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일단 전생 했는데

2화그게뭐예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31 15:20:11
조회 886 추천 25 댓글 15
														

https://gall.dcinside.com/m/lilyfever/1405663

 


*-*-*--*-



목검이 3개가 부러지고, 정말 이상하게도 계속 사람을 향해 날아가던 목검을 모조리 막아 내신 검술 선생님이 탈진할 때쯤 검술 훈련이 끝이 났다.

“너무 예쁘지 않아요?”

디나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여기 쿠키 너무 예쁘다.”

“쿠키요?”

“응, 쿠키”

“그, 그러네요. 쿠키 예뻐요”

“그치?”

디나네 요리사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만들 줄 안단 말이야

몸을 움직인 만큼 쿠키를 집어 먹던 나는 다나와 눈이 마주쳤다.

디나 생글 웃는 거 너무 귀여워, 디나의 히로인이 누가 될지는 몰라도 저런 미소를 매일 볼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

그에 비해 나는…

날 보며 순수하게 미소 짓는 디나를 보며, 그녀가 날 어떻게 공격할지 찾느라 바빴다.

목검을 놓치는 족족 디나를 지켜본 결과, 디나는 검술보다는 호수의 경치가 더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디나의 눈은 사람을 향해 날아간 목검을 쫓는 게 아니라 화가를 향해 있던 게 그 증거다.

일단은 디나의 옷에 내 피가 묻을 걱정은 없겠어

“쿠키가 많이 비었네”

“밖에서 먹으면 맛이 더 좋으니까요.”

“이럴 줄 알고 내가 이번엔 디나를 위해 이걸 준비했어”

빈 접시에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를 올렸다.

“맛있어, 먹어봐”

“그…네, 맛있게 보이네요”

디나의 반응이 별로네, 모양이 잘 안 잡혀서 그런가?

“보기엔 이래도 맛은 좋아”

나는 한입 베어 물었던 샌드위치를 그대로 디나에게 건넸다.

디나는 내 행동에 망설이다가 내가 베어 문 쪽으로 입을 데었다.

내가 건네주면 망설이긴 해도 늘 먹어준단 말이야,

정말로 착하고 귀여운 아이다.

“맛있지?”

“그러네요.”

“이거는 안에 닭튀김이 들어간 건데”

다른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배가 너무... 저 잠깐 그림이 얼마나 그려졌는지 보고 올게요.”

디나는 황급히 일어나며 화가를 향해 걸어갔다.

‘디나는 그림을 정말로 좋아하나 보네, 쿠키도 샌드위치도 두고 갈 정도잖아.’

그림과 관련된 루트는…

억지로 끼워 맞추면 예술품을 팔아서 나랑 싸울 자금을 마련하는 걸까

레드 초콜릿이 영지 관리라는 시물레이션 성격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야, 돈이니까 고립 엔딩이겠지

혼자가 돼도 쓸쓸하지 않게 보드게임이랑 책을 모아 둬야겠어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수 건너편에서 나처럼 검술 연습을 하던 여자아이가 보였다.

검은색의 단발이라는 이쪽 세계 기준으로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희고 깨끗한 피부 하며 에메랄들 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랑은 다르게 검이 날아가지 않네

샌드위치를 먹으며 지켜보니,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였지만 검술은 어른과도 비빌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가르치는 교사는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지 무섭게 아이를 몰아붙였다.

나라면 지쳐서 쓰러질 정도의 훈련이었지만 소녀는 모두 소화해 내더니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지쳐 쓰러지듯 흙 위에 누웠다.

무언가 꾸물꾸물 거리는 모습이 보이더니 시루떡 같이 생긴 강아지 한 마리가 그녀의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엎드렸다.

“사이 좋아 보이네”

그러고 보니 플레이 캐릭터 중에 그런 것도 있었지

테루아이 리첼

순수 검술 실력으로 마리테일리아 엘리를 압도하는 캐릭터다.

