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대회] 인간성 필터앱에서 작성

척력절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23 01:03:39
조회 2230 추천 47 댓글 2
														




나른한 일요일 오후. 


나는 창문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낮잠에 들었다.


기상을 재촉하는 알람 따윈 없을 것을 알기에 무척이나 느긋했다.


새 우는 소리와 산책하는 가족들의 떠도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다, 곧 그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다시 눈을 뜬 곳은 내 집이 아니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내 알람 소리가 어딘가에서 울렸던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을 내며, 그 거슬리는 소리를 어떻게든 치워버리려고 얕은 잠을 쫓아내었다.




분명 알람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손에는 시계가 잡히지 않았다.




가여운 현대인들은 종종 꿈에서도 알람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나도 마찬기지의 처지이다.


결국 꿈으로 치부하고 다시 늘어져있으려는 참에, 조금 깨어난 내 정신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당연히 중고 가죽 소파와 한 쪽이 깨진 TV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위치한 곳은 집보다는 감옥, 더 비슷하게는 벤담의 파놉티콘을 연상시켰다.


인종,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이 각 방에 한 명씩 들어가 있는듯 했다.


방은 커다란 원형의 띠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벽은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대신,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재질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 물질이라면, 그것으로 벽을 쌓은 것 같았다.


건너편 사람의 얼굴이 10년 전 헤어진 동창처럼, 잡힐락 말락하게 보였다.


그런 벽들이 수백, 수천 겹씩 있었다.


파놉티콘이라면 감시자의 방이 있어야할 중심부는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았지만, 한 계단 씩 위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마치 희미한 대리석으로 만든 피라미드 같았다.




내가 막 겨울잠에서 깬 곰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무언가 내 뇌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코마 상태로 목사의 기도를 듣는 느낌이었다.


음절을 분석할 순 없었지만 의미를 이해할 순 있었다.


아까 들었던, 알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도 이것과 같은 것이었다.


텔레파시, 진동, 아무튼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




​인간은 감정의 존재이다.​




아마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다음 순간 나는 내 앞에 흰 종이의 앞에 있었다.


목소리는 그것을 찢으라 말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종이를 비틀고 찢어내자, 나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옴을 느꼈다.




곧 내 옆 사람도 다시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위치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후 내 앞의 벽이 사라졌다.


목소리는 우리가 앞으로 향할 것을 요구했고, 난 한 칸의 층계를 올라 다음방으로 이동했다.





그 뒤 계속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식물의 잎을 찢었고, 책을 태웠으며, 계란을 부쉈다.


아주 정교한 조각상을 깨트렸고, 찬란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신성한 스테인드글라스를 깨부쉈다.


목소리는 계속 앞으로 향하라는 의미를 전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원형의 띠가 아주 조금 줄어든 것을 느꼈다.


소년 가장의 자전거를 부수고, 죽은 딸과의 추억이 담긴 인형을 발로 밟았을 때 쯤이었다.


상황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음 방에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건 아주 작은 벌레였다.


미물이라 부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 작은 생물은 무척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엄지손톱으로 그것을 꾹 누르고, 검은 얼룩을 비벼 닦았다.


다시 파놉티콘 속에 있음을 인지한 뒤,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확실히 사람이 줄었다.


더 이상 무시하기 힘든 숫자로 감소했고, 나는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지에 대한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진 이상하게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만약 - 어떤 심리실험이거나, 몰래 카메라라면?


그런 가정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어렴풋했고, 꿈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었다.




고민 중인 나의 앞에 다시 벽이 사라졌다.


우선은 앞으로 가야했다.




내가 다음으로 만난 것은 쥐덫에 걸린 쥐였다.


그것은 며칠이나 잡혀있던듯 빼쩍마른 몰골의 비참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나는 쥐덫의 쇠를 꽉 눌러 그것의 숨통을 끊었다.




다시 돌아오자, 내 오른쪽에 있었던 라틴계의 중년 여성이 눈에 들었다.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초조한 표정이었다.


바로 옆 방이라 나는 그 모습을 확실히, 아니,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계단을 올라갔지만, 그녀는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나왔던 방이 모두 검게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속을 들여다볼 순 없었다.


사라진 건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꼭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뒤로도 몇 개의 방을 더 지나왔다.


죽여야 하는 동물은 점점 커지고, 가련한 모습을 보였다.


초반보다 탈락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다.


