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아비도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사막에 빗물이 떨어지고 있다.
오래도록 오아시스를 찾아왔지만 과연 이번에는 기대를 걸어도 좋을까.
응.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어차피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부디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좋으니 작은 물웅덩이가 보고 싶다.
선생님이 오고 나서 긴 시간이 흘렀다.
아비도스를 쪼아대던 까마귀떼는 옛적에 물러갔지만, 그 흔적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간 이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이렇게나 부단히 노력한 것일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막에 떨어진 작은 바늘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그 바늘을 찾아줄 때까지 모래 속에 묻혀 하염없이 쌓여가는 모래 알갱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한 번의 기적이 있었다.
거대한 모래언덕에 파묻힌 바늘을 찾아내 꺼내주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그 사람은 계속 베풀 뿐이었다.
이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덕분에 우리를 옭아매던 사슬 중 하나를 풀어냈고, 우리는 눈을 돌려 오아시스를 찾을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다시 찾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모래언덕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뿐, 광활한 사막에 발을 내딛기엔 우리는 그저 작은 바늘일 뿐이었다.
그래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됐던 길은 조금씩 앞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앞에는 테양 같은 사람이 있었다.
막연하지만 저 태양빛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오아시스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던 적도 수없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 우리는 닿으리라 생각했다.
더디지만 착실히.
그게 우리 아비도스의 장점이라고 나는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 태양은 그 빛을 잃었다.
아비도스만이 아닌 전 키보토스가 사라진 빛에 길을 잃고 혼란을 빚어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으리라.
우리는 그저 지켜봤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크게 솟은 모래언덕의 위에서 바늘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바늘에게 찾아오는 것은 다시금 쌓여가는 모래 알갱이들이란 것을.
호시노 선배가 죽었다.
어째서?
세리카가 실종됐다.
왜?
노노미도 카드만을 남긴 채 자취를 감췄다.
그러지 마.
아야네를 보내줬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없다.
애초부터 나는 본래 가진 게 없었다.
여태 혼자가 아니었기에 착각하고 있었다.
여럿이 모이면 불가능할 듯한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그러니 두려운 건 없다고.
하지만 여럿이 모였다 해도 바늘은 바늘이었다.
누군가 써 주지 않는 한 영원히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밖에 못하는 작고 하찮은 바늘.
우리를 이끄는 이를 잃은 바늘은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니 모든 걸 잃은 나도 쓸쓸히 모래 속으로 잠겨 들어가고자 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뭐가 달랐던 걸까.
모두 같은 바늘이 아니었던 건가.
어째서 나는 같이 묻히지 못하는 거야.
어째서 나는 저 손에 의해 움직여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명백하다.
바늘로써, 무엇을 찔러야 할지는 명백하다.
그러면 나도.
나도 조금은 쓸모있는 바늘이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고 뾰족한 바늘이 되는 거야.
영원히.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왜. 어째서. 어째서 그러는 거야.
아니야. 안 돼. 안 돼. 멈춰.
그러지 마.
그러면 내가.
내가.
기껏 누군가를 찌르는 바늘이 된 이유가 사라지잖아.
정신을 차렸을 땐 빈 바늘구멍에 실이 꿰여있었다.
실은 바늘이 향하는 곳을 따라 군말 없이 따라다녔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바늘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실은 결국 바늘을 따라가야만 한다.
나라는 바늘에 꿰인 이상 실은 나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실은 그저 나를 따라만 오면 된다.
이제 쉬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 이상 실타래마냥 엉켜버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실가닥이니까.
그저 지켜만 봐 줘.
이젠 내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
비가 내린다.
아비도스라는 거대한 사막에 빗물이 떨어지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똑같은 아비도스.
다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아직도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바늘들이 있다는 것.
마치 나침반처럼.
"응. 가자. 선생님."
모래언덕에서 사막 한켠을 바라보다가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은 말없이 품에서 싯딤의 상자를 꺼낸다.
저 차가운 가면 뒤에는 어떤 얼굴이 있을까.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를, 바라보고는 있을까.
"... 아트라하시스의 방주 액세스 완료. 공간 도약 프로토콜, 실행합니다."
쏟아지는 빗물 사이, 잠깐의 정적에 이어 검은 구멍이 허공에 나타났다.
시로코는 이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멍에 뛰어든다.
고개를 돌려 시로코가 바라보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A.R.O.N.A가 걱정스레 바라본다.
하지만 걱정은 필요 없을 듯하다.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물웅덩이들이 고여 있는 듯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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