원래는 하급 귀족의 아이였다가 검술 실력을 인정받고 테루아이 가문으로 입양된다.

여러 유명한 군인들을 배출한 가문인 만큼 엄격하게 검술을 배우는데, 한가지 문제는 그들이 리첼에게 검술을 알려 주어도 검을 드는 이유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단 점이다.

더군다나 세속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문이라 성장한 엘리는 돈이라는 원리원칙을 마음속 길로 잡는다.

리첼의 주요 스토리는 히로인을 만나고 원리원칙과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서서히 깨지는, 검을 드는 이유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뀌는 이야기다.

특히 재상의 아들과 이어지는 게 팬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원칙주의자와 원칙주의자라는 듣기만 해도 답답한 조합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녹이고 바뀌어 가는 과정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단다.

뭐, 나는 거기까지 못 봤지만

리첼이 지금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면, 마리테리아 엘리는 무조건 잘리네

시퍼런 칼날이 내 몸을 뚫는다고 생각하자 몸이 떨렸다.

아픈 건 싫은데, 만약 리첼을 만나면 일격에 끝내 달라고 해야겠다.

아니지, 왜 벌써 지는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검술로 멋지게 이겨버리면 되잖아.

아자아자, 할 수 있다. 나는 2층 창문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신체의 소유자라고

게임의 최종 보스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고

샌드위치를 힘차게 휘두르던 나는 내 앞에 부러진 목검들이 보였다.

‘아직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로부터 몇주 후 디나로부터 다과회에 같이 참석하자고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도 초대장이 온 다과회인데, 나에게는 맞지 않는 장소라며 엄마가 한번 거절했었던 다과회지만 디나가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같이 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많이 바뀌었네”

함께 마차를 타고 가고 싶다는 디나의 부탁에 따라 나는 지금 디나의 방에 와 있었다.

전에 왔을 때는 최소한의 가구만 있었기에 판타지 세계에도 미니멀리즘인가 뭐시기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디나의 색으로 차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 왕자님을 만난 게 분명해

“저것도 못 보던 그림이네”

푸른 하늘 아래에서 한 여성이 검을 휘두르는 그림이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어디가 익숙한데”

유명한 화가의 모작인 걸까 아니면 저번 다과회 때 본 그림인 걸까 고민하며 그림에 다가가자, 디나가 내 손을 붙잡았다.

“에, 엘리님 다과회에 늦겠어요.”

“그러겠네, 늦으면 쿠키가 줄어드니까 어서 가자”

디나의 마차를 타고 다과회장에 도착하자 반짝거리는 갑옷을 입은 남성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시지요. 엘리님, 디나님”

그중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보고 인사하며 마차에서 내릴 수 있게 손을 잡아 주었다.

여기가 무인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라고 했던가.

김가네, 이가네 했던 전생 전에 비해서, 마리테리아, 카라크라 같이 이름이 긴 가문들이 수두룩하니 이야기를 들어도 기억하기 힘들었다.

디나의 가문도 수시로 메이드들에게 물어봐서 겨우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다.

다과회장은 무기 전시장이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반짝거리는 무기와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품 옆에는 각각의 사람이 서 있었는데, 분위기상 그들의 그 전시품의 주인 같았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네’

아닐 거라고, 상품과 판매원 같은 거라 생각해 보지만 자꾸 사람을 상품으로 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리테리아님 오랜만이에요.”

저번 다과회에서 인사를 나눴다던 귀족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솔직하게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걸 그대로 들어내면 상처가 되니까 최대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후줄근한 차림이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을 마트에서 만난 중증 오타쿠처럼 나는 귀족 영애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찝찝한 기분을 날리기 위한 과잉행동이었지만 영애가 받은 당혹감은 내 상상 이상이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이 밑으로 떨어졌다.

‘잊고 있었어, 아이들에게 내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지’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저 영애가 나를 무서운 사람이라고 기억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디나?”

