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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냄비 가득 나폴리탄을 끓인다

고양이는왜오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2.25 17:16:32
조회 16620 추천 76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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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냄비 가득 나폴리탄을 끓인다.


나는 나폴리탄을 정말 좋아했다.

싸고, 맛있고, 또 쉬워서.

오래전부터 나폴리탄을 그렇게나 좋아해 왔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빨갛고 파란 불빛이 번갈아 가며 점멸하고 있었다.


반짝- 반짝-

그리고 다시 반짝---


문득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기억해냈다.

왠지 사람들이 한껏 흥분해 있더라니.


이맘때가 되면 항상 생각나던 얼굴이 있었다.

그녀.


이름조차 몰랐지만, 나처럼 나폴리탄 파스타를 좋아하던 그녀.

반짝거리는 불빛들을 보며 그녀를 떠올려본다.




2

가난한 자취생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나 식비였다.


부모님이야 일찌감치 돌아가셨고, 대학은커녕 일용직을 전전해야만 했기에.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에 살며 월세야 아낄 수 있었지만.

식비는 그렇지 못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외식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나는 간단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자주 해 먹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나폴리탄 파스타가 제일 좋았다.

마트에서 사 온 떨이 식자재를 대충 때려 붓고, 케첩과 돈가스 소스를 막 뿌린 다음, 파스타를 넣고 비비기만 하면 썩 맛있는 음식이 나왔으니까.


‘누가 청년들이 일하기 싫어서 논다고 그러냐…… 에휴.’


나폴리탄을 냄비 가득 만든 다음, 그릇에 대충 퍼담고 침대 앞에 앉았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틀어보니 청년의 실업률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왔다.


댓글창에서는 한바탕 싸움판이 벌어져 있었다.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고통스럽다는 청년들.

그리고 그게 다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일갈하는 꼰대들.

난무하는 날카로운 단어들을 바라보다가 피식,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당장 나부터가 노가다 자리 없어서 깡통 차고 있는데. 나만 무슨 다른 세상에 사는지.’


나에게 꿈 같은 건 사치였다.

미래를 그리기는커녕,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이 먼저였다.


가난했으니까.

배우지도 못했으니까.


노가다라도 하려 했지만, 요즘에는 이쪽도 구인난이었다.

물론 공장 정규직은커녕, 알바도 완전한 사치였고.

그저 매일같이 반지하 방구석에 박힌 채 싸구려 나폴리탄으로 배를 채우는 나날.


적응돼서 그런가.

썩 나쁘진 않았다.

물론 좋지도 않았지만.


“아…… 추워라.”


한기가 스며들어와 몸이 떨렸다.

깜빡하고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밖을 보았다.

새까만 하늘이 점점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오오.”


눈이 온다.

펑펑 쏟아져 내린다.


그 풍경이 썩 아름다워서, 창문을 닫는 것도 잊은 채 잠시 감상했다.

가난한 지방 동네, 어두운 골목길.

아스라이 깜빡거리는 가로등 사이로 내리며 쌓여가는 눈 사이로.


“어?”


눈이 마주쳤다.


가로등 아래에 쭈그린 채, 나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3

반지하는 단어 그대로 지하에 파묻혀있는 집이었다.

창문을 열면 도보가 보였고, 나의 눈높이는 사람들의 발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나는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엄동설한에 얇은 코트 하나만을 걸친 채, 새끼 고양이처럼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


“저게 무슨?”


몸이 먼저 움직였다.

대문을 박차고 나가 여자에게 다가갔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얼어 죽어요. 네?”

“……”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덜덜 떨면서,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춥지도 않나, 아니 지금 손가락부터 다 새빨개졌잖아요. 이러다가 동상 걸려요. 혹시, 갈 곳은 있어요? 길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렇지 않다는 건 사실 짐작하고 있었다.

여긴 사람도 잘 없는, 고령화로 말라 죽어 가는 지방 깡촌이었으니까.


이런 곳까지 와서 길을 잃어버릴 사람은 없다.

나처럼 젊은 나이의, 20대 청년이라면 더더욱.


“……추워요.”


여자가 덜덜 떨리는 입으로 자그마한 소리를 짜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죽의 질감, 그리고 앙상한 뼈가 느껴졌다.

그녀에게 살은 없었다.

너무 심하게 말라서, 가죽과 뼈가 완전히 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일단 들어가요. 이미 얼굴이 새하얘가시고서는, 이러다 진짜 얼어 죽어요.”


