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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말 로마 (3) 재건된 세계

할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3.25 13: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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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일뽕들과 비슷하게 유목 생활을 하고 있는 디씨 역덕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그들의 주요 서식지 몇군데에 동시에 올라갈 것임


롬투에서 분제로, 분제에서 아틸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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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전후 제국의 새로운 통치 계급은 본인들이 재건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Reparatio Saeculi, '회복의 시대'는 이 시기 주화와 문서에서 즐겨 사용된 문구였다. 4세기는 로마령 브리튼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다. 황제들이 라인 연안을 평정하자, 갈리아에서는 새로운 귀족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아우소니우스처럼 조부가 난민으로 죽은 자들이 이후 두 세기 동안 이어질 대토지를 소유했다. 아프리카와 시칠리아에선 대지주들의 dolce vita, '달콤한 인생'을 묘사한 화려한 모자이크들이 별 기복 없이 3세기부터 5세기까지 쭉 나왔다. 


4세기의 부흥은 분명히 강조해둘만하다. 고대 말의 급격한 종교적, 문화적 변화는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계에서 벌어진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변화의 배경은 부유하고 유연한, 고전기와는 다른 어떤 구조를 갖게 된, 사회였다. 


이 사회의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당대인들에게나 역사가들에게나,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격차였다. 서방 제국의 사회와 문화를 지배했던 귀족 계층은 평균적으로 1세기의 귀족들보다 다섯배나 부유했다. 이 시기 한 원로원 의원의 무덤에서 산더미 같은 금사(golden thread)가 발굴된 적도 있었다. 


도시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도시들의 중요성은 축소됐다. 로마의 외항 오스티아를 예로 들자면, 4세기에 지어진 호화로운 저택들은 2세기에 지어져 직공들이 거주하다가 버려진 주택들의 돌로 지어졌다. 하지만 대도시들은 여전히 많은 인구와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다. 콘스탄티노플의 급격한 성장이 한 사례다. 324년에 지어진 이 도시에는 4세기 무렵 이미 4388개에 달하는 저택(mansion)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지중해 세계의 부는 사회의 꼭대기로 빨려 들어간듯하다. 원로원 의원의 연간 수입은 금화 12만개에 달했고, 콘스탄티노플 궁정의 신하는 1000개 정도였다. 하지만 상인들은 평균적으로 200개에 불과했고, 농민은 1년에 5개 정도를 벌었다. 


이런 변화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세금이었다. 지세는 350년 무렵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 즈음 지세는 농부의 연 소득 3분의 1 이상이었다. 세제는 경직되었고 부담은 불균등했다. 로마 제국의 양대 적, 시간과 거리가 최대의 승리를 거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세무조사 자체는 열심히 행해졌으나 이렇게 큰 사회에선 결코 완전하거나 충분할만큼 자주 할 수는 없었다. 조세포탈이 만연했고 나머지 불운한 자들의 부담만 갈수록 늘어났다. 황제들도 이런 문제 자체는 알고 있었기에 면제와 특사, 탕감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안전 벨브에서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도 같아서, 단기적인 압력 해소는 할 수 있었어도 부담의 재분배 같은 문제 해결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제국 서반부에선 황제의 세금원이 대지주들에게 잠식 당하고, 소농들만이 세리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압력이 강한 사회가 꼭 경직됐거나 불황에 빠진 사회인 것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4세기 초반의 사회는 예외적으로 상승의 길이 열려 있는 사회였다. 사람, 기술, 이념 같은 분야에서 200년 전후였으면 저급하고, 야만적이고, 촌스러운 것으로 간주됐을 것들이 이 시기에 크게 약진했다. 


