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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워치 단편] 4만년 후의 당신들에게-03

고등어(115.23) 2016.12.11 16:04:48
조회 4875 추천 57 댓글 26
														



이번 화의 브금은 조니-마티스-


오랜만이네.


1편 링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arhammer&no=1524935&page=3&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고등어


2편 링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arhammer&no=1526390&page=2&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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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천체들, 더 나아가 태양계 밖 별들을 살펴보기 위해 ‘여행자’라는 이름을 가진 두 우주 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가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77년에 발사되었다.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않을 두 우주 탐사선에는 지름이 약 30센티미터인 금박을 씌운 LP 레코드판, 일명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가 붙어 있다. 그 레코드판은 미래에 보이저호와 만날지 모를 미지의 외계 문명에게 보내는 지구와 인류의 메시지다. 그 안에는 지구를 대표할 음악 27곡,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지구와 생명의 진화를 표현한 소리 19개, 지구 환경과 인류 문명을 암시하는 사진 118장이 수록되었다. 


여행자는 황금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자를 창조한 이들은 그의 심장이 영원히 뛰기를 바란 것 같다. 그 심장이 백년, 천년, 사만 년, 수십억 년을 넘어서도 남을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오.

별들의 바다 한구석, 여덟 개의 행성과 하나의 항성이 있는 곳, 그곳의 작은 푸른 별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오. 

우리를 기억해주오.

그들은 그런 바람을 담아, 여행자의 심장에 황금을 씌어주었다. 유언장의 마침표를 찍듯이. 여행자는 묵묵히 그 심장을 품고 진공의 바다를 갈라왔다.

아주 가끔은 그 내용물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물론 가끔일 뿐이다. 여행자의 임무는 기약 없는 여행을 수행하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황금색 원판에 담긴 것들을 떠올리며 여행자는 지구를 추억한다.

음악 27곡, 쉰하고도 다섯 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인사말, 지구와 생명의 진화를 표현한 소리 19개, 지구 환경과 인류 문명을 암시하는 사진 118장.

광둥어, 구라라트어,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네팔어, 구마니아어, 마라티어, 베트남어, 북경어, 소토어, 수메르어, 체코어에서 오어까지.

박테리아의 유약하면서도 강인한 몸부림, 새의 날갯짓, 바다표면 아래로 비치는 물고기의 비늘, 코끼리의 둔중한 발걸음, 인류의 인사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인류의 문명이 건설되어가는 공사장 소리까지.

황금의 심장은 황금으로 도금된 디스크. 그 이름은 지구의 소리.

지구의 목소리.

지구의 노래.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수줍은 목소리. 

여행자는 여행을 계속한다. 그 노래를 들어줄 누군가를 만나길 원하며. 모든 동력이 수만 년 전에 정지한 지금, 여행자가 가진 유일한 기능은 그 목소리를 보존하며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4만년 만에, 누군가가 그 황금의 심장을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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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시아에게 맹세코, 이것은 저장매체의 일종일세. 매우 원시적이고 투박하군. 기계령이 거하실 일말의 여지조차 없구나, 아이야.”


“아, 네.”


“표면은 장기보존을 위해 금으로 원시적인-일종의 표면 처리를 한 것으로 보이네만, 내부는 구리질이구나. 참으로 미개하도다. 이 표면에 조잡하게 그어진 기호들을 보려 무나, 아이야.”


“아, 네.”


“심지어 이 기호는 원시테라의 언어조차도 아니로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단다. 이걸 쏘아 보낸 옛 테라의 미개인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것이 언어 없이도 이해되길 바랐던 것 같구나. 내 의견으로는 전자를 지지한다. 이 미개인들의 기술력은 정말 형편없으니.”


“아, 네.”


