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 S대학교 학생회관
학생회관 복도에서는 학생들이 집회때 걸 현수막과 대학건물 벽면에 부착할 걸개그림 따위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거기에 시위 때 쓰기 위해 제조중인 화염병까지 학생회관 전체에 신나와 페인트 따위의 화공약품 냄새가 가득했다.
바깥의 맑은 공기를 마시다 들어온 학생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거나,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목적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각 동아리 방에서는 단순한 취미활동을 하는 줄 알고 멋모르고 입회한 신입생들을 교양하는 선배들의 열띤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 민중 해방을 위해서는 말이야? 엉, 우리 진보 대학생들이 기층 민중을 이끄는 ······ ”
어느 방에서는 시위를 위한 구호 연습을 하느라 목청껏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 투쟁! 투쟁! ······ ”
분주한 학생회관의 가장 넓은 공간에서 걸개그림을 그리는 무리들도 보였다.
그 무리를 향해 다가오는 한 학생은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을 수행하는 학생 몇을 거느리고 학생들의 작업을 살펴보고 있었다.
“ 야, 잘 돼 가냐? ”
“ 아, 오셨어요? 회장님. ”
걸개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을 지도하며 작업하기도 하던 학생이 회장이라 불린 학생에게 인사했다.
“ 역시 미대 수석이라 다르긴 다르다야. 너 군대 있을 때는 걸개그림이 뽀대가 안났는데 말야? ”
회장은 자신들, 학생들이 혐오하는 땡전 혹은 문어대가리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걸개그림을 감독하던 학생에게 공치사를 했다.
“ 하하, 걸개그림이야 누가 그려도 다 똑같아요. 이 그림을 보고 민중들이 얼마나 공감하느냐하는 거지. 이게 예술성을 담는 그림도 아니고 ······. ”
뜬금없는 칭찬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걸개그림을 그리던 학생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별 것 아니라 하였다.
“ 아냐, 뭐랄까? 네 그림에는 쏘울이 있다고나 할까? ”
기껏해야 다른 학생들보다 몇 살 더 많을 뿐인 회장은 나름대로 조직을 구성하고 이끌고 있는 것이 헛트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맞아. 현철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민중해방에 대한 투쟁심이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 든단 말야? ”
회장의 말에 동아리 선배도 칭찬에 가세했다. 권위를 가진 자에 대한 동조, 이런 행위들이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기성세대들의 행동을 답습하는 것임을 그들 모두는 깨닫지 못한 채 아첨이 이뤄졌다.
그렇게 회장이 간 후에 작업을 하던 중 시계를 본 선배가 모두를 향해 외쳤다.
“ 야, 분임토의 할 시간이다. 빨리 동방에 가자. ”
“ 헤헤, 전 이거 마무리 해야 해서 오늘 참가 못하겠네요. 페인트 굳어버리거든요. ”
걸개그림을 총괄하던 학생은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 관성적으로 신입생 때부터 참여하던 동아리 활동이었다. 군대를 전역한 후에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조용히 작업실 구석에서 그림이나 그리려 하던 그였다. 군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혁명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식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역하자마자 그의 동아리 사람들은 그를 찾았고, 그럼 졸업할 때까지라는 단서로 다시 활동을 한 것이었다.
그들이 제작하던 걸개그림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이제 설치만 하면 되었다.
그들은 걸개그림에 착수할 때부터 생각했던 공학관의 우측벽면에 그림을 걸기 위해 공학관 옥상에 모여 있었다.
“ 야야, 그래, 공학관 벽면 전체에 걸어야 한단 말야. 조심조심. ”
서로 고함을 지르며 소통을 하는 학생들. 어쩌면 짧은 집회 후 삭아서 없어질 그저 그런 그림일 뿐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는 마냥 뿌듯할 뿐이었다.
