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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그래도 우리는 대항한다 - 160

우라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3 23:53:23
조회 591 추천 19 댓글 3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크으, 달에 발 내딛으면서 이거 한 마디 안 해줄 수 없지.


그리고 예정되어 있던 생방송이나 그런 요식행위가 다 끝나자마자 나는 다음 절차에 들어갔다.



내가 가져온 메뉴얼과 부품에는 착륙선 일부 부품을 분해해서 월면차를 만드는 법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달렸다.



내가 있는 곳은 원 역사에서 지혜의 바다라고 불린 곳이었다.


바다를 착륙지로 고른 것은 여러모로 착륙하기가 편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알지 못하는 이끌림대로 달린 끝에 도달한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 저런 거 없으면 서운하지."

나는 피식 웃고는 월면차에서 내렸다.



하늘에는 거대한 우주선이.


그리고 땅에는.



한 존재가 있었다.



"아....... 어.........."

내가 다가서자, 그 존재는 말을 걸어왔다.


아니, 말했나?


할 예정인가?



그저 상대가 내게 신경을 집중한 것만으로도 시간 관념이 뒤틀리고 공간이 이리저리 꼬여 날아가 버리는 듯한........


[정신 차려라!]



나는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서 짐을 꺼냈다.



총.


하나에게 부탁해서 발사 직전에 챙겨온 물건이었다.



그런데, 의미가 있나?


"안........"


아까 전보다는 다소 약해졌지만, 역시나 내장이 뒤집혀서 거꾸로 솟아나오는 느낌.


그 멀미라 할 만한 게 지나가자,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 실례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한 일은 7800주기만이다 보니 대화를 꺼내기 어렵군요.



뭐?

그 순간, 상대의 모습이 지지직거렸다.



"홀로그램인가?"


- 그렇습니다.


"넌 누구지?"

- 저는, 기억하는 자이며, 연결하는 자이며, 승천시키는 자입니다.


"승천?"

- 그렇습니다, 본디 당신을 통해 간접적인 승천을 이루어내려 하였으나, 당신이 이를 거부하고 있기에, 직접적으로 당신을 이곳에 소환하였습니다.


"네 정체가 뭐야?"

- 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탐구하는 자입니다. 저의 창조주들은 저를 탄생시키면서 사명을 부여하였습니다. 전 우주의 고통을 끝내는 것.


".......... 혹시 인공지능인가?"

- 인공지능, 긍정합니다. 이 형태는 저의 아바타이며, 저의 본체는 현재 이 시설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른 단말기는? 네트워크나 그런 거."


-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즉 여기서 때려부수면 끝난다는 건가?

아니, 그래도 지금 당장은 적의를 드러낼 때가 아니다.



"우주의 고통을 끝낸다고 했나."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런 거창한 목적을 지닌 AI 중에 미쳐버리지 않은 놈이 없는데.



- 그렇습니다. 저는 76,281,459 주기 동안의 탐구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은하와 은하를 넘어 우주의 자원은 모든 이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는 물질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습니다. 이를 통해 무수한 실험과 연구를 한 결과, 물질적인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주의 상수를 변환시키는 것입니다.


"뭐?"

- 우주는 무수한 법칙 위에 쌓아올려진 성과 같습니다. 이를 조작한다면 0에서 1을, 2+3에서 7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자원 리소스를 할당하여 물질적인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뭔가 엄청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 이미 그 방법은 발견했습니다. 원주율이 현재의 3.141592.......가 아닌 3으로 나누어떨어지도록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실패한 것 같은데."

- 그렇습니다, 현 세대의 우주는 저의 예상보다 굉장히 불안정하여 상수의 변환을 버텨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새 우주를 창조해야 합니다.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 새 우주의 창조 역시 그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리하여 물질적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정신적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음음, 그래, 참 대단하네. 설마 마약에 푹 절여놓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 정신적 문제의 해결책은 대부분의 생명체가 남을 진정으로 신뢰하지 못하며,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모든 생명체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 의지를 통해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스스로 고통받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야, 잠깐."


- 자유를 박탈하고, 의지를 박탈한 후, 이들의 경계를 허물어트렸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지?"