새롭게 형성된 귀족층은 상당수가 지방에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4세기 무렵 대부분의 원로원 의원들은 로마에 발을 들여본 적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향촌 사회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맡는 공직들도 대부분은 그 지방에서 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보통은 이미 자신이 대지주로서 거주하고 있던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무를 볼 때도 사인으로서 방문했던 도시와 거주했던 빌라에서 머무를 수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수평적으로' 좁은 엘리트들이 만들어졌지만(또한 이것은 제국 사회사의 진전에서 예전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통치자들의 영향력이 지역 사회에서 바닥까지 깊게, '수직적으로' 닿을 수 있게됐다. 세금이 거둬지고 병력이 모집된 것은 이들 지주들이 농민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주들은 법정에서 평민들의 대리 역할도 했다. 지역 유지들이 판사의 옆에 앉아 지역의 법적 문제를 다루는 일이 공공연해졌다. 세리들의 공포로부터 하류층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자들은 바로 그들 뿐이었다. 2세기와 3세기 초까지 흔한 모습이었던 농민의 제국 법정에 대한 직소는 이 시기엔 사라지고, 보호와 탄원은 법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후원자들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중세기의 신자들과 천국을 중재하는 '수호 성인'의 관념은 후기 로마 시대의 현실이 투영되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수직적 관계가 언제나 폭압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로마인은 사회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개개인간의 관심과 충성에서 우러나오는 온기만이 광대한 제국을 묶어줄 수 있었다. 지역 유지들은 열렬한 충성심의 대상이 되었다. 로마 시를 예로 들자면, 현지의 유력자들은 제정 성립 이후 잃어버린 영향력을 다시 얻었다.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도시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후기 제국에서 귀족들을 묘사한 그림에는,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그를 지지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배경에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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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로마 사회에서 영향력이란 것이 위에서 아래로만 발해진 것은 아니었다. 신 엘리트층은 전에 없이 개방적인 집단이었다. 이 시대에 피어난 예술 사조는 공예인들과 후원자들 모두가 이전 세대가 따르던 제약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표준화된 고전 예술품들의 대량 생산은 3세기 중엽에 중단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가까운 곳의 사조에 끌리기 시작했다. 지방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새로운 화풍을 그려낼 수 있었다. 4세기의 모자이크와 조각들에서 보이는 생동감과 표현력은 낯설고 전위적인 지방 전통들의 영향이 강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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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묘사의 변화와, 고전적 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전체적으로, 4세기의 사회는 두가지 움직임을 보였다. 최상층에서는 부가 집중되며, 사회적 피라미드의 고점이 높아졌다. 이것이 후기 로마와 그 이전 사회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도시 생활의 질적 차이를 낳았다. 우리가 2세기 로마 도시를 관찰하며 받는 인상인 그 기적적인 활기는 로마 상류층 사회의 특정적인-그리고 변화중인- 발전 단계를 보여준다. 그 시기에는, 엇비슷한 위치의, 서로 잘 아는 사이의 귀족들이, 그들이 사는 도시에 건물과 조각상 같은 값비싼 장식품들을 쏟아부어가며 명예를 놓고 경쟁했다. 4세기 무렵이 되면 사회적 지위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놓고 벌어진 싸움이 마무리됐다. 공공시설에 대한 기부가 아니라, 황제가 하사한 작위와 공직이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재가 투입된 공공건물의 건설은 사그라든다. 4세기 도시의 공적 생활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광장과 공적 장소들을 떠나, 교외 지역을 주목해야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동방의 카펫만큼이나 웅장한 모자이크 바닥들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로마 권귀들의 부를 증언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주요 건축물들은 궁전(대저택)들과 교외 빌라들이었다. 오스티아에 세워진 궁전들을 예로 들자면, 하나하나가 각자 독립된 하나의 세계였다. 커튼이 드리워진 회랑들, 여러 색깔의 대리석들로 만들어진 벽들, 바닥에 깔린 무지갯빛 모자이크들은 호화로운 은거 생활의 분위기를 풍긴다. 수도 기술의 발달조차도 개인 목욕탕 같은 사치에 활용되었다. 이 시대의 공공 생활은 말하자면 조금 더 사적인 무언가였던 것이다. 이런 궁전들에 서있노라면, 개인적 친분의 배양과 은둔자들의 연구, 규방에서 꽃피는 재능과 종교적 기벽들이 이전 시대의 공공연한 축하연들 같은 것보다 더 중요했음이 체감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지역화된 생활이 로마 문명의 일부분을 이전보다 훨씬 넓고 보편적으로 전파하기도 했다. 보르도에서 안티옥까지 전 지역에서 지방 귀족들이 제국의 정부에 똑같은 수준으로 봉사했다. 그보다 밑에 계층에서는, 가난한 지방민들이 드디어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생각하게 됐다. 갈리아와 스페인 지방의 '로망스'어 발달과 켈트어의 퇴조는 고전기 로마 제국의 산물이 아니다. 4세기와 5세기의 지주, 세리, 주교들의 지속적인 영향이 그러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많은 지역들이 3세기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로마 제국의 운영에 온전히 참여하게 됐다. 군인과 군인 황제들을 대거 배출한 다뉴브 변경은 로마인의 생활에 열정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숱한 광적인 전통주의자, 영악한 행정관, 용감한 꼴통 이단 주교들이 이 시기 이 지역에서 배출됐다.