여자는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이 집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들이는 건 처음이었고, 그게 생판 모르는 여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

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겠는가.


“일단 옷 가져다줄게요. 많이 누추하긴 한데, 침대에 앉아서 쉬고 있어요. 아, 따뜻한 물도 바로 줄 테니까.”


생각나는대로 후다닥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바를 꺼내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따뜻한 물까지 끓여다가 쥐어주니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고마워요…… 정말로.”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추위는 가셨지만, 그녀의 몸과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당연한 거예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다.

이름은 뭐고, 어쩌다 여기 왔으며, 왜 내 집 앞에서 혼자 얼어 죽어가고 있었는지.


하지만 수많은 질문들은 목 위까지 치밀었을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자그마한 식탁 위에 올려진 나폴리탄 파스타.

이미 다 차게 식어버린 그 싸구려 음식을,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파요?”

“조금.”

“잠깐 기다려요. 만들어둔 게 더 있으니까, 따뜻하게 데워줄게요. 조금 불긴 했어도 먹을 만할 겁니다.”


그녀는 내가 만든 나폴리탄을 먹으며 처음으로 웃었다.

깡마른 몸속으로 새빨간 스파게티 면발이 끊임없이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이지만 웃어버렸다.


“맛있어요. 정말로.”

“다행이네요. 많이 먹어요.”


처음 집에 온 남에게, 처음으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맛있다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웃음이 나오는 까닭은 분명 그것 때문이리라.


아마도.




4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주린 배도 채웠다.

그러니 조금 살만해졌나 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는지.

그 자초지종을 조금이지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쫓기고 있었거든요. 며칠 전에 도망쳐서, 지금까지 계속.”

“누구한테요?”

“조폭들이요. 무서운 남자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채 자신을 팔아넘긴 탓이었다.


인신매매 조직이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돌면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자살 시도도 여러번 했지만, 현세에 강림한 지옥에서는 탈출조차 그리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살 시도는 전부 실패했다.

오히려 고문에 가까운 모진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외투를 벗은 그녀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으니까.


상처 위에 상처가 쌓이고, 흉터가 덧대어진 자국이 가득했다.

팔, 다리,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배를 타고 중국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왔는데, 잠깐 틈이 보여서. 그래서 냅다 도망친 거예요.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냥 계속 달렸어요. 그러다가.”

“한계가 온 거네요. 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춥고 배고파서…… 주저앉아버렸는데. 이렇게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당신이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정말로,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말투가 특이한 편이었다.

보통 ‘당신’같은 호칭을 실제로 잘 쓰지는 않는데.

문득 궁금해져 이유를 물었다.


“오빠라는 말은 좀 싫어해서요. 그렇게 불러달라던 나쁜 사람들이 많았어서.”

“아…… 이해해요. 무슨 말인지.”

“저, 그래서. 물론 이미 도움 받은 건 알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경찰을 부르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녀가 말했다.


“경찰들도 한패에요. 저는 봤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신고하지 않을게요, 정말이에요.”

“고마워요. 당신, 정말로요.”


긴장이 조금 풀려서일까.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녀가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아주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그녀는 그저 찡그린 얼굴을 앙상한 팔로 가린 채 눈물만을 떨어뜨렸다.


습관이 배긴 것이리라.

우는 소리를 내면, 맞아야 했기에.


나는 잠시간 그녀를 바라보며 옆을 지켜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금 진정되었을 때.


“사실 저도 똑같아요, 당신이랑.”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쫓기는 신세거든요.”


그러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을 뻐끔거리며 단어를 고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빚쟁이한테 쫓긴다던가…… 그런 거예요?”


나는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똑같은 피해자뿐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그랬다.

세상의 밑바닥 신세.

가장 아래도 아닌 반지하에서 사람들의 신발에 시선을 맞추며 살아가야 했던, 비참한 우리 두 사람은.


“당신도 많이 힘들었겠네요.”

“당신도 고생이 많았겠죠.”


서로밖에 할 수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작게 웃음 지었다.




5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그녀는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는 갈 곳이 없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이 내리면 노가다를 할 수 없었기에, 내가 집에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4평짜리 작은 방.

그녀의 마른 몸집만큼 줄어든 방은, 동시에 그녀만큼 따뜻해졌다.


세상에 사람만큼 따뜻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배고프다. 밥 먹어요, 우리.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나폴리탄이 좋아요.”