“참, 엘리님도 저희 같이 붙어 다녀야 하잖아요.”

디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와 팔짱을 끼었다.

“이렇게까지 붙을 필요가 있어?”

“어머님의 부탁이니까요.”

그렇긴 한데, 이건 조금 과하지 않나?

그때 다과회장에 마련된 쿠기가 보이면서 엄마가 왜 이런 부탁을 했고, 디나가 나와 팔짱을 낀 이유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모습이면 양손으로 쿠키를 집을 수가 없어

귀족이 아니라도 보기 안 좋다는 자각은 있어서 나도 나름대로 주의하고는 있다.

그런데 쿠키를 먹으면서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내 양손에 쿠키가 들려 있고 입에는 그 부산물들이 가득 묻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디나가 내 오른팔을 붙잡고 있으면 양손으로 쿠키를 먹을 수도 없고, 디나를 계속 의식할 테니까 나름 공작가의 영애답게 쿠키를 즐길 수 있어

나는 디나의 팔을 더욱 잡아당겼다.

내 몸과 디나의 몸이 밀착되자, 디나는 불편한지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해 디나야, 그런데 공작가의 영애로 살려면 조금은 점잖을 필요가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참아줘

내가 생각해도 이번 다과회는 귀족의 영애답게 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왜 공작가의 영애와 후작의 영애가 팔짱을 끼고 있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과는 다르게 얌전히 쿠키를 먹을 수 있었고, 다른 영애들과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나는 디나가 집어준 쿠키를 먹느라 거의 말하지 못했지만 나에게 오는 질문들은 디나가 대신 받아줬다.

이곳에서의 쿠키는 상업적인 맛이 강했다.

모양은 화려하고 예뻤으나, 맛의 차이는 거의 나지 않았다.

우리 집 요리사나 메이드가 구워주는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가득한 쿠키나, 디나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이 입안 가득 차오르는 쿠키와는 다르게

이곳의 쿠키는 단순하게 '달다'라는 평이다.

내가 쿠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식의 쿠키라면 금방 물리고 말 거야

매일 이런 쿠키를 먹으면 삭막한 사람이 되고 말 거야.

이곳의 쿠키를 먹는 사람에게 한 번쯤은 우리 집 쿠키나 디나의 쿠키를 먹여주고 싶어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닌 건지 디나 또한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적은 양의 쿠키만 먹고 말았다.

*--*

-----------------------------------------


생각하니까 디나의 쿠키 먹고 싶네

“엘리님 입맛에 안 맞으시나요? 쿠키를 드시고 싶단 표정이세요.”

디나는 나에게 주려던 쿠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보여?”

얼굴에 티가 많이 났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그런데 쿠키를 먹고 싶단 표정은 뭐지?

디나는 나를 잡아당기더니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속삭였다.

“제 마차에 쿠키가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천사’

이대로 디나의 쿠키에 중독되어서 다른 쿠키로는 만족을 못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글러 먹은 사람이 될지 몰라. 조심해야 하겠어’

“타르트는 괜찮은데 하나 맛보실래요?”

“쿠키?”

“타…쿠키네요. 여기 드세요.”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언니의 자존심을 지키자고 결심하며 디나가 건네준 쿠키를 받아먹었다.

오늘 내내 디나와 붙어있었지만 아무래도 공작가와 후작가의 영애라 그런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라크라 가문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사람들과 우리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사람들에 의해 디나와 나는 떨어지게 되었다.

‘디나 저 사람들에게 붙들려 갈 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던데, 괜찮으려나’

내 생각대로 디나는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거죠?”

“최근 들어서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카라키라 영애님”

단순하게 들으면 아부를 묻는 말 같겠지만 비꼬는 말투가 가득 들어 있는 말이었다.

‘역시 이 사람들 어머니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네요.’

“네, 요즘 들어서 기분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네요.”

“아, 잘됬네요. 요즘 마리테리아 가문의 영애님이랑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돌던데, 맞나요?”

