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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띵군 팬픽: 님께서 떠나신 뒤(下)

Othell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4 02: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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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링크

상: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243870&page=1

중: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24475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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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가 끝나는 날 아침 경복궁. 편전에 긴장한 표정의 신하들이 하나하나 입궐했다.


길고 긴 국상이 진행된 지 꼬박 4개월. 관리들의 면면에는 피로감 또한 긴장감만큼이나 쌓여 있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장례 절차 덕에 다툼이 그나마 줄었다는 점 정도일까.

일시적인 업무과다로 눌려 있던 권력욕들이 다시금 각각의 표정에서 드러났다.


곧 입시하실 분께서, 다음 조선의 지존을 정하신다.

그러면 어느 쪽이 이기는지도 가려지리라.


"대왕대비 마마 입시요~!"


한 내관이 내관 특유의 높은 남자 목소리로 등장을 알렸다.


치마를 끌며 얼굴의 두 배는 되는 듯한 가채를 튼, 조선 최상의 여인이 걸어나왔다.


이 일시적인 상황으로 인해, 이번 국상 동안 그녀의 위세는 하늘마저도 멈출 정도였다.


회의 중 그 누구도 감히 반기를 들지 못했고, 그녀 앞에선 마치 머리에 쌀가마를 인 양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무게는 자순대비 본인에게도 똑같았던 듯, 대비 또한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와 앉았다.


"국상을 치르느라, 다들 고생 많았어요. 그럼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지금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모두가 귀를 세우고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제 마음 졸이는 시간도 끝나는 셈, 조선의 주인이 결정된다.


"..원자 이황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겠습니다. 즉위 절차는 세자 책봉 동지사가 돌아오는 대로 이어 진행할 겁니다."


첫 문장이 끝나자마자 명암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우의정 신수근과 도총관 박원종, 유자광 등은 이미 서로 손을 마주잡으며

당연한 일을 자축하고 있었고, 삼사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병조판서 유순정, 병조시랑 이장곤 등은 미묘한 표정이었는데, 왕의 총신이면서도 사림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어느 한 쪽도 편들어 좋아하기 애매했던 듯했다. (마치 반대쪽 진영 출신의 유력 정치인같은..)


작은 환호성과 탄식소리들을 뒤로하고, 자순대비는 이어나갔다.


"원자가 대행대왕(이젠 주상이 선왕이다)과 중전을 닮아 영특함은 나도 알고 있소. 중전이 어질어 원자를 잘 가르쳤고,

대행대왕께서도 사랑을 쏟아 사랑을 쏟아 기르셨으니 어찌 그 정성을 무시할 수 있겠소. 조정의 일부 신료들이 진성대군을 지지하나,

진성은 오직 나이만 많을 뿐 왕재는 아닌 듯하오.”


예상치 못한 발언에 대소신료들은 대부분 웅성거리며 의문감을 표했다. 자기 아들에 대해 저리 말하며 포기하다니, 기이해 보였으니 말이다.


오직 신수근, 유자광, 임사홍, 박원종 등 상황에 대해 이미 전해들은 이들만이 차분하게 이어진 설명을 경청했다.


의례에 대한 자순대비의 발표 밑 설명이 끝난 뒤, 이조판서 임사홍은 만족한 얼굴로 찬사를 보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재산과 권세를 지킨 기쁨, 이 지루한 의례의 종식에 대한 상쾌함 등이 섞인 표정이었다.


"지당하십니다 대비마마~! 하하하, 종통이 지켜졌군요. 옳은 결정을 내리신 것에 매우 기쁜 심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해야 하실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등 다른 근왕파 총신들 또한 이런저런 감사인사와 함께 편전을 나갔다.


남겨진 이들은 대체로 참람한 기분이었다.


차마 일어나 퇴장하는 자순대비에게 직접 말할 정도의 배짱은 아니었지만, 깊은 실망감에 대부분이 낙담해 기운을 잃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어두운 기운들을 흘리며 곧 뿔뿔이 흩어졌다.



조금 뒤 저녁, 퇴청 뒤 어느 기방.


열 명 남짓 정도의 인물들이 대면해 앉아 있다. 은은히 들려오는 음악소리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차분했다.


놀랍게도 그 면면은 국왕의 총신들과 사림의 좌수들이 섞인 모습이었다.


