같았다. 기어다니는 생물들 대신 사람들이 에딘버러의 구석구석에 모여들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모든 곳이 혼잡하고 바글거렸다. 오로지 해가 있다는 이유로. 변덕스러운 날씨와 그로인한 혼잡한 보행자길로 인해 안나가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표지판을 찾거나 인도를 걸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에딘버러가 도시라는 것을 잊고 있었고, 도시생활이 얼마나 끔찍하게 부산스러울 수 있는지 잊고 있었다. 군중들과 폭발하는 실험 전시들 사이를 헤맨 지 반 시간이 지나서야, 안나는 겨우 키를 슬롯에 꽂아 호텔방 안으로 몸을 내던질 수 있었다. 그녀는 젖은 손가락으로 제인의 전화번호를 입력했지만, 되돌아온 것이라곤 방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벨소리뿐이었다.


이제보니 나만 폰을 두고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나보네.


그녀는 방을 가로질러 제인의 검정 더플백으로 가, 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민트, 이상한 동전, 밧줄, 비니, 아, 폰이 여기 있네. 기기 옆면의 스위치를 딸깍 밀어 무음모드로 돌렸다. 안나는 가방 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낡은 지갑을 꺼내들었다. 이렇게 작은 물건들이 많으니 안쪽이 잘 안보였다.


어쩌면 가방 안에 한스의 브루어리에 대한 걸 조사할 만한 노트북이나 태블릿이 있지 않을까—


“뭐하는 거야?” 제인이 그 특유의 자세에서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제인!” 안나는 밝게 뒤돌아보았다. 짜증나있던 기분은 바깥 나들이에서 한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면서 이미 멀리 출항하고 없었다. “노트북을 찾고 있었는데 네가 왔으니까, 이제—”

“그거 이리 내,” 제인의 두 눈은 지갑에 꽂혀 있었다. “제발.” 결코 예의바른 부탁은 아니었다.

“뭐—아, 응, 알았어,” 안나는 가죽 지갑을 제인에게 건냈다. 그녀는 지갑을 열고 찬찬히 바라보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겉부분을 쓸고는 뒷주머니에 넣었다.

“네 천성이나 내 천성에는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내 가방은 뒤지진 않았으면 좋겠어.”

“어, 아니, 제인, 나는 결코—그게 말야, 네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그리고 그게 울리길래—”

“네 전화기의 통화를 끌 생각은 없었고?” 제인이 물었다.

“어, 나는, 내 말은…아니야, 전화기를 찾으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근데 내 가방을 열어본거야?” 제인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슬쩍하려고 한 게 아냐.” 안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인의 어조는 삐죽삐죽했고 비난조였다.

“노트북을 찾고 있었어,” 안나는 말을 이었다. 제인이 언짢은 상태에서 자기도 화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후에 그다지 수확이 없었나보네.”

“활동의 티끌도 없더라구.” 제인이 말했다.

안나는 미소를 지었다. 체셔 고양이처럼 이를 드러낸 미소. “난 왜인지 알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오 정말? 안다고?”

“왜냐면 오늘 한스를 만났거든.”

"Wait, what?" 제인의 툴툴거림이 격한 반응으로 바뀌었다. “어디 있었어? 뭘하고 있었는데? 그가 어디서 묵고 있었는지 찾았어?”

안나는 과학박람회에 있었던 일들, 제임스와 콜린과 나눈 대화, 그리고 한스의 뒤를 밟다 놓친 일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빈틈을 내보이는 동안에도 우리가 그에게 원하는 정보를 실토하게 하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안나는 설명했다. “우리는 그를 구석으로 몰거나 목줄을 걸어야 될 것 같아. 난 제법 유럽 관광을 한 편이긴 하지만, 그에게 여긴 자기 놀이터나 마찬가지야. 그는 이 도시들은 나보다도 잘 알아. 우린 아무 호텔에나 갑자기 나타나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취조실이 있기를 바랄 수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인이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린 지금 약간 엉성하게 그를 쫓고 있다는 거야, 안 그래?”

