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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48 "의류대"

김유식 2010.05.20 04:44:11
조회 11477 추천 5 댓글 55


  11월 14일 토요일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어딘가 부족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점검 때까지 퍼질러 잤다. 오늘 운동은 오전 9시 30분부터였는데 토요일 운동시간이라 20분밖에 안 된다. 힝힝~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오늘부터는 바람막이 티를 꺼내 입었다. 곤색으로 된 것인데 얼마 전에 1만 7천원 주고 구매했다. 사동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교도관의 신호에 따라 운동장으로 내려가는데 옆 동인 13중 앞에서 안훈도 사장을 만났다. 자신의 항소심 첫 공판은 11월 25일로 잡혔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재판 일정을 제대로 모르는데.... 흑흑. 운동장에 나가서는 너무 굶어서 그런지 한 번에 20바퀴를 못 뛰고 10-5-5바퀴씩 나누어 뛰었다.


  오전에 일찍 운동을 하고 나면 시간이 더디게 간다. 신문을 광고까지 꼼꼼하게 읽었더니 점심배식이다. 밥은 빼고 수제비를 조금 먹었다. 방 사람들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다들 TV 보기에 여념이 없다. 아내와의 접견을 마치고 접견대기실에서 사방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한 시간 동안 보내주지 않아서 대기실에서 멍하니 운동을 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다. 사과를 하나 깨물어 먹고, 방을 쓸고 나서 사탕을 입에 물고 편지를 썼다. 여기서 살 수 있는 사탕은 목캔디와 애니타임 두 종류다.


  저녁식사 후에는 뉴스와 라디오스타를 보고 편지를 썼다. 오후 7시 20분부터는 주말영화 방송이다. ‘X-MAN 울버린의 탄생'인데 예전에 본 거라서 보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때웠다. 내일은 시간이 느무느무 가지 않는 일요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ㅠ.ㅠ


  술 생각이 나서 잡지의 윈저 광고를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폭탄주 열 잔만 마시고 자면 딱 좋겠다. ㅠ.ㅠ



  11월 15일 일요일


  확실히 바람이 매서워졌다. 기상하면서 창문을 열면 황소바람이 쌩쌩 들어온다. 오전 점검 때까지 내내 책을 읽었다. 오늘은 운동도, 접견도, 출정도 없어서 방문이 열릴 일이 없다. 오전부터 도전 1,000곡과 생활의 달인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점심시간. 일요일 점심의 주 메뉴는 카레다. 목요일 저녁부터 내가 하는 다이어트를 따라하겠다는 박경헌은 꽤나 힘들어하는 기색이다. 땅콩이나 과자, 오징어를 몰래몰래 먹을 때마다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핀다. 창헌이가 그만 먹으라고 윽박지르자 알았다면서 마지막 한 개만 먹겠다고 집은 오징어가 이상하게 쉴 새 없이 나온다. 보니까 손안에 왕창 집어들고선 손가락으로는 하나만 집은 척한 것이었다. 창헌이도 손안의 오징어까지 뺏으려 들지는 않았다. 박경헌은 가위바위보까지 자주 져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중에 설거지까지 하려니 힘든가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식수로 샤워와 빨래를 했다. 빨래하기 전에 의류대에서 빨아놓은 옷을 꺼내려다 보니 박경헌이 사고를 쳐놨다. 빨지도 않은 팬티를 내 의류대 깊숙한 곳에 넣어놓은 것이다. 목요일 저녁에 갈아입는답시고 벗어둔 팬티를 자기 의류대가 아닌 내 의류대 안 깊숙한 곳에 박아두었다. 내가 어리버리해서 같이 빨아주기를 바란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의류대 안에 쑤셔 박아둔 것 같다. 남 돕는 일도 없고, 한다 해도 모든 게 엉성하니 방안 죄수들이 모두 박경헌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사실 나도 박경헌에게 좀 속은 면이 있다. 공무원 생활을 20년 가까이나 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일부러 바보처럼 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래부터 바보였다. 이런 바보가 어떻게 구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을까? 가끔씩 구청에서 일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놀랍기 짝이 없다. 거의 오전 10시~11시에 출근해서 잠깐 HTS를 들여다보며 주식거래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와서 다시 장 마칠 때까지 주식질. 그리고 사우나에서 낮잠을 자고 저녁에는 여자를 만나거나 키스방, 유리방, 대딸방 등등에 간다고 했다. 원래 업무는 없느냐고 물어봤는데 자신의 업무가 특별한 게 없었단다. 업무로 인해서 상사에게 질책 받은 적이 없었느냐고 물어보니 업무로 인해서는 없었고 거의 매일 지각으로 인해서 혼이 났다고 했다. 이렇게 먹고노는 공무원들이 박경헌만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박경헌은 귀도 얇은데다가 변덕도, 거짓말도 심하다. 그런데 악의는 없다. 일견 악의없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범죄에서는 다르다. 악의가 있고 악의를 아는 사람은 범행 시에도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지만 박경헌 같은 타입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전혀 모른다. 어린이가 석유통 근처에서 불장난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


  피해자가 고소인 외에 또 있는데도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생각지 못하고, 또 어떻게 더 해먹을까 궁리한다. 1억 4천만 원이나 뜯어먹은 검찰공무원에게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우려먹을까 혈안이 되어 있다. 오죽하면 외삼촌 외에 가족이나 친구가 한 번도 접견을 오지 않을까?


  박경헌이 선고받고 온 이후로 창헌이는 노골적으로 박경헌의 언행에 트집과 지적을 해댄다. 어지간히 미운 모양이다. 그나마 지금의 박경헌도 창헌이가 하도 떠들어대서 약간이나마 고쳐진 것이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칫솔질도 10초간이지만 요즘은 자기 전에 꼭 한다.


  오후 1시부터는 ‘찬란한 유산’ 25, 26회를 봤다. 그걸 보다가 아내가 보내준 미국 드라마 ‘24’ 대본으로 영어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찬란한 유산’이 끝나고는 ‘퀴즈 대한민국’을 보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소고기 미역국이다. 삼일 째 잘 따라온다 싶었던 박경헌은 밥과 미역국을 보니 정신줄을 놓고 결국 다이어트 포기선언을 했다. 어차피 곧 전방 갈 건데 굶기면 뭐하나 싶어서 알아서 먹으라고 했더니 밥과 국을 다 먹은 후에 훈제닭과 소세지, 떡갈비와 빵을 신나게 먹어댄다.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맛있다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먹으니 입 주위 외에도 앉은 자리 주변에 각종 음식물 가루나 파편들이 그득하게 떨어져 있다. 하긴 박경헌이 삼일이나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구매신청할 것을 정리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반목 폴라티하고 눈가리개 등을 시켰다. ‘10색 향기펜’이라는 것도 있기에 주문해 보았다. 쓸만하면 귀여운 조카한테 피카츄나 도라에몽 같은 그림을 그려서 보낼 생각이다.


  오늘까지 김훈의 ‘공무도하’를 다 읽고 ‘콜디스트 윈터’를 읽기 시작해야겠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박경헌은 빨지 않은 팬티를 내 의류대 안에 넣어놨다.
2. 박경헌은 놀고먹는 공무원이다.
3. 박경헌은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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