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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선생님이 죽는 꿈을 꾸고 정신이 붕괴된 히나 이야기

슬로보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5 14:47:35
조회 4027 추천 49 댓글 16
														



소설핫산 모음집


원문


11,502자

약간의 피폐 묘사 있음, 감상에 주의








선생님이 총에 맞았다.

귀에 익은 굉음과, 처음 듣는 비명 소리. 가슴에서 진홍색 액체를 흩뿌리며 천천히 쓰러지는 선생님. 그리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나.


‘아파, 괴로워.’


정신이 쩌적 갈라져버릴 것만 같은 통곡이 터져 나왔다. 기다려 선생님, 지금 바로 처치할게.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굽히려 했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살려줘, 살려줘 히나.’


이미 흐려지기 시작한 선생님의 눈이 애원하듯이 나를 바라본다. 최소한 팔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온 힘을 다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히나… 히, 나.’


결국 선생님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쓰러져 있던 선생님의 입이 움직였다.


‘저기, 히나?’

‘왜 안 구해줬어?’

“...읏.”

‘나, 아팠는데. 괴로웠는데… 히나가 구해줄 거라 믿고 버텼거든?’

‘그랬는데.’


선생님이 벌떡 일어난다.


‘히나? 나는 지금 화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원망스러워.’


생기를 잃은 선생님의 손가락이 내 목에 감긴다.


‘히나아… 야, 소라사키 히나!!’

‘왜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냐고 너는!? 그렇게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나는 네 마음이 무너졌을 때 구해줬는데, 그걸 원수로 갚았네!?’

“서, 선생님… 괴, 괴로워…”

‘괴롭다고? 근데 말야, 나는 더 괴로웠어. 가슴이 타는 듯이 아팠고, 뭣보다.’

‘히나한테 배신당했으니까.’

“아, 커억…”


…선생님, 그게 아니야.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내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읏!? 하아… 하아…”


평소 같았으면 잠이 쏟아졌을 아침. 모든 게 다 귀찮게 느껴져서 다시 이불을 뒤집어쓸지 말지 고민하는 아침.

하지만 지금 나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의식이 맑았다.


“우웁… 웁…”


아아, 구역질이 난다. 한동안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하다가 나는 다시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악몽... 이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자 방금 전 꿈 속의 참상이 떠오른다. 다시 찾아오는 강한 구토감.


“우웁, 우웩.”


참지 못하고 이불을 더럽히고 말았다.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꿈 속의 나에 대한 혐오감.

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로 온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땀을 씻어내기 위해… 나는 욕실로 향했다.








“히나 부장님?”


아코의 부름에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춘다.


“저기, 이런 질문은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괜찮으세요?”

“괜찮냐니, 뭐가?”

“그게. 히나 부장님이 아까부터 한번씩 신음소리 같은 걸 내시길래…”


…신음소리? 일이 너무 바빠서 몰랐는데, 내가 신음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내 몸 관리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

“그런가요… 그럼 저는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


떠나가면서, 마치 내가 그러지 못하니까 걱정하는 거라 말하고 싶은 듯한 눈빛을 던지는 아코. 나는 애써 그런 눈빛을 무시하고 서류 더미에 의식을 집중했다.







…승인. 승인. 승인. 기각. 승인… 보류.

그 대화가 있고 나서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쩌면 시간 단위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지난 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아코가 끓여 준 차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입 안을 적시기 위해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좀만 더 힘내자면서 마음을 다잡고 다음 서류를 살펴본다. 양식은 탄원서 같은데, 그래봤자 또 불만 사항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


역시나 그 서류에 적혀있던 말은.


‘응급의학부 학생이 부상자를 시체라고 부른다.’


…시체. 내 머릿속에 오늘 아침의 꿈이 떠오른다. 지면에 고이는 선생님의 피. 고통에 몸부림치는 선생님의 목소리. 살려달라면서 내게 뻗은 선생님의 팔. 차가워진 선생님의 피부. 일어나서 내 목을 조르던 선생님의 손가락. 분노에 찬 목소리, 욕설, 혼탁해진 선생님의 눈동자.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던’ 나.


“으아아아아!!!”

“히, 히나 부장님!?”


아코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언제 돌아왔을까…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없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 아침과 똑같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욱 강하다.


“아, 코… 미안, 토할 것 같…”

“에, 에엣!? …일단 여기다가 하세요!”


아코가 펼쳐 준 봉투를 향해 뱃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뱉어낸다. 물론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고 두 차례, 세 차례 구토를 한다.