“난 그저 그에게서 원하는 걸 얻고 싶었을 뿐이야. 파일이나 문서 같은 유형물 같은 거. 그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그와 협상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어. 난 그런 건 잘 못하거든.” 제인은 실토했다.

“네가 설령 파일을 챙긴다고 할 지라도, 그것들을 찾는게 먼저야.” 안나는 말했다. “그는 자기 라이벌들에 대한 아무개 정보를 항상 뒷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진 않을 거라구, 알지? 그는 아마 유명한 범죄자들에 대한 정보라면 캐비닛 여러대를 채우고도 넘칠 거야. 그는 프롤로보다도 연줄이 많고 우르술라보다도 더 인정사정이 없는 놈이야.”

“뭐, 그렇다면 이야기는 확실하게 더…복잡해지겠네.” 제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가는 건 왜 맥주 주조에 대한 걸 찾고 있었는지,야.”

“그는 실제 공정보다는 물량 확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그리고 미국으로의 운송도. 그걸 암스테르담의 여자들이랑 합쳐보면, 내 생각에 그는 일종의 행사를 주최하려는 것 같아.” 안나가 말했다.

“뭐, 파티 같은 거 말야?”

“파티, 쇼케이스, 투자 설명회, 알몸 위에 스시 얹어서 먹는 은밀한 저녁식사라거나—”

“그게 뭔—”

“어느 것이던 간에—” 안나는 계속했다. “—우린 아직 그의 계획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아는 거라곤 그는 여자와 맥주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지.”

“네가 보기엔 그가 우리 계좌에서 빼돌린 돈이랑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그는…뭔지는 몰라도, 그걸 시작하기 위해 3억 5천만 달러가 필요하다던지?”

“그것도 괜찮은 가설이네.” 안나가 말했다.


제인은 미간을 더욱 좁혔다. 그녀는 뺨 안쪽을 살살 깨물고 있었고 양 팔은 복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안나는 소파에 앉은 제인 옆에 앉기 위해 방을 가로질러 그녀 옆의 딱딱한 쿠션 옆에 섰지만, 제인은 그녀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녀의 바디랭귀지는 암스테르담 이후로 차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안나는 그걸 고치고 싶었다.


그녀는 제인을 향해 몸을 돌리니 강한 민트향이 느껴졌다. 안나의 예상으로는 제인이 입 안에 머금은 틱텍을 이로 갈아먹고 있을 것 같았다.

“네 민트는 도대체 뭐야?” 안나는 갑자기 말했다. “네 더플백 안에 짤깍거리는 민트통이 반 다스나 있던데.”

제인은 리놀륨 바닥재만큼이나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냥, 네 수수께끼 가방 안에서 저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으면 눈에 띄지 않기가 어려울 것 같다구.” 안나는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말을 이었다.

“구취제거용?”

“거짓말 치지마. 네 숨은 아침에 깨끗하게 빨아둔 세탁물보다도 상쾌하단 말이야.” 안나가 말했다.


제인의 평탄하던 입술 끝이 위로 비죽 향하다가 다시 떨어졌고, 그녀의 왼손은 오른손의 손가락마디 위로 움직였다. 머리를 뒤로 젖히며 소파에 기대더니 굳은 결의를 다짐하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금발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몸짓에는 패배감과 인내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거칠고 볼품없게 보였고, 그녀가 느끼는 내적 갈등은 불꽃이 튀는 고통스러운 숫돌이 되어 그녀가 둔해지도록 놔둔 무언가를 날카롭게 벼르는 듯했다. 안나는 그 모습에 불안해졌다.


“내가 네 입냄새를 안다는 게 아니라…” 안나는 말을 고쳤다. “아니, 그게, 알긴 하지, 저번의 그 키—아니, 물론 내가 클럽 유토피아 일은, 수면 아래로 묻어두자고 얘기하긴 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그 뒤로 같이 자고 있었으니까—그 같이 잔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면 냄새가 나지 않거든. 제대로. 아니…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게 아니고, 냄새나지 않는다는 거야. 향이 없다는 거야. 무취. 좋긴 한데…이상한 의미로 좋다는 건 아니고. 내가 하려던 질문이 뭐였지?”


