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는 모든 어둠 속에서 괴물을 찾아낸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누군가>에 나오는 말이지만, 연패에 빠진 팀의 분위기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3연패까지는 그렇다 쳐도 숫자가 더 늘어나면 초조함이 커진다. 한화 주장 이용규가 연패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6연패부터였다. 이용규는 “6연패가 넘어가면서 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보이는 모든 어둠이 괴물로 변해 다가오는 시기다. 칠까, 따라갈까, 슬라이딩을 해야 할까.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나 때문에 또 지면 어쩌지.

연패의 괴물은 숫자가 늘어날수록 어둠의 크기를 넓힌다. 어둠이 커지면, 괴물도 커진다.

선수 가족들도 조심스러워진다. 7년 전, 한화가 개막 13연패 중일 때였다. 내야수 이대수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아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교회에 간다고 적혀 있었다. 5분이라도 더, 조용히, 자고 일어나라고, 문자메시지 소리도 조심스러워 냉장고 문에 종이를 붙였다.

이대수는 “야구선수 남편을 둬서 다들 고생이다”라고 했다. 그날 한화는 지독했던 연패를 끊었다.

연패의 어둠이 삼키는 건 가족뿐만이 아니다. KT 창단 뒤 2번째 감독이었던 김진욱 감독도 팀 전력상 연패를 당하는 일이 잦았다. 연패 중 집으로 돌아가면, 반려견도 침울 모드였다. “평소에는 펄쩍 뛰어 안기던 녀석이, 조용히 현관 앞에 기다리고 앉아 있더라”고 했다.

한화 구단의 한 직원은 올시즌을 앞두고 ‘금연’을 결심했다.

개막 후 5월을 잘 넘기고, 연패기간도 잘 버텼다. 팀 창단 최다 기록을 넘어 16연패까지 왔을 때까지도 견뎠다. 17연패 여부를 두고 벌인 지난 11일 롯데전, 0-2로 뒤진 4회초 1사 만루 정진호의 1루 땅볼 타구가 수비 방해 포함, 병살 처리되는 순간 그 결심이 무너졌다.

연패의 괴물에서 벗어나는 건, 어둠 속에서 괴물을 찾지 않으려는 노력, 아니 의도적 무시다. 어둠 안에 괴물이 없다는 최면이다. 한화 김범수는 14일 4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서스펜디드 경기의 선발 역할이었다. 4회 2사 만루에서 148㎞ 속구를 한가운데 던져 삼진을 잡아냈다.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어둠을 쫓아내는 의식이다.

2번째 투수 김진영은 7회 1사 만루에서 연거푸 삼진을 잡아냈다. 정수빈을 향해 던진 체인지업 3개를, 150㎞짜리 강속구보다 더 세게 던졌다. 삼진을 잡는 순간 우승에 가까운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어둠을 쫓아내는 건, 입 모아 외치는 환호다. 6-6으로 맞선 9회말, 선두타자 이용규가 볼을 하나 고를 때마다 1루 쪽 한화 더그아웃은 고교야구팀처럼 시끄러웠다. 볼 1개에, 환호 1번. 4개가 모여 무사 1루가 됐다. 정은원의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와 김태균의 고의4구, 호잉의 뜬공 뒤 나온 노태형의 좌전 안타. 드디어 21일 동안 드리워져 있던 어둠이 걷혔다. 홈에 들어오는 이용규는 환호 대신 한숨을 쉬었다. 연패 탈출의 기쁨이 아니라 지옥을 걸어 나온 안도의 한숨이다. 야구의 신이 죽도록 괴롭혔던 3주가 끝났다.

연패가 끝나는 순간, 텅 빈 관중석은 더 고요했다. 빈 곳을 채우느라 애쓴 홍창화 응원단장은 “선수단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했다. 괴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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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연패 끝내고 3경기나 더 했지만 난 이 기사를 지금에서야 봐서...

정말 잘 쓴 기사인 것 같아서 못 본 사람들 있으면 한번 보라고 복사해왔음.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32&aid=0003015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