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햄갤문학]오발탄

뎅뎅(211.36) 2016.10.18 16:35:15
조회 3398 추천 110 댓글 25

이것은 어느 오발탄의 기록이다.


 

그는 수십 년을 그 광장에 묻혀있었다. 자의식은 무뎌졌지만 감각은 또렷했다. 터지지 못한 격발장치가 종양처럼 움찔거린다. 그러나 터지지 못한다. 누구도 오발탄에 명령을 내려주지 않으니까.


기억장치 너머, 이제는 쓸모 없어 흐릿해진 의식 속에 그 날의 광장이 살아있다. 그 불발탄은 광장 이쪽에서 망치를 두들기던 청년이었다. 작동하던 기계가 하늘의 노을처럼 붉어질 때면 땀을 닦고 깊고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그에겐 부모가 없었다. 그들은 어린 탄환을 남겨두고 도망쳐버렸다. 실수로 발사된 총알 같은 삶이었다. 유년기에서부터 포탄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어린 탄환은 제국 소속의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고아원, 반쯤은 군사양성소였던 그곳에서도 그는 오발탄 같은 존재였다.


고아원의 모든 아이들은 수도원 같은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갔다. 성과가 있는 아이들은 그 정도에 따라 제국의 각 기관으로 보내졌다. 남자 아이들은 모두 가드맨이 되고 싶어했다. 탄환 역시도 그랬다. 그의 성적으로는 내일 당장이라도 쫓겨날 판 이었지만. 그곳에,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다. 유서 깊은 가문의 생존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백발의 하얀 머리카락은 늘 잘 정돈 되어있었고,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묻어나왔다. 탄환은 그 아이를 보았다.


탄환은 매일 그 아이를 보았다. 유일하게 탄환을 보고 웃어주던 그녀에게, 탄환의 감정은 억누를새 없이 흘러넘쳤고, 손에 쥔 펜을 통해 새어나왔다. 휴지통엔 구겨진 종이가 쌓여만 갔고, 친구들이 수군대는 소리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 여자아이는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녀가 테라의 중앙기관으로 떠나기 하루 전, 탄환은 그의 방 창문에서, 기관의 출두명령서에 잘 포장된 백발의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탄환은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탄환은 상상했다. 당황한 얼굴이지만, 싫지만은 않은 표정의 그녀를 상상한다. 그녀를 둘러 싼 부러움 반, 장난 반의 왁자지껄한 웃음을 상상했다. 그의 손끝이 그녀에게 닿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녀의 기숙사 문 앞에 도착해서야 탄환은 그녀가 이미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알이 다시 한번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루 반나절을 두들겨 맞고 탄환은 고아원에서 쫓겨났다. 그에게 남은 길은 공업단지의 노동자가 되는 길 뿐이었다. 업무는 도통 숙련되지 않았다. 동료들 조차 그를 싫어했다. 탄환은 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평범했던 날에, 탄환은 행성에 새로 부임한 어느 높으신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행성 출신의 고아, 젋은 나이에 심문관의 자리에 오른 엘리트. 탄환이 바라보던 소녀.


광장 저쪽의 탑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젋었던 탄환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격렬한 충격이었다. 그녀, 차갑고 검은 갑옷을 입고, 행성의 이단자들을 심판하는 그녀, 마을의 아낙네들이 귓속말로 악마나 다름없다고 속삭이던 그녀가 청년의 심장에 다시 한번 화약을 들이부었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닿지 못할 표적을 향해 탄환을 쏜 셈이었다.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발사한 꼴이었다.


탄환은 수 년을 그녀를 바라보며 보냈다. 탄환은 나이가 들어갔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제국의 대행자, 엄숙한 심판자였으니까. 더 무엇을 숨기겠는가,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죄목을 읊는 그 입술을 사랑했다. 내리쬐는 햇살처럼 매서운 그 눈매를 사랑했다. 형을 집행하는, 비정한 손을 사랑했다. 가혹한 운명이 그 불경을 벌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불길한 기운이 행성을 뒤덮었다. 공장은 쉴새 없이 매연을 뿜었고 거리엔 삐라가 나부꼈다. 공장주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무언가를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던 탄환은 잠자코 손을 올렸다. 그 외에도 몇 명이 손을 들고 있었다. 공장주는 그들을 데리고 웃으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벽에는 커다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기계가, 그가 평소에 조작하던 것과 흡사한 어떤 기계가 마치 굶주린 인간과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주가 붉은 포대자루를 기계 속에 넣자, 그것이 즐거운 듯 발버둥쳤다.


