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오랜만에 내 사랑 뫼르소 떡밥이 잠깐이나마 돌았어서 기분이 좋은 롭붕이다.

뫼르소 일러스트를 한창 보던 중에 바닥의 문양을 보고 머리에 영감이 번뜩 스치고 갔다.
예전에 같은 주제로 글을 썼던 적이 있지만, 스쳐간 영감에 조금 더 탄탄한 설명을 붙여 다시 써보려 한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카뮈의 사상은 실존주의와 부조리주의다. 이방인에도 이와 관련되어 아주 수준높은 고찰이 담겨있지만, 저 "못과 망치"는

이방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므로 일단은 넘어가자. 우리가 오늘 알아볼 것은 카뮈에게도 아주 큰 영향을 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단순히 같은 실존주의자라고 묶어서 이상한 추측이나 하는 거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이해한다.

너무 큰 비약이 들어간 추측은 오히려 불편함만 주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먼저 하이데거가 카뮈의 사상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카뮈의 부조리주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증명해보려 한다.


2. 카뮈와 하이데거의 관계 증명

우선 카뮈의 "부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낯설게 변해버린 세계에서 오는 삶의 통일성의 부재의 감정"이다.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없으니 이미지만 머리에 담아두고 넘어가자.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통일되어있는 세계는 "낯익은 세계"다.

기상, 식사, 출근,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화수목금토일, 이 행로에서 우리는 대개 이탈할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무의미함을 느낀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인간은 "이방인"이 된다. 이때 자신의 세계가 낯설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하이데거는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은 쓸모에 따라 "지시"라는 구조를 지닌다고 보았다.
망치는 못을 지시하고, 못은 판자를 지시하고, 판자는 집을 지시하고, 집은 거기에 사는 목수를 지시한다.
모든 연관 마지막에 있는 인간은 최종목적이며, 이 연관 전체가 그의 세계를 구성한다.

지하철은 회사를 지시하고, 회사는 월급을 지시하고, 월급은 나를 지시한다.
그런데 세계의 최종목적인 내가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이 연관들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연관으로 구성된 세계는 낯설어지는 것이다. 이 때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각설,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멈추겠다. 이쯤이면 카뮈가 하이데거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직접적으로 받았는지 느낌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저 못과 망치에 대해 하이데거를 통해 알아보자.


3.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존재"를 엄격히 구분했다. 존재자는 눈에 보이는 대상ㅡ사람이나 사물ㅡ을 말하고, 존재는 존재하는 방식ㅡ존재자의 상태ㅡ을 말한다.

우리가 집을 짓기 위해 망치를 사용할 때, 우리는 망치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쓸모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존재"는 존재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에, 존재자 망치의 존재는 사고의 대상이 아니다. 이 경우 존재는 "손 안에 있음"이라 부른다.

그러나, 손에 쥔 망치가 부서져버렸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망치의 상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즉,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존재는 "눈에 띔"이라 부른다.

낯익은 도구와의 지시 관계가 좌절되어 우리의 존재론적 사유를 일깨운다.

망치가 망가졌기에 판자를 지시할 수 없어졌고, 우리는 지시 관계에 대한 사유에 눈을 뜬다. 이 사유는 점점 뻗어가 못과의 지시 관계에도 발을 뻗게되고.
결국 망치의 상태, 존재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4. 못과 망치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못과 망치를 예시로 든 것은 내가 아니다. 하이데거가 직접 못과 망치를 예시로써 사용했다.
못과 망치는 실존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하게 망가진 망치란 말인가. 망치에 의해 박혀져야할 못이 오히려 망치를 관통했다.
완벽히 탈선되어버린 지시 관계, 망치를 관통해버린 못! 이 얼마나 눈에 띈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내 머리를 스쳐간 영감이었으며
말 그대로 가슴을 띄게했고 흥분을 자아냈다.

완벽히 망가진 망치! 지시 관계를 뒤집어버린 못에 관통되어버린 망치! 그 위에 서있는 이방인 뫼르소와 낯익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
일러스트가 공개되기 전,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 권총을 들고 서있는 뫼르소를 기대했던 나를 오늘에야 부끄러워한다.
이 얼마나 "이방인"을 잘 표현해낸 그림인가. 실존주의 그 자체를 나타낸 예술이 아니겠는가!

이 예술적 흥분을 한 명이라도 더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글귀 하나를 남기고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