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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점점 치밀해지는 보험사기와 마약 투약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네- 조폭이 환자모으고 의사는 허위수술…21억 보험사기금융감독원은 28일 브로커와 병원, 가짜 환자가 공모해 여성형 유방증, 다한증 등의 허위 수술 기록으로 실손보험금 약 21억 원(1인당 평균 800만 원)을 편취한 보험사기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9월 보험사기 신고센터에 입수된 정보를 토대로 해당 보험사기에 대한 기획 조사에 나섰다. 이후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했으며 경찰은 현재 보험사기 일당 대부분을 검거했다. 이는 올해 초 금감원과 경찰청이 브로커와 병의원이 연계된 조직형 보험사기 척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후 나온 첫 가시적 성과다. 이번 보험사기는 MZ세대 조직폭력배와 보험설계사가 포함된 브로커 조직이 가짜 환자를 모아주면 병원이 허위 진료 기록을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는 식으로 이뤄졌다. 조직폭력배인 A씨가 기업형 브로커 조직을 만들어 범죄를 기획하는 보험사기 총책으로 행동하고, 같은 조직의 대표 B씨는 사기 공모 병원의 이사로 있으며 실손보험이 있는 가짜 환자를 물어다주는 역할을 했다. 초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인 보험설계사도 보험 사기에 가담했다. 보험설계사인 C씨는브로커 조직이 모집한 가짜 환자에게 보험 상품 보장 내역을 분석해주며 추가로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허위 보험금 청구를 대행하는 일도 도맡았다.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을 경우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요령까지 매뉴얼로 배포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들이 포함된 가짜 환자들은 주로 입원실에서 단순히 채혈만 하고 6시간 동안 머물다가 퇴원하면서 허위의 진료 기록을 발급받았다. 통상 6시간 이상 병실에 머무르면 통원이 아닌 입원으로 인정돼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일부 조직폭력배는 사기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슴 부분에 일부러 상처 자국을 내거나 병원에서 발급해준 다른 사람의 수술 전후 사진을 제출하기도 했다. 보험사기 브로커 조직은 나날이 기업화·대형화하며 교묘한 수법으로 환자를 유인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1조 1164억 원으로 전년(1조 818억 원)보다 346억 원(3.2%) 더 늘었다.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직업도 회사원과 일용직·전업주부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보험업 종사자가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https://m.sedaily.com/NewsView/2D9DK0FQ6Z?OutLink=telegram#cb
작성자 : ㅇㅇ고정닉
일본 전체를 불바다로 만든 르메이 대장...jpg
미공군의 기틀을 닦은 군인이자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을 사실상 이끌어낸 커티스 르메이 대장 커티스 르메이는 1906년 11월 15일에 오하이오의 콜럼버스에서 태어난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ROTC로 육군 조종병과 장교로 임관하여 군생활을 시작한다. 미국이 2차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까지 그는 빽도 없고 연줄도 없는 평범한 장교였으나 1941년 일본의 진주만폭격 이후 진가를 발하게 된다. 미국의 선전포고 후 르메이는 영국에 주둔중인 육군항공대 소속 8공군의 지휘관 중 하나로 투입된다. (일본에 선전포고 연설 중인 루즈벨트 대통령) 8공군의 지휘를 맞게 된 르메이는 8공군의 폭격성공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파일럿들이 나치의 대공사격이 시작되자마자 단체로 쫄아버린 나머지 폭탄을 최대한 빨리 떨구고 곧바로 회피기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르메이는 본인이 직접 폭격기의 선두에 탑승하여 파일럿들을 격려한다. 적의 피해를 높이기 위한 그의 작전은 꽤 무모했는데, 회피기동을 하지 않고 폭격내내 직선기동을 했으며 탄착률을 높이기 위해 저고도비행을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폭격기가 전보다는 다소 많이 요격되는 등 피해는 늘었지만 나치독일의 피해는 그전보다 훨씬 더 컸다. 그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41년 중령이었던 그는 1943년 준장으로 진급하고 그 다음해인 1844년엔 37세의 나이로 소장에 초고속 진급한다. 르메이가 나치 독일을 상대로 많은 피해를 내는 동안 고전적인 고고도 폭격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태평양전선에서는 낮은 명중률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후 태평양전선으로 투입된 르메이는 유럽에서의 전략을 일본에도 적용하기로 결심하고 한마디의 명언을 남긴다. “적을 충분히 많이 죽이면, 그제서야 적은 싸움을 멈춘다.” (폭격중인 일본 폭격기) 그리고 일전에 일본 육군항공단은 중국의 충칭을 폭격하면서 소이탄을 활용했는데 그 위력을 보고받은 르메이는 똑같은 전술을 일본에 써먹는다. 이전까지 미군의 폭격교리는 고고도 정밀타격이었는데 당시 기술적 한계와 일본상공의 강력한 제트기류덕분에 고고도에서의 폭격은 탄착률이 형편없었다. 한 예로 한 군수공장지대를 폭격할 때 100여대의 B-29가 수천발의 폭탄을 퍼부었음에도 명중률은 2%를 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일본 대도시의 피해는 크지 않았는데 이에 르메이는 폭격에 앞서 평소에 쓰이던 고폭탄 60% 소이탄 40%의 비율을 소이탄 100%로 바꾼다. 그리고 "저고도 소이탄 폭격을 통해 목제 건물이 많은 일본도시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것" 이라 장담한다. 그리고 1945년 3월 9일 밤. 9톤의 폭탄을 꽉꽉 채워넣은 344기의 B-29 폭격기가 사이판에서 도쿄로 출격한다. (폭탄 적재 중인 B-29폭격기) (M47 소이탄을 적재한 폭격기) 도쿄 대공습의 시작이었다. (도쿄상공에 흩날리는 네이팜 소이탄) 약 6시간동안 지속된 폭격에서 1700톤의 소이탄이 도쿄 시내 8500여 곳에 골고루 뿌려졌다. 