- 종족 전체를 통합하는 전제적 시스템을 완성한 후, 해당 시스템을 일정 기간 지속시키도록 조력하여 안정화시켰습니다. 그 후 생체 시냅스를 대거 투하함으로써 종족 전체의 유전적 정보를 편집, 행성 전체의 모든 의식을 하나로 모아서 단일화했습니다. 단일화가 끝난 후, 그 의식을 스캔해 흡수해 저장한 후 남은 물질적 요소는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나노봇으로 분해해 흡수했습니다.


"야 이 개새........."

- 이것이 모든 고통을 없애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현실 조작은 현재로써도 가능하며, 이를 통해 다수의 '영혼'을 떨어져 있는 시간축에서 불러와 합성, 당신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효과적이었습니다. 단일한 통치를 할 '지배자'의 혼은 이미 여러 존재가 뒤섞여 있으며, 전제적 통치에 익숙해진 나머지들은 의식의 합일 때에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과거로 오고, 다른 분들과 함께 한국을 독립시키고, 그런 게 다 네 농간이란 뜻이렸다?"


- 긍정.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당신이 대통합 현상을 일으키기를 거부하였으며 지도자의 자리를 거절하였습니다. 여러 차례의 현실상수 조작을 통해 대통합 절차를 시작하려 하였으나 번번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실패, 현 우주에서 현실 상수에 대한 대규모 조작은 진공 부패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진공 부패란, 현 우주의 진공은 최저 에너지 상태로 안정한 것이 아닌 준안정상태입니다. 퍼텐셜 장벽에 의해 안정된 것으로 보이나 터널링 현상으로 인해 최저 에너지 상태로 붕괴하며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이 에너지로 인해 주변의 공간이 연쇄 붕괴하여 일종의 거품 형태로 팽창하며, 이는 광속으로 전 우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로 인해 거품이 닿는 모든 것은 소립자 단위에서 모든 것이 붕괴하여 소멸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생명체의 신체적 한계상 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진공 부패 상황의 발생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소멸할 것입니다.


"아하."


- 이러한 방식으로 우주가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협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묻겠는데,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

- 협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거부를 시도한 것은 당신이 처음이 아니며, 마지막도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우주에서 모든 것을 하도록 허용됩니다.


"모든 인간을 의식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노예처럼 부려도 된다고? 정신이든 육신이든?"


-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게 네가 고통을 없애는 방법인가?"


- 다소의 피해는 있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는 길입니다.


"새로운 우주가 창조되면?"


- 새로운 우주가 창조된다면 이들은 다시금 풀려날 것입니다. 다만, 기존의 정신적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자아라는 개념을 배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



나는 천천히 총을 내렸다.



- 잘 생각하셨.........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나는 천천히 우주복의 백팩에서 물건 하나를 찾았다. 



"네 앞에서 총 따위는 장난감에 불과하겠지?"



- 일부 긍정, 실탄 병기는 우주적 관점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은 무기체계이나, 당신이 소지한 무기는 상당히 원시적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렇지만, 핵무기도 그럴까?"


- ?!



나는 기폭장치의 버튼을 꾹 눌렀다.


피식 웃어주면서.



저 새끼도 잘하면 죽일 수 있겠고, 최소한 내 육신을 산산조각내서 날려버리는 건 기대할 수 있겠.........



- 이러한 시도도, 처음은 아닙니다.



폭발이.


멈췄다.



- 열핵병기, 핵융합 무기는 초광속 시대의 초중반에 접어든 이들도 드물게 사용하는 무기체계입니다. 그러나 여러 단점으로 인해 광학병기나 입자가속병기에 자리를 내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상반신만했던 광구는 이제는 압축되어서 순백색의 빛을 내뿜는 주먹만한 광구가 되었다.



- 분명히 초광속 시대에 접어든 문명에게도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기지만, 동시에 적잖이 원시적인 병기입니다.



나는 말을 길게 끌지 않았다.


내 몸은 그대로 튕겨나갔다.



홀로그램 따위를 노린 게 아니라, 저놈의 본체가 있을 우주선을 달 표면에 고정해 만들어낸 기지로!