야만 세계조차도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이전 시대 지중해 세계와 제국의 변경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경제적, 문화적 둑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라인과 다뉴브의 강변에는 부유한 빌라와 코스모폴리탄적인 거주지들이 대거 들어서 중부 유럽의 덜 발전된 족속들을 유혹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둑의 붕괴가 로마 제국의 경계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는데, 제국 경계 안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로마인으로 여기고 외부를 상대로 더 굳건히 단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인 강 중류 같은 곳에서는, 경계 지방까지 확장된 문명이 로마인과 야만인 사이의 위험한 공생 관계를 만들어냈다. 검은 숲 지역에서 갈리아를 위협해온 알라만니족은 이미 일정 부분 로마화되어 있었다. 그들의 전사들은 로마식 빌라에서 살았고, 국경 너머에서 그들을 감시 중인 로마 장교들이 착용하는 것과 똑같은 허리띠와 브로치를 착용하고 살았던 것이다.


동방에서도 헬레니즘 시대 이후로 쭉 침묵해왔던 지역들이 갑자기 인재들을 배출했다. 깡촌 카파도키아에서는 뛰어난 주교들이 끝도 없이 나왔고-이들 중 가장 유명하여 '카파도키아 교부'들로 불리는 자들만해도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같은 사례들이 있다- 안티오키아의 고전 문학 강의실에 젊은이들을 한가득 보냈다. 로마 제국이 의도적으로 벽지로 묶어놨던 이집트도 빠르게 되살아났다. 상 이집트의 농부들은 최초로 수도원 문화를 만들어냈고, 같은 지역의 도시들에서는 재능 있는 그리스 시인들이 배출됐다. 


이렇게 새로이 넓어진 로마의 지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이들 새로운 로마인들이 '로마 제국'을 인식한 방식이 기존의 그것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기존에 충성심의 대상이 되던 것들은 지나치게 멀거나 추상적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일부 고립된(어느 정도는 사회와 연계되어 있었지만) 집단을 제외하면 원로원에 대한 노스탈지아는 무의미했다. 그리고 라틴 세계 밖에서는 로마 시에 대한 숭배도 존재하지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 동료들은 열렬한 로마인이면서도 평생 로마는 한 번만 방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해보였다. 동방 그리스어권에서는 황제가 곧 제국이란 것이 명백해졌다. 고대 말 일어난 황제권의 상승에는 이런 관념이 배후에 있었다. 동방 제국의 속주민들은 아주 열성적인 로마인들이었다. 그들은 이후 천년 동안 스스로를 Rhomaioi라 불렀으며, 근동 지방에서 제국은 언제나 룸으로, 기독교인은 루미로 불렸다. 이러한 충성심은 복잡한 원로원 전례 같은걸 따르면서 체감된 것이 아니라, 장엄한 몸짓과 속속들이 보는 눈으로 온 로마니아의 주민들을 굽어살피는 황제의 조각상과 이콘 앞에 무릎 꿇으며 체감된 것이다.


