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링크
귀찮은 프갤라미들을 위한 전편 줄거리 3줄요약 :
토요일 아침.
안나는 엘사의 존재를 기억 못함.
크리스토프는 엘사의 흔적을 찾기로 결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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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달그락.
안나는 손에 든 스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 안에 든 수프가 차게 느껴졌다. 수저가 찬가? 고개를 갸우뚱한 안나는 다시 한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으나,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수프는 여전히 찼다.
‘입맛이 없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안나는 그 현상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수십명이 족히 들어설 거대한 식당에서 이렇게 혼자 식사라니. 몇 년 전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미 몸은 지난 3년간의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렸다.
지금의 안나는 자신이 너무나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안나는 자신이 외국 순방을 할 때를 제외하면 항상 크리스토프와 식사를 같이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크리스토프와 만난 이후로는 항상 그랬다.
‘카이, 아니면 겔다라도 불러볼까.’
기각.
연회의 뒷정리에 진땀빼고 있을 둘을 여기로 불러내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애초에 자신이야말로 카이와 겔다, 둘의 합석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지 않은가.
자신과 식사하면 그들의 취침시간이 그만큼 미뤄질게 뻔하기 때문에.
"휴."
안나는 이쯤 하고 저녁식사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잘 먹었어요. 아! 도와드릴게요."
아침에 크리스토프가 보여준 인상적인 선행을 본받을 겸, 시종의 접시 옮기는 일을 거들고선 안나는 도로 집무실로 돌아왔다.
탁상 위에서 수많은 서신들과 서류들이 안나를 반겼다.
시종들이 추리고 갈무리해 쌓아놓은 것들이었다.
"안녕, 내 돌덩이들아."
지금부터는 연회의 매듭짓기.
이 문서들 모두에 공적으론 건넬 수 없는 내용과, 간청들이 담겨 있었다.
‘뭐부터 뜯어볼까.’
안나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어 송신인의 서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익숙한 지명에서 온 편지다.
[서던 제도에서 보냄].
"후우."
북- 부욱-
편지를 가차없이 찢어버린 안나는, 나머지 종이뭉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나가 문서를 전부 처리한 시각은 해가 떨어진 뒤로도 시간이 한참 지난 아주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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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크리스토프? 쭉 여기 있었던 거야?"
"아니."
"……."
안나는 자신의 침대에 앉아 있는 크리스토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옆에 앉았다.
왠지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낮게 들렸다.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안나. 올라프는?"
"누구?"
"말하는 눈사람……. 아니, 아니야. 됐어."
크리스토프는 말을 주워담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안나는 그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올라프. 올라프. 누구였지?’
시종은 아니었다. 자신은 시종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시종 중에 그런 이름의 시종은 없었고, 근 몇 년 간 아렌델은 새로운 인력을 뽑지도 않았다.
안나가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올라프란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애쓸 때, 크리스토프가 등 뒤에서 사각형의 커다란 무언가를 꺼냈다.
"안나. 이건 언제 그려진 거지?"
그것은 액자였다. 아기 때의 자신과 부모님이 그려져 있는 초상화.
안나가 대답했다.
"내가 5살때 유명한 화가가 아렌델에 와서 그린 그림이야. 근데 크리스토프, 이건 어디서 가져온 거야?"
"창고."
짧게 내뱉은 크리스토프는 다시 등을 돌려 침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 크리스토프의 등부분에는 회색 먼지가 가득 붙어 있었다.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꽤 창고 깊숙한 곳을 뒤졌으리라 추측했다.
문득 안나는 저녁의 차가웠던 수프가 떠올랐다.
"잠깐, 저녁도 거르고 어딜 갔나 했더니, 창고에 있었어?"
"두고 온 게 있어서. 때마침 싶어 진기한 그림 몇 점 꺼내왔지. 안나, 이 그림 기억나?"
어느새 크리스토프의 손에는 또다른 액자가 들려 있었다.
자신과 크리스토프, 그리고 스벤이 그려져 있는 초상화.
"안나, 이건 언제 그렸더라?"
"이건 크리스토프도 그 때 있었잖아."
"그게 3년 전 맞나?"
"응, 정답인데."
안나의 대답에 크리스토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나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이 크리스토프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
"하나만 더."
다시금 크리스토프가 보여준 물건은 좀 더 작은 물건이었다. 펼쳐진 손에는 아렌델에서 쓰이는 동전이 들어 있었다.
주성분은 동. 다섯 개를 모으면 빵 한 덩이를 살 수 있는 최소의 화폐 단위.
크리스토프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동전을 넘겼다.
동전의 뒷면에는 안나 자신을 형상화한 두상이 찍혀 있었다.
아렌델의 통화였다.
순간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할 건지 깨달았다. 그것은 직감이었고, 안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 깨닫기도 전에 반응해버렸다.
"9년 전부터 그 디자인이야."
"9년 전이라고?"
"9년, 전."
안나는 심문당하는 기분을 뿌리치며 숨을 골랐다.
모든 게 갑자기 멀게만 느껴졌다. 중력이 단단히 고정시켰을 자신의 발은 수 백 미터 허공에 달랑거리고 있었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렌델 성. 자신의 방. 크리스토프. 괴리감 그리고 이질감. 몰려드는 메스꺼움.
안나가 마침내 해낸 대답은 방어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9년 전. 부모님이…… 그…… 돌아가셨을 때 부터."
