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황제란 것이 왼팔은 온데간데없고 눈은 한짝이 삐꾸가 났으며 척추가 부러져서 골골대면서 걸어다니는 것이 참 안쓰러워 내가 '여보오-.'하고 부르니 힘겹게 고개를 돌린다.

가만 보니까 이 황제란 늙은이가 이마빡에서 촛불마냥 빛을 내고 있다.

'여기서 뭐하오-.'하고 느긋이 물으니, 이 양반이 자기도 눈이 부신지 눈을 껌벅껌벅하다, '디-먼놈이, 저리로 가라.'라고 하더라.

'원 까다로운 늙은이도 다 보겠네. 똑같이 워프에서 살면서 디-먼이 뭐요 디-먼이.'라고 하니 한숨을 푹-쉬고는 그래 다 똑같은 놈들이지 하구 에구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언클린원을 때려잡아 그 위에 깔고 앉더라. 가만 보니까 이 양반의 마빡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 반딧불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닌다. 저게 등대인가 뭔가 하는건가보다. 늙은 황제는 그 빛에 자기가 눈부셔서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도 계-에속 빛을 내고 있다. 참 미련한 양반이다.

내가 워프 담배를 권하니 오만상을 다 찌푸리면서, '뭘로 만들었기에 내 아들내미 엉덩이 냄새가 나오?' 이런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양반 난봉질도 어지간했는데 아들이 열여덟이요 버린 아들도 둘씩이나 된다더라. 그 아들 놈 중 하나가 바르바투스 살던 모씨인데 어찌나 안씻는지 아주 유명하다. 아무튼 양반이 담배를 피워대는데 한모금 빨때 마다 기운차게 빨아들이고 뱉는 것이 꼭 산불이 난 것 같더라. 젊었을 때는 정말 대단한 장사였겠다 싶었다.

'아들내미들이 맘에 안드오?'이러고 내가 장난스럽게 물어보니 이 양반이 눈을 황소가 모기 쫒는 것마냥 길-게 흘겨보곤 또 한숨을 푹시더니 지나가던 블러드 써스터 몇마리를 때려잡아 뿔을 뽑아 발바닥을 긁어대더라.

'맘에 안들면 어쩌겠수, 다 내가 못만든 탓인데.'

그리고는 슬쩍 일어나서 다시 이마빡에서 불빛을 껌벅껌벅, 내면서 워프 길을 휘청휘청 걸어가더라. 듣자하니 저렇게 다친 게 아들내미가 두들겨 패서 그렇다더라. 어이구, 그러고보니 그 아들내미한테 장난 삼아 느그 애비 험담을 늘어놓았던게 옆집 젠취씨랑 바로 나였다. 새삼스럽게 미안해진다. 정말이지 박복한 노인네다. 그 와중에도 이마빡에서 나오는 빛이 꺼질세라, 한걸음 옮길 때마다 조심조심, 두걸음 옮길 때마다 비틀비틀하며 힘겹게 걸어가니 그 주변에 등대를 따라다니는 전함들이 둥실둥실하니 참 보기 안쓰러우면서도 땃땃하더라.

내가 그렇게 노인을 떠나보내고 집에 돌아와보니 딸년 마스크가 방금 닦아놓은 마룻바닥 위에서 슬리퍼를 신고 땐-스인지 댄스인지를 신나게 추고 있어 눈이 뒤집혔다.

'아이고, 요년아! 요 미친년아!'

이렇게 지랄을 떨며 엉덩이를 두들기니, 딸년이 눈이 휘동그래져선, 엄마가 이 춤을 보면 좋아할 줄 알았단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 딸내미한테 쓰레빠를 집어 던지며 그렇게 춤이 좋으면 평생 춤이나 추고 살라며 역정을 내니, 그년이 울면서 대문 밖으로 춤을 휘휘 빙글빙글 추면서 도망가더라.

나는 어지러진 마룻바닥을 가슴을 치면서 닦고 있자니 '맘에 안들면 어쩌겠수, 다 내가 못만든 탓인데'이러면서 담배연기를 토해내던 황제 늙은이의 얼굴이 떠오르더라. 자식 새끼들이란게 이리도 이상한 것들이다. 앞집 코씨는 글쌔 아들내미 스컬브란드가 커터칼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다가 하나뿐인 황동양복을 찢어먹어서 집 밖으로 내쫒았고, 옆집 젠씨는 아들을 서울에 보내놨더니 정신이 이상해지고 대가리가 두개가 되어서 돌아왔단다. 어이고, 정말이지.

얼른 치우고 딸내미를 도로 데려와야겠다. 워프의 밤은 오늘도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