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실비아가 동이 트기 전 필립의 머리맡에 편지를 내려놓고, 그의 이마에 입 맞춘 뒤 그 침묵의 신전 밖으로 영원히 나간 후

몇 시간 뒤 깨어난 필립이 홀로 실비아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었어.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텅 비어버린 공간, 필립 자신처럼.

죽은 까마귀라는 건 부름에 대답해주지 못하는- 죽어버린 목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실비아의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필립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거야. 동시에 무서운 존재였기도 했겠지만..

1막 3장에서 필립은 자신이야말로 실비아에게 무자비한 감정의 부산물을 토로하고 뒤돌아서지. 그러나 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실비아를 불러.

하지만 실비아는 대답해주지 않았지. 

그가 죽여가던 실비아의 영혼, 목소리. 그녀는 끊임없이 그에게 닿고자 했지만 그걸 모두 묵살하고 닫아 걸었던 필립의 문.

필립은 올리버가 선물한 레코드를 안고 그의 이름을 읊조리고, 

자신이 올리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그를 배신한 후조차 올리버의 이름을 불러.

올리버, 하고 부르면 필립, 하고 대답해 줄 목소리가 무엇보다 절실했을거야.

미안해요, 라고 말하면 괜찮아요 하고 자신을 감싸안아주던 그 품이 그 어떤 곳보다 포근했을거야.

그러나 필립은 그런 올리버의 목소리조차 짓밟아버려. 그는 또 한 사람의 목소리를 죽였어.

죽어가는 목소리. 뒤늦게 불러본 들 대답할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목소리.

필립은 그 죽어버린 까마귀들을 그저 바라볼 줄 밖에 몰라.

이미 오래전에 온기를 잃은 목소리들의 자취만을 허망하게 뒤쫓으며 위태로이 버티겠지.

그리고 실비아는 다시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그의 곁을 떠나.

하지만 그건 그녀만을 위한게 아닌 필립을 위해서기도 해.

필립 곁에서는 닿을 수 없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숨을 쉬게 되면

언젠가 문득 필립의 마음속에 울릴 수 있도록.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닿는 속삭임으로.

괜찮다고. 그 시간들이 지남으로써 당신이 믿었던 인생이 흔들린다 해도 당신은 괜찮을거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제야 진정으로 그녀 자신의 목소리가 필립의 부름에 닿을 수 있다는 그 희망을 가진 채.

총막까지 끝났는데 아직 말하고 싶은건 한가득이다.. 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