일은 훨씬 편해졌다. 그저 총을 들고 문 앞에 서있기만 하면 되었다. 나름 행복한 삶이라고 느꼈다. 병사들이 그곳을 습격하기 전까진. 라스건으로 무장한 가드맨들이 공장을 포위했다. 차량이 공장의 벽을 부수고, 이단심문소의 병사들을 토해내었다. 공장주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탄환의 동료들도 대부분이 죽었다. 탄환은 결박된 채 그녀 앞으로 끌려왔다. 그녀가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강철의 갑옷째로 그를 걷어찼다. 심문은 별 소득이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형벌은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다. 탄환의 적출된 뇌는 첨탑의 포대로 향했다. 운 나쁘게도 그 자리를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포대의 탄환으로 놓였다. 포탄의 머신 스피릿으로써 그는 드디어 그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될거라 믿었다.. 그의 추적장치는 날카로웠으며, 외부 철판은 빈틈이 없었고, 추진체는 공포음을 기다리며 엎드린 단거리 주자처럼 예민했다.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그는 저 너머 공업단지에서 굉음을 내며 걸어오던 거대한 악마-기계를 향해 발사되었다. 기계의 주변의 광신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치며 사람들을 도륙했다. 발사된 탄환은 철저하게 궤도를 계산하고, 추진체에 불을 당겼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궤도를 이탈하고 불발되었다. 동정할 가치도 없는 운명이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탄환의 추적장치가 첨탑의 붕괴를 감지했다. 아무것도 그 곳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 오발탄은 재에 쌓인 채 광장의 동상에 꽂혀있다.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그런데 수십 년 만에, 광장의 한 켠에서 탄환이 카오스 반응을 감지했다. 광신도들이 손에 든 충격봉으로 어떤 스폰을 몰아새우고 있었다. 이성 따윈 없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변이체는 마치 여성과 같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일렬로 늘어선 제국민들이 하나하나 변이체의 수 많은 발에 박살이 났다. 무언가를 감지하기라도 한 듯, 탄환의 추적장치가 초록빛으로 깜빡였다.


그 변이체, 백색의 털이 온 몸을 뒤덮은 추악한 괴물의 한편에서, 탄환은 미쳐 변이가 마쳐지지 않은 어떤 여인의 상반신을 보았다. 거미의 모습에 반쯤 파묻혀있는 몸에서 유년기의 향기를 느꼈다. 어깨 아래로 거의 잘려서 너덜너덜해진 팔에서 은발을 넘기던 손가락을 보았다. 제국민을 짓밟는 다리에서 그를 걷어차던, 갑옷 너머의 발을 느꼈다. 그리고, 이성을 잃어 산발이 된 상반신으로 애달프게 구원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고귀했던 그녀가 망가진 이성으로 구원을 찾고 있었다. 죽음을 소원하고 있었다.


일종의 오작동이었다. 입력 값이 없는 출력이었다. 탄환의 연산장치가 남아있는 연료, 변이체를 향하여 날아갈 최단거리, 폭발 범위와 충격량을 계산했다. 그녀가 가장 취약한 부위, 그녀를 가장 빨리 해방시켜줄 위치를 계산했다. 그것은 일종의 오발이었다. 탄환이 진동하자, 그를 뒤덮었던 재가 떨어져나갔다. 다시 한번, 탄환은 추진체에 불을 당겼다.


탄환은 그녀를 향해 날아간다. 격발장치가 터질 듯 두근거렸다. 추진장치의 연료가 줄어들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름이 새는 것이 느껴졌다. 탄환은 감지했다.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랐지만, 도망치지 않는 변이체를 감지했다. 변이체를 둘러싼 광신도들이 경악 반, 두려움 반으로 외치는 비명을 감지했다. 그의 외부철판이 변이체의 아직 인간으로 남아있는 부분에 닿았다. 접촉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폭발은 강렬했다. 구원은 신속했다. 고통은 전혀 없었으리라.

 



다시, 이것은 어떤 오발탄의 마지막 기록이다올바른 표적에 닿기까지, 그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는가.

