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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괴담] 오늘도 심야의 라디오 방송모바일에서 작성

나폴리파스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4.22 20:08:40
조회 515 추천 6 댓글 0


언제나 방송을 청취해주시는 불멸자와 필멸자들, 하찮은 것들과 위대한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25시에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의 진행자, Static Whisper Frequency의 롭입니다.


오늘은,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청취자 여러분을 위한 특별한 여행지 리스트들을 선정해왔습니다.


(스윙 리듬의 경쾌한 피아노와 경쾌한 콘트라베이스, 배경에서 간헐적으로 늘어지는 아코디언이 따라붙는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으셨다면 귀를 기울여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롭이 추천하는 여행지는 그야말로 특별하고, 희귀하며, 여러분의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을 선사해 드릴 테니까요.


흠, 좋아요... 오늘 추천해 드릴 여행지는. 벨루아! 존재하지 않는 곳, 벨루아가 좋겠군요. 그 어떤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누구도 가본 기억이 없는 곳. 하지만 어쩐지 가보신 기분이 들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하하, 그곳 참 좋은 곳이에요. 일단 주민들이 굉장히 친절하시거든요. 그들의 얼굴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없는 걸 보려고 했다가는 청취자 여러분의 약하고 소중한 정신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 벨루아의 주민들과 대화할 때는 어깨나 손쯤을 쳐다보는 게 좋습니다. 대화를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아하하, 말했지 않습니까. 그곳의 주민들은 굉장히 친절하다고. 특히 관광객에게는 유독, 아주, 많이요.


벨루아로 여행을 떠나실 때 준비하실 것들은. 뭐, 어디로 가나 여행의 준비물들은 대개 비슷하죠. 갈아입을 옷, 세안 도구, ■■■, 기타 등등. 사실 관광지라는 게 늘 그렇듯, 여비만 충분히 준비해 가신다면 뭐든 거기서 구할 수 있으실 테니. 두둑한 주머니와 시계만 준비해가셔도 아무 문제는 없으시겠습니다. 아, 벨루아가 다른 건 다 질이 괜찮은데. 시계는 통 엉망이거든요. 모든 시계가 전부 다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니!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부추기듯 속삭인다)


벨루아로 떠나는 방법이요? 오, 아주 간단하답니다. 비행기도 기차도 필요 없죠. 그냥... 지금 근처에 있는 아무 종이와 펜을 꺼내시고, 종이에 지금 계신 공간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을 하나 그리는 겁니다. 문의 형태는 어떻든 좋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이 열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요. 그리고 계신가요? 좋군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제 말을 똑같이 따라 해보세요. 이 문은 없으므로, 어디로든 열립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종이를 열어보세요. 문이 그려진 부분을 접었다가, 펼치시는 겁니다. 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장난 같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청취자 여러분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제 지시를 충실히 따라주신 덕분에 이제 벨루아로 향하기 위한 절차는 모두 끝났습니다. 제 방송이 모두 끝나고, 어떤 문이든 열고 나가시면. 청취자 여러분은 지금껏 보지 못한. 지도에도, 시간에도, 기억에도 기록되지 못한 도시를 만나게 되실 겁니다.


(롭의 흥얼거림)


벨루아에 도착하신다면 팸플릿이 있겠지만. 오, 관광지의 팸플릿을 100% 믿을 수 없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청취자 여러분의 친절한 진행자인 저. 롭이, 특별히 추천하는 곳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리지요.


좋아요, 좋아. 벨루아에서 방문하길 추천해 드릴만 한 곳을 꼽자면. 가면시장, 기억 저수지, 침묵의 극장, 이름 없는 기념품점 정도군요. 아! 시간을 굽는 제과점과, 잊힌 식사에도 방문해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곳에서 하는 식사는 아주 별미죠.


(모든 소리가 얇은 유리막을 통과한 듯 탁하고 멀게 울리며, 첼로는 점점 낮아지다 결국 귀에 닿기 직전에서 멎는다)


가면시장은 벨루아에 간다면 꼭 들리셔야 하는 곳입니다. 뭐, 타이밍이 맞아야만 하지만요. 일주일에 하루씩만 열리거든요. 그날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을 겁니다. 가면시장이 열리는 날은 얼굴이 없는 자들에게 일종의 축제와 비슷하거든요. 남의 얼굴을 쓰고 즐기는 거죠.