“매일 그것만 먹는데 안 질려요?”

“당신이 만들어준 나폴리탄은 안 질려요. 제일 맛있거든요.”


나폴리탄은 싸고, 맛있고, 쉬운 음식이었다.

가난했던 우린 나폴리탄을 많이도 먹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설거지를 하고, 집 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개며 요리까지 했다.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폴리탄만큼은 내가 더 나았다.


“제가 만들면 이 맛이 안 나는데, 당신이 만들면 이렇게 맛있네요. 신기해요.”

“비법같은 건 따로 없는데. 많이 만들어봐서 그런가봐요, 지금까지.”

“나중에 꼭 배우고 싶어요.”

“많이 만들어 줄 테니까, 당신도 많이 먹어요. 그래서 살 좀 찌우라고요.”


앙상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와 잎을 다 떨어뜨린 나뭇가지.


당장이라도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이 앙상한 나뭇가지로.

그녀는 젓가락을 들고, 내가 만든 나폴리탄 파스타를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고는 입가에 빨간 소스를 조금 묻힌 채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마른 거 좋아하는데.”

“저는 삐쩍 빠른 건 싫어요. 오히려 통통한 게 더 좋아요.”

“당신이 그렇다면야.”


그녀가 빈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한 그릇 더 먹어도 돼요?”

“그럼요.”

“와아, 고마워요!”




6

좁은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겨울의 밤은 길었고,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으며, 창밖은 점점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기에.

점점 세상에서 고립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우린 그 허무감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써 발악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연말 분위기가 가득한데요. 시민들에게 연말 계획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저희 남친이요, 이번에 신라호텔에서 파는 케이크를 사준 거 있죠? 40만원이 넘어가는 케이크인데, 이게 얼마나 예쁜지……]


멍하니 뉴스를 보았다.

내가 사는 세상 이야기지만, 반지하게 고립된 우리에게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수십만 원짜리 케이크를 보며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했다.


케이크에 장식된 초록색은 초콜릿일 거야.

아니야, 분명 생크림일 거야.

혹시 알아? 사탕일지도 모르지.

당신은 초콜렛을 먹어봤나요?

아니요, 아쉽게도 먹어보지 못했답니다.

사실은 나도 그런데.

히히.

크흐흐.


[3달 전, 지명수배가 내려진 살인 용의자 A씨의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다는 소식입니다. 경찰 당국은 최선을 다해 그를 찾고 있지만……]


살인마라니 무섭네요.

저는 별로 안 무서워요.

왜요?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많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아이고야.

그래도, 지금은 조금 괜찮아요. 왜인지 알아요?

흐음, 글쎄요?

세상에 무서운 것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들거든요.




7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대설 특보가 발효되고, 창밖이 완전히 눈으로 뒤덮인 밤에.

잠잘 준비를 마친 나에게 그녀가 다가와 말했다.


“보일러 꺼도 돼요.”

“당신이 춥잖아요. 추운 건 싫다면서.”

“추운 건 싫어요. 배고픈건 참을 수 있지만, 추운 건 정말 못 참겠거든요.”

“그러니까 보일러 켜고 자요. 따뜻하게.”

“하지만…… 보일러는 비싸니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혼자 살때는 보일러 스위치를 눌러본 적도 없었다.


가난했고, 돈을 아껴야 했기에.

이렇게라도 소비를 줄이는 건 없는 이들의 습관이자 아집이었으니까.


“당신이 감기 걸리면 병원비가 더 나와요. 생각해준 마음만 받을 테니까, 그냥 켜고 자요.”

“으응. 아니면, 이건 어때요? 춥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스윽- 하고.


작게 움직이며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작은 방, 작은 침대, 그 위의 우리 두 사람.

그녀가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러면 따뜻하죠?”

“……그야.”

“추우면 말해요.”

“더 세게 끌어안게요?”


온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숨결,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


그녀의 몸에서는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저녁으로 먹은 나폴리탄의 케첩 향에 싸구려 섬유유연제의 단내가 섞여서.


“아뇨.”

“그럼요?”

“그냥……”


그녀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쿵쾅대는 심장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애써 이성을 짜내며 생각했다.


“당신은 이런 거 안 좋아하잖아요. 지금까지 당한 게 얼마인데.”


그녀가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오빠.”

“……”

“나 생각처럼 싸고 쉬운 사람 아니에요.”

“그래도.”

“그러니까, 이건 내가 정한 거예요. 내가 좋아서, 너무 좋으니까.”


