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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장편] 겨울왕국 검은화살-Ep.3

앙졸라이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5.03 22:46:54
조회 1768 추천 30 댓글 5

-아렌델 왕국. 대관식 이틀 전


"새로운 임금의 즉위를 앞두니 이전의 임금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괜찮겠습니까? 새로운 임금을...섬기는데 있어서."


토마스 경이 어디론가 향하는 세바스찬 경을 졸졸 뒤따르며 떡밥을 던지는 어부마냥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바스찬 경은 잠시 날카로운 눈초리로 토마스 경을 쏘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정치적인 얘기라면 더 이상은 하지 않겠소. 3년 전 해역에서 그분들이 돌아가신 뒤로 나는 이미 후계자 폐위론은 포기했소. 아니, 애초에 진지하게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지만, 그분들이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그런 주장은 할 수조차 없게 되었지. 유일하게 후계자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사라지셨으니, 그들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후계자 선정은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오. 토마스 경, 1년 마다 내게서 이 대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소?"


"지난 2년간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물어본 것이 맞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검은 화살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요."


세바스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세우고 트롤들이라도 겁줄 법한 눈초리로 토마스 경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웬만한 트롤들보다도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토마스 경은 조금도 움츠리거나 물러서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의 눈빛으로 세바스찬 경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오히려 지난 2년 간 그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 이상했지. 천하의 에드버드 경마저도 종종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에게 물어봤던 이야기를, 경은 나에게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단 말이오."


"그야 전 제 나름대로 검은화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폐하의 명령으로 섭정일을 돌보면서 그 미스터리사건에까지 발을 뻗치기에는 아무래도 여력이 부족하더군요. 게다가 검은 화살 진품을 경께서 가지고 계시니, 가끔 경이 자리를 비울때 밖에 화살을 조사할 수 없었고요. 사실 저 혼자서 이 사건에 대해 결말을 지어보고 싶은 이상한 오기때문에 지금껏 조언을 구하지 않았지만, 제 능력이 부족하단 걸 깨달은 지금은 그 검은 화살 사건의 조사에 있어서 가장 선두에 나섰던 세바스찬 경이 알아낸 바를 듣고 싶어진 겁니다."


세바스찬은 잠시 고개를 까딱하더니 한쪽 눈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대형석궁에서 발포하는 용도의 쇠뇌로, 아렌델의 무기고를 싹싹 뒤져보았지만 그런 쇠뇌는 그 당시에는 창고에 남아있지 않았소. 화살은 녹을 방지하게 위한 용도인지 전체가 불에 강하게 그을려져 검은색 광택을 띠고 있었소. 내가 아는 건 그뿐이오."


"그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쇠뇌가 아렌델에 없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알고 있던 내용이군요. 범인의 정체는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오."


여전히 한쪽 눈을 강렬하게 치켜올린 상태였다. 토마스 경은 세바스찬 경에게서 다른 걸 더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길을 가던 가도록 보내주었다. 선왕의 죽음에 대한 사건을 매듭짓지 않고도 아렌델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렌델 왕국의 대관식 이틀 전, 서던 제도


"마르코나 도미닉과는 인사 좀 했어?"


서던 제도의 장자이자 후계자인 루돌프 웨스터가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한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젊고 잘생긴 외모의 막내아들인 한스 왕자였다.


"한 12년쯤 전쯤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는 거라면, 그랬지."


한스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실제로 그 두 형제와 인사 같은 걸 한지는 12년보다도 오래된 것 같은 것이 사실이었다. 각각 둘째, 열둘째 아들인 그 둘은 한스를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 했으니까. 이유는 명확하진 않았지만, 머리회전이 영민했던 한스는 그들이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은연중에 평생 동안 루돌프와 경쟁관계였던 마르코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 한스가 루돌프와 대단히 친밀했기 때문이리라. 한스 본인은 왕위쟁탈전이니 권력 다툼이니 뭐니에서는 현실적으로는 멀리 떨어져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형제 중에서 가장 두뇌회전이 뛰어났던 그였기에 가장 유력한 후계자인 루돌프의 참모 자격으로 정계에 뛰어든다면 다른 왕자들 입장에서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었다. 마르코가 그를 증오하는 것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의 손윗형제인 도미닉은 어떨까? 그냥 유능한 동생에 대한 질투겠지. 게다가 막내 위치를 뺏겼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을 거고. 도미닉은 별 다른 인재가 없는 서던 제도의 12왕자 중에서도 특히 무능했기 때문에 막내 위치에 안주하며 귀여움이나 밭으며 살아가길 원했을 것이다. 그의 바로 손윗형과도 나이차이가 조금 있는 도미닉은 분명 태어난 직후에는 마지막 늦둥이 취급을 받으며 응석받이처럼 자랐을 텐데, 갑자기 영민한 동생이 나타나서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 밖에. 이 무능한 형이 유능한 동생을 싫어하는 이유는 유치한 감정이 다분히 깔려있었다고 하겠다.


