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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7 "목포 김 회장"

김유식 2010.08.31 18:28:09
조회 11033 추천 6 댓글 34


  1월 23일. 토요일.


  오늘 아침도 영하 10도의 날씨다. 하지만 씻으려고 화장실에 있을 때 빼고는 방바닥이 설설 끓으니 밖의 온도를 느낄 일이 거의 없다. 미역국 건더기로 아침을 먹고 뭘 할까 생각하던 차에 4방에서 잡지들을 보내줬다. ‘에스콰이어’와 ‘모터트렌드’다. 웬 떡이냐 싶어서 ‘모터트렌드’를 읽고 있는데 오전 9시 40분에 아내와 아버지의 접견이 왔다. 접견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니 친구인 조모 사장, 홍모 사무관의 편지와 아내의 접견서신이 와 있다. ‘조리퐁’과 ‘피자감자칩’을 주워 먹으면서 TV와 신문을 봤다.


  뚱뚱 소지가 2월 신문을 신청하라고 용지를 가져왔다. 신입 김 사장이 ‘매일경제’를, 목포 김 회장이 ‘조선일보’를, 이재헌 사장은 ‘중앙일보’를 신청했다. 조선일보는 내가 신청해서 읽던 것인데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어서 굳이 신청하지 않았다. “왕 설레발” 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출소를 바라면서 신청하는 것도 우습다. 만약 신청해 놓고 바로 출소한다면 신문구독료는 전액 환불해 준다. 또 구독기간에 따라서 일부를 환불해 주기도 한다.


  12방은 아침부터 윗 사동 때문에 화장실이 역류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12방 사람들은 설거지와 화장실 이용할 때 사동 복도로 나와서 했다. 사동 입구에는 담당 교도관용 화장실이 있는데 교도관용이라기보다는 소지들이 더 자주 쓴다.


  점심은 수제비를 먹었고 식후에는 창헌이가 그저께부터 불려놓은 오징어를 꺼내어 먹었는데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오징어를 유달리 좋아하는 장오는 찍어먹을 소스를 만든다고 호들갑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참기름과 라면 스프를 찾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세상을 이토록 편하게 사는 놈이 있다니! 해탈의 경지다.


  이재헌 사장과 창헌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간밤에 책을 읽다가 오징어를 뜯어먹던 이재헌 사장과 창헌이는 장난삼아 자고 있던 장오의 손에 오징어 다리를 쥐어줬다고 했다. 그랬더니 장오는 자면서도 오징어 다리를 두 개나 뜯어먹더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아침에 일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출소가 얼마 남지 않는 장오에게 또 구라쳤냐고 윽박지르기는 사실 귀찮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TV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보다가 배가 출출해서 사과를 먹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장오가 ‘슈크림 빵’을 뜯는다. 내가 옆에서 슈크림이 들은 가운데를 피해서 가장자리 부분을 뜯어먹었더니 매우 맛있다. 조금 더 얻어먹을 생각에 장오더러 한 개 더 먹으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옛날 단팥빵’을 집어 봉지를 뜯는다. 그것도 옆에서 가장자리를 뜯어 먹고 있으려니 목포 김 회장이 계속 옆에서 “미치겠구만!”을 연발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목포 김 회장은 스스로 알아서 과일이나 계란, 두부 등을 먹으면 될 텐데 내가 보기에는 배가 고픈 건 아니고 그냥 단지 뭔가가 먹고 싶을 뿐이다. 그것도 먹기가 귀찮아서 꺼내먹지 않고 남들이 먹을 때 옆에 끼어서 먹으려고 하니 같은 방 사람들이 매우 괘씸하게 보았다. 오늘도 계속 “죽겠네.”, “미치겄네.”를 외치다가 이재헌 사장이 귤을 까서 주니 바로 손을 내밀어 받는다.


  평소에 아들들을 욕하면서 인터넷서신 한 통 보내지 않는다고 하소연 & 넋두리를 자주 했기에 내가 말을 꺼냈다.