“누군가는 화성의 우리 교단을 옛 물건이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비이성적인 집단이라 매도하지! 그러나 우리의 숭배는 받을 가치가 있는 것에 한정되는 것. 이렇게 원시적이고 유치한 정보에 줄 경의 따위는 없단다, 아이야. 장기보존을 위해서라면 무엇보다도 뇌가 제격이지! 나라면 죄인의 뇌를 뽑아 정보를 세뇌시킨 후 정지장에 담는 세련된 방식을 이용했을 거다. 물론, 그 이전에 누가 볼지 모르는 우주로 정보를 띄워 보내는 헛되고 멍청한 짓을 하지 않겠지만, 아이야.”


“테크프리스트 클리크, 부탁이니 그냥 재생방법을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오, 미안하군, 아스트로패스. 그건 모르겠네. 이 장치는 내가 파악하기엔 너무 미개하군.”


“….”


“그럼 이만, 난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기계령들이 실제로 존재한 기계들을 돌보러 가겠네. 수고하게, 일동들.”


아스트로패스 카데와 데스워치 마린은 테크프리스트 클리크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30분 가까이 고대 탐사선의 열등한 기술력에 대해 성토하던 테크프리스트는 정작 그 안에서 나온 고대 유물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카데는 손에 들고 있는 금속 원반을 던지면 소리가 나지 않을까 고민했다. 테크프리스트의 뒤통수에 꽂아 넣으면 적어도 듣기 좋은 금속음은 날 것 같은데.

반 톤이 넘는 원반형의 고대탐사선은 심우주 활동용 서비터에 의해 간단히 회수되었다. 그것이 ‘검은 말벌’의 선창에 놓일 때까지만 해도 선내는 반쯤 축제 분위기였다. 고대 테라의 유물, 인류가 최초로 우주로 발을 뻗던 시기의 대유물인 것이다. 그러나 기대에 찬 얼굴로 들여다보던 기계광 워치캡틴 엑소투스는 물론이요, 혹시 외계의 탐사선은 아닐까 싶어 실험실에서 기어나온 외계광 인퀴지터 라엘은 물론이요, 화성으로 데이터를 추출해 보내겠다며 들뜬 선내 테크프리스트들까지, 참으로 빠르게 흥분이 식었다. 안테나와 사진기, 기록 장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그 탐사선에서는 오래되었다는 것 말고는 어떤 가치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르도 제노스 소속 특수공작함 ‘검은 말벌’은 어떤 물건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숭배할 수 있는 고고학자 같은 작자들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그것이 지구산(즉, 외계인이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이라는 이유로 인퀴지터가 흥미를 잃고 떨어져나갔고, 그 다음에는 워치캡틴 엑소투스가 직무를 위해 선실로 돌아갔고, 테크프리스트들은 서로 이 미개한 탐사선에 대한 조사를 미루다가 대충 뜯어보는 시늉만 하고는 다들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탐사선에 끝까지 달라붙어 있던 것은 이걸 발견한 아스트로패스 카데와 근신처분을 받아 할 일이 없던 데스워치 요원 토르켈 뿐이었다. 어쨌든 카데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고, 이 탐사선의 정체를 약간이라도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스트로패스는 때 아닌 추가 잔업에 한숨을 푹푹 쉬었고 토르켈은 그런 그녀를 뒤에서 심술궂게 내려다보면서 낄낄거렸다.

그런 카데가 토르켈의 도움을 받아 탐사선의 내부에서 황금으로 도금된 아름다운 디스크를 발견한 것이다. 카데의 투명한 눈에도 그것은 아름답게 비췄고, 탄성을 지른 카데는 그것의 표면에 복잡한 기호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원판이 일종의 기록물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그 원판에 담긴 정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판의 아름다운 표면에는 여러 개의 직선, 몇 개의 원, 어떻게 보면 도면처럼 보이는 것들이 새겨져있었지만 글자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고대 테라에는 언어가 없었던 걸까요?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우주선을 쐈을까요?”


“상형문자의 일종일지도 모르겠군. 나도 몇 번 비슷한 걸 써봐서 아내.”