- 피험체의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거부 반응 발현, 자기방어 프로토콜 및 위압 프로토콜 발동.



달 표면에서 괴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우주유영 때 썼던 압축질소 분사기를 가동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촉수가 날아들었다.



"이런 씹....."


나는 급히 방아쇠를 당겼다. 내가 가진 원거리 무기는 지금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알은 나도 예상한 것처럼 월석으로 뒤덮인 표피를 뚫지 못했다.



- 저항은 무의미합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중단할 경우, 74.9899912%의 확률로 10년 내에 당신의 종족은 멸종합니다.


"단 하나의 의지로 종족 전체가 꼭두각시가 되어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멸종하겠다!"



-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종족은 멸종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순간, 섬광이 터져나와 시야가 차단되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뭐든 내 눈에 닿으면 베어버릴 각오로 칼을 들었다. 방어막 같은 걸 쓰진 않는 거 같던데, 현존 물건 중 가장 단분자 커터에 가까운 놈에 맞고도 살 수는 없겠........



그리고, 보였다.



- 당신의 종족은 이 순간에도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구를 떠난 직후.



이란군과 중동군이 서로를 향해 전 화력을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항구에는 세계 각국이 만든 무기가 차곡차곡 선적되었다.



한 줄기 미사일이 날아가서 화물선에 직격했다.


미국 국기를 달고 있던 화물선은 탄약이라도 싣고 있었는지 대폭발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란을 돕기 위해 군사개입한다.


이에 아랍은 즉시 소련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소련은 미국에게 침략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은 소련의 통첩을 무시한다. 이미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에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국내정치상의 문제로 인해 미국국내의 모든 정파가 강경파로 돌변한다.


이에 미국과 소련이 각 수만 명의 병력을 파병하며 동시에 개입하나, 미군과 소련군이 직접 충돌하지는 않는다.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양국은 실제로 교전을 벌여대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싸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미 공군이 사전에 조율된 일정에 따라 ICBM 시험발사를 강행한다.


태평양 방향으로 발사된 ICBM을 탐지한 소련과 한국은 즉시 양국 모두가 탐지한 이상 잘못된 경보가 아니며, 지구가 둥근 관계로 초수평선의 탄도미사일은 탐지하지 못했기에 이것이 시험발사인지 미국의 핵전쟁 개전인지를 파악할 근거를 얻지 못한다.



미국 수뇌부는 그 시점에서 자국에서 ICBM이 소련과 한국 방향으로 발사되었다는 것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와 서울에서 모두 상황을 보고하라면서 레이더 기지들에게 악을 쓰고,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핫라인을 연결하려 하지만 하필 미국 대통령이 그 시점에 소재불명이어서 핫라인 연결도 무위로 돌아간 상황에서 한국과 소련은 미국의 전면 핵공격 상황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모든 핵무기를 발사한다.



전혀 대비 없이 핵공격을 당한 미국은 무수한 피해를 내지만, 미국은 소련과 한국에게는 없는 2차 공격 능력이 있었기에 무수한 핵미사일이 소련과 한국을 직격한다.



물론 핵보유국 3개국만 공격당한 게 아니었다. 모든 유럽 국가들의 주요도시들,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 군 주둔지들 등등이 핵무기의 불꽃에 휩싸인다.



한국은 국토도 좁은데 대량의 핵무기가 집중당한 관계로 인구의 거의 전부가 사망한다.


한국과 소련,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국가 요인 가운데 마지막 핵무기가 터질 때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

.

.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무수한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고통 속에서도 생존자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떤 국가도 남아 있지 않음에도 군인들은 사전 계획대로 마지막 병사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서로를 공격했고, 무의미한 죽음을 더 늘렸다.



그마저도 끝난 뒤에는, 하나는 증오를 멈추려 했다.


더 이상 국경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약육강식을 멈추고, 부서져버린 모형 정원에서 타오르는 증오라는 잔불을 밟아 꺼버리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노력하던 소녀의 일대기는 스러지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증오를 버리지 못한 누군가의 총성으로 끝이 났다.