“그럼요. 엘리님에게는 많이 신세를 지고 있어요.”

“에, 엘리님?”

“그래요. 엘리님”

“매우 친하신가 보네요. 그런데 마리테리아 님에게 실례가 아닐까 저는 걱정이 된답니다.”

“부러운 게 아니고요?”

두 영애는 서로 웃으며 밝은 분위기를 냈지만, 주변에서 상황을 파악한 귀족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디나는 꽤 재미있나 보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디나와는 다르게 귀족들의 이야기는 재미도, 알아듣지도 못한 나는 대충 웃는 척하다가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름 잘 가꾼 정원이네’

정원에 들어서자 다과회장의 시끄러운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며 풀 내음이 맡아졌다.

‘저 애도 초대받았구나’

저번 호수에서 봤던 검은 머리의 소녀가 정원 구석에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강아지는 없나 보네’

이야기는 한 번도 나눠 보지 않았지만 나름 두 번째 만남이라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사람들과 만나느라 지쳤던 나는 휴식을 가지기 위해 앉을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소녀의 검술이 떠올랐다.

‘검을 잡는 요령 같은 걸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검을 잘 못 다루는 게 검술 선생님이 무능하다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

아빠가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정말로 훌륭한 선생님을 구해주셨고, 나 또한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그러나 12살에게는 12살에 맞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솔직하게 그 연세로 매번 갑옷으로 무장한 채 내 목검을 쫓아 뛰어다니는 선생님에게 미안하다.

최소한 검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도 배운다면 나도 선생님도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심호흡을 한 후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내가 뒤에서 나오자 그 아이는 화들짝 놀랐다.

“다과회장은 저쪽이야”

아이는 새로 부임한 메이드처럼 반듯하게 말했지만, 슬픈 생각이라도 했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검술에 대한 요령은 다음에 물어봐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의 발밑에서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흙이 보였다.

“무덤인가요?”

“무슨 소리야, 이건 그냥 흙 뭉치일 뿐이야.”

소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지만, 그녀의 눈 속에는 당혹감이 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무덤이잖아요.“

흙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꽂는 건 전생 전에 나도 해봤던 일이라 익숙하다.

어렸을 때 아파트 주차장에서 날지 못하는 참새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집으로 데려가면 엄마에게 혼나니까 몰래 키운다고 쌀이나 우유 같은걸 가져다주고는 했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참새의 명이 다했는지 더는 내가 준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리 긴 시간을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참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정말로 슬퍼서 엄마한테 사정도 말하지 않고 달려가 울었었다.

그때 엄마와 같이 참새를 묻어 주었는데 저 무덤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때 그 강아지가 죽은 건가’

한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참새와 겹쳐 보이니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떠난 다는건 참 그리운 일이에요.”

너무 12살 답지 않는 말인가?

그렇지만 원래 세상에서 나를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계곡에서 나는 죽은 걸까, 엄마랑 아빠 지금 많이 슬퍼하시겠지라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반드시 천수를 누리겠다고 다짐한다.

“미물일 뿐이야, 그리워할 정 같은 건 준 적 없어”

솔직하지 못한 아이네, 그때 그렇게 행복해 보였으면서

“이 무덤 당신이 만든 게 아닌가요?”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원래부터 여기 있었어”

‘거짓말이네’

저 아이는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걸까, 무덤을 만드는 일이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그런가요? 그래도 이 아이는 누군지 모르지만 행복하겠네요.”

“행복하다고? 그럴 리 없어”

“당신이 만든 무덤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야… 이 아이는 쓸모없어서 죽었으니까”

쓸모가 없어서 죽었다라, 전생에서 한번 죽었을지 모르는 나에게는 화가 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무덤을 만든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은데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검은 머리의 소녀는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무덤은 이 아이를 기억해 주겠다는 증거니까요.”

첫 죽음에 슬퍼하던 나에게 엄마가 해주었던 말이다.