네이팜 소이탄의 불길을 목조건물들을 만나 순식간에 번졌고 폭격 당시 지상에서 불던 강풍에 의해 불길은 수백미터를 넘어 쓰나미처럼 모든걸 삼켰다. (야간폭격당시의 도쿄 항공사진. 도시 전체가 불타오르고 있다.) 일왕과 그의 가족이 거주하고있던 궁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구만 빼고 다 타없어져 버린 일왕의 궁) 도쿄시내 전체가 어마어마한 불길로 인해 타들어갔고 강물마저 그 열기에 의해 끓었다. 도시전체를 뒤덮은 열기를 피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물에 삶아져 죽었다. 불길에 타 죽지 않은 사람들도 그 엄청난 온도의 증기에 질식사하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그 결과 약 10만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4만여명의 중상을 입었으며 10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소이탄에 불타버린 도쿄 시민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기에 현재 도쿄에선 과거의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도쿄대공습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출격 준비중인 B-29 폭격기들) 이틀 후인 3월 11일엔 나고야와 센다이 (폭격 당하는 나고야) 13일엔 오사카 (폭격당하고 있는 오사카) 16일엔 고베 (폭격당하는 고베) 19일에는 다시 나고야가 공습의 타겟들이 되었다. 나고야 공습 후 폭격이 잠시 멈췄는데 약 두 달치의 폭탄을 르메이가 10일만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사카는 일본 최대의 공업거점이었기에 1700여톤의 소이탄이 퍼부어진 오사카는 더 이상 일본제국의 엔진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오사카성도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일본의 거점도시들은 10일만에 모조리 평평해졌다. (폭격 후의 도쿄) 폭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4월엔 일본인들을 굶겨 죽이기 위한 작전인 “Operation Starvation”을 통해 (투하중인 기뢰) 일본의 앞바다 여려곳에 수 천대의 기뢰를 투하한다. 그 결과 일본은 670여척의 배가 손실되는 피해를 입는다. 한편 자신의 부하들이 민간거주도시들을 폭격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 르메이는 또 하나의 명언을 남긴다. “저 밑에 스즈키네는 집에서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그걸 또 옆집의 키타가와네가 공장으로 가져다 준다.” 또한 미군은 공습에 앞서 공습예고 삐라를 뿌려서 어떤 도시들이 폭격을 당할지 친절히 알려주는 패기를 보였다. (미군이 공습 전 일본에 살포한 삐라. "공습예고. 이 도시가 미 공군 다음의 공격 목표입니다." 라고 써있다.) (미 공군은 공습타겟이 될 도시들을 하나하나 삐라에 적어 넣었다. 저 삐라엔 나가노, 후쿠야마, 마에바시 등등의 도시 이름이 적혀있다.) 이러한 삐라는 한편으론 이러한 도시들에 폭격이 있을 예정이니 살고 싶다면 피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삐라에 적힌 글. 여기에 적힌 도시들에 미공군이 몇월 며칠에 폭격을 할것이니 살고싶다면 피하라는 내용) 어디 어디 도시를 폭격할지 알려주고 그걸 실제로 실천하는 미군의 언행일치에 일본인들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르메이의 이러한 무차별적이고 쉴 틈 없는 폭격으로 폭격이 시작된 4월부터 폭격이 소강상태에 이른 7월까지 르메이는 약 10만톤의 폭탄을 소비했고 30만여명의 사망자를 강요했으며 100만톤의 일본 수송선단들을 격침시켰고 26개의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르메이의 폭격이 성과가 너무 좋은 나머지 미군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몰락 작전 (Operation Downfall)”을 실행할 필요도 없었다 (일본이 끝까지 항전할 경우를 대비한 본토 상륙 작전이었던 미군의 몰락 작전 Operation Downfall) 4개월 내내 본토가 얻어터지기만 한 일본은 수십차례의 공습에 이어 두차례의 핵폭탄을 맞고 곧바로 항복을 선언한다. 끝없는 폭격을 통해 일본군부가 전의를 상실했기에 망정이지 르메이의 이러한 효과적인 공습이 없었다면 미국도 결국엔 일본본토 상륙 작전을 감행했을 테고 그에 따라 수십만의 미군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르메이는 대규모의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여러가지 임팩트로 인해 르메이는 1945년 8월 13일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 르메이는 일본 항공자위대 설립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공로로 일본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욱일대수장을 수여받기도 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르메이는 여러가지 어록을 남겼다.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르메이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기전에 쿠바에 먼저 핵폭격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1965년 베트남전 당시 "지상군이 아닌 폭격으로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놔야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매우 호전적인 자세에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을 때마다 르메이는 이렇게 답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우리가 피해를 입기전에 먼저 적을 충분히 그리고 많이 죽여놔야 전쟁에서 승리하기 때문." 후일 르메이는 그 호전적이고 독불장군 같은 면모로 인해 주변인들과 여러 마찰이 많았고 결국 케네디 정부당시 공군참모총장에서 사임한다. 하지만 르메이의 그런 호전성이 일본의 항복을 빨리 받아냈고 그로인해 전쟁도 일찍 끝났음을 알아야 한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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