심한 메스꺼움이 가라앉고 나서야 나는 겨우 등을 계속 문질러 주던 아코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히나 부장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아코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설마 그 게헨나의 선도부장이 악몽에 영향을 받아서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있다니, 우스운 것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추태를 드러낸 이상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코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딱히 저는 히나 부장님께 화를 내고 싶은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상태로 평소 업무에 임하셨다는 점에 저희 선도부원들이 감사해야죠.”

“......”

“그냥 조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뭔데? 말해 아코.”


자신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는 진실을 말하도록 강요한다. 어지간히 못 돼먹은 인간이다, 소라사키 히나라는 여자는.

…그러니까 선생님이 죽게 내버려둔 거잖아.

또 다시 위산이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이 이상 아코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으니 나는 애써 참는다.

그런 나의 사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저를 의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건 너무나도 쓸쓸한 중얼거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몸 상태가 안 좋다지만 게헨나의 선도부장으로서… 그녀의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흘려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물론 저랑 히나 부장님을 두고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묻는다면, 그야 압도적으로 히나 부장님이겠죠. 하지만 저도 선도부원 중에서는 나름대로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해요.”


그러니까 그, 하고 말끝을 흐리는 아코. 그 말을 들은 나는 살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아코는 내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선도부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그것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진짜 원인은 그 꿈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코가 제안하려는 것은 아마 나를 쉬게 만들려는 어떤 방법이리라.

휴식. 나에게 휴식이란 수면, 즉 잠을 자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악몽을 꾸는 마당에 잠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봐야 그 기억이 되살아나서 구토를 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수를 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히나 부장님께는 휴가를…”

“저기 아코?”

“...왜 그러시나요, 히나 부장님.”

“정말로 아코가 내 생각을 해 주고 싶다면.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나한테 일을 시켜 줄래?”

“아니, 왜요!? 히나 부장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일을 많이 하세요!”


예상대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반박하는 아코. 그럼에도 나는 아코를 달랜 끝에 정말로 쓰러지기 전에는 의무실에 가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승낙을 받아냈다.







이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 나는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 무더기를 처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악몽의 작용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눈꺼풀을 조금만 내려도 선혈과 원한이 머릿속에 울려퍼질 정도다.

서류 정리. 승인. 혼탁해지는 의식. 원망. 뚜렷해지는 의식.

그런 훌륭한 루틴을 반복하는 시간만이 나의 행복이었다.


“부장님! 히나 부장님!”


이번으로 몇 번째일까. 오늘도 또 그런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왜인지 눈을 반짝이며 아코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만마전에서 히나 부장님에게 맡긴 의뢰입니다.”


…만마전이라. 그러고 보니 한동안 그쪽에서 주는 잡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귀찮은 일들조차도 악몽을 멀리할 수 있는 십자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 잡일이 뭔데?”

“그건… 히나 위원장님을 재우는 거예요!”


…귀를 의심했다. 만마전에서 들어온 의뢰라는 것은 그 마코토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내게 휴식을 요청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쉬라고?”

“그런가 봐요. 자, 히나 부장님. 저쪽에 침대가 있으니까요! 어서요!”


아코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나를 의자에서 끌어내리려 한다. 마코토는 왜 이런 부탁을 한 걸까?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랬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 결과 도출되는 진실은 나를 너무나도 쉬게 하고 싶었던 아코가 폭주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만마전의 이름을 빌리면 선도부장은 반드시 움직인다… 그렇게 생각한 결과 나온 무모한 작전.


“그만해, 아코. 계속 일하게 해 줘.”

“이것도 훌륭한 일이라구요!”


몸을 쭉쭉 잡아당기는 아코. 입으로는 강하게 저항해 봤지만 며칠째 의자에만 앉아 있었던 몸으로는 그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아코, 진짜 그만… 꺄앗!?”


순간 균형을 잃고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부, 부장님!”

“...읏, 아파.”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의자에서 떨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아픈 건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한 폐해일까.


‘아파, 괴로워.’

‘살려줘, 살려줘 히나.’


붕괴 직전의 사고회로에 선생님의 시커먼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두통과 구역질을 불러 일으키고, 위액 말고는 나오는 게 없는 구토를 유발한다.


“우, 우웁!? 우웨엑…”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고통에 눈물이 맺힌 눈으로 바닥에 흩뿌려진 토사물을 바라본다. 카펫에 생긴 그 얼룩은 검붉고, 위액의 역한 냄새와 철분이 섞인 냄새가 났다.