“어, 펜리스에서는 로우고딕이 아니라 상형문자를 쓰나요?”


“그립군. 누가 더 큰 그림을 만드나 고향에서 내기하곤 했었지. 연회 후에 오줌으로 눈 위에 그리면….”


“더 이상 말하면 죽이겠어요, 아스타르페스 토르켈!”


결국 카데는 황금원판을 조심스럽게 들고 선내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그 뒤를 할 일없는 스페이스 울프가 휘파람을 불며 쫒아다녔다. 그 둘이 가장 처음 찾아간 이는 ‘검은 말벌’의 최고상급자인 인퀴지터 라엘이었다. 외계인 체액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던 라엘은(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건지 카데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카데가 내민 황금레코드를 귀찮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고대 테라 유물이에요, 인퀴지터 라엘. 조금만 더 관심을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내 임무는 제국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지 제국의 역사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네, 아스트로패스 카데.”


아, 그러셔. 카데는 코웃음을 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물러났다. 인퀴지터 라엘이 제국의 적을 쓰러뜨리기야 하겠지. 그 작자라면 침대에서 그러고 싶어 할 게 분명한 게 문제지만. 인퀴지터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워치캡틴 엑소투스였다. 아이언핸드 출신의 기계광은 인퀴지터보다는 훨씬 정중하게 둘을 받아들였지만, 바쁜 직무 탓에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


“어서 오게. 아스트로패스 카데, 그리고 형제 토르켈.”


“바쁜 데 죄송해요, 워치캡틴 엑소투스.”


“안녕하쇼, 대장.”


“…자네에겐 분명 근신을 명했을 텐데.”


“근신 중이오. 이 몸은 분명 이 좁디좁은 함선 안에 갇혀 괴로워하지 않고 있소이까? 늑대를 우리에 넣다니, 이는 제국에 끔찍한 비극이로다!”


“저런 사람이 데스워치에 있다니 그게 제국에게 비극 아닐까요….”


“나도 동의하는 바일세. 용건이 뭔가?”


엑소투스는 진지하게 황금원판을 받아들고 살펴보았지만, 신통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그는 원판의 아래쪽에 새겨진 원 두 개가 일종의 분자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가설을 제시했지만, 카데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물러났다.


그 다음으로 만난 것이 ‘검은 말벌’ 안에서 가장 기계에 정통한 테크프리스트 클리크였다. 그러나 그 망할 노인네는 30분 동안 열심히 황금 원판의 열등함에 대해서만 토로하더니, 결국 카데의 질문에는 한 마디도 대답하질 않고 떠나버린 것이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작동시키는가?’


토르켈이 황금 원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손뼉을 쳤다. 


“가운데에 구멍이 있군. 거기 손가락을 끼워 돌려보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토르켈은 자신이 해보겠다면서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가지도 않는 손가락을 쑤셔 넣으려다 카데에게 제지당했다.


“저 구멍에 숨을 불어넣어보세! 일종의 악기일지도 모르네!”


카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 자기 눈은 보이지도 않지만, 둥근 원판의 가운데에 대고 입김을 불어대는 자신은 엄청나게 부끄러운 꼴이 분명할 것이다.


“…우리 조상이 저런 악기로 연주를 했을 것 같진 않은데요….”


“부끄러워서 그런가? 그런 내가 해보지!”


토르켈은 하마터면 산성침으로 그 귀중한 황금원판을 부식시킬 뻔 했다. 토르켈은 아스트로패스에게 꼬집힌 손등을 과장된 동작으로 쓰다듬으며 다음 묘수를 궁리했다.


“던져보면 어떨까?”


“안돼요.”


“어디대고 긁어볼까?”


“싫다니까요.”


“그럼 반으로 쪼개보세.”


“무슨 얘기해요?”


“미쳤…! 아, 토히. 이제 일어났니?”