신수근(우의정)과 박원종(도총관), 임사홍(이조판서)과 정호찬(형조판서) 등이 좌측에 있는 반면


우측에는 대제학, 대사헌, 대사간, 그리고 놀랍게도 병조판서(유순정)와 병조시랑(이장곤)이 우측에 있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대사헌이 말문을 열었다.


".. 불렀으면 말씀들을 하시지요. 주제야 다들 알 터인데."


"허허, 거 왜그리 불퉁하십니까. 아무리 싫어도 할 일은 해야지, 아니 그렇습니까?"


임사홍은 승리자의 미소를 완연히 띄우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에 의해 쫓겨났다 복귀해,

십수 년의 고초를 겪다가 부상해 다시금 이조판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서 지켜낸 그는

저들에 대한 승리자로서의 우월감을 숨기지 않고 살았다. 눈총 받는 것 정돈 감수하고도 말이다.


우측 자리에 인물들, 특히 삼사의 인물들은 분노감이 눈에 서렸지만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리는 사실상 그들에게 마지막 정계 생존의 기회다. 이번마저 놓치면

근 10년간 계속돼온 국왕의 칼바람에 이어 저 딸랑이들이 사림의 맥을 완전히 끊을 것이다.


성종대왕께서 재림하시리라는 기대도 없는 지금, 어떻게든 타협으로 조정에 사림의 맥을 남겨야 한다.


대놓고 으스대는 임사홍을 우의정 신수근이 손짓으로 말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부른 자리에 나온 걸 보면 생각들은 있으시군. 마지막 현실감은 있어서 다행이오.


여기서 그대들의 '최소한의 조건'을 말하시오.


단 가당찮은 소리를 하거나 선왕을 모욕한다면,

부담이 가건 말건 난 맹세코 그대들 모두를 부여주에 박아넣겠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원군의 선의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만 아주 조금의, 자비를 원할 뿐입니다."


대사간이 말을 받았다.



"좋소. 앞으로의 대부분 정책들은 원래 하던 대로 진행할 거요. 이해들 하시겠지? 강무도, 호적도, 전선 보충도. 미룰 수 없소.


이건 단순히 귀찮은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오. 집 낡은 보 뜯어내고 새 보를 끼워넣는, 그런 당연한 일이지."


도총관 박원종은 신이 나서 을러댔다. 틈만 나면 '사냥을 그만해라'소리를 듣던 그는, 가능한 한 확실히 못박고 싶어했다.


오위나 지방군이나 군대의 대부분의 훈련은 사냥의 형태였기 때문이다(사냥은 사격, 진형유지, 기동 등 여러 요소를 포함한다).


본래라면 병조판서가 했을 말이지만, 이 아이러니한 정치적 상황은 중앙군 무관이 대부분 지방군까지도 장악하게 만들었다.


"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허허. 국가의 안전은 무인들과 강군이 지키는 것인데.


다만, 그.. 좀 유예를 달라 이런 것이지요 허허.. 호적이나 양전 같은 데선 말입니다.

이게 경기도나 서울이야 후딱후딱 되지만 지방은 사정이.. 아니 참 아시잖습니까? 융통성이란 게 있지요."


무종은 그의 발명 '무종수'의 보급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행정과 군의 대개편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모든 개혁들 기저에 깔려있으며 조선의 재정적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핵심 부분은 세제개혁이었는데,

결당 세금을 10배 가까이 올리면서도 인구 파악도는 올리고, 잡세를 줄이는 이런 개혁은 지방세력한테는 쥐약이었다.


원 역사에서 조광조가 주장한 바 있는 대동법의 전신인 '수미법'또한 결국 지방세력과 훈구 둘 다에게 거부된 것처럼,

지방의 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은 가능한 한 결당 세금을 내리고 1인당 세금을 유지하는 것이 편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무종의 개혁 방향은 지방에게 있어서는 피해뿐인 상황인 거였다.


늘어난 쌀의 운송 비용, 그에 맞는 저화의 발행 모두 지방의 부담일 터이니. 양전과 호적에서는 점입가경이다.


지방 대부분은 중앙 몰래 농지를 늘리곤 세금을 피하려 하는 고약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땅에 측량도구를 들이대면 극히 포악해진다.