제인은 안나가 가방 속에서 봤던 알토이드 한 상자와 특이하게 생긴 동전을 꺼내왔다.

(*역주: 알토이드. 민트 브랜드)


“언제부터 민트를 눈치챘어?” 그녀가 물었다.


안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알아챈지는 상당히 되었지만 민트를 특별히 뭔가랑 연관지었던 적은 없었다. 제인이라는 이름의 지진이 제게 준 후유증에 비한다면, 민트는 작은 세부정보에 불과했다; 여진 정도야 강진에 비하면 강렬하지 못하다.


“아마 세인트존 섬? 한스의 카바나 앞 그네 위에서 대화하던 날 밤에.”

“그 날 밤이라면 우리가—그때 한스가 뭐라고 했었지? 쌍년싸움? 할 때 얘기지?”

“맞아, 그 때 일은 미안해.” 안나가 말했다. “그 때 난 널 잘 알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날 잘 안다고 생각하고?”

“뭐어, 전부는 아니지.” 안나는 인정했다. 시인하고 나니 슬픔이 뱃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화창하게 희망으로 가득했던 기분이 온데간데없고 울적함만이 남았다.


날 안다고 ‘생각하고’ 있냐고. 사람을 아는 게 불가능하고 생각하는 거겠지. 난 네 곁에 있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건 알고 있어.


“네 말에 다르면, 한스는 그 아일랜드 소년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했어. 하지만 그는 일을 달성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타입 같단 말이야. 내 생각에 우리 로컬 양조장들을 찾아가서 조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인이 말했다. “그가 주변 업체들한테도 물어봤는지 보자.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좀 더 정보를 캘 수 있을 것 같아.”


알았어, 내가 네 대화의 흐름을 잘못 짚은 것 같아…


“그걸 생각해봤을 때, 나에 대해서 네가 알아야할 게 있어.”

“좋아, 질러.” 안나가 소파 팔걸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나—그게,” 제인이 입술을 핥더니 손바닥 위에 있던 황동 동전을 쥐었다. “나 알코올중독자야.”

“너…네가—wait, what?” 안나가 말했다.

“나 알코올중독자라구,” 제인이 다시 말하더니…키득키득 웃었다.

“뭐—그거 어디가 그렇게 웃긴건데?” 안나는 등을 펴고 바로 앉으며 물었다. 울적함에 쌓아올리던 걱정이 혼란스러움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안나는 생산적인 활동으로 기분이 좋아야할 날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신나게 밟아대는 통에 지쳐있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제인은 심신을 갉아먹는 질병에 대해 말하면서 뭐가 좋은 지 웃기 시작하는데, 자신이 그녀에게 달려가 뺨을 때리지 않은 게 용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해본 게 처음이거든.” 제인이 말했다. “네게 미리 얘기해두면 좋을 것 같다고생각했거든. 우리가 바나 양조장으로 들어서게 될 때 내가 긴장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만든 스카치 위스키는 강하거든. 도수는 40도 정도. 이따금씩 향 만으로도 벼랑 끝에 매달린 기분이 들어.”


“그치만, 그치만…난 이해가 안돼.”

“네가 내게 술을 권한 게 몇 번이야?” 제인이 물었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받아준 건?”

“난 내가 여러 번 권한 걸 알아. 카바나에서 와인 거절했지, 루이지아나에서 박하술도 거절했지, 암스테르담에서 샴페인도 안마신다고 했지, 한 번도 받아준 적이 없었네, 이제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술냄새를 숨기려고 민트를 먹기 시작했어,” 제인이 말했다. “버릇 하나를 끊어도, 다른 하나까지 끊기는 어렵더라.” 그녀는 말하면서 알토이드 상자를 흔들었다. “왜 담배 끊을 때 너무 많이 먹지 않게 조심하라고들 하잖아? 중독을 다른 중독으로 바꾼다는 얘기말야. 두 가지의 악 중에 차악에 굴복하고 말았어.”

“그리고 넌 언제나 민트 같이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나지.”

“인정해.”