복도에서 언쟁을 나누던 토르켈과 카데 앞에 비틀거리며 나타난 것은 민간인 소녀였다. 소녀는 세박타니-3에서 막 구출됐을 때만큼이나 피곤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타르테스용 독주를 들이키고 혼절했다 방금 깨어난 뒤였기 때문이다. 아스트로패스 카데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를 고려해 허리를 숙여 조그만 아이와 눈을 맞추고 미소 지었다.


“몸에 이상은 없니?”


“응. 근데, 머리 아파요.”


피곤하게 중얼거리는 토히를 본 카데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카데는 토히를 껴안고는 등을 토닥거렸다.


“아아, 가엾은 토히. 네가 억지로 마신 사특한 독극물의 영향이란다. 하지만 내가 지켜줄게. 다음부턴 절대로 저 사악한 수염괴물이 너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토르켈은 길길이 날뛰었다.


“독극물이라니! 아직도 그런 끔찍한 선동을! 그리고 수염괴물? 수염괴물이라니! 앞으론 자네를 금발괴물이라고 부르겠네!”


“아, 그러시던가요.”


“숨 막혀요, 언니…. 그런데 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응? 아아, 이거.”


카데는 토히를 풀어주고는 원판을 보여주었다. 그 빛깔에 놀란 토히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예쁘다.”


“응, 그럴 거 같아. 황금이라면서?”


토르켈이 이죽거리면서 끼어들었다.


“흥, 금발괴물이라 역시 금색에….”


“아스타르테스 토르켈, 유치하게 굴지 마세요.”


“날 수염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상 그만두지 않겠네!”


“그렇게 안부를게요. 됐죠?”


“엉? 뭐…. 응….”


“이게 뭐에요?”


“그걸 몰라서 이야기하고 있었어. 어떻게 하면 틀수도 있을 거 같은데. 방법을 모르겠네.”


“이 그림대로 하면 되잖아요.”


“뭐?”


놀라서 서로 얼굴을 들이미는 카데와 토르켈(카데는 토르켈과 머리를 부딪쳐서 나가떨어질 뻔했다)에게 토히는 원판의 뒷면을 펼쳐 내밀었다. 테크프리스트, 인퀴지터, 데스워치 캡틴은 불가해한 상형문자나 이유 없이 그어진 도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와 보니 꼭 원판과, 그 원판에 달라붙어있는 기계장치의 모사도를 위에서 묘사한 그림으로 보였다.


“아스타르테스 토르켈, 이런 것도 안에 같이 들어있었나요?”


“음, 있었네.”


카데의 목소리가 점차 스산해지자, 토르켈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조금 뒤로 뺐다. 카데는 섬뜩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으며 토르켈에게 다가섰다.


“왜 저는 그걸 못 봤죠?”


“그…. 내가 그걸 꺼내다가, 좀 찌그러뜨린 것 같아서, 나중에 고치려고 챙겨뒀었는데….”


검은 말벌의 한구석에서 격렬한 사이킥 파동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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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 제노스 특수공작함 검은 말벌 일일 결산 보고서


발신: 인퀴지터 라엘 프로코 프로듈리우스(그로부터 권한대행: 아스트로패스 카델리아 후미카) 


수신: 오르도 제노스-프리사이언스 프라이머리 워치 포트리스  


보고: 시대 미상, 제조자 미상, 연대 미상의 심우주 탐사선 발견: 조사 후 목적 미상, 내용 미상의 금속 원반체 기록물 발견. 장시간의 연구 끝에 재생 방법을 찾았으며, 신중한 검토 끝에 재생을 결정함. 재생 내용은 별도 첨부. 

     

보고 끝.

-은닉은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만드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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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이들이 저 천박한 슬라네쉬나, 야만적인 코른의 신도들의 행동과 다크엘다의 우아한 고문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블러드릴리 컬트의 수장 젤루시야 이리쓰웨에겐 가당찮은 이야기다. 위대한 엘다들의 정통한 후예인 자신들이, 그런 천박한 워프 신들의 행동과 비교된다는 시점에서 이미 불쾌하기 짝이 없다.

