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봐, 히틀러. 이리 와서 이것 좀 치워. ”
오늘도 간판가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인인 슈미트 씨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가혹하게 일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대신 급료를 가혹하게 주었다.
내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숨어사는 신세인 것을 눈치 채서 내가 내 솜씨를 보여주었음에도 처음에 급료협상을 할 때 깐깐하게 나왔다.
그리고 예술의 도시, 유럽의 문화의 중심지인 빈과는 달리, 이곳은 바이에른 깡촌의 중심지 뮌헨일 뿐이었다. 그리고 빌어먹을 바이에른 독일 돼지 새끼들은 심미안이 없었다. 간판이란 그저 여기가 무얼 하는 곳인지 표시해주는 표지판에 불과했다.
이곳이 빈이었다면 모두들 감탄을 했을 솜씨의 간판에도 심드렁하게 그런 쓸데없는 장식이나 도안은 필요 없다. 간단명료하게 의미만 전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촌놈들, 미적감각이 없어.
그래도 지금은 그가 갑이니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말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좋지 않다. 옮겨다니다 내게 앙심을 품은 업주가 나를 고발이라도 하면 곤란하다.
“ 예, 알겠습니다. 슈미트씨. ”
덕분에 빈에서 간판 일을 할 때에는 내 솜씨가 알려진 후에는 절대로 하지 않고 다시 조수를 고용해서 했던 뒷정리나 원재료 적재같은 허드렛일도 모두 내가 해야 했다.
“ 에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
일을 마치고 변두리에 얻은 싸구려 하숙집의 작은 방에 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전 재산이 든 가방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이럴 일은 없었는데 ······
자려고 누울 때마다 탄식이다. 이러다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점점 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어 하다가는 몇 년간 미국으로 가지도 못할 거다.
그거야 전쟁 끝나고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에 돌아가서 간판일 ······. 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유럽의 중심인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되지? 아마도.
제국의 중심에서 일개 유럽 변경의 소국이 되면 빈도 문화적으로 쇠락하겠군. 다시 일어서려면 2차 세계대전까지 끝난 후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러면 어디서 돈을 벌어서 미국으로 가냐? 어어, 하다보면 또 대공황, 그리고 다시 2차 세계대전.
미술로 뜨려고 해도 문화중심지로 가야하는 건데, 돈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상한 곳에서 인생계획이 꼬여버렸다.
“ 예, 감사합니다. ”
오늘은 급료를 받는 날이다. 얼마 되지 않는 급료지만 오랜만에 주머니가 두둑해졌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겠다.
오늘은 슈바인스학세에 맥주를 먹어야 겠다. 그리고 뭔가 디저트도 하나 먹어야지. 촌놈들이지만 그래도 제법 맛난 것들도 있다. 슈바인스학세를 먹으면서 이 시대로 떨어지기 전에 혁명과 민중봉기에 대해 떠들면서 동아리사람들과 함께 족발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족발과 조리법은 다르지만 말이다.
“ 아, 맛있어. ”
맛있어서 눈물이 난다. 그 때 내 얘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윤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 미래에 태어날 아이니 아직 이 세상에 없구나?
“ 메피스토님, 이번에도 실패인 것 같은데요? 오히려 세상이 평화로워지겠는데요? 쟤 평생 간판이나 만들다가 인생 종치게 생겼는데요? ”
역시나 메피스토를 졸졸 쫓아다니며 구경하는 48세 김대붕은 히틀러가 족발 먹으면서 질질짜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 기다려봐라. 어차피 무슨 상관이냐? 내가 기껏 기회를 줬는데 저 모양이면 다른 놈을 뽑아다가 또 다른 걸 맡기면 될 뿐인데? ”
메피스토는 아직 연구실을 떠나지 않았기에 교수가 시키는 일과를 소화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짬짬이 시뮬레이션을 살펴보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때마다 김대붕은 달라붙어서 질척거리고 있다.
자기 의지로 의사소통을 하게 된 시뮬레이터의 존재들은 대부분 이랬다. 입을 막고 없애자면 없앨 수 있지만, 귀찮기도 하고 교수의 시뮬레이션을 망치기 위해서는 김대붕같은 존재도 있는 것이 낫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었다.
“ 그래도 이건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기껏 빙의시켜줬더니 칠칠치 못하게 돈가방을 잃어버려서 궁상떨고 있잖아요? ”
김대붕은 그의 취향대로 뭔가 화끈하게 변하는 것을 기대했나보다.
“ 그럼 니가 하던가? ”
“ 아, 지금 저놈 몸에 제가 들어가면 군대가야 하잖아요? 더군다나 제가 군대에서도 제일 싫어 했던 게 화생방훈련이었는데. 저 때 전쟁은 그냥 전쟁자체가 화생방이잖아요? 방독면도 시원찮은 시대고. 됐어요. 그냥 팝콘이나 더 먹을게요. ”
김대붕은 여의도 모래밭에서 아사체험을 한 후에는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나보다. 애초에 이상한 놈이었다.
보통 자신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의 데어터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충격을 받아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쨌든 자신은 존재하는 거니까 존재하는 거라며 이렇게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닌다. 하기는 그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실존하는 세상인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이 나타나기만 하면 이렇게 찰싹 달라붙는 것도 메피스토를 따라다니면 재밌는 구경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김대붕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살짝 자극을 줘 볼까? 뭐라도 하게? ”
“ 자극요? ”
메피스토의 말에 김대붕은 기대를 품은 눈빛을 보냈다.