“히, 나, 부장님… 피, 피가.”


아코도 그걸 봤는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너무 많이 토해서 위가 다 닳아버린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또 다시 구토감이 밀려든다.


“...히나 부장님, 죄송합니다.”


그 작디 작은 아코의 중얼거림.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아니, 들리게 하고 싶지 않은 듯한 그 중얼거림이 내 귀에 들려오는 동시에 나는 의식을 잃었다.








“어, 히나가?”


샬레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는 눈앞에 서 있는 게헨나 선도부 학생들의 이야기에 그만 얼빠진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요즘 들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만 하셔서…”

“어떻게든 부장님을 쉬게 해 드리고 싶은데 저희들만으로는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아서요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뵙게 된 거예요.”


갑자기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치나츠. 솔직히 이쪽 일도 일손 하나가 아쉬울 만큼 바쁘지만, 학생의 위기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커피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래서 지금 히나는 어디 있어?”

“지금도 서류 정리를 하고 계세요. 일단은 외출한다고 말씀은 드렸는데 아마 못 들으셨을 것 같아요.”

“부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 것 같아서… 솔직히 좀 소름 끼쳤어.”


아, 말실수했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이미 이오리는 아코에게 초크 슬리퍼*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턱에 손을 얹고 생각한다.

* 양 손으로 목을 감싸 잡은 다음 엄지로 울대뼈를 눌러 조이는 프로레슬링 기술


“치나츠, 히나한테 뭐 이상한 점은 없었어? 평소랑 다른 점이라든가.”

“와앗, 그… 네? 평소랑 다른 점이요?”

“그만, 아코 쨩. 진짜 죽는다고!!”

“히나 부장님을 소름 끼친다고 하다니… 죽어 마땅해…”

“악, 선생님, 도와줘, 나 죽어.”

“자, 이오리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

“대체 뭐냐고 니들!?”


그 뒤 무사히 아코의 구속에서 풀려난 이오리와 함께 고민해봤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 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은 아코였다.


“이상한 점이라고 한다면 있었는데요… 히나 부장님이 웬일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하셨어요.”

“하게 해 달라고? 쉬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쉬게 해 달라고 말씀해주셨으면 이야기가 빨랐을 텐데요…”


히나는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극도의 귀차니즘 환자다. 그런 히나가 일을 시켜달라 하고, 더군다나 며칠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니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구토를 하시면서도 일을 계속하시는 거예요… 물론 히나 부장님께서 토를 하셔서 저희가 뒷정리를 하는 건 전혀 상관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히나 부장님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요… 흑.”


목소리를 떨며 내게 호소하는 아코.

일하게 해 달라고 히나가 부탁을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밤낮으로 끼니도 챙기지 않고 일을 한다… 말 그대로 토를 할 때까지.

…아니, 그게 아니다.


“히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선생님?”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목적과 수단이 히나에게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오리를 옆에 두고서 내심 나는 조바심이 났다. 왜냐하면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히나는 지금 심각한 고통 속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히나의 목적은 일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구토를 하는 지경이 되어도 신경 쓰지 않아.”

“그래서 우리가 걱정되니까 이렇게 샬레까지 온 거잖아?”

“...그런데 그게 반대라고.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맞아 치나츠. 내 생각에 히나의 목적은 수면과 휴식이 없는 상태… 그 자체야.”

“아마 히나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아. 그것도 사람이나 그런 게 아니라 개념적인 무언가야.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요한 게 수면과 휴식의 배제. 즉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히나는 게헨나 선도부에 쌓여있던 업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히나 컨디션 난조의 진실이야.”


선생님, 이라 부르는 치나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씀하신 대로 그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부장님이 멀리하고 있는 그 개념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그건…”

“악몽, 인가요.”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아코의 백람색 눈동자를 향했다.


“히나 부장님에게 휴식이라는 건 그저 낮잠을 자는 거예요. 그런 히나 부장님께서 잠을 줄이려고 행동한다는 건 분명 그 잠에 원인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수면이라는 행위에서 무엇보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악몽이죠.”


그렇게 말한 뒤 아코는 선생님의 가설이 만에 하나 맞다고 가정할 때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그래, 아코…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해. 하지만 사실일지도 몰라.”

“그럼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한다.


“...우선 히나의 목적이 일을 하는 것 자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쉬게 만들어야 해. 그건 너희들에게 맡길게. 하지만 만약 히나의 목적이 잠을 자지 않는 거라면… 치나츠, 부탁할 게 좀 있는데.”