“ 아 씨발 삐뚤어 졌잖아 똑바로 당기란 말야. ”
걸개그림을 주도했던 학생은 예비역 복학생 선배라는 자신의 지위를 마음껏 이용할 작정인지 후배들에게 거친 상소리를 뱉어가며 작업을 지시했다.
“ 예? 선배 더 당겨요? ”
반대편 쪽의 줄을 잡고 있는 후배는 맞은편의 선배를 향해 말했다.
“ 그래, 더 쎄게 당겨 이쪽은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말야. ”
걸개그림을 그린 학생은 답답한지 고함을 지르며 후배들에게 지시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교실에 갇혀서 공부나 하던 학생들이 이런 험한 일을 하는것에는 당연히 서툴렀다.
몇 차례 지시를 수정하며 외쳐도 답답했다. 군대를 가서 맞고 구르거나, 작업을 하다보면 좋아지겠지만, 몇 살 차이 안 나는 그들과 자신과의 차이가 나이차이 이상으로 느껴졌다.
“ 그래도 불안해서요. 잘못 당겼다가 선배가 균형 잃고 밑으로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요. ”
후배는 선배의 지시에도 혹시라도 자신이 잡아 당겼을 때 사고가 생길까 두려운 눈치다. 작업이란 것이 그런 생각없이 신속하게 해야 더 빨리 끝나고, 더 안전하게 끝나는 것인데, 주저주저하다가는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다.
“ 괜찮아? 지금처럼 축 늘어지면 모처럼 그린 걸개그림인데 팽팽한 긴장감을 못 주잖아? 내가 이걸 한두번 해보냐? 안떨어져.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팍 잡아당기라고. 알았냐? ”
후배를 안심시키며 다시 지시했다. 조금만 더 팽팽하게 당겨서 묶으면 끝날 일이다.
“ 예, 그럼 당깁니다. ”
“ 야, 너무 쎄게 ······ , 아아악 ······ ”
후배의 우려대로 갑작스레 당겨진 탄력에 그만 발을 헛디뎠다. 12층의 공학관 옥상에서 떨어지면 살 수는 있을까? 아니 살 수는 있을지도? 평생 누워서 지내게 되는 건가? 반신불수면 이제 붓은 못 잡겠네?
군 제대후 마음잡고 효도하겠다던 맹세는 언제쯤 잊혀지고, 살던대로 살게 된 것이지?
“ 어때? 살고 싶지?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은건가? ”
감미롭게 느껴지는 목소리? 떨어지는 와중에 무슨 소리지? 아니 내가 지금 떨어지고 있는 것은 맞나? 웬지 시간이 멈춘 것같은 이 느낌은?
“ ······ ”
대답이 없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 내가 그 소원 이뤄주지. 어때? 내가 말한대로 하고 싶으면 대답해라. 바로 이뤄줄게. ”
그래 환각이면 어떻냐? 혹시 아는가? 지금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
“ 그래요. ”
“ 알았다. 접수. ”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 이봐, 그림을 안 그리나? 수험생? 포기한 것인가? ”
앞에 앉아있는 백인?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은 한국어는 아니었다. 영어도 아니고,
더 믿을 수 없는 일은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데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사용하던 모국어처럼 말이다.
순간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 예? 예? 무엇을? ”
『 이봐, 소원대로 해줬어. 지금 넌 빈 예술아카데미 미술대학 입학시험중이야? 시험에는 통과할 정도는 되어야 네 소원대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 자격이 있지 않겠나? 열심히 하라고, 난 분명 기회를 줬다. 』
걸개그림을 걸다가 떨어졌을 때 경험한 환각속에서 내게 말을 걸던 그 목소리였다. 내가 지금 시험중이라고? 그것도 빈 예술아카데미 미술대학에? 그럼 유학을 위한 테스트 중이었나?
미술로 해외유학까지는 시켜줄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던 꿈이었다. 내게 말을 걸었던 존재가 악마인지 천사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그냥 혼수상태에 들어간 내가 느끼는 환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나는 꿈에도 그리던 그런 경험을 하는 거다.