“그런데도 그런 곳에 발을 들여놓겠다고? 뭐…잘은 모르겠지만…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잖아? 근처에 안가는 게 낫지 않아?” 안나가 물었다.

“한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제인은 손바닥을 피며 말했다.


“그럼 저건 뭔데? 사카자웨아 동전?”

(* Sacajawea 동전: 1달러 주화. 앞면에는 미국 원주민에 대한 테마 그림이 새겨져 있음.)

“아니…성 모니카야.”

“그럼…종교 믿어?” 안나는 자기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아닌데, 그냥—나도 내가 실수를 범하기 쉬운 존재라는 걸 알아. 그리고 나보다도 거대한 게 존재한다는 것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그게 없었다면 나도 이런 힘이 있지 않았을 거 아냐? 마법이든, 운명이든,…뭐든 간에. 좋은 설명은 아니지만, 이보다 나은 설명을 찾지 못했어.”

“난 네 토템이나 민트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는 않을거야.” 안나가 말했다. “이보다 심한 것들은 널려 있으니까.”


“생각보다 잘…안 풀리는 것 같아,” 제인이 드디어 안나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말야, 내 말은, 우리 관계가…굴러가고는 있는데, 꼬인 것도 있어. 너도 느끼고 있지 않아?”

“응.”

“난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어.”

“어떤 기분인데?” 안나는 용기내 물었다.

“불안정하고 충동적이야. 지금도 보면, 내 가방을 뒤져봤다는 이유로 네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 내 물건을 만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

“미안해. 반성하고 있어.”

“근데 그게 다야. 난 그다지…아니 내 말은, 난 괜찮았어 왜냐면 난…” 제인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시발. 난 원래 직설적인데, 너 때문에 망했어.”

“난 그 점엔 사과하지 않을거야.” 안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대개는 네게서 비롯된 거야. 제인, 난 정말 애쓰고 있다구.”

“알아. 그리고 네가 아직도 이렇게 있다는 게, 애써주고 있다는 걸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아무도…아무도 날 위해 애써준 적이 없었거든.”

“그럼 새롭다는 거네! 우정이…아니면 우리의 관계가 뭐든 간에. 조금 무섭지.”


하지만 안나는 이제 더 이상 ‘우정’이 적절한 단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제인을 결코 재촉할 수 없었다. 설령, 그 이상의 무언가를 피우는 씨앗이 심어졌다고 해도. 그녀는 그저 도움을 주고 안내하고 새싹이 터오르기를 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망을 더하자면, 시간을 조금만 더 쏟아주면 아름다운 무언가가 흙을 뚫고 나와 안나의 인내심을 보상해주지 않을까.


“그건 내가 바란—됐어. 난 절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거야.” 제인은 한숨을 쉬었다. “나…난 예전에 마음의 문을 한 번 연 적이 있었지만 좋게 끝나지 않았어.”

“얘기해볼래?”

“지금은…말고. 나중에 어쩌면.”

“그것도 괜찮아. 네 옷장 안에 숨긴 해골(비밀)들을 전부 보여달라는 게 아니니까. 네 옷장은 꽤나 작지만 말이지. 내가 간섭하기 전에 네 옷을 봐도 알 수 있어. 알코올중독이랑 초능력 말고 뭐가 더 있겠어?”

“네가 알았더라면,”

“뭐어, 그게 뭐든 간에, 난 신경쓰지 않을거야. 너는 평범한 제인이 아냐. 넌 대담하고 용감하고 똑똑한 데다 마음씨도 정말 넓어. 넌 세상을 자기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시킨거야. 난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아.”


그래서 난 널 사랑하는 거야.


“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야.” 제인이 말했다.

“정말? 네 인생 전부의 인맥 통틀어서, 몇 명 중에? 다섯명?” 안나의 목소리에는 빈정거림이 넘쳐났다. “하지만 난 네가 더 용기있는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해.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음이 참 단단하다고 생각해. 왜냐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주거든. 넌 이제 더 이상 넘어가기 위해서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아. 조금 독선적으로 말하면, 그건 존경스러운 일이고 고귀한 일이야. 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 올 때면—난 약하기 때문에—술 한병으로 도망쳐. 그건…나도 모르겠지만. 술은 잊게 해주거든.”

