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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나이트 단편] 모비 딕-01

고등어(115.23) 2016.11.06 11:52:36
조회 2760 추천 5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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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


행성 멜빌-6

분류: 나이트 월드(데스월드)

인구수-1,700,000

십일조 등급: 익사티스-쿼인투스

등급: EW120-X003

주수출품: 고밀도 크리스탈

추가: 극도로 한랭한 기후, 일부 타이라니드 야생체 서식(중요: 대형종의 서식도 확인 됨.)


***


“우린 좆됐다, 이스마엘 상병.”


엉치뼈를 마모시켜버릴 의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진동하는 키메라 안에서, 충실한 제국근위대의 보병 이스마엘 우르시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저 불충한 발언을 불충한 하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지적할 수 있을까? 카타찬 출신의 퀴퀘그 하사는 전신 피부의 절반이 문신으로 덮여있고 나머지 절반은 흉터로 덮혀있는 흉악한 외모였고, 그리고 입버릇은 그 외모보다 훨씬 흉악한 작자였다. 훌륭한 전사에 훌륭한 상관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병들로 꽉꽉 들어찬 좁은 키메라 안에서 저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안그래도 다양한 연대의 보충병들이 모여 만들어진 혼성연대라 사기 문제도 심각한데.(121 혼성보병연대는 카타찬 출신 하사에 카디아 출신 상병, 그리고 발할라와 탈란 출신 신병들이 모인 연대였다.)

이스마엘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젠-장, 퀴퀘그 하사님, 좀 점잖게 표현할 수 없습니까? 여긴 신병도 같이 타고 있단 말입니다. 벌써부터 기죽일 작정….”


“뭐? 안 들린다, 이스마엘 상병. 더 크게 말하도록. 이 존나게 좆같은 행성에 온 것만으로 난 이미 충분히 좆같단 말이다.”


이스마엘은 포기했다. 


“설명이나 해주시죠. 왜 좆같다는 건지나 들어봅시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씨발, 하나도 아니고 셋이란 말이다. 첫째! 여긴 존나게 춥기 때문이다, 이스마엘 상병.”


아. 그건 납득할 만한 일이군. 이스마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궤도에서 지급받은, 체인소드도 막아낼 법한 끔찍하게 두껍고 무거운 코트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메라 안은 지독하게 추웠다. 이스마엘은 흘러들어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 모두 막아둔 총안구 바깥의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끝도 없이 늘어선 빙하, 빙하, 빙하, 그리고 산채로 사람을 썰어버릴 것 같은 눈보라 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좀 더운 지방에서 온 신병 같은 경우엔 새파랗게 질려있는게 이미 반쯤 죽어있는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뭡니까?”


“두 번째, 염병할 벌레 새끼들이 여기 산다는 것 때문이다. 저기 빙하 아래쯤에 드글드글하게 몰려서 우릴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겠지.”


그렇지. 확실히 그것도 납득할 법한 일이다. 멜빌-6, 이 거대한 얼음덩이 행성이 도대체 뭐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건지 모르겠는데, 이곳은 10년 전 하이브 함대의 촉수 중 하나가 닿았던 곳이다. 그 침공은 바오넥스 성계의 여섯별을 모조리 쓸어버렸고, 살아남은 것은 이 나이트 월드 멜빌-6뿐이었다. 


“하지만 십 년 전 이야기 아닙니까? 아무리 대단한 벌레 새끼들이라고 해도 십년씩이나 이 얼음덩이 속에서 살 수 있습니까? 다 얼어 죽었을 텐데요.” 


퀴퀘그 하사는 한심하다는 눈을 코트 너머로 비추어 보인다.


“너는 정말로 병신같이 멍청하군, 이스마엘 상병. 내가 말해준 적 없었나? 나는 그 우주벌레 새끼들이 씨발 방사능으로 오염된 우주선 구석에 백년이 넘게 묻혀 있다가 멀쩡히 튀어나오는 것도 봤다. 그 새끼들은 원래 씨발 우주에서 싸우려고 태어난 놈들이란 말이다. 존나게 춥고 애미애비없이 뒤질 것같이 위험한 우주에 비하면 여긴 파라다이스 월드나 다름없지. 그 놈들은 멀쩡히 살아있을 거다.”


이스마엘은 한층 더 기분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퀴퀘그 하사는 정말로 경험이 많은 작자였고, 전쟁터에 대해서 그가 하는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니다. 전부 에누리 없는 경험담이지.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달리고 있는 키메라 부대의 바깥에는 정말로 타이라니드들이 있을 것이다. 그-뭐라고 했더라―시냅스 크리처인지, 뭔지, 다른 놈들에 비해 중요한 개체들은 대부분 사살했다고 하지만, 그래서 나머지 놈들은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하지만, 그래도 타이라니드들이다. 보통 야생동물들은 지평선을 덮어버릴 정도의 숫자로 몰려오거나, 리만러스 전차의 전면장갑을 뚫어버리는 집게발을 휘두르거나, 아가리에서 플라즈마를 토하진 않는단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좆된 것이 확실하다. 이스마엘은 이제 추운 지방에서 온 신병들조차도 얼굴이 퍼렇게 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니미럴. 사기 회복은 틀렸군. 속으로 투덜거린 이스마엘은 결국 세 번째 이유를 듣기로 한다. 어차피 가드맨들의 사기는 커미사르의 라스건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지, 한낱 상병 따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이유는 뭡니까? 제발 앞의 두 개보다 끔찍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씨발 더 끔찍하다, 이스마엘 상병. 후엣취!”