고지가 머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오는 개를 패 죽인 다음 만난 것은, 마찬가지로 동물이었다.


버튼만을 누르면 됐다.


작은 초침소리가 들린 후 삐- 하는 기계음이 이어졌고, 곧 밧줄이 잡아당겨졌다.


나는 질식 대신 목뼈가 부러지기에 생각보다 일찍 끝난다는 지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잘하면 저 건너편의 사람도 보일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인자한 할머니나 어린 소녀, 가족을 죽여야 할 때는 조금 고민이 된 것 같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와닿았고, 꽤나 힘을 들여야 목소리의 요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진짜가 아니리란 미묘한 확신을 가진 덕분에 넘어올 수 있었다.


게다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진 공포도 있었고.







결국 나는 중심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남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부모라도 죽일 수 있는 자신감으로 가득해보였다.


아, 그건 두 세번 전에 이미 했다.


백린탄의 사용을 허가하는 지휘관이 된 다음이었을 것이다.




약간의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나는 무척 친숙한 존재 앞에 위치했다.




그건 반전없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냉혈한임을 주장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왔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피에 온정과 자애가 흐르지 않는 여기 남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죽이라니.




활자 속, 혹은 영상물 속이라 여기고 넘기기에 나는 너무 생생했다.


오히려 현실보다도 더욱.




그것은, 아니, 나는, 꽉 쥔 손으로 삶을 갈구하고 있었고, 나는 내 목을 차마 조르지 못했다.


숨에 막혀 껄떡거리는 소리, 떨리는 몸체와 흐르는 두려움의 감정은 나에게도 똑같이 전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넘겨왔던 방의 그것들을 한 번에 느끼는 지도 몰랐다.




나는 결국 그저 돌아왔다.


단 한 사람만이 앞으로, 위로 향했다.




나는 알 수 없는 탈력감과 공포에 잠겨, 점점 흐려지는 시야를 사력을 다해 붙잡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위치했던 방은 알 수 없는 어둠에 잠기고, 난 실패했다.






그리고 난 떨어졌다.




내 소파에서.






아픈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나는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낮 꿈은 그새 증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공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던가?


내 희미해지던 시야에 잡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던가?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한 계단을 더 올라갔고..


우리는 떨어졌다.




아니다.


그 사람이 올라갔다.






난 결국 한 구절만을 기억에 남길 수 있었다.






'인간'은 감정의 존재이다.



