“이해해.” 금발이 말했다.


제인은 소파 위에서 몸을 뒤척이더니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녀의 시선은 지갑에서 안나로 향하더니 수줍게 내밀었다. 그녀가 장갑을 낀 손을 안나의 데님으로 덮인 종아리 위에 올려두었다. 천진난만한 행동이 친밀감을 더한 더 깊은 것으로 바뀌어갔다. 지난 주의 사건들을 되짚어보며 안나는 희망을 걸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나의 가장 큰 해골(비밀)이야.” 제인이 가볍게 지갑을 흔들었다. “이것 때문에 마시지 않고 견뎌왔어. 이게 내 성격을 이룬 핵심이야. 미래의 모든 결정들에 영향을 준 결정적인 순간이었어. 이것이 첫번째 도미노였고, 이것 때문에 다른 것들이 패턴을 그리면서 무너진거야. 이 것에 대해서 네게 얘기해주고 싶어. 정말 절절하게 얘기해주고 싶어…”

“제인, 그래도 돼. 내게 말해줘도 돼.”

“하고 싶어. 정말 그래, 근데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뭔지 깨닫게 될 때까진 못할 것 같아. 내가 네 주변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위협적이고 두렵고, 너무…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건, 어, 스트립쇼랑은 상관이 없는 얘기야. 네가 날 무력하게 만드는 게 정말 신기해.”

“제인, 난…”

“내가 원하는 건…모르겠어.”


너야. 난 널 원해. 너무 가지고 싶어서 아플정도야, 제인. 네가 말하는 감정은 나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네가 말하는 건 격렬한 혐오와 비이성적인 두려움에도 해당되는 것들이야. 네가 나를 두려워한다면 난 내 자신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안나의 눈은 후버댐보다도 수압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제인을 위해, 제인과 함께 울며 키스로 그녀의 혼란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네가 느끼는 건 이것이라고, 아직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이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나도 느끼고 있었어. 그리고 괜찮아, 제인. 약속할게. 우린 운명이고 이건 수용할 수 있는 일이야. 이렇게 사랑에 빠지는 거야, 그치?


그렇지?


“그럼,” 안나가 훌쩍였다. “그게 뭔지 정하게 되면, 무엇이든 간에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고 네가 보여줄 생각이 든다면, 난 늘 여기에 있을 테니까.” 안나는 말하며,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안나는 다른 손을 미끄러뜨리며 여전히 자기 종아리 위에 놓인 제인의 손을 덮었다. 안나는 자신이 품은 희망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기에, 제인의 뺨에 키스를 했다.


제인은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 한 방울이 코의 굴곡을 따라 흘러내려왔다. 그녀는 손 끝으로 만져보더니, 자기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는 것은 로봇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울기 위해서는 혼이 필요했다. 그리고 제인은, 안나의 작은 재촉에 자기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한스에게 집중하자. 그를 찾고 그의 사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캐내는 거지.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안나가 말했다. “내일 양조장들을 둘러보고 뭘 찾을 수 있는지 보자구, 어때?”


다시 끄덕인다.


“그리고,” 안나가 일어나며 말했다. “내 뱃속이 날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저녁시간인 것 같아.”

“또 질긴 고기에 느끼한 그레이비 소스겠네.” 제인이 광대 위의 눈물 자국을 닦으며 말했다. 그녀는 안나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용서를 구했지만, 이미 안나는 그녀의 잘못을, 앞으로의 것까지 포함해서 용서해 주었다.


무조건적으로.


“네가 뒷주방의 잠금장치를 따주면, 내가 그릴 치즈를 좀 챙길 수 있을 것 같아.” 안나가 권했다.

“주방 스태프한테 잡히면 어떡해?”

둘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호텔 시큐리티에 잡힐 걱정을 해 본 적이 있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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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안에 해골을 의역할까 직역할까 고민하다가 말장난도 있고 뒤에도 나오니까 그냥 직역+의역함.


옷장안에 해골 = 깊숙하게 숨겨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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