“네.”

“기절시키는 약 같은 거 없어?”

“네… 네!?”

“잠깐, 선생님!? 그런 살벌한 물건을 치나츠가 갖고 있을 리가…”

“으, 으음. 일단 가지고는 있는데요…”

“갖고 있다고!?”

“그럼 됐어. 그걸 아코한테 줘.”


아코가 두 손으로 주사기에 담긴 기절 약을 받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입을 연다.


“히나가 악몽을 꾸기를 두려워하는 거라면 강제로 잠을 재우는 건 절대 금물이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방금 받은 그 기절 약을 히나한테 주사해.”

“그걸… 왜 저한테?”

“...아코 쨩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오리.”

“아코 쨩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아무튼 부장의 오른팔이라고 하기에 딱 걸맞는 실력의 소유자야. 뭐 안 그랬으면 부장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부장님은 나랑 치나츠가 불러도 보는 척도 안 하는데, 아코 쨩이 부를 때만은 고개를 들잖아… 그러니까 그, 말은 잘 못 하겠는데…”

“그렇대, 아코.”


아코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내 포기한 듯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이 약은 잘 받아 두겠습니다.”

“좋아. 자, 그러면 지금부터 잘 들어봐.”


그 한 마디에 선도부 세 사람의 시선이 내 얼굴로 모였다.


“여차할 때 히나를 기절시키고 나면 날 불러줬으면 해.”

“싫습니다.”

“야, 아코 쨩…!”

“저희 쪽에서 먼저 상의하자고 해 놓고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되겠지만 이건 선도부의, 게헨나의 문제예요. 영구 중립을 표방하는 샬레의 선생님으로서 이 이상 깊이 관여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선생님을 무방비 상태인 히나 부장님께 접근시켜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뒷부분에 다소 사심이 담겨있는 것 같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아까도 말했지만 만약 히나가 그냥 일하고 싶은 것뿐이라면 어떻게든 쉬게 해 주고 싶으니까, 그 방법은 너희들에게 맡길게. 하지만 만약 히나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거라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여야만 해. 학생들의 불안감은 나 같은 어른이 풀어줘야 하니까… 나를 믿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아코, 이오리, 치나츠. 너희가 히나를 도와주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야.”

“...!”

“윽…”

“...”

“부디 나를 의지해 줘. 나도 히나를 구해주고 싶어. 사실은 이런 데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히나를 안아주러 가고 싶어…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약할지도 모르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히나의 빛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야.”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긴 침묵. 그것을 깨뜨린 사람은 또 아코였다.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할 수 없죠. 좋아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선생님께 연락할게요… 의지해 줬으면 할 때 의지해 주지 않을 때 그 괴로운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코…!”

“근데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 온 건 어디까지나 히나 부장님을 쉬게 할 아이디어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럼, 히나를 잘 부탁할게.”


…분명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 아이들의 걱정은 더욱 컸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나는 다시 서류 더미 앞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는 어디일까.

어렴풋하게 펼쳐지는 시야에 나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코에게 불려서 팔을 붙잡히고, 바닥에 쓰러져서 토하고, 그리고… 뭐였지.

맞다. 기억났다. 목에 무언가 쏘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여기까지 왔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의식이 이곳이 게헨나 휴게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어느새 침대에 눕혀진 모양이다.

잠이 든 건지, 정신을 잃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악몽을 꾸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언제 또 다시 뇌리에 떠오를지 모르는 지금, 이대로 자고 있는 건 그닥 득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아파, 괴로워 히나.’


나도 아파.


‘살려줘, 살려줘 히나.’


나도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히나? 나는 지금 화내고 있는 거야.’


아아… 나한테 화가 났구나. 선생님이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로.


‘그리고 원망스러워.’


나는 원망받고 있구나. 선생님이…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들 만큼.


‘왜 나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냐고 너는!? 그렇게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나는 네 마음이 무너졌을 때 구해줬는데, 그걸 원수로 갚았네!?’


죄송해요 선생님. 잘못했어요.


‘괴롭다고? 근데 말야, 나는 더 괴로웠어. 가슴이 타는 듯이 아팠고, 뭣보다.’

‘히나한테 배신당했으니까.’







“으아아아아아!!!”


배신했다고? 내가? 선생님을?

이런 내 곁에 있어주던 선생님을, 내가 죽게 내버려뒀다는 건가?


“아아아아아아!!”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내 뺨을 후려친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죄책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어둡다, 어둡고, 호흡이 얕아진다.