목마른 그녀는 몰라도, 해골 옥좌의 주인에게는 도통 목적의식이란 것이 없다. 목적이란 실로 삶의 이유, 삶에 존엄을 부과하는 방식일 텐데, 그 목적없는 폭력으로도 만족하는 신의 수준이야 뻔하지 않은가? 그저 피가 흐르기만 하면 된다니. 적이 죽든, 내가 죽든, 잘린 목에서 솟아오르는 피와 해골만 있으면 된다고? 유치하기 그지없다.

다크엘다들은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세심한 폭력을 행사하며, 덧붙여 폭력을 행사할 대상도 섬세하게 고른다. 이리도 큰 차이가 있거늘, 도대체 왜 헷갈린단 말인가?


아콘 젤루시야는 그런 잡상을 하며 부드럽게 입술을 땠다. 바들거리는 파시어의 입술에서는 피와, 고통과, 눈물의 맛이 났다.


“당신, 맛있네.”


“…여…다….”


고통에 겨워 파시어는 말을 채 완성시키지도 못했다. 그러나 고문에 정통한 젤루시야는 수많은 애원을 들어봤고, 그것이 잘린 혓바닥이나 부서진 성대에서 나올 경우에도 충분히 알아듣는다. 얼굴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의 피부가 벗겨진 파시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죽여다오.


물론, 젤루시야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싫어. 당신, 너무 맛있거든.”


파시어의 옆구리 근육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아콘이 가늘게 웃었다. 그 파시어는 너무 늦었다. 아무리 위험한 파시어라도, 위대한 사이커라도, 가죽을 벗겨버리면 고통 때문에 권능을 행사하지도 못한다. 겁도 없이 젤루시야의 사냥 함대의 영역에 홀로 들어왔을 때, 그때 이미 파시어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파시어의 이클립스급 순양전함은 최대한 발악하며 몸부림쳤지만 선체를 파고드는 다크엘다 전투기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승무원들은 몰살당하고, 함장이었던 파시어만이 살아남아 붙잡히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신속한 엘다들 간의 전투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속도였다. 산성총탄에 맞아 녹아내리는 기자재가 가득한 이클립스급 순양전함의 함교에서 환락에 겨운 고문 축제가 이뤄지는 동안, 그녀는 전리품인 아름다운 파시어를 마음껏 가지고 놀고 있었다. 심문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 중요한건, 쾌락이다.


“있잖아, 여긴 왜 들어온 거야?”


“….”


여자 파시어는 파들거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처투성이인 얼굴에서 파란 눈동자만이 경멸을 담아 불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까, 젤루시야는 그것이 귀엽게 느껴져 키득거렸다. 아콘은 손가락을 들어 튕겼다.


“엔비야, 그걸 가져오렴.”


엘다들의 비명과 다크엘다들의 웃음소리가 아스라이 울려 퍼지는 복도 너머에서, 무언가 사각거리면서 달려왔다. 여러 개의 금속 다리로 바닥을 두들기는 소리가 기묘하게 청명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을 본 파시어는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공포에 놀란다. 그것은 엘다의 머리통만한 크기였다. 그도그럴것이, 그것은 엘다의 머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얀 백발, 아름다운 이목구비, 멍한 표정은 있었다. 그러나 그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목 아래는 정교한 솜씨로 꿰매어져 바로 거미 같은 기계장치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머리통은 그 보행장치를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파시어는 자신이 누구들에게 사로잡힌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다크엘다들. 파시어는 비명을 질렀다. 아콘과, 잘린 머리는 그 비명을 감미롭게 듣는다.