자신 앞에 있던 남자는 그 말에 눈을 감았다.
"젠장."
"……크리스토프."
"망할. 젠장. 안나, 미안해. 정말로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난 괜찮아."
"……미안."
크리스토프는 슬픈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스벤 먹이 좀 주고 올게."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말리지 않았다.
졸지에 방을 혼자 지키게 된 안나는 침대에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풀썩-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던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가져온 첫 번째 그림을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곳에 다섯 살의 자신이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구나."
다섯 살의 자신은 인형같은 초록색 치마를 입고 행복을 감추지 못해 멍청하리만큼 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나야, 안나야, 왜 그렇게 즐거울까?"
어르듯이 속삭이며, 안나는 우둘투둘한 표면을 손끝으로 느끼며 다섯 살 자신의 시선이 향한 곳을 향해 선을 그어보았다. 함박웃음의 이유는…….
"아빠……?"
아니.
안나는 부정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엔 시선이 너무나 내려가 있었다. 어릴 적의 자신은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키가 아주 약간 더 큰, 보이지 않는 누군가…….
마땅히 그곳에 존재해야할 무언가가, 갑자기 화폭에서 사라진 것처럼.
"아."
순간, 안나는 크리스토프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올라프."
안나는 깨달았다. 올라프. 올라프는 자신이 저 나잇대즈음 바깥에서 혼자 만들며 놀던 눈사람의 이름이었다.
찰나의 깨달음에 안나는 황홀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크리스토프와 올라프. 올라프와 크리스토프.
그 둘의 상관관계는 안나를 더욱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눈사람 이름을 말해준 적이 있었나?……’
마침내 안나의 손가락은 그림 위에서 갈 길을 잃고 흐트러졌다. 안나는 눈을 감고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렸다.
안 그렇다면 어젯밤처럼 또다시 늦잠을 잘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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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는 하루종일 엘사의 흔적을 찾아 온 성을 헤집고 다녔으나, 모두 허사였다. 세계가 엘사가 남긴 발자취 전부를 먹어치워버린 듯, 그 어떤 곳에도 엘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스벤, 너는 기억하지?"
크리스토프는 스벤의 갈기를 쓸어내리며 축사 천장의 창문을 열어제꼈다.
하늘엔 보름달이 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추위에 어깨를 부여잡으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얼음 궁전은 어떻게 되었을라나."
엘사가 3년 전 만든 얼음궁전.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 두 눈으로 그 기하학적 미의 총체가 아직도 자리잡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행과 바램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스벤, 어떡하지. 그냥 훌쩍 떠날 수도 없고."
-히히힝.
크리스토프는 스벤의 등을 두드렸다. 옛날 얼음공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나와 아렌델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묶여 있는 몸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무엇보다 혼자 남겨질 안나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류트를 뜯어 스벤에게 자장가를 들려주고 크리스토프는 혼자 아렌델 궁의 복도를 정처없이 걸어다녔다.
대관식날 엘사가 바다를 얼리고 도망친 샛문. 안나가 지쳐 쓰러진 엘사를 업고 데려와 뉘인 소파. 엘사의 생일을 축하하며 자신과 안나가 사흘 일찍 개시한 크리스마스 종…….
기억의 반추 끝에, 크리스토프는 다시 안나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똑 똑 똑.
"들어와."
끼익-
경첩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나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말했다. 얼굴엔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산책 잘 했어?"
크리스토프는 대답 대신, 침대에 기어들어가 안나의 옆에 누웠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 분의 침묵 끝에, 안나가 먼저 운을 띄웠다.
청록색 눈동자가 크리스토프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프, 괜찮은 거지?"
"그냥 피곤해서. 같이 낮잠이라도 잘 걸 그랬나봐."
"연회 땡땡이 치고? 겔다가 알면 노발대발할 걸."
안나는 푸훗, 하고 웃었다.
"스벤은 맛있는 거 먹었어? 뭐 줬어?"
"놈이 젤 좋아하는 거. 당근."
"당근!……."
안나는 무언가를 떠올리고선 행복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크리스토프, 눈사람 만들고 싶으면 겨울에 실컷 만들자. 코가 당근인 눈사람을 말이야."
"눈사람?"
"안뜰을 꽉 채울 정도로 만드는 거야. 스벤도 좋아할걸?"
안나의 말에 크리스토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동자에는 확고한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깜짝이야. 크리스토프?"
"잠시 갔다 올 데가 있어."
안나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래. 기다려면서 잠들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
"아니야, 푹 자. 좀 걸릴 거야."
"알았어……. 내일까진 오는거지?"
크리스토프가 말을 얼버무리자, 안나가 못을 박았다.
"아침에 꼭 깨워주기야. 이건 여왕님 명령이야."
안나는 몸을 일으켜 크리스토프의 이마에 키스했다. 크리스토프는 경외감을 느끼며 안나의 손을 꼭 잡았다.
"꼭 돌아올게."
방을 빠져나온 크리스토프는 축사로 돌아가 스벤의 고삐를 풀었다. 오늘 밤은 아주 바쁜 밤이 될 터였다.
"이랴!"
안나는 엘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프는 누굴 찾아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기억 관련 전문가.
크리스토프가 트롤들의 거처에 도달한 것은, 새벽의 여신이 아찔한 여명을 대지에 하사하신 후였다.
***
완결은 까마득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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