“ 어? 뭐지? ”
나도 모르게 환각을 느끼면서 어리둥절했던 느낌을 입으로 토해냈다.
이 공간의 모든 눈이 나를 째려 보았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백인 감독관, 아마 시험감독관이 맞겠지? 이 내게 경고의 말을 했다.
“ 수험을 포기한 것이면 그만 실습장에서 나가주길 바라네. 그게 아니라면 빨리 완성시켜서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말일세. ”
“ 예, 예, ”
포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입시미술로 단련된 내 솜씨를 보여주마. 아마도 깜짝 놀랄 거다. 대개 입시미술을 오래한 우리나라 미대생들이 해외에 가서는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경쟁에 뒤쳐진다고 하지만, 입학시험에서만큼은 발군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입학하고 배우면 된다. 내 기량을 모두 보여주지. 놀라지나 말라고 ? 핫핫.
“ 자, 시간이 되었네. 그만 ······ .”
시험관은 자신의 시계를 보며, 실기시험시간이 종료했음을 알렸다.
중간에 멍때리고, 내가 정신이 들기 전에 그려졌던 밋밋한 그림 때문에 수정하느라 시간을 좀 잡아먹기는 했지만 그런저럭 완성했다.
조금만 늦게 정신을 차렸어도 미완성인 채로 제출할 뻔했다.
“ 휴우, 간신히 끝냈네. ”
조교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그림을 거둬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 시험 중에 흘끔 봤을 때는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그저그런 심심한 성격을 가진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림 수정하는 것을 봤어. 좀 하더라? ”
이건 뭐하는 놈이야? 자기 것 하기도 빠듯한 시간에 작품 완성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는 모습까지 관찰했다고? 비엔나 정도로 미술 배우러 오는 놈들은 다 이정도 수준인가?
“ 난 에곤 쉴레(Egon Schiele)라고 해, 내년에는 어떤 녀석들이 들어 올까 싶어서, 시험장 조수로 자원했는데. 네가 처음에 그린 그림을 보고는 건축이나 할 녀석이 엉뚱한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그림을 수정하는 모습이 좀 충격적이었다. ”
아, 수험생이 아니라 조교였구나. 하긴 아무리 솜씨가 좋은 놈이라도 자기 운명이 걸린 시험장에서 남의 그림이나 보는 정신나간 짓을 하겠냐?
잠깐? 에곤 쉴레? 혹시 그 유명한 에곤 쉴레? 에곤 쉴레는 젊어서 죽었는데? 그러고 보니 생김새가 에곤 쉴레랑 똑같이 생겼네? 지금 내가 어디로 온거냐?
『 얼빠진 행동하지 마라, 지금 1907년이다. 어때 현대 미술사조를 모두 꿰고 있으니 이정도면 그림만 그릴 수도 있겠지? 잘해보라고. 하하하하 』
빌어먹을 목소리가 또 들렸다. 악마인가? 가족들도 없이 70년을 거슬러 올라와서 살라고?
일단 천재화가 에곤 쉴레를 직접 보게 되는 영광을 얻었으니 그와 친해져야지 그가 내민 손을 내 오른손으로 붙잡고 악수를 했다.
그런데 에곤 쉴레가 요절하게 된 이유가 뭐였지? 그걸 미리 알아서 안 죽게 하면 뭔가 달라질까? 미리 친해져서 그림 몇 점 얻어 놓고 훗날 팔면 대박이잖아?
“ 만나서 반갑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지? ”
에곤 쉴레가 나와 같이 악수를 하며 내게 내 이름을 물었다. 엉? 진짜? 1907년이면 현대의 내가 그대로 오스트리아로 온 건가? 아니, 그 시절에 황인종이 비엔나의 고등교육기관에 입학 시험을 치룰 수 있었나?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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