그리고 이는 사실 유자광, 박원종 등 저 공신세력들에게도 유효하다. 그런데 양전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농장에 소속된 농민들과

노비에 양민까지 모두 파악하고 군역을 매기기 시작하면, 세금과 군역의 손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그런 탓에 다른 것들보다도 이 부분에서 사림 세력은 먼저 타협을 보고 싶은 거였다.


"방금 우상 말씀을 잘 기억해보시오. 좀 먹힐 만한 소릴 하라고. 지금 개편사업을 멈추라 이거요?


정말 해 보자는 건가?"


임사홍이 분기 충천해 일갈했다. 미리 양전과 '절세'과정을 거친 총신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터여서 더더욱 그랬다.


"아니, 어찌 그리 오도하십니까. 그저 조금만 기간을 벌려주십사 하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 공납까지 대체하려 하면 정말 너무 힘들어집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시행도 어렵고.."


임사홍은 한동안 계속 반대편을 을러대더니, 자비로운 양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3년 정도로 하지. 기록 갱신 기간은 말이야. 그 이상부턴 시기 따라 생각하는 걸로 합시다."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동지들의 사면은.."


"어허! 지금 대행대왕(재석이)께서 친히 벌하신 이들을 사면해 달라는 거요?

보자보자 하니 점점 무례해지는군!"


이 김에 사면을 추진해 보려 했던 이들은 다시 움츠러들었지만,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


"이보시오 청천군(유순정). 자네는 그리고 왜 그 쪽에만 있는 거요? 그대 또한 우리와 같은 선왕의 충신들이 아니오?"


갑작스레 말을 붙인 유자광에게 놀란 듯 유순정은 고개를 들었지만, 신수근이 대답할 새도 없이 이어갔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위인이군. 우리랑은 그래, 말 한 번도 섞기 싫다 이건가?"


"아니요 부원군 어르신,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다만 동문수학한 의리가.."


"아, 그래서 같이 원정을 떠났던 나도 몰라보는 게요? 좀 다투었다고 그리 대하다니, 정말이지 그대의 마음은 내 잘 알겠소."


"아니 청천군(박원종의 군호), 갑자기 왜 이러시오? 평소엔 말도 안 걸었으면서.. 원 참"


유순정에게 살갑게 대하는 좌측의 이들을 보고 사림의 무리는 곧 안도했다. 지방 사림의 정통파 중 한 명이 유순정임을 감안하면,

그를 새 정권의 주류 중 하나로 인정한다는 것은 유순정을 통한 그들의 의견 전달 또한 가능하다는 뜻이 되니까.


"희강(이장곤)! 자네도 와서 술 한 잔 받게! 뭔 잔뜩 숙이고 있는 건가? 기껏 몇 번이나 같이 갔으면서 말이야."


박원종은 곧 벌건 얼굴로 이장곤 또한 불렀다. 여러 번 전장에서 마주친 그를 박원종은 매우 고평가하며 친밀하게 대했다.


곧 오른 취기로 술자리는 한 시진(2시간)쯤 지나 축시(새벽 1시~3시)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그 중 이장곤은 휘청거리면서 말을 타고 자택에 향하고 있었다.


박원종의 부름 이후 방을 옮겨-두 무리는 진지한 이야기 이후 방을 나누어 즐겼다-연거푸 술을 받아마신 그는, 거의 만취해 있었다.


"끄, 꺼억~ 아니 도총관 두 양반들 다 원 참, 많이도 먹이는군. 이게 환대인지 고문인지..


그래도 이쯤 했으면, 그 때 일은 다들 잊었단 거겠지? 그렇겠지?"


내심 판관으로 북방에 쫓겨날 때를 상기한 그는, 당상관에 들어-참의부터는 정 3품으로 당상관이다-1,2품들 사이에서 술을 먹는 지금이 꿈 같았다.


"그래, 이거면 된 거지, 그래..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 암."


그러면서도 이전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만약 상소에 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금상에게 밉보여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더 나았을까?


고민을 어른거린 그는, 곧 고개를 돌렸다.


흔한 어느 간관으로 있었더라면, 지금의 것을 갖지 못했을 터다.


지위도, 깨달음도, 그리고 사람도.


우을지를 찾아 북방을 헤집으며 변방의 혹독함과 그 생리를 배웠고,


부여주 정벌에 동행하며 전쟁의 냉엄함과 급박함을 배웠다.


왜국 원정에서 병기와 조직의 힘을 느꼈고, 감계 협상에서 명의 실체를 깨달았다.