-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이 지키려 한 모든 것이 이렇게 사라질 확률은 74.989912%입니다.



홀로그램이 눈 앞에 서 있었다.


약간 더 성장하고, 약간 더 성숙한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앳됨은 사라지고 성숙함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그녀의 미소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포기하시겠습니까?



나의 눈 앞에 나의 일대기가 펼쳐졌다.


연인을 잃는 순간이 내 눈앞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그녀의 죽음이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되돌릴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섰다.



"하나야."


"선생님."

"내가 널 버린다면, 넌 어찌하겠니."


"그게 선생님께서 원하시고, 선생님을 위해서 필요한 일인가요?"


"그런 것 같다."


"후회하시지는 않으시겠나요?"


"후회하겠지."



고통스러워하고, 피를 토할 정도로 괴로워하겠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후회하고 내쉴 때마다 한탄하겠지.



하지만, 그러더라도.



그 앳된 소녀와 처음 만난 순간, 그녀를 제자로 들인 순간, 그녀에게 내가 아는 모든 걸 교육해주던 그 순간을, 기특해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순간을, 대련하다가 지쳐 뒤로 드러누운 그녀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주던 그 모든 순간을.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덧칠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거면 됐어요."


강은 말라붙었고, 세상은 불타고 있는 세계 속,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하나가 웃었다. 울면서 웃고 있었다.


"선생님이 우셔야 한다면 제가 대신 울게요, 선생님께서 힘들어하셔야 한다면 제가 대신 힘들게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눈물흘리신다면 저를 위해 울어주시고, 저로 인해 후회해주세요, 나머지는 전부 제가 안을 터이니, 부디 그 외의 모든 순간에 당당하게, 오만하게 웃으세요, 세상을 내려다보세요, 언제나 그러셨듯이. 그리하여 제가 선생님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나는 검을 휘둘러 그녀의 환영을 베었다. 마치 깨져나간 거울처럼 조각조각나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이것은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는 이 공간에서 내 사념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기만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할지언정.


적어도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어떤 것도 포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순간, 당신이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시절을 영원토록 이어지게 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손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달렸다. 실체화된 안개와 같은 것이 사방을 휘감고 있었다.



세상에는 악이 만연했고, 사람이 사람을,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었다.


사랑은 티끌만도 못한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했고, 도덕을 외치는 목소리는 덧없는 것이 되었다. 우주 그 자체가 깊은 악의를 품은 듯 날카로운 시선이 밤하늘에서 떨어져내렸다. 모든 시야에는 어둠만이 가득하고, 모든 발목에는 늪이 그 손아귀를 휘감았다.


마주치는 모든 이의 눈빛은 악의에 더럽혀졌고 무너져 있었고, 이토록 빛났던 세상은 이토록 망가져가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세상에 광기를 품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었겠는가, 그저 광기를 예의로 감출 따름이었으니.


그저 부딪히고 부서져내릴 뿐.



내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미 괴물이 되었다면.



그것은 필시 더 울고 싶지 않아서였으리라.



하지만.



"인간은 이겨낸다."


상처를 입어도, 그들은 서로를 위하리라.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노라고.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인간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닮았다고.



우주가 그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괴롭히더라도, 길을 잃고 헤메고 지쳐도, 불길에 휩싸인 세상이 지옥이 되어도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테니까.


물론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도 세상과 참으로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내'가 모든 것을 얻는다 해도, '너'가 없다면 나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는다."


대가리가 돌아버린 전자깡통 따위의 망상에는 관심 없다.



타인을 잃고, 나 자신도 잃고. 다시금 찾아온 불길 속에서 지옥으로 추락하지 않겠다.


어떤 인간도 누군가에 의해, 누군가를 위해 피워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고, 감추지 않고, 하늘이 그들을 버리고 땅이 그들을 증오하더라도, 세상에 끝에서 모든 것을 잊게 되더라도 서로를 끝까지 사랑함으로써 피어날 수 있는 토양을.



지켜내겠다.



칼자루를 으스러지도록 움켜쥔 나는 모든 힘을 다해 튕겨지듯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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