엔비야라 불린 하얀 백발의 머리통이 능숙하게 아콘의 몸을 거미다리로 타고 오르더니, 입에 물고 있던 주사기를 내민다. 마치 입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아콘 젤루시야는 음탕하게 웃으며 그것을 입으로 받아낸다. 일을 마친 잘린 머리는 얌전히 그녀의 팔에 매달린다. 젤루시야는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그 머리를 내려다본 뒤, 파시어에게 웃으며 주사기를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알아? 요즘 내 컬트가 코모라에 유통시키고 있는 신상품이야. 그녀의 키스라는 상품명을 붙일까하는데.”  


“그…만…둬….”


“기본적으로는 감각증폭제야. 여기 있는-내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몸이 다 있을 때 즐겨 쓰던 약을 개량한 거지. 너희 고결하신 크래프트월드 아가씨들께서는 본 적 없을 테지만 말야.”


“뭘…나에게…!”


젤루시야가 요염하게 웃었다.


“당연히 놓을거야. 금욕적인 당신의 삶에 드리는 마지막 선물로. 지금도 꽤나 짜릿하지? 온 몸의 피부가 벗겨진 건 처음일테니까. 아아, 얼마나 황홀할까?” 


아콘의 얼굴이 음침한 황홀감으로 고조되어, 목소리가 점점 달아올랐다. 뒷부분은, 말보다는 교성과 가깝게 들렸다.


“그 드러낸 맨 근육에, 핏줄에, 바람이 쐬이고 숨결이 가닿고 매순간 심장이 꺼져가지만 쉽게 죽지도 못하는 그 기분은 말야. 그런데…. 이걸 놓으면, 그 고통이 몇 배까지 증폭되려나? 뇌가 녹아서 죽지 않을까? 자, 해보자! 어서! 빨리!”


파시어의 눈이 공포로 가득 물들었다. 아프기 싫다,는 생각이 모든 논리와 고통을 누르고 올라서, 파시어는 결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말…하겠습니다!…제발 놓지 마세요! 그냥 죽여주세요! 나는…먼케이들의…탐사선을 찾아서…여기까지 왔습니다! 웹웨이 게이트의 입구를 찍었을 가능성이 있는 탐사선이 있었단 말야! 그러니, 제발, 제발, 말했으니 제발…!”


“아아, 탐사선?” 


젤루시야는 손을 멈췄다.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하는 파시어의 앞에서, 그녀는 입술에 손을 대고 한참 고민한다. 웹웨이 게이트를 찍었을 가능성이 있는 탐사선이라. 저 저열한 인류제국에게, 게이트의 입구를 알더라도 그곳으로 침공할 여력이 있을까? 젤루시야는 잠시 더 고민하다, 이내 픽 웃고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뭐 어때, 재미있을 거 같으면 됐지. 그녀의 팔에 매달려있던 여동생의 머리는 어깨로 그 자리를 옮겨 입을 우물거렸다.


“응, 좋아. 참 잘했어요.”


아콘은 파시어의 볼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긴 입맞춤 끝에, 천천히 입술을 땐 젤루시야는 주사기를 파시어의 목에 내리 꽂았다.


“이건, 상.”


“꺄아아악! 히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던 파시어가, 쇼크로 뇌가 정지할 때까지 계속해서 질러대는 비명소리 속에서, 아콘은 함선 곳곳에 퍼져 고문에 열중하던 컬트를 불러 모았다. 피에 젖어, 혹은 다른 액체에 젖어 헐떡거리며 웃어대는 부하들을 내려다보며, 여동생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아콘이 나른한 어조로 명령했다. 


“이 함선의 성능을 테스트해보자꾸나. 펄사엔진 가동, 목표는 근방의 먼케이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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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귀쟁이는 뭐다?


이번 화에 나온 다크엘다 아가씨들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arhammer&no=1508363&page=1&search_pos=-1496460&s_type=search_all&s_keyword=고등어


여기서 나왔던 아가씨들. 기억하는 사람 있을 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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