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켄타로 지쳤나요? 20년 넘게 베르세르크만 그리던 미우라 켄타로는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프로레슬링 만화를 그립니다

한창 일본 프로레슬링이 좋았던 시절엔 재미있는 프로레슬링 만화도 많이 나왔었는데, 요즘엔 회식자리에서 제일 기피되는 이야기가 야구, 프로레슬링, 건담(퍼스트)이랜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지 않냐? 나 대구놈이라서 아버지 약주만 드시면 맨날 "이만수가 말이야~" 이러는데 존나 듣기 싫음. 그냥 예예해야지

어쨌든 베르세르크 연재 쉬는 동안 마냥 놀진 않았던 미우라 켄타로가 2013년 그린 프로레슬링 만화임. 물론 미우라가 그냥 프로레슬링 만화를 그린 건 아니고

사람이 아닌 것들이랑 프로레슬링을 한다

설정은 대충 이럼.

세계가 뭔가의 이유로 엄청나게 황폐해졌는데,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가이아의 조각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족을 제외한 다른 아인족들(곤충인간 등)은 사막에 떨어져있는 가이아의 조각 근처의 숲에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음.

근데 세계의 패권을 가진 인간족은 가이아의 조각을 강탈해서 그걸로 "거인"이라는 거대병기를 만들어서 군비 증강에 목을 멤. 

주인공 델로스는 노예 검투사 출신의 인간족인데, 원래 검투에서 패배한 검투사는 죽게 되지만 델로스는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상대방의 기술을 전부 몸으로 받아내서 버틴 후에, 자신의 기술로 쓰러뜨린다"라는 방법으로 뜨거운 검투경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도 다른 검투사도 살 수 있도록 하는 파이팅 스타일을 몸에 익히고 있음.

모종의 과정을 거쳐 탈출(또는 자유의 몸이 됨)한 델로스는 세계의 정령 비스무리한 존재인 프로메와 함께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이 가이아의 조각이 인간족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주기 위해 싸우는데, 문제는 델로스 또한 잔인한 정복자인 인간족이기때문에 도와주려는 아인족에게도 경계받고 미움을 받아

그래서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풀어주기 위해서, 본인의 특기인 "전부 받아준 다음 되갚아주는" 싸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풀고 교감하게 되는 거지

일프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보면 엄청나게 올드한 감성의 일본 프로레슬링 만화인데, SF 판타지인 배경만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게 원투의 산시로같은 느낌의 만화야. 그래도 당시 일본인들이 프로레슬링을 대하는 더럽게 감성적인 접근법의 근원을 엿볼 수 있는 그런 만화라서, 나름 일프 이해에 도움을 줌. 

만화 자체도 한권짜리 부담없는 짧은 내용이고 하니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