『 이봐, 히틀러,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쩔거야? 』
또 들려오는 목소리, 나를 분명 이시대로 보낸 놈이다.
“ 뭐야? 너 나를 이시대로 보낸 놈 아냐? 야, 다시 날 내 시대로 보내줘. 이렇게는 못살겠다. ”
저놈을 잘 구슬려서 원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이것은 그냥 꿈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상황 모두가 꿈인 것 아냐? 그러면 자살이라도 해볼까? 아니다. 지금 느끼는 것이 너무 생생하다. 현실일 수도 있다. 섣불리 자살 따위를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이봐, 잊었나? 네가 10층이 넘는 공학과 옥상에서 떨어지는 걸 내가 너를 살리려고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면 낙하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면 되는 건가? 』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 옥상에서 떨어지다가 저 목소리가 살려준다면서 히틀러 몸속에 나를 구겨 넣은 거지? 씨발 일단 저놈 비위를 맞춰줘야 뭔가 얻어낼 수 있을 테니 ······.
“ 아니 메피스토님, 이렇게 먼 시대로 저를 빙의하실 수 있다면 제가 떨어지기 전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10초만 당겨서 보내주시면 제가 알아서 살 수 있잖습니까? ”
큿, 반 말을 그만두고 존대말을 하는 히틀러를 보니 우습군. 그렇게 아양을 떤다고 내가 네말대로 움직이겠는가?
『 이시대로 다른 존재에게 빙의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네가 말한 시간에는 네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 그러면 왜 나타났냐? 난 지금 심각하다고. 방해말고 꺼져. ”
비위를 맞춰주면 뭔가 해결책을 줄까싶어서, 존대말까지 했는데.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다.
『 네 생각대로 이제 곧 전쟁인데, 그렇게 맛집 탐방이나 다니는 것이 한심해서 그렇다. 군대가기 싫다고 기껏 미술가가 될 기회를 줬는데 이렇게 도망자 신세라니? 그것도 돈가방을 잃어버려서 불법체류 도피범으로? 그래서야 내가 너를 살려준 보람이 없잖은가? 안그래? 』
“ 앗, 씨발. 알았다. 알았다구. 나도 대책을 생각중이야. 방해하지 말라고. ”
『 어쨌든 행운을 빈다. 너처럼 기회를 받는 존재는 극소수이다. 그러니 주어진 기회를 잘 사용해보도록 해라. 』
식사를 마치고 하숙집에 돌아온 나는 생각을 해봤다. 1차 세계대전이 아마도 1914년에 발발이었을 거다. 지금은 1913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1차 세계대전이 아마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 때문에 발발했지? 그러면 황태자 시해범을 미리 잡으면 되나?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황태자 시해범을 잡아?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총으로 황태자를 암살할 정도면 무장이 된 놈이잖아? 그놈을 잡으려 해도 내가 먼저 당할지도 모른다.
소극적으로 생각해서 암살범을 잡는 건 포기하고 암살만 막는 것도 그렇다. 애초에 어디서 암살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그리고 암살을 막으려면 황태자 주변에서 경계를 해야할 텐데. 난 지금 병역기피로 수배가 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정착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20세기 초면 아직 미국인들의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상당한 시대이니.
유럽 최고인 빈 예술아카데미 미술대학 출신 화가가 자리잡기 아주 수월할 거다. 여차하면 반독일, 반오스트리아 운동이라도 하면서 뻐팅기면 된다.
문제는 미국으로 갈 비용이 없다. 애초에 돈가방을 잃어버린 게 내 계획이 꼬여버린 원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빈에서 생활하는 동안 커진 내 씀씀이 탓에 뮌헨에서 일한 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나름 아껴 쓰는 것 같은데 왜 돈이 없지? 그저 주급 받아서 맛집 가서 바이에른 음식 사먹고 하숙비 내고, 그러는 게 다인데?
메피스토가 일깨워 준대로 이대로 가면, 1차 세계대전이고, 전투 한 번에 막 백만 명씩 죽어서 없어지는 대전쟁이니까, 지금 당장은 외국인이어서 징집될 리 없지만, 조금만 지나면 젊은 놈이 군대에 안 들어가면 그냥 잡아다가 군복을 입힐 거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뮌헨에서 도피생활을 할 수 있을까? 돈도 없는데? 그렇다면 슈미트 씨의 간판가에에서 간판그리다가 어느 날 징병관에게 붙들려가서 그냥 전선으로 가는 기차에 태워질 지도 모른다.
바이에른에서 징집당하면 독일군이겠지? 거기다 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 쪽 전선과 러시아 전선이 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독일이 주로 프랑스 전선을 맡았다. 양쪽 전선 중 유독 지옥의 전장은 프랑스전선인데 말이다.
어차피 전쟁을 막을 수 없어서,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독일군보다는 상대적으로 꿀 빨 수있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에 입대하는 게 나을 거다. 그것도 초기에 입대해야 제대로 훈련받고 보급받을 거다. 소모품이야 똑같이 부족하겠지만, 초기에 제대로 장비 받으려면 초기에 입대하는 게 낫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참이 되면 이런저런 핑계로 피돌리면서 짱박힐 수도 있을거다. 전쟁영화를 봐도 어설프고, 순진한 신병들이 앞장서다가 죽지 않던가?
그래!! 결심했어. 다시 오스트리아로 가자.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에 입대해서 편한 전장으로 가서 꿀빨며 버티는 거다.
“ 그런데? 기차표는 어떻게 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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