…안 돼. 또 토할 것 같다. 솟구쳐 올라오는 쇠 냄새가 나는 액체를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짜내듯이 토해 낸다.

와락.


“선, 생님…?”


눈물이 맺혀서 흐려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가슴 언저리가 붉게 물든 선생님의 모습. 그리고 겹쳐 보이는 선생님의 시체.


“우웁, 우웨엑…”

“히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무언가 내 등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중요한 순간에 움직이지 못해서. 이런 내가 선생님한테 원망받고 미움받는 건 당연하겠지.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 그리고 멈출 줄을 모르는 구역질과 두통. 지옥의 우리 속에 갇혀버린 나는 이제 더 이상 발버둥치지 말자고… 마음을 꺾을 결심을 한다.

그때였다.


“...히나, 들려?”

“이, 건…”


어느새 나는 따뜻한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두근, 두근. 그런 일정한 리듬… 박동이 들려온다.


“내 심장 소리… 이게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가 됐으면 좋겠는데… 만약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는 히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구한다고? 나를? 이렇게 쓸모없는 나를?


“...선생님.”

“응?”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아니, 믿고 싶다. 선생님을 믿고 이 악몽을 끝내고 싶다.

언젠가 선생님에게, 웃는 얼굴로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하기 위해.


“선생님은 나를 원망 안 해?”

“전혀.”

“선생님은 나한테 화 안 났어?”

“전~혀.”

“그럼 선생님은 날… 좋아해?”


아아. 따뜻함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 악몽도, 내게 심어졌던 비참함도,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릴 기세로.


“...응. 너무 좋아해, 히나.”


그 순간, 내 안의 피로 물든 선생님은 사라졌다.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은 다정한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잠… 들었나.”


다시 한번 히나의 얼굴을 보니 얼굴에 짙은 다크서클이 생겼고 뺨도 움푹 파여 있다. 며칠은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생님, 히나 부장님은요…?”

“방금 막 잠들었어.”


마치 타이밍을 맞춘 듯이 아코가 방으로 들어온다.


“정말이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평온하게 주무시는 표정이에요.”


그렇게 기쁜 듯이 말하는 아코. 얼떨결에 히나가 자는 모습을 평소에 관찰한다는 사실을 커밍아웃한 것 같기도 한데. 못 들은 걸로 하자.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한 가지 사과해야 할 일이 있어요.”

“사과해야 할 일?”

“네. 얼마 전에 샬레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신 가설이 있었죠. 결과는 선생님의 가설대로… 아니면 그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에 저는 반신반의했어요. 그 히나 부장님이 설마 정말로 악몽 때문에 시달리고 있을 리 없다고. 그렇게 정신이 나약한 분일 리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늘 저는 만마전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억지로 히나 부장님을 재우려 했어요.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분명 일이라는 명분을 들면 휴식을 취하실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네요. 히나 부장님에게 상처를 주고, 구토를 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선생님에게 기댔는데… 이래 놓고서 히나 부장님의 오른팔이라는 말을 들을 자격은 없겠죠.”


콧물을 훌쩍 삼키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에…?”

“아코가 하려던 건 히나를 생각해서 한 일이니까. 결과야 어찌됐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하지만 저는 히나 부장님을…”

“정 그렇게 상처를 준 것 같으면 히나랑 직접 이야기를 해 보면 어때? 아마 히나는 너한테 사과를 하겠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 이래저래 있을 테니까… 다시 히나랑 같이 하나씩 헤쳐나가면 돼.”

“그럴까요… 아뇨, 그렇죠. 맞아요. 히나 부장님께서 일어나신 뒤에 준비가 되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입원은 피할 수 없겠지만요.”


아코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긴장의 끈이 끊어졌는지 소파에서 졸기 시작한 아코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나는 샤워실로 향했다.






…선생님과 손을 잡았다. 선도부원들 앞에서였지만 용기를 내서 손을 잡아 보았다. 선생님의 손은 생각보다 더 크고, 단단하고,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그런 꿈을 나는 꾸었다.


“좋은 꿈… 이었네.”


눈을 떠 보니 처음 보는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일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히나 부장님!”

“좋은 아침, 부장...”

“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어… 다들, 뭐야…?”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창가에 걸터앉아 있던 사람이 나를 보며 말했다.


“히나, 잘 잤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건 결코 악몽이 재림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구역질도 두통 때문에도 아니었다.


지금 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좋은 아침이야, 다들.”


넘쳐흐르는 애정과 감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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