처음으로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그 호칭이 그렇게나 경멸스럽고 싫다면서.


동시에, 그토록 참아왔을지도 몰랐다.

우리 둘 모두가.


보일러를 틀지 않았지만, 그날 밤은 따뜻했다.

따뜻하다 못해 더워져서, 새벽인데도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헉헉거리던 그녀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몸에서 김을 풍기며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팔짱을 꼈다.


“맛있었어요?”

“무슨 그런 소리를……”

“크크, 장난이에요. 장난. 나는 오빠 맛있었거든요.”

“아, 아니.”

“물론, 오빠가 해준 나폴리탄 말한 거지만요.”

“으휴, 진짜. 장난치지 마. 난 면역 없다고, 이런 거.”


나와 그녀는 나폴리탄을 좋아했다.

싸고, 맛있고, 쉬워서.


사실 우리 모두가 그랬는데.

그녀와 나는 애써 고개 돌려 외면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꿈을 꾸는 행위였다.


“오빠, 있잖아요. 언젠가. 진짜 언젠가, 우리 문제가 다 해결되면요. 그래서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되면요.”

“나는 오빠랑 같이 떠나고 싶어요.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냥 떠나는 거요.”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조용한 곳으로 가요. 평화롭고 따뜻한…… 숲 같은 곳도 좋겠다.”

“거기서 식당을 여는 건 어때요?”

“대표 메뉴는 나폴리탄. 오빠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식당이라.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행복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


“무서울 정도로 행복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대답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창밖의 세상을 보며, 우리는 그렇게 같은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식당에서 나폴리탄을 먹는 꿈.


수 많은 미래를 새하얀 세상에 그려나갔다.

작은 방 안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한동안 끊겨있던 일이 잡혔고, 나는 새벽같이 공사장에 나갔다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오늘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나폴리탄을 만들어야겠다.

마트에서 큰맘 먹고 소시지도 한 봉 사서, 흐뭇하게 웃으며 집의 문을 열었고.


“……아.”


스르륵, 하고.


내 손가락에 걸려있던 검은 비닐봉지가 볼품없이 떨어져 내렸다.

우리의 자그마한 천국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그녀가 사라져버렸다.

집 안은 서슬퍼런 한기로 가득했다.




8

나와 그녀는 모두 도망자였다.

구석진 곳에 숨어 어떻게든 잘 버텨보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집요했다.


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나도 커다란 상실감이 몰려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여자와 동거를 했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출신도 모르고요?”

“정말로 모릅니다.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아…… 뭐 저야 신고가 들어왔으니 수사는 한다지만. 쓰읍,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녀는 집에 들이닥친 남자들에게 끌려가며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면서.


누군가 그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를 받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녀도, 그녀를 데려간 조폭들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심문을 받는 내내 온 몸을 덜덜 떨었다.

너무나도 추워서 그랬다.

한기를 떨칠 수 없어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처럼 그저 떨고만 있었다.


나와 처음 만난 날의 그녀가 그러했듯이.

추위를 가장 싫어한다던 그녀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나도 무섭고 싫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떠났다.


더욱 구석진 곳으로, 더욱 인적이 드문 깡촌으로.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고립되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녀가 알려준 온기만큼은 잊을 수 없어서.


“추워……”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와 날씨가 개었을 때에도.

나는 그저, 여전히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9

추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작아진 방 안에 숨어들어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녀를 잃어버렸다…….


세상의 시간은 느리고도 진득하게 흘렀다.

몇 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이 가까워질 12월 초의 추운 날에.

나는 그녀를 보았다.


[속보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을 오가며 인신매매를 일삼던 범죄 집단이 소탕되었다는 속보입니다.]


[한,중,일은 이전부터 기밀로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었으며, 범죄 집단이 대거 한국에 들어온 순간을 노려 현장을 급습……]


[각국의 피해자들은 자유롭게 풀려난 뒤, 치료소로 보내져 수사와 함께 사회 복귀를……]


속보로 떠오른 범죄조직 소탕에 관한 이야기.

커다란 배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구조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전부 모자이크가 되어 있어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새하얀 피부, 깡마른 몸, 기다란 검은 생머리.

매일같이 그리워하고 생각하던 그녀의 모습.


그녀는 살아있었다.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장 소중한 그녀가.


정말로 기적처럼 살아있었다.


“아, 아아아……”


나는 참지 못해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이 마구 흐르는데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녀의 습관이 옮아버린 탓이었다.