퀴퀘그 하사는 키메라 엔진음에도 지지 않을 재채기를 하느라 말을 잠시 멈췄다. 이스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왭니까?”


“우릴 부른 새끼들이 염병한 니미럴 제국기사들이기 때문이지.”


이스마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게 영하 80도의 기후와 타이라니드들보다도 끔찍한 사실이지? 그가 질문하려 했을 때였다.


끼기기기긱! 끼기긱!


무한궤도가 거세게 얼음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더니, 키메라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스마엘은 신음과 비명을 지르는 신병들에게 소리를 질러 손잡이를 붙잡도록 지시했다. 퀴퀘그 하사는 욕설과 함께 왜 멈춘 거냐는 질문을 조종석 방향을 향해 날렸지만 소름끼치는 소음에 묻혀버렸다.


“이런 씨발 니미럴 발할라 얼음곰 후장 같은 새끼들아, 왜 갑자기 멈추고 지랄이냐?”


장갑판에 머리를 부딪쳐 성질이 난 퀴퀘그는 끙끙거리며 욕설을 뱉었다. 조종석 방향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이 있기는 했었다. 퀴퀘그 하사가 아니라 무전기에 대고 다급하게 외치는 것이긴 했지만.


“정지하라! 우리는 제국근위대 121 혼성보병연대다! 소속을 밝히고 정지하라!”


“니미 씨발, 앞에서 도대체 뭐가 오는데 그래?”


“반복한다, 정지하라! 우리는 121….”


쿵!


키메라의 장갑 너머로도 둔하게 울려오는 굉음. 신병들이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본다. 이스마엘은 퀴퀘그 하사를 바라보고, 그의 두꺼운 입술이 말려 올라가 이를 드러내는 것을 본다.


쿵!


굉음의 간격이 빠르다. 마치, 발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쿵!


쿵!


“그래, 놈들이구만.”


퀴퀘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키메라 내부의 녹빛 전등이 붉은 빛으로 바뀐다. 이윽고, 막혀있던 총안구와 관측창들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그 좁은 틈새로도 멜빌-6의 살을 뜯어먹는 냉기가 세어 들어와 가드맨들의 고통스런 신음을 자아내지만, 단 두 명, 퀴퀘그와 이스마엘은 총안구로 다가가 눈을 들이댔다. 이윽고 그들은 그 눈을 더 높이 들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그 높이 들어올린 눈으로도 장갑판에 쌓인 장딴지까지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대한 것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8톤짜리 장갑차인 키메라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그것들의 주변에서는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엔진에서, 관절에서, 그리고 무기에서 피어나오는 막대한 열들이 얼음가루 섞인 대기를 녹여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강철과 아다만티움과 프로메슘 엔진의 집합체였고, 전차포를 마치 소총처럼 가볍게 들고 초중전차도 갈아버릴 것 같은 전기톱을 휘두르며 서 있었다. 마치 고대 테라의 야만전사들같은 투구는 크게 굽은 곱사등이 같은 어깨 아래, 사람으로 치면 가슴팍쯤에 달려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높이였다. 가늘게 일자로 뚫린, 혹은 여러 개의 작은 눈구멍들에서 이따금 푸르거나 붉은 빛들이 오만하게 번쩍였다. 이스마엘은 그것들의 실루엣이 기묘하게 울퉁불퉁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알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감수하고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자, 비로소 그것들이 몸에 무엇을 두르고 있는지 보였다. 그들은 거대한 발톱을, 손톱을, 갑각 껍데기와 이빨과 대가리들을 몸에 쇠사슬로 묶어 두르고 있었다. 위대한 포식자들의 시체로 몸을 장식한 그들은 제국기사들이었다.


***


“좆같게도 우리는 세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이스마엘 상병.”


“들어나 봅시다.”


“첫째, 저 제국기사 새끼들은 죄다 벙어리다.”


“귀머거리일지도 모르죠. 듣지 못해서 대답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넌 씨발 존나게 똑똑하구나, 이스마엘 상병!”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퀴퀘그 하사님.”


“둘째, 저 염병-니미럴 제국기사 새끼들은 복스 캐스터를 쓸 줄 모른다.”


“그것도 그럴싸하군요.”


“셋째,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저 좆미개한 병신 기사새끼들은 로우 고딕을 모른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무전기를 쓸 줄 모르는 문맹 귀머거리이자 벙어리들에게 지원 요청을 받고 이 행성에 왔다는 이야기입니까?”