참새는 죽어서 이 세상에 없지만, 내가 기억해 주고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아이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야, 아무도 이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니까. 그 누구도 이 아이를 그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고”

“정말요?”

나는 소녀의 슬퍼 보이는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정말로”

소녀는 내 손을 피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대신 슬퍼할게요. 이 아이가 그리워서 무덤을 만들어준 상냥한 사람 대신”

상황은 대충 파악이 되었다. 단순한 다과회에서 조차 사람을 상품처럼 진열하는 이 가문에서 저 아이는 돈이 된다는 것과 안된다를 기준으로 세상을 배워왔을 거다.

반려견의 죽음에 슬픔이라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 마음을 부정당해야만 하겠지

내가 저 소녀에게 슬퍼해도 된다고 알려주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나는 외부인이라 나보다 가문 사람들이 더 큰 영향을 끼칠 테니까

하다못해 최소한 저 소녀에게 슬픔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내 대답에 소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많은 것들이 이 아이를 막고 있을 것이다.

“너, 이름이 뭐야”

“엘리, 마리테일리아 가문의 영애입니다.”

가문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나를 두고 급하게 사라졌다.

저 아이가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라도 받았기를 바라면서 다과회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금발의 여성이 내 앞을 막아섰다.

웨이브 머리에 붉은 눈동자

고귀함을 담은 듯한 얼굴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움은 내가 이곳에 온 뒤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얼굴이지만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

내가 마리테리아 엘리에게 들어온 체리라면

그녀는

이 몸의 주인 마리테리아 엘리였다.

“광산은 받았겠지?”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미 받아 뒀지”

“반말?”

“...”

짧은 말이었지만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은 떨려왔다.

“내 역할에 너무 빠진 거 같네, 뭐 그건 됐고 일은 실수 없이 진행해”

“알고 있어, 감시나 하지마,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두고 볼게”

마리테리아 엘리는 그대로 복도를 걸어가며 사라졌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는 듯 다과회장으로 돌아왔다.

“엘리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참을... 괜찮으세요?”

“응? 뭐가? 그보다 배고프네, 뭐라도 먹을까?”

쿠키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평소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방금 만난 마리테리아 엘리가 어디서 날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으니까.

마리테리아 엘리는 지금 나와 다른 누군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에 내가 체리라는 걸 들키면 안되었다.

최소한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 될 때까지는

“저기 엘리님”

“왜? 쿠키 하나 먹을래?”

“저 몸 상태가 안 좋네요. 이만 돌아갈까요?”

“…어쩔 수 없네, 우리 먼저 돌아가자”

디나의 마차를 타고 저택을 벗어나자 손 떨림이 멎어갔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몸이 차가워요”

내 손을 살포시 잡은 디나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 끼쳤네, 미안해”

“몸이 차가워요”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디나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날 밤 호수에 빠졌던 반동이 이제라도 찾아오는 듯 이틀을 고열에 시달리며 앓아누웠다.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5