추천 비추천

110

고정닉 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AD 희귀 정령 획득 기회! <아스달 연대기> 출석 이벤트 운영자 24/05/23 - -
공지 워해머 갤러리 개념글/ 소개글 및 팁, 설정번역 모음집 REMASTER [12] 랔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11.06 35653 38
공지 에이지 오브 지그마 소개 [23] 지사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0.19 73223 79
공지 워해머 갤러리 이용 안내 [216] 운영자 06.10.30 143615 28
1867982 너글너글하다 : 매우 너그럽고 시원스럽다는 뜻 워갤러(112.149) 05.27 17 0
1867981 워해머 미니어처게임 찍먹해볼수 있는 곳 있나요? 워갤러(112.171) 05.27 13 0
1867980 워해머라고 ㅇ앞으로 부르지말자 진짜;; 워갤러(221.149) 05.26 39 0
1867979 던옵워3 지금 멀티하는사람있음? 워갤러(123.111) 05.25 20 0
1867977 저456ㅂ저456 [1] 워갤러(124.54) 05.22 55 0
1867975 ∙∙∙∙ 워갤러(124.54) 05.18 41 0
1867973 이갤 망함. 블랙라이브러리 갤가면 상주해있는 파딱, 고닉 수백명이 대기중 [1] ㅇㅇ(121.186) 05.13 193 5
1867972 워해머 1 2 3 있는데 3만 설치 되있습니다 1 2도 설치를 해야하나요 [1] 워갤러(118.218) 05.12 114 0
1867971 지나가는 사람인데 "40K" << 이거 어케 읽어요?? [1] 워갤러(211.241) 05.12 129 0
1867969 컬티스트가 스마나 카스마와 비슷한 수준으로 싸울수 있나? [2] 00(220.78) 05.06 145 0
1867968 워해머 관련 티셔츠 사본사람? [1] 워갤러(116.41) 05.04 136 0
1867967 던오브워1 소울스톰 유닛제한 클라우디오맑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02 104 0
1867966 워해머 3 살까 생각중인데 질문좀 [3] ㅇㅇ(220.86) 04.29 298 0
1867965 헬만 고스트 좀비새끼들이 카오스 워리어 이기는데 이게 맞냐 ㅋㅋㅋ [1] 워갤러(211.193) 04.28 199 0
1867964 토탈워 피팩 질문 워갤러(58.141) 04.26 121 0
1867963 현실 워해머교회 [1] 워갤러(221.139) 04.26 236 2
1867962 여기 갤 망함? [2] 워갤러(59.31) 04.25 482 0
1867961 햄탈할때 무슨 모드씀? ㅇㅇ(223.38) 04.25 110 0
1867960 햄탈워 DLC 비싸다는 거 공감이 안됨 [3] 워갤러(106.153) 04.24 253 0
1867959 노란 옷의 왕은 [3] 도동도동도동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2 254 0
1867958 이 갤러리는 지금부터 검은원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22 143 0
1867957 드워프 여혐종족이얌 ㅇㅇ(14.54) 04.21 148 0
1867956 타이탄은 행성에 착륙 어떻게 하는거? [1] 워갤러(114.200) 04.21 233 0
1867955 워해머판타지랑 40000이랑 별개 세계관임?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9 307 0
1867954 여긴 뭐하는 갤이냐 ㅇㅇ(106.101) 04.18 217 0
1867953 다크 크루세이드 분대제한 해제하고 싶은데 워갤러(110.10) 04.15 141 0
1867952 볼트건 하는중인데 ㅅㅂ 왜 여러번 죽으니까 템 다 없어짐? (218.148) 04.14 149 0
1867951 신황제의 장자 라이온님의 신성한 조각상 [1] 워갤러(123.143) 04.12 309 1
1867950 워햄 입문 전에 프마에 신세 좀 졌었는데 워갤러(61.79) 04.12 163 0
1867946 안녕하세요 하나 질문하러 왔습니다 워갤러(112.150) 04.06 221 0
1867945 워해머40k 데몬헌터 다운받았는데 [2] 워갤러(211.214) 04.06 358 0
1867944 여긴 언제 와도 존나 웃기는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5 541 9
1867943 워해머 쪽 사람이 지구인을 보면 뭐래 생각할까 워갤러(112.164) 04.03 200 0
1867942 첫 불멸캠 하는데 종족 추천좀 [2] ㅇㅇ(117.20) 04.03 282 0
1867941 뭐야 포탈타는 이밴트 ESC누르면 안들어갈수 있엇내 ㅇㅇ(58.121) 04.01 192 0
1867940 제국은 진짜 저주받았나ㅋㅋㅋ 워갤러(49.165) 04.01 264 0
1867939 워해머판타지 엔드게임에서 엘프여신은 뭐했길래 그렇게 욕먹는거임? [4] 워갤러(59.7) 03.31 391 0
1867938 아키하바라 워해머 스토어 [1] 다랑어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30 437 0
1867936 워해머 스토리 좀 궁금한거 있는데 [2] 워갤러(49.165) 03.29 280 0
1867934 황가놈이 의자에 박제된게 다행이다 정말 [19] 문명인(59.14) 03.27 1518 32
1867928 햄탈워 하엘 지령 어떻게함? [1] 워갤러(158.62) 03.18 296 0
1867927 햄2 제국 대장간 없애는 모드좀 워갤러(106.253) 03.17 244 0
1867925 위쳐와 워해머의 만남 워갤러(211.218) 03.17 4890 0
1867924 !! 워해머가 영국산이어도 러시아에서 인기있는 이유 !! [19] 우랄의혼(211.38) 03.16 1336 26
1867923 저 ㅂㅅ은 아직도 저러고 혼자 놀고 있네 ㅇㅇ(61.39) 03.15 330 1
1867922 충격! 황제께서 프라이마크를 자매로 만들지 않은 이유 [16] 꺼무트길리먼(121.170) 03.13 1306 22
1867921 워해머엔드버민타이드1이랑 2중에 뭐가 더 잼서요? [1] 워갤러(175.125) 03.13 36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