지금은 부여주 관찰사로 계시는 지정(남곤) 어르신에게서, 그리고 부원수(박원종)님에게서.


전자는 본인을 한층 성숙하고 깊이 생각하게 해 주었고, 후자는 인성엔 문제가 있었지만

적을 창칼과 말로 몰아치는 능력에서 따를 사람이 없었다. 뒤따르는 것만으로 배움이 되는 위인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사랑을 얻었다.


"그래, 인생 뭐 있냐. 행복하면 됐지. 흐흐흐"


이장곤은 곧 고민을 비웠다.


곧 돌아가 그의 새침데기를 볼 생각에 발걸음이 들떴다(늦어서 혼날 걱정은 잠시 접어두었다).


그리고 정호찬과 신수근이 그 반대쪽 거리를 걷고 있다(말을 타고).


"어르신, 고생하셨습니다. 무인들 술자리라 이판 어르신이나 부원군 어르신이나 힘드셨을 텐데.."


"되었네. 저치들 주량은 익숙해. 그리고 벌써 그 말을 듣긴 이르지."


"예? 무슨 말씀을.."


"내가 할 일은 아직 많단 말일세. 벌써부터 쉬면, 평성군(박원종) 그 친구만 좋아하겠지, 하하하"


너털웃음, 하지만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신수근은 답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분이 같은 배를 탄 지는 오래 아닙니까. 그리고 우후(유자광) 어르신도 계시고(같은 오위 도총관이다)."


"자네는 서출인 유가 녀석이 정말 평성군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보나? 어렵네. 아직 세상은 서출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아.


선왕께서 평생 갈고닦은 오위는, 이제 사실상 평성군에게 들어간 걸세. 경향사족 무관 거의 모두는 놈에게 충성하겠지.


지금 전하는 겨우 보령 여섯이시네, 거기다 대행대왕과 같이 자라다시피한 평성군을 대놓고 면박 준다? 너무 큰 부담일세.


청천군(유순정,병판)의 직급상으로는 수하지만, 알다시피 이런 알력싸움은 실질 지휘관이 더 강하다네. 그동안 쌓은 것도 있고.


아무리 병판이 요새 날렸다지만, 사화에서 도망쳤다 돌아온 지 아직 채 십 년도 되지 않았으니.. 원 참 어디 장인으로라도 만들어 줘야 하나.


뭐 그래도 염치가 있으니, 앞으로도 여간해서 내 말은 잘 들어먹을 걸세. 이제 내가 고생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


씩 웃으며 신수근이 말했다. 이제 막 관료가 아닌 정치인이 된 정호찬으로서는 얼떨떨한 말이었다.


"이거 참.. 고생하십니다. 저는 탐문만 하다 보니, 형조 일만으로도 힘들군요, 하하... 아무래도 권세질은 저랑 안 맞는 듯 싶습니다."


"그건 희소식이군. 자네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필욘 없겠어."


"아 어르신!!" "허허허허"


신수근의 농담에 정호찬의 볼이 붉어졌다.


"반은 농이지만, 반은 진담일세. 자네가 위세를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테니 말이지. 금위사와 의금부는 지금 그만큼 두려운 존재라네.


모든 은밀한 소문에 대화까지 모으는 자가 형조에 의금부까지 틀어쥐었다니. 이건 사실 과다권력이라 말이야, 하하하.


관원들에 끄나풀들이 모두 자네만을 바라보는 판에 자른다고 해결되지도 않지.


형판이 소탈한 성정인 걸 그래서 좋게 본 걸세. 선왕께서 자네를 아끼신 이유가 있었어."


신수근의 눈가에 작게 물기가 맺혔다.


"그 번개가 내리치던 날 이후로, 정말이지 힘들었지. 선왕, 그 때의 주상을 모질게 대하고 사람들을 쳐내는 것도, 마음엔 늘 업이었다네.


하지만 단 하나의 과제가 나를 지지했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


갑자기 시작된 추억풀이에 정호찬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잠자코 들었다.


"군사부는 일체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아비가 아이를 가르치는 일과 같지, 때로는 모질고 힘든 일도 해야 하네.


없어도 괜찮을 것처럼 보여도, 그 때는 필요없어 보여도, 그것이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 당장 티가 안 나도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지.


