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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포르노 상영관

김유식 2010.04.24 13:13:33
조회 12776 추천 9 댓글 68


  학창시절의 저는 매우 순진했었기 때문인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포르노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절에는 거의 8bit의 MSX 컴퓨터 게임과 무협지에만 빠져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지금은 없어진 종로 세운상가에 가서 게임팩을 교환하거나 만화가게, 오락실 정도 가는 것이 취미생활이었습니다. 가끔씩 세운상가에서 불량한 형들이 이상한 잡지를 사라고 강요하기도 했지만 성적 호기심 보다는 KONAMI사의 게임들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8년. 1학기의 중간고사를 모두 마친 토요일이었습니다. 하도 포르노 보는 것을 좋아해서 별명이 “쌕쌕이”인 친구를 위시해서 같은 반 친구 십여 명이 포르노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았던 저는 그냥 학생답게 길동사거리에서 순댓국에 막걸리나 마시러 가자고 주장했지만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동네에서 야구를 하다가 투수가 던진 공을 허벅지에 맞아서 허벅지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걷기도 좀 불편해서 길동사거리보다 먼 천호동까지 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기는 싫어서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포르노가 어떤 것인가 한번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포르노를 보고 와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식아! 넌 그거 보지 마라. 처음 보면 오바이트 쏠려서 보기 싫더라. 나도 어젯밤에 밤새도록 오바이트 쏠렸다.”


  “그럼 밤새도록 본거냐?”


  “응.”


  지금이야 인터넷에만 들어가면 초등학생들도 손쉽게 볼 수 있는 야동이 수십 테라바이트씩 쌓였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천호동의 “장군”이라는 만화가게에서는 가게 안에다 창고 비슷한 것을 만들어 두고 한사람 앞에 500원씩 받고 포르노 테이프를 보여주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곳이 있을 리 없겠지만 그때는 그런 포르노 상영 만화가게들이 꽤 있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주 고객이었고, 가끔씩은 날라리 여중생, 여고생들도 보러 왔었습니다. 단골 고객들한테는 커피도 서비스 해 줬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만화가게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는 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저도 친구들과 함께 장군 만화가게로 따라갔습니다. 그 만화가게에 자주 들락날락하던 친구들은 아줌마하고 친하게 인사를 하고는 “틀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세어보니 우리 팀은 총 11명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무리들이 먼저 들어가 진지하게 시청하는 중이었으며 우리 말고도 배재 고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팀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500원씩 걷어서 아줌마한테 냈습니다. 원래 당구장에서나 술집에서 타교생들과 마주치면 의례히 싸움이 났지만 만화가게에서 포르노 보면서 패싸움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로 비추어볼 때, 포르노 영화는 청소년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앞선 팀의 상영시간이 끝나고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됐습니다. 우리 일행 11명이 TV하고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았고, 중간쯤에는 배재 고등학교 학생 일행이 앉았습니다. 아줌마가 들어와서 VTR에 테이프를 넣었습니다.


  “꿀꺽~!”


  아줌마는 창고를 나가서는 밖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갔습니다. 이러니 경찰이 단속하러 와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겁니다. TV 화면이 밝아지고 시끌벅적하던 좁은 창고 안은 조용해졌습니다. 이상한 배경 사운드와 함께 약 5분 정도 화면이 지나자 우리 일행 중 다섯 명이 동시에 외쳤습니다.


  “에이~ 시팔! 이거 본거잖아~!”


  “아줌마!”


  쿵쿵! 문을 두들기자 아줌마가 본거냐면서 딴 것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친절도 하셔라. 새 테이프로 틀고는 약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건 안 본거냐?”


  친구들은 안 본거 같다면서 말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뒤의 배재 고등학생 팀들이 악을 썼습니다.


  “이거 그저께 본거잖아!”


  아줌마가 다시 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보지 못한 테이프였지만 뒤의 학생들이 봤다고 우기니까 또 바꿔줘야 했습니다.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어떡하지? 오늘은 테이프가 이거 두 개밖에 없는데?”


  다들 들고 일어났습니다.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에이~ 그러면 어떻게 해여? 쟤네랑 따로따로 보여주면 되잖아여~”


  “맞아여! 맞아여!”


  아줌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조로 말했습니다.


