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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단편] 유레카

ㅇㅇ(211.33) 2019.12.06 15:10:31
조회 1652 추천 63 댓글 23
														

"....그래서 빗변이 AC인 직각삼각형 ABC는 AC를 지름으로 갖는 원에 내접하게 되는거지. 이게 직각삼각형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야."


엘사는 종이 위에 열심히 도형을 그려가며 최대한 안나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안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솔직히 뭔 소린지 이해하기 힘들어. 으, 기하학은 너무 어려워. 언니는 이 지루한 책을 어떻게 몇십권을 읽고 푸는 거야?"


안나는 질린다는 듯이 수학책을 덮어버리고는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 모습을 본 엘사는 미소를 머금고 동생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냥 재밌잖아.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르듯이 공부도 각자 맞는게 있는거야. 안나 너가 역사쪽에 관심이 많듯이 말이야. 근데 너 좀 있다 크리스토프와 데이트 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니?"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나는 책상 위에 있던 시계를 보고 벌떡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엘사 역시 주섬주섬 책과 종이를 챙겨서 집무실로 갈 준비를 하였다. 안나가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고 방을 나서기 전 그녀의 언니를 보며 질문하였다.


"오늘 또 야근해? 무슨 일들이 그리 언니를 괴롭힌담?"


"오늘이 월말결산하는 날이라 그래. 오늘만 지나면 한동안 널널해질 테니까 그동안 크리스토프와 함께 시간 보내고 있어. 내일은 꼭 같이 산책하기로 약속할게!"


안나는 신난다라고 외치며 방문을 나섰다. 엘사가 여왕이 되고 2년이 흐르는 동안, 안나는 항상 바쁜 언니를 보며 무언가 도움이 될 건 없나 하고 생각했었고, 그녀를 돕기 위해 국정에 관한 여러가지 업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실무는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언니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기뻤다. 또한 그녀의 취미 생활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기하학과 건축학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모르는 것은 언니에게 질문했지만, 그 내용 중 열 중에 하나만이라도 이해하면 다행인 판이었다. 


"크리스토프! 오래 기다렸죠?"


"아니에요! 나한테는 안나의 10분이 1분처럼 느껴지는걸."


"늦었다고 놀리는 건가요?"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됬다는 사실에 놀라서 손사래치며 대답했다.

"아뇨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안나는 그런 그가 귀여운 듯이 웃으며 그의 볼을 꼬집었다.


"농담이에요, 내 사랑.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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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마치고 성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그녀는 침대 한쪽 구석에 처박아둔 동화책을 꺼내 읽었다. 그녀가 요즘 자기 전에 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30분 이상을 읽고 잔 적은 한번도 없었다. 책을 읽고 있던 그 순간, 어딘가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안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섰다. 방 문에 다가갈수록 소리는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그녀는 불안함을 느끼며 손잡이를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 다음 순간, 안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사람이 천장에 매달린 채로 줄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언니, 엘사였다.


"어...언니?"


엘사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어서 그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안나는 저 강력한 여왕이 얼음마법을 못 쓴채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묶여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언니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잠깐 기다려, 내가 곧 풀어줄께!"


안나가 엘사에게 달려가는 순간 바닥에서 엄청난 화염이 솟아올라 그녀의 접근을 방해하였다. 놀란 안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꺅!"


안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주시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보이는 한 악마가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안나는 그를 향해 힘껏 외쳤다.


"우리 언니를 놔줘!"


악마는 그녀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더욱 호탕하게 웃으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럴 수는 없다. 인질을 공짜로 풀어주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안나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놈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원하는게 뭐야."


"두려워하며 겁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구나. 아렌델의 공주여, 그 용기로 언니를 구하고 싶으면 그저 나의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안나는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이러저리 눈알을 굴리면서 속으로 저 빌어먹을 악마가 무슨 조건을 내밀든 다 해내주겠다고 생각했다. 내 팔을 자르라고 하면 자를 것이고, 불 위를 걸으라고 하면 걸을 것이며 심지어 언니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목숨도 바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악마의 입에서는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 튀어나왔다.


"내가 내는 기하학 문제를 풀면 이 여자를 풀어주겠다."


참으로 황당한 이 제안에 엘사는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구었다. 안나 역시 머리 끝까지 차올라있던 투쟁심이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이없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녀들에게 있어 사악하기 짝이 없는 조건이었다.


"만약 문제를 틀리면?"


"그렇다면 네 년의 언니는 나의 것이다."


악마가 크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자, 안나는 초조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소리쳤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어!"


"그럼 내가 내는 문제를 맞히면 되는 일이다, 공주여. 나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느냐?"


안나는 그 황당한 조건에 대한 자신은 없었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조하게 그녀와 악마를 번갈아 보고 있는 엘사를 힐끗 보고는 다시금 투쟁심을 불태우며 놈을 향해 대답했다.


"좋아, 어서 문제를 내!"


그러자 악마는 화염으로 공중에 도형을 그리며 문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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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각형 ABC의 면적이 얼마인지 구하면 된다. 시간은 5분 주겠다. 기회는 한번 뿐이다. "


초조해하던 안나는 문제를 보자마자 빠져나갔던 자신감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언니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동생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허! 뭐야, 날 너무 우습게 봤는데? 저 문제는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만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잖아.'