마치 깊숙한 지붕에 도리(지붕의 지지대 중 하나)를 뺀 집처럼.. 서서히, 그 부분이 패이고, 무너지지. 그리곤 다른 부분으로 번진다네.


이제 앞으로는 평안하고, 나른한 시대일 걸세. 짧은 폭풍은 지나갔지.


하지만 평안할 때 땅을 다지지 않는다면, 날이 밝을 때 기와를 갈지 않는다면,

태풍의 날에 그 대가를 치르는 법이라네.


앞으로 형판으로서, 의금부의 진짜 우두머리로서, 그리고 금위사장으로서 자네의 일은 분명하네.


조선이란 말의 고삐가 느슨하지도, 그리고 꽉 조이지도 않게 하는 것이지.


분명 여러 유혹도 있을 것이고, 다른 길이 보일 수도 있다네.


그럴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처음의 방향을 유지하게나.


귀갓길에 이 늙은이의 흰소리나 듣느라 고생했네. 자네 집은 저 쪽이었지? 이만 헤어지세나."


미련없이 말고삐를 트는 신수근에게 다급히 정호찬이 말했다.


"아 어르신! 잠시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빨리 하게. 술먹고 말하느라 기 다 빠졌네."


"제가 사실 그.. 선왕께서 총애하시던 애첩을 데리고 있습니다. 전에 내의원 의녀던 사람인데.. 지금은 제가 끄나풀로 관리 중이죠.


사실 상(喪) 소식을 듣자마자 까무러치고 깨나서 지금은 멍하니 지냅니다만.. 제가 거둬도 되겠습니까?"


지금 애를 밴 상태라 어디 내보낼 수도 없어서.."


"아, 아아...., 어.. 그래. 그랬었지. 분명 의원 하나를 유달리 좋아하셨지, 그래.


헌데 그게 계집이었다고..? 선이 묘하게 그런 거 같긴 했다만, 설마 진짜였군. 허허.."


잠시의 멍함 이후, 신수근은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관리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군. 들키기라도 했으면 난리가 났을 게야...


일단 상관없네. 이미 선왕께선 승하하셨고, 자네를 파헤칠 배짱이 있는 사람도 없으니.


괜히 안절부절 말고, 무게나 잡고 시치미 떼게. 애 낳으면 그냥 자네 자식이라 하고.


미쳤다고 금위사장인 자네를 뒷조사하려 하진 않을 테니 말이네. 알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 하겠습니다."


"그래, 잘 들어가게."


그 말을 끝으로 신수근은 유감없이 말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가솔들이 말소리를 듣고 연 문 안으로 향했다.


힘든 알력싸움은 오늘로 대충은 끝냈다.


아마 전하(황이, 이전 세자)가 장성하셔서 손(자식)을 보실 때쯤이면, 사면령도 내리겠지.


이제 거의 지금 할 수 있는 개혁 조치도, 정벌도 끝마쳤다.


앞으로는 이를 유지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일 터다.


그러나 파평부원군, 우의정이자 대비의 오라버니인 신수근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병판 청천군(유순정)과 병조참의의 기도 살려줘야 하고, 동지들이 제 세상 왔다고 날뛰는 것도 다독여야 한다.


적어도 수렴청정이 끝날 때까지는, 선왕도 사림 촌놈도 없겠다 그들의 세상이 온 셈이니.


주상이 바뀌신 날, 그리고 번개가 치던 날 시작한 위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님께서 떠나신 그 날 뒤에도, 님이 쌓아올린 조선은 돌아간다.



-------------------------------------


끝났다..


가볍게 한두편으로 끝낼 줄 알았는데, 엄청 걸렸네요. 고민도 많이 됐습니다.


이번 팬픽도 사실상 신수근이 주인공입니다..ㅎㅎ


재석이가 죽은 다음 상황 수습에 정권까지 이양하고 갈등을 봉합한, 사실상의 서열 1위가 신수근이니까요.


사실 저렇게 아픈척했지만, 띵군 신수근은 근 80까지 삽니다;; 박원종, 유순정보다도 오래 살며 조선을 주도한 셈이죠.


2부에서 재석이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곧장 이어진 개혁 드라이브와 기나긴 전란을 버틸 수 있도록


벼려진 조선을 다듬고, 정비해서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던 것은,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겨진 신하들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었구요.


새벽이라 비몽사몽하네요(새벽에 글이 잘써짐). 3부작 팬픽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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