10

그녀를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만나서, 같이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알았다.


그날 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눈 위에 그렸던 꿈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조용한 곳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롭고 따뜻한 숲속에서.

자그마한 레스토랑을 열어서, 그렇게 같이 살자.


소탕 작전이 성공하고, 피해자들은 전부 구조되었다.

그들은 한,중,일 중에서 원하는 나라를 하나 고를 수 있었고, 정부의 지원도 받아냈다.


자유의 몸이 된 거다.

그렇기에 난 그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숲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숲이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햇살이 잘 들어오며, 평화로운 곳은 더더욱 적었다.

나는 집을 버리고 뛰쳐나와 매일같이 산을 올랐다.

숲을 헤집고, 들판을 가르며, 바위를 기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11

어느 날, 나는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밤이 되어 배도 고파졌다.

그러던 중에, 한 가게를 찾아냈다.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이상한 이름의 가게다.

나는 그런데도 가게 안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갔다.


가게의 인기 메뉴는 나폴리탄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 그녀가 가장 그리워했을 음식.


우리가 같이 꾸었던 꿈의 한복판에서.

그녀가 서 있었다.


“오빠……”

“기다렸지. 미안해.”

“오, 오빠. 아, 흐으윽, 오빠아아……!”


나는 인기 메뉴인 나폴리탄을 주문했다.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왔다.

나는 먹는다.


“맛있네. 저번에 하던 것보다 훨씬 더.”

“으응, 그래도. 오빠가 해주던 나폴리탄 맛은, 아직도. 못 내고 있는걸.”

“조금…… 짜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짤까.”


맛이 짰다.

소금기 가득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서.

내 입으로, 접시 위로 뚝뚝 떨어진 탓일지 몰랐다.


머리가 아팠다.

슬픔, 기쁨, 그 외에도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몰아쳐서 그랬다.


드디어.

그토록 그리워하고, 찾아 해메던 그녀를.

드디어, 드디어, 지금에서야 드디어.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점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다시,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돈은 안 내도 돼요, 오빠.”

“들어가자. 내가 알려줄게.”

“오빠가 해준 나폴리탄…… 정말 먹고싶었는데.”

“걱정 마. 나도 그랬으니까.”


몇 분 후, 나폴리탄이 온다.


그녀가 온다.


나는 먹는다.


“맛있다.”


이번에는 멀쩡한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가게를 나온다.


잠시 후,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여기는 어떤 레스토랑.


인기 메뉴는…… 나폴리탄.




1+1

냄비 가득 나폴리탄을 끓인다.

나는 나폴리탄을 정말 좋아했다.


싸고, 맛있고, 또 쉬워서.

오래전부터 나폴리탄을 그렇게나 좋아해 왔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빨갛고 파란 불빛이 번갈아 가며 점멸하고 있었다.


반짝- 반짝-

그리고 다시 반짝---


문득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기억해냈다.


왠지 사람들이 한껏 흥분해 있더라니.


이맘때가 되면 항상 생각나던 얼굴이 있었다.


그녀.

이름조차 몰랐지만, 나처럼 나폴리탄 파스타를 좋아하던 그녀.


반짝거리는 불빛들을 보며 그녀를 떠올려본다.

싸고, 맛있고, 쉬웠던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분명히 나폴리탄과 닮아있었다.


빨갛고 파란 불빛이 눈 앞에서 점멸한다.


빨간색이 반짝-

파란색이 반짝-


그리고 다시 반짝- 반짝- 하고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삐— 뽀— 삐— 뽀———






“경찰이다! 손들어!!”

“드디어 잡았다, 이 새끼야. 몇 년동안 쥐새끼처럼 잘도 숨었지? 이제 끝이야!!”

“수, 수사부장님! 잠깐 이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주방에.”

“뭔데 그래?”

“냄비 안에, 저게. 끄윽, 우에에엑……”

“이건…… 씨이발, 미친 새끼.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빨간 불빛.

그리고 파란 불빛.


모든 것이 반짝거리는 나의 완벽한 크리스마스.


역시.

나폴리탄은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리는 메뉴였다.






***



이하 작가 후기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심심해서 공상하다가 써봤습니다

이쯤되면 나름 정(?)통 나폴리탄 아닐까요?

아무튼 따뜻(?)한 이야기였으니 좋지 않습니까


재미있게 보셨다면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일지도 모르니까요!


모쪼록 다들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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