"뭐, 특별한 일은 없고?"


"우리 나라 안에서는, 그런 것 같은데."


한스의 대답을 들은 루돌프는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한스를 쳐다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방금 짐작했지. 사실 확신은 없었는데."


나이 차이는 상당했지만, 루돌프와 한스의 애우는 모든 형제들의 애우 중에서도 상당히 각별한 축에 속했다. 한스는 늘 형제들 중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감별하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루돌프 뿐이라고 여겼다. 루돌프 입장에서 한스는.... 글쎄, 그냥 귀여운 늦둥이 동생으로서의 이미지와 잘만 사용하면 어떤 곳에든 쓰일 수 있는 비밀병기로서의 이용가치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 대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루돌프의 눈에 한스는 그저 귀여운 동생으로 보였지만, 방금 전 한스의 날카로운 통찰로 인해 루돌프는 다시금 그의 막내동생을 비밀병기로 주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 사절로 갈 생각은 있어?"


"괜찮은 거야? 내가 가도."


명백히 이틀 뒤에 열릴 아렌델 '엘사 공주'의 대관식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아렌델의 '아'자도 꺼내지 않고도 이들의 대화는 그럭저럭 이어져나갔다.


"다른 멍청이들을 보내기엔 너무 중요한 행사잖아?"


"나랑 형만 그렇게 생각할 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다른 형제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니까. 열 셋째 왕자를 보냈다는 그 사실에만 주목하지 않을까 싶은데."


한스의 말에 루돌프는 전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 뭐하면 가장 잘생긴 왕자를 보냈다 치지. 게다가 대관식은 의례적인 행사일 뿐이야. 왕족이 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몇번째 왕자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한스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형, 의례적인 행사라면 말이지, 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 혹시 내게 대외적 교류 경험을 넓혀주려는 단순한 목적이라던가..."


"그것도 충분히 좋지만, 더 중요한 목적이 있지."


한스가 이제야 흥미가 동한다는 듯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루돌프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더니 한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위즐튼의 공작이 뭔가 꾸미는 바가 있는 모양인데. 나에게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질 않는단 말이지. 서신으로 이야기하긴 위험하다나. 그가 대관식에 참여할테니, 그와 접촉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와. 만일 그가 꾸미는 바가 협력할만하다 싶으면... 알아서 판단하고."


한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이 나라 안에서는 억눌려 있던 그 안의 야수가 꿈틀대게 하기에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보지."


-대관식 하루 전, 위즐튼


"서던 제도는 한스 왕자를 파견하겠다는 의중을 전해왔습니다."


공작의 충실한 활잡이가 공작에게 서신을 건내며 말했다. 중키에 깡마른 체구의 공작은 얼핏보기엔 우스꽝스러운 외모였지만, 눈빛만큼은 사자도 잡아먹을만큼 날카로웠다. 


"됐군."


공작이 들뜬 표정으로 서신을 살펴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습니까? 서열 순위에서 조금 동떨어진 왕자일텐데..."


활잡이가 공작이 자신의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자 살짝 놀라며 말했다.


"머리만 좋으면 누가 와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아렌델에 가는 목적은,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함이니까. 대체 무엇때문에 그들이 문을 걸어잠그고, 후계자를 숨겨두고, 경제적 교류를 제외한 그 어떤 외교적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지, 기필고 알아내야만 하겠어."


공작은 유능했지만, 그에게는 독특한 성격적 특징, 어찌 생각하면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이라고도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참지 못했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통제하, 적어도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 있어야 했다. 그는 많은 것을 공부했고, 많은 것을 이해했으며, 이해되지 않는 것에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개념이든 받아들였으며, 그 어떤 설명이든 차용했다. 허나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왜 그 강성한 무역국가가 자신의 후계자를 숨겨두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으며, 공작 본인도 설명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뭔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이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뭔가가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잡아야만 하겠지. 웨스터가드 녀석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때 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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