(롭의 웃음)


청취자 여러분도 때가 맞는다면 기꺼이 그 축제에 뛰어들어보시길 권장해 드립니다. 여러분께서는 바꿀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한 번쯤 바꾸고, 다른 얼굴이 되어보는 일도 즐겁지 않겠습니까? 아, 다만 주의하시길. 가면을 쓴 채 거울을 보는 것은 금기랍니다. 그래서 시장 내에는 거울이 없지요. 더불어. 종종 가면을 쓴 자신에 취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그 자신을 잊고 만다면. 하하, 글쎄요. 그건 이제 가면에게 먹혀버린 게 아닐지. 가면들도 다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꽤 있단 말이죠.


그 다음은 꽤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기억 저수지, 수면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풍경이 참 아름다워요. 누군가가 잃어버린 기억들로 반짝이는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당신의 기억 속 누군가를 보게 될 겁니다. 사소한 문제는, 흠. 그걸 본 순간 그 누군가가 물 밖으로 올라오고, 당신이 대신 가라앉게 될 거라는 것 정도일까요? 흔히들 등가교환이라고 부르는 녀석이죠.


이 다음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죠. 침묵의 극장, 고풍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계신다면 꼭 들려보시길 바랍니다. 외관이 조금 낡아 보이긴 해도, 관리가 참 잘 되어있거든요. 그 고풍스럽고 우아한 맛은 시간만이 빚어낼 수 있는 법이죠. 극장 안에 들어가시는 순간부터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으니 할 말이 있다면 입장 전에 미리 해두시길 추천해 드리며. 객석에 들어가 앉으시면, 무대에서 여러분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한 배우는 오롯이 몸짓만으로 이야기를 표현 할 테지만. 그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극도의 만족감을 느끼실 겁니다. 단지... 공연이 끝난 후 무언가 사라졌음을 느끼시겠지만. 뭐, 괜찮지 않습니까? 사라진 게 무엇인지 기억하시지도 못할 텐데요.


여행을 갔으면 응당 기념품점을 들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벨루아 내에도 몇 가지 기념품점이 있지만. 저로서는 역시 이름 없는 기념품점을 추천해 드리지요. 문패도, 간판도, 이름도 없는 곳. 그것은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념품이라 말하는 기념품점. 아주 아이러니하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받은 기념품을 손에 드시면, 그것을 아주 소중히 여긴 적 있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더라도 말입니다.


관광을 즐기다가 배가 고프시다면 가실 곳으로는 단연 시간을 굽는 제과점이 아니겠습니까? 이게 벨루아의 명소 중 하나랍니다. 근처를 지나가면 달콤한 시계태엽 소리가 들리곤 하지요.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게 생긴 주인이 파는 하루 치 시간 파이, 아침이 오지 않는 크루아상, 미래의 타르트 등이 인기 메뉴인데. 맛이 참 좋긴 하지만. 너무 많이 먹었다가는 현재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시길!


그리고 잊힌 식사. 여긴 벨루아 최고의 레스토랑이랍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원래 주머니라는 건 여행을 갔을 때야말로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벨루아의 그 어디에도 위치해있지 않지만, 벨루아 내에서 잊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걷다 보면 어느새 잊힌 식사에 도착할 수 있지요.

메뉴판이 비어있다고 너무 놀라진 마시길 바랍니다. 고급 레스토랑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요. 촌스러워 보이고 싶은 게 아니시라면, 그저 차분히 오늘의 식사를 주문하시면 됩니다.

메뉴가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드셔 보세요. 그저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뿐, 분명히 거기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마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익숙하며, 따듯한 맛이 날 것입니다. 충분히 음미하고 즐기도록 하세요.

식사를 마치고 나오신 후에는 다시는 그 맛을 떠올리실 수 없으실 테니까요. 하하, 어쩌겠어요? 이미 값으로 치르신걸요!


제가 추천해 드린 곳 외에도 많은 명소와, 목숨을 위협할 만큼 짜릿하게 즐거운 곳들과, 끝내주는 식당들이 벨루아 내에 즐비해 있으니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충분히, 그리고 무사히 벨루아 여행을 즐기셨다면 이젠 돌아가실 시간이겠지요.

귀가를 마음먹으셨다면,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간단히 돌아가실 수 있답니다. 우선 가지고 계시는...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소개해 드릴 곳이 워낙 많다 보니 방송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지 뭡니까. 부디 기억에 남는 벨루아 여행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종이가 접히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단조로운 피아노 음정 한 줄)



그럼 내일 25시에 또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즐거운 하루 되셨길 바라며. Static Whisper Frequency의 진행자, 여러분의 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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