  “아들이 둘씩이나 되는데 정말 편지 하나 안 보내는 모양이네요.”


  다분히 목포 김 회장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고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고,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그러게 말이지라~” 정도였는데 아주 상반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자식들은 본시 내 새끼들도 아니랑께. 편지도 필요 읎어 부러~”


  방 사람들이 또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 없어했다. 평소에는 자식들이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성화더니, 이제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딴 말이다. 이재헌 사장이 짐짓 모른 척하고 자식들에 대해서 물어보니 아들 둘은 재혼한 와이프가 데려온 자식들이고, 와이프와의 사이에서는 딸 하나를 낳았다고 했다. 나이가 스무 살이라는 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아버지가 저 지경이 됐는데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며 지난 12월 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이 아닌가보다.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면 귀국해서부터 지금까지 부단히 옥바라지를 했을 텐데 아직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에 김 회장은 장모 욕을 해댔다. 어찌 장모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거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동의와 공감을 구하기 위해 장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꽤 오래 전, 뭔가의 일이 있어 일본으로 도피한 김 회장은 그곳에서 재일교포 여자를 만나서 사귀다가 살림을 차리고 눌러 앉았다. 장모는 일본에서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김 회장은 벌이할 것이 없으니 빈둥빈둥 세월을 보내다가 고향에서 찾아온 건달을 만나서 빠칭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노느니 그거라도 해보고자 장모에게 오천만 엔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장모는 그런 사업에는 돈을 쓸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그것에 화가 난 김 회장은 밤새 장모의 식당을 다 때려 부수고 와이프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남대문에서 터를 잡았다고 말했다. 말을 마치고도 우리에게 하는 말이 이렇다.


  “생각들 좀 해 보더라고~ 워떠케 장모가 사위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하고 돈도 주지 않는당가?”


  ‘적반하장도 유분수’ 정도로는 표현이 안 된다. 박경헌 같은 인물은 일말의 교화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김 회장은 그렇지 못하다. 저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친구도 없고, 가족도 오지 않는다.


  이재헌 사장이 접견 대기실에서 만났던 김 회장의 친구는 김 회장이 먹고 살 정도의 돈은 만들어 놓았다고 했는데 그 명의가 모두 와이프 앞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와이프가 도망가는 것을 극도로 겁내고 있었다. 그런 우려를 쉬지 않고 입으로 자식, 와이프 욕으로 승화시키다가 급기야 욕의 대상에 장모도 끼었다.


  듣다 못한 이재헌 사장이 한 마디 했다.


  “장모님 돈이 회장님 것도 아니고 장모님이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 왜 식당을 부숴요? 그거 어디 가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안광이 형형해서 말하는 이재헌 사장의 기세에 눌렸는지 목포 김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가 사위고, 사위가 그러코롬 일을 해보겠다는디 장모라면 당연히 도와주는 게 맞당께요.”


  간식을 먹은 후에는 관방송을 생방송으로 돌려서 “쇼 음악중심”을 보다가 저녁을 먹었다. 간식을 먹어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 콩나물 건더기만 먹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일기를 쓰다가 토요 영화로 “국가대표”를 보았다. 14인치의 작은 화면으로 본데다가 그것도 많은 부분을 잘라내어서 그런지 극장에서 만큼의 감동은 없는 것 같다.


  자기 직전에는 창헌이의 유도신문에 목포 김 회장이 걸렸다. 이전에 있던 방에서 똘아이 때문에 방 전체가 깨진 것이 아니고 그 죄수와 김 회장하고 둘이서 싸우다가 두 사람만 조사방 갔다가 전방을 오게 된 것이었다. 구라가 발각되어도 뻔뻔스러운 장오와는 달리 김 회장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서 약간 떨떠름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고 공판이 일주일도 남지 않으니 시간이 더더욱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어흐흑! 


  - 계속
 -


  세 줄 요약.

1. 장오는 자면서도 오징어 다리를 뜯었다.
2. 목포 김 회장은 특이한 성격이다.
3. 시간이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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