고정닉 1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1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1072518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 대회 & 백일장 목록 [22] <b><h1>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27 23709 14
1398712 공지 [링크] LilyDB : 백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21]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4856 44
1331557 공지 대백갤 백합 리스트 + 창작 모음 [17]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12287 25
1331450 공지 공지 [3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9628 43
1331461 공지 <<백합>> 노멀x BLx 후타x TSx 페미x 금지 [10]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6721 25
1331471 공지 대세는 백합 갤러리는 어떠한 성별혐오 사상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 [9] 샤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30 8292 31
830019 공지 삭제 신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9 91545 72
828336 공지 건의 사항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27 40293 27
1449493 일반 연애는 모모카랑 돈은 스바루한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3 6 0
1449492 일반 네이버에서 백합을 찾으려거든 [1] ㅇㅇ(121.166) 17:01 29 0
1449491 일반 그여름 << 이거 봤어 공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1 19 0
1449490 일반 스바니나 <<<< 인생망했을때 보험 가능 [1] 만달로리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59 44 0
1449489 일반 금발노루 [1] 공혜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57 29 0
1449488 일반 우우 플랜터스 보고싶어서 우럿어 ㅇㅇ(125.177) 16:56 24 0
1449487 일반 음료수가 몸에 안맞다와 [6] ※사츠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52 60 0
1449486 일반 혹시 감사를 표하는 모모카 모모모 카모카 짤 혹시 있음? [2]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6 82 7
1449485 일반 여아 애니 근황 [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6 249 18
1449484 일반 검은인어 유료분 지금 봤는데 [1] ㅇㅇ(222.120) 16:44 54 1
1449483 일반 이번분기 봊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4 44 0
1449482 일반 숏츠 보는데 갑자기 이런걸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3 36 0
1449481 일반 니 나 모 모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3 60 2
1449480 일반 이거 안욱이가 댓글단거야? [9] 천사세이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1 155 2
1449479 일반 걸밴크 최종화... 결국 다이더스를 넘어서지 못한 니나 dapar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41 70 4
1449478 일반 띰띠밍..... [3] ㅇㅇ(121.128) 16:39 63 2
1449477 일반 밤해파리 재밌음?? [4] ㅇㅇ(61.83) 16:34 98 1
1449476 일반 현실세계 어쩌구 2화 나왔던가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30 41 0
1449475 일반 "안욱씨 카노 상을 갑자기 왜 때리시는거에요!" [2] ㅇㅇ(180.65) 16:28 88 1
1449474 일반 니나가 평균임..?? [5] 히후미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6 103 0
1449473 일반 다들 밴드 이름을 너무 못지어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5 76 0
1449472 📝번역 보좌관 메노와 얼음공주 1 [11] 유토니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4 311 20
1449471 일반 천자문콘 추가 짤 제작중인데 [11]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3 109 7
1449470 일반 니나발이작은거냐 모모카발이큰거냐? [9] 00006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0 133 0
1449469 일반 오이는 강아지야 [1] 토끼단조무래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20 42 0
1449468 일반 DLsite에서 오시러브 DLC 처음 샀는데... [1] ㅇㅇ(202.31) 16:20 55 0
1449467 일반 블아)여자아이 둘이서 외출하는걸 뭐라고 했더라?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9 64 1
1449466 일반 8화기점으로 스바니나 개맛있음 Raison_d'egit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8 109 10
1449465 일반 GS25 연양갱 나눔 [4] 만달로리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8 131 0
1449464 일반 사사코이 애니 이 친구들 나오면서 종영하면 안됨? [1] 이토시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7 82 0
1449462 일반 아베무 우이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8] qzpwxo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7 54 0
1449463 일반 아니 걸밴크 2화보니까 더 빡치네 시발 안욱아!! [4] Yuik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7 107 2
1449461 일반 티안나지?안나지?안나지? [4] 토끼단조무래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7 64 1
1449460 일반 사사코이 애니 가져가고 [1] ㅇㅇ(49.170) 16:13 73 3
1449459 일반 ㄱㅇㅂ) 다시는 조별과제 안해 [4] 나리유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11 103 0
1449458 일반 오이는 왜 항상 무츠멍이지 [2] ㅇㅇ(222.117) 16:09 73 1
1449457 일반 이거타키랑 토모리로 바꿔주세요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9 26 0
1449456 일반 세상이 각박하게 느껴질 때 나는 케이온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우이 ㅇㅇ(220.65) 16:09 25 0
1449455 일반 사실 사사코이 OP 이 연출 때문에 구식 연출 정도만 할줄 이토시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8 76 0
1449454 일반 걸드 밴드 크라이 2화 보는 중인데 [7] 히후미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7 116 0
1449453 일반 아키 결혼하면 군대처럼 삽으로 요리하려나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 68 0
1449452 일반 무츠미가 돈 많은 언럭키 토모리네 [2] ㅇㅇ(222.117) 16:03 75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