  “이번엔 그냥들 보면 안 될까? 다음에 더 재미있는 거 들여 놓을게. 오늘은 토요일이라 뒤에 학생들이 많이 밀려있어서 그래."


  “안 돼여~ 싫어여!”


  학생들은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이때 주인아저씨가 뭔가 번뇌하고 고심하는 듯한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실은 우리가 테이프가 한 개 더 있기는 한데......”


  말꼬리를 흐리는 아저씨에게 학생들이 외쳤습니다.


  “뭔데여? 뭔데여? 그럼 그거 틀어 주세요!”


  아저씨가 아까보다는 좀 더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테이프가 실은 작년 미국 포르노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먹은 거라서 비싸게 주고 가져왔거든. 그래서 좀 비싸게 받아야 되는 거야.”


  아우성을 치던 학생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아저씨가 계속 말했습니다.


  “학생들이니까 많이는 못 받고 100원씩들만 더 내.”


  다들 그랑프리 먹은 포르노라는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100원씩을 더 걷었습니다. 당시 학교 앞 라면이 250원이던 시절이니 100원이 적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아줌마는 우리를 빽빽하게 앉히고는 날라리처럼 보이는 중학생 네 명을 맨 뒷자리에 더 집어넣었습니다.


  다시 문화영화 상영이 재개되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를 속였습니다. 미국에서 그랑프리 먹었다는 포르노가 처음부터 뚱뚱한 흑인만 등장했습니다. 뭐 제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열댓 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뚱돼지 흑인들이었습니다. 이상한 포르노 아카데미였나 봅니다. 등장인물의 외모에 공감을 하지 못하니 포르노를 처음 보는 저도 곧 흥미를 잃었습니다. 상영 중간에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저는 포르노를 보면서 들고 들어간 만화책도 읽었습니다. 20여분이 지나자 맨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으~ 아~ 못 참겠다.”


   “안돼! 새끼야.”


  뒤를 돌아보니 중학생 녀석 둘이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만 뭔가의 신체 변화를 일으켜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외쳤습니다.


  “야~ 중새끼들! 조용히 영화나 봐라!”


  저는 아주 좁게 끼어 앉아있어서 그런지 허벅지가 쓰렸습니다. 피멍이 든 곳에 후끈후끈한 대일파스를 붙여뒀는데 그게 더 아파왔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 허리띠를 풀고는, 바지를 내려서 파스를 떼어냈습니다. 퍼렇고 붉은 피멍 위의 파스를 떼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꽤 아팠습니다. 제 입에서 신음과 비명이 절로 튀어 나왔습니다. 다 떼어냈을 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이런 개새끼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쭈?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모두들 뒤를 돌아보니 제일 뒤에 앉아있던 날라리 중학생들 중 두 명이 바지를 내리고 얼굴이 벌게진 채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저 미친 새끼~ 저거 잘라 버려!”


   “줘 패야 정신 차리겠는 걸?”


  한창 기분을 내며 자위행위를 하던 중학생 하나가 고등학생 형들의 잘라 버리겠다는 무서운 협박에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잉잉~ 저기 맨 앞에 있는 형아두 하자나여 머~ 잉잉~”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 중학생들은 제가 파스를 떼려고 바지 내리는 것을 아마도 자위행위 하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형들도 하니까 우리도 하자! 며 의기투합했던 거였습니다. 창고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아줌마가 문을 따고 들어왔습니다.


  중학생들이 허겁지겁 바지를 치켜 입었지만 아줌마는 무슨 일이 났었는지 곧 눈치를 챘습니다. 밖에서 빗자루를 들고 오더니 그 중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팼습니다. 문화영화 상영은 그것으로 파토 났고 우리들은 다음에 오면 그냥 한 번 공짜로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받고는 만화 가게를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포르노 보던 날의 이야기였습니다.


PRESENTED by yusik00

(c) 1998/3 yusik00



* 에필로그


  여름 방학이 되고나서 지금은 현대백화점으로 바뀐 천호동의 유니버스 백화점에 갔습니다. 운동화를 고르고 있는데 그 매장에서 눈에 익은 녀석이 보였습니다. 기억을 추슬러 보니 장군 만화가게에서 자위행위 하던 중학생 녀석이었습니다. 반가움에 불렀습니다.


  “야~ 딸딸이~”


  “헉! 아....안녕하세여?”


  “잘 지내냐?”


  “저는 이만! 좋은 하루 되세여.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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