서방 제국과 동방 제국의 차이는 이런 충성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동방에서는 제국에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고 더 부유했다. 이 때문에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동방에서 더 깊게 뿌리내렸고, 대중적인 모양새를 갖췄다.


공화정 시대 이래로 서방의 대부분은 낙후되어 있었다. 서방의 원시적인 경제는 한 세기에 걸친 과중한 조세를 견뎌낼 수 없었다. 5세기 무렵 서방의 부는 극소수 가문들에 집중됐다. 모든 속주에서 평민과 제국 정부 사이에는 막강한 귀족들이 서 있었다. 동방에서는 교역의 발달과 소도시들의 번영으로 더 평등한 사회가 유지됐다. 그리스 도시들의 지주들은 아주 부유하고 아주 보수적이었지만, 갈리아와 이탈리아 전역이 대여섯개 씨족에게 장악 당했을 무렵에도 동방에서는 겨우 안티오키아 일대를 놓고 최소 열개의 가문이 경쟁하고 있었다. 그리스계 대지주들의 영향력과 관심사는 여전히 자신의 도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가문들이 도시에 대한 공헌으로 경쟁하는 전통도 남아 있었다. 튼튼하게 형성된 중산층은 대지주들에게 압도되지 않았고, 이들은 콘스탄티노플 정부에 잘 훈련되고 충성스러운 공무원들을 공급하는 마르지 않는 저수지 역할을 했다. 


또한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의 농민들은 서방의 농노들과 상황이 현저하게 달랐다. 이들은 도시에 작물을 내다 팔아서 지대와 세금을 메꿀 수 있을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그덕에 대지주들의 보호를 청하지 않고 조세를 부담해낼 수 있었다. 5세기 중엽 서방과 동방의 환경이 달랐던 것에는 이들 소시민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온 갈리아가 농민 반란에 휩싸인 와중에도 북부 시리아의 농민들은 새 집을 돌로 쌓아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길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소작농들은 관개 시설을 유지하며 갈릴리 호와 네게브 사막에 발랄한 모자이크가 깔린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이집트의 농민들은 그들 특유의 고집스런 독립심과 독창성을 거대한 수도원 단지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고대 말 세계의 유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서방과 동방의 분리는 이토록 보잘것 없는 자들 사이의 뚜렷한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4세기와 5세기의 도시 둘이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서) 얼마 전에 발굴되었다. 오스티아와 에페수스가 그 곳이다. 둘 모두, 그 건축과 민간 생활의 흔적에서 고대 세계의 질긴 영향력으로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오스티아의 모자이크는 중세 미술로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1세기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전통과도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후기 제국의 다른 모든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관점의 차이만이 이들을 고전 세계와 아무 연관 없는 무언가로 보이게 만든다. 고전기를 다루는 학자들은 지나치게 1세기 로마 제국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술과 공적 생활면에서 트라야누스부터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 두 세기 동안 이뤄진 길고 점진적인 변화를 잊곤 한다. 


발굴된 것 중, 두가지 요소만은 이전 시대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도시에서 모두 특정한 양식의, 굳어 있고 눈을 치켜뜬 모습에서 내면과 영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이는 조각상들이 발굴됐다. 두 도시 모두 거대한 기독교 성당이 세워졌다. 이 두 요소들이 바로, 4세기 '회복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종교와 문화가 서기 200년의 고전 시대와는 막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려면 우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경험을 분석하고, 로마 사회의 각기 다른 영역을 봄으로서 2세기, 3세기와 4세기 지성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변화를 추적하고, 지중해의 대도시에서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과 불안을 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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