안나는 그리 생각하며 바닥에 손으로 도형을 그어가며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은 밑변 곱하기 높이의 1/2이니까...10×6=60이고 여기에 2를 나누면 정답은 30이군.'


안나는 위풍당당하게 문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정답! 삼각형 ABC의 넓이는 삼ㅅ..."


이때 묶여있던 엘사가 으으으음 하고 신음소리를 크게 내며 고개를 좌우로 거칠게 흔들었다. 


"크하핫! 네년의 언니가 어지간히도 이 상황이 괴로운가 보구나. 그래, 정답을 계속 말해보거라."


그러나 안나는 엘사의 행동은 묶여있는게 괴로워서가 아닌 자신을 향해 보낸 신호라는 것을 알아보며 본능적으로 그녀가 구한 답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 다시 한번 검토해보고 정답을 말하겠어."


"원하는 대로 해라. 시간은 3분 남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하며 바닥에 그려놓은 도형을 뜷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문제에는 무언가 함정이 있었다.


'하긴 문제가 말도 안되게 쉽긴 했어. 악마씩이나 되는 녀석이 나한테 올라프도 풀 수 있는 이런 문제를 낼 리가 없잖아. 그럼 이건 피타고라스의 공식을 이용해서 풀어야 하는건가? 만약 AC의 길이가 10이면 AB의 길이는 6이 나오고, BC의 길이는 8이 나올테니 삼각형의 면적은 또 24가 되네? 뭐지 이거?'


안나는 초조하게 그녀의 언니를 쳐다보았다. 그건 엘사도 마찬가지였으나, 정답을 알고 있는 그녀는 불행하게도 가엾은 동생에게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었다.


"2분 남았다."


안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필사적으로 안 돌아가는 뇌를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잠깐, 이거 꼭 AB의 길이가 6일 것이라는 근거도 딱히 없잖아. 밑변 위에 애매하게 표시해놓은 10이라는 숫자가 함정인가? 만약 밑변과 높이가 만나는 지점을 D라고 가정하면 10라는 숫자는 AD의 길이인건가? 그럼 BC의 길이는 2와 루트 34라는 이야기인데... 근데 이렇게 되면 AC의 길이를 모르니까 정답을 구할 수가 없는데??"


안나는 거의 울상이 된 채 바닥에 숫자와 도형을 박박 그려대고 있었다.


"1분 남았다."


아, 안돼. 그녀는 자신의 무식함으로 인해 못 볼꼴을 당하게 될 언니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목을 둥그렇게 돌려대며 무언가 신호를 주고 있었다. 이것이 평소 저녁에 같이 하는 제스쳐 게임이었다면 퍽 우스운 광경이었겠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그들의 운명이 달려있는 상황이었다. 안나는 언니가 보내는 신호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니라고? 계속 고개를 돌려? 절레절레....돌린다....동그렇게 돌린다...아!'


그 순간 안나는 2천년 전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느꼈던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삼각형 주위에 원을 새로 그렸고, 곧바로 언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10...9...8...7..."


"정답! 그런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아."


악마는 얼굴에 만연해 있던 웃음기를 싹 거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호오...그렇다면 그 이유도 설명할 수 있느냐?"


안나는 위풍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빗변이 AC인 직각삼각형 ABC는 지름을 AC로 갖는 원에 내접하는 모양으로 표현돼. 원 위의 한 점을 잡아 B라고 치고 아무 삼각형이나 그려도 직각삼각형이 되지.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AC의 길이는 원의 지름과 같으니 길이가 10이면 B에서 빗변 AC까지의 최대 거리는 5가 되야 하는데, 이 문제의 직각삼각형에서는 6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직각삼각형은 존재할 수가 없지! 따라서 답은 없어."


"크으윽.... 이 문제를 맞출 줄이야. 분하지만 약속대로 너의 언니를 풀어주겠다."


악마는 씩씩대며 분함을 이기지 못한채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가 사라지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불길도 사라져버렸다. 안나는 불길이 사라지자 엘사에게 달려갔다.


"언니,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안나가 엘사를 붙잡고 이리저리 얼굴을 살피며 결박을 풀어주고 재갈을 벗겨준 뒤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엘사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일어나."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일어나라니?"

-------------------------------------------------------------------




"안나, 일어나! 얼른 같이 아침 먹어야지."


안나는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것을  느꼈다. 그녀가 꿈과 현실의 몽롱한 경계에서 풀려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의 엘사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횡설수설하였다.


"괜찮아? 멀쩡해 보이니 다행이야! 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언니를 구하지 못했을거야, 아까 내가..."


엘사는 의아한 눈으로 동생을 빤히 쳐다보다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킥킥거리며 말했다.


"아침부터 왜 그래? 아까부터 계속 삼각형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무슨 꿈을 꿨길래 잠꼬대를 그리 요란하게 하니?"


안나는 멍하니 언니를 쳐다보다 자신의 볼을 꼬집고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듯 낮게 중얼거렸다.


"아, 꿈이었구나."


엘사는 그 말을 듣고 폭소하며 안나를 잔뜩 놀린 뒤 식사실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안나는 방에서 두리번거리다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 침대에는 그녀가 어제 읽다가 잠든 것으로 추정되는 기하학 책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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