“정확하다, 이스마엘 상병! 내 좆이 동상 때문에 떨어져나가기 일보 직전이 아니었다면 너랑 결혼하고 싶구나!”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소리 죽여 킥킥거렸다. 뻣뻣하게 굳어서-반쯤은 추위 때문에, 나머지 반쯤은 위압감 때문에-눈알만 굴리고 있던 신병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약간이나마 긴장감이 풀린 모양이었다. 사실, 그걸 노린 목적의 유치한 대화이기도 했다. 아무튼 제국기사들은 임페리얼 가드 혼성보병연대원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긴 이미 글러먹은 상태였다. 어떤 무전에도 응답하지 않고 길을 가로막은채 한시간이 넘게 묵묵히 서있기만 한 상태였으니까.


“우리는 제국근위대 121 혼성보병연대다! 귀공들은 멜빌-6의 아합 가문의 기사들인가?”


애타게 복스캐스터를 잡고 응답을 요구하는 무전병이 이젠 슬슬 가엽게 여겨진다. 퀴퀘그는 허옇게 배어나오는 입김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밖을 내다보던 이스마엘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쳤다. 코트가 워낙 두꺼워 느껴지지도 않은 모양인지, 이스마엘은 두어 번 더 세게 두들겨야 했다.


“하사님, 저쪽을 보십쇼. 연대장 차량 말입니다.”


“엉, 왜?”


“연대장님이 내리고 있습니다. 직접 말을 걸어보실 모양인데요.”


“젠장, 그럼 우리도 내려야겠군. 야! 니미 씨발, 연대장님 나가신다! 문 열어!”


신병들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은 건 아마도 입술이 얼어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메라의 후방 해치가 얼음 깨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더니, 거의 물리적인 형체를 가진 냉기가 세차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드맨들을 후려쳤다. 이스마엘은 간신히 코트자락을 여미고 라스건을 집어들 수 있었다. 퀴퀘그 하사가 온갖 욕설을 중얼거리며 가장 먼저 뛰쳐나갔고, 이스마엘이 비틀거리는 신병들을 인솔해 그 뒤를 따랐다.


죽을 것 같이 추웠다.


행성에 강하하고 나서 27시간 만에 밟아보는 지표는, 하얗다. 그리고 하얗기만 했다. 그 외의 어떤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대지가, 기이하게 새파란 하늘과 함께 끝없이 이어졌다. 멜빌-6, 바오넥스 성계의 유일한 생존자, 그리고 나이트월드. 가드맨들은 비로소 허리를 펴고 제국기사들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은 잠시 추위마저 잊어버렸다. 경외감과 위압감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씨발 같이 크군.”


퀴퀘그의 감탄이 그들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었다. 가드맨들은 영하 80도의 추위 속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심을 보이며 정렬했다. 스무대의 키메라에서 나온 280명의 가드맨들 앞으로, 그 가드맨들보다 두배는 더 두꺼운 코트를 껴입은 연대장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걸어나간다.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연대 커미사르는 그래도 좀 위엄은 챙기고 있는 편이었다. 연대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동상처럼 서있는 세대의 제국기사 중 가장 앞에 있는 쪽을 올려다보고 외쳤다. 어차피 뒤의 둘은 수증기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영광된 제국근위대의 121 혼성보병연대의 연대장 라인볼트요! 아합 가문의 제국기사들이라면 내 말에 응답하시오!”


침묵. 그리고 가장 앞에 서있던 제국기사 중 하나가,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쿠-구-웅. 


분명히 예의바르게 반발자국만 내밀었을 뿐인데, 지축을 울리는 굉음은 압도적이었다. 가드맨들이 등돌려 도망치지 않은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이스마엘은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는 제국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지독하게 컸다. 제국기사는 무릎을 꿇더니 한쪽 손을 들어올려 가슴팍 즈음에 올려두고는 동작을 정지했다.

이윽고, 서리와 고드름으로 덮인 제국기사의 해치가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그대로 차가운 멜빌-6의 대기와 만나 안개로 변해, 조종석 안에서 나오는 기사는 마치 연기 속에서 홀연히 등장한 유령처럼 보였다. 파일럿은 능숙하게 어깨 부근의 사다리에 손을 뻗어 매달리는 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타고 내려오다 놓아버리곤 가슴팍에 올려둔 대포 위에 착지했다. 그리곤 다시 지면으로 그대로 뛰어내렸다. 날렵한 동작이었다. 가드맨들 사이에서 감탄이 튀어나오지 않은 이유는 아마 입술이 얼어버렸기 때문이지, 군율에 투철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입을 연 것은 퀴퀘그 뿐이었다. 얼빠진 목소리로, 카타찬의 전사가 중얼거렸다.


“니미, 여자잖아?”


하얀 대지를 밟으며, 제국의 여기사가 가드맨들을 향해 걸어왔다.


***








주역들의 이름은 거기서 따온 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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