- dc official App

추천 비추천

47

고정닉 9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4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14803 공지 나폴리탄 괴담 갤러리 이용 수칙 (5.28) [3]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29 6193 32
14216 공지 나폴리탄 괴담 갤러리 명작선 (4.16)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3.17 24855 36
15528 공지 나폴리탄 괴담 작성 체크리스트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4.16 1289 15
14406 공지 나폴리탄 괴담 갤러리 신문고 [1] 흰개(118.235) 24.03.22 2002 23
17958 나폴리 엑스칼"리버"를 몸에 쑤시고 흔들어라 [1] ㅇㅇ(58.233) 01:40 23 1
17957 나폴리 (미완성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1] ㅇㅇ(58.238) 01:11 25 0
17941 기타 괴물이 있어요 [2] 바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49 0
17940 잡담 오랜만에왔는데 [2] J.Brahm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66 0
17939 잡담 언제 찍었대 [1] 커피커피커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70 2
17936 잡담 1주차 : 느껴집니다. [4] ㅇㅇ(172.226) 06.03 167 1
17935 잡담 ㅎㅎ ㄷㄷㅇ ㄴㄹ ㅊㅇㄱㄴ (14.49) 06.03 69 0
17934 잡담 좀 예전에 이상한꿈꿨는데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129 3
17931 잡담 씨발 나폴리탄 꿈 꿨는데 이게 맞냐? [6] ㅇㅇ(211.234) 06.03 670 32
17930 기타 아랫집 대화내용 ㅇㅇ(14.35) 06.03 93 1
17929 나폴리 [AI] 심야의 레스토랑 ㅇㅇ(14.5) 06.03 116 2
17928 기타 정원과 정원사, 그리고 꽃. [2] CAT0805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127 4
17927 잡담 괴이들이 보는 메뉴얼 같은건 없을까? [1] ㅇㅇ(175.215) 06.03 173 0
17926 잡담 갤 오랜만에 왔는데 뭐가 많이 없어졌네 [1] ㅇㅇ(211.235) 06.03 236 0
17925 잡담 그런 괴이 없나 ㅇㅇ(223.38) 06.03 82 0
17924 잡담 오늘 진짜 괴담같은꿈꿨다 ㅇㅇ(39.123) 06.03 81 0
17923 잡담 ㅅㅂ 아침 6시반에 개놀라서 깸 [2] ㅇㅇ(106.153) 06.03 281 4
17918 규칙서 [태영물산 제품 사양서]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205 5
17916 잡담 글 써보려고 하는데, 혹시 이런 주제 있음? [5] 레이션아이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3 315 6
17913 연재 OO함 견시 교육필기 (들키지 말것!) [2] ㅇㅇ(119.205) 06.03 667 12
17911 연재 OO함 당직 지침서 (당직사관용) [3] ㅇㅇ(119.205) 06.03 434 15
17910 연재 OO함 당직 지침서 (현문 부직사관용) ㅇㅇ(119.205) 06.03 389 14
17909 연재 OO함 당직 지침서 (수병용) [2] ㅇㅇ(119.205) 06.03 877 14
17907 잡담 군대가 괴이탐사?소탕? 같은거 하는 시리즈 추천좀 [2] ㅇㅇ(211.234) 06.03 164 0
17905 잡담 설정 짜는거 어때보여? [4] 청포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657 21
17904 나폴리 저주의 비디오 4분의 1조각 아지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149 5
17903 규칙서 규칙서 줄 간격 괜찮은지 봐주라 [6] ㅇㅇ(211.111) 06.02 547 14
17897 잡담 약간 슬픈느낌의 나폴리탄은 잘없냐 [8] ㅇㅇ(211.36) 06.02 341 2
17896 잡담 나폴리탄에 뇌가 절여졌나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260 1
17895 나폴리 나는 그 고기 맛을 잊지 못한다. [2] 사리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559 16
17893 잡담 이 사람들은 나폴리탄 진짜 잘 쓸거 같지않음? [3] ㅇㅇ(61.253) 06.02 1835 51
17892 잡담 대회 채점 언제 쯤 끝날지 알려줄 수 있음? [2] ㅇㅇ(211.111) 06.02 144 0
17891 기타 조사 도중 발견된 기록 모음 [2] 조용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820 26
17890 잡담 뭔가 나폴리탄 같아서 공유해봄 ㅇㅇ(118.235) 06.02 185 0
17889 규칙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 하나비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167 4
17888 잡담 여기서 본건데 찾아주실분 [2] ㅇㅇ(211.201) 06.02 174 2
17887 규칙서 여관에 들여보내면 안되는 것들 [11] ㅇㅇ(118.235) 06.02 1863 60
17886 잡담 최근꺼중에 무미건조한 규칙서 볼만한거 추천좀 [3] ㅇㅇ(36.38) 06.02 235 3
17885 잡담 아쿠아리움 인트라넷 ㅇㄷ감? [2] ㅇㅇ(211.198) 06.02 227 1
17884 잡담 괴담 찾는중인데 그 회사에서 혼자 규칙서 보다가 [7] ㅇㅇ(106.102) 06.02 327 0
17883 잡담 나폴리탄 추천좀 [2] ㅇㅇ(58.120) 06.02 141 2
17882 나폴리 ■■물산 출하제품 이상 분석보고서 ver.0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2 209 3
17879 잡담 그거 시리즈 아는 갤럼 있냐 [9] ㅇㅇ(121.176) 06.02 367 0
17877 규칙서 헤르겔 규칙 작성부 [매뉴얼] [3] ㅇㅇ(58.29) 06.02 886 29
17876 잡담 나폴리탄 보는데 갑자기 기가지니가 멋대로 말하노 ㅅㅂㅋㅋㅋ [5] ㅇㅇ(192.142) 06.02 271 2
17874 규칙서 NC불광점 생존 지침서 [10] ㅇㅇ(175.192) 06.01 1390 13
17873 나폴리 달빛 어스름 한밤 중에 [2] ㅇㅇ(211.178) 06.01 699 16
17872 나폴리 홈쉐어링 원래 이렇게 그지같냐? ㅇㅇ(220.123) 06.01 807 19
17864 잡담 나만 이 문자 받은 거임? [2] 앙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1 515 2
17857 잡담 나폴리탄좀 찾아주셈 [4] ㅇㅇ(118.235) 06.01 237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