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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방과 후 상왕 라이프 -13-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4.48) 2021.05.01 21:26:07
조회 1548 추천 45 댓글 18
														
우려했던 것과 달리 며칠 간은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갔다.


이방과는 성삼문의 집 뿐만 아니라 양녕대군 이제의 집에도 몰래 사람을 보내 감시했지만, 보고가 들어오는 족족 이제는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제의 하인들이 땔감을 구해오는 등 사소한 이유로 드나든다곤 하지만 미행 결과 그들 역시 누군가와 접선한다거나 하는 수상한 행동거지를 일절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도 아무 움직임이 없었사옵니다. 양녕대군의 종 돌쇠가 땔감을 구해오던 중 딴 길로 새서 엿을 사먹었던 것 말고는요."


돌쇠가 주변을 조심스럽게 기웃거리며 평소와는 다른 길로 걸어가길래 신나게 쫓아갔다가 헛물만 켰던 미행자의 허탈함과 피로에 찌든 표정을 떠올린 최승이 씁쓸하게 웃으며 보고했다.


'이제 이쯤되면 전하께서도 그만하시지 않을까...?'


최승이 혹시나 하는 기대에 부풀어 쳐다봤지만 이방과는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좌사간의 집의 방비는 어떻다던가?"


"장정들과 하인들을 동원해 교대로 지키고 있으니 변함없이 철통 같았다고 하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방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대로 계속 감시하도록 하게."


"...예, 전하."


풀죽어서 터덜터덜 걸어나가는 최승을 보곤 탄피대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미타불" 이라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이방과의 수하들이 번번이 허탕을 치면서도 성삼문과 이제의 집을 감시하기를 거듭하는 사이 한 달이 지나갔으나 그 사이 아무 소동도 벌어지지 않았다.


성삼문의 집을 지키는 장정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점차 줄어든다는 사소한 변화만 빼면.


******


'한 달이 넘었는데도 잠잠하다는 건 내 생각이 지나쳤다는 건가...? 아니, 그놈이 여기서 끝낼 정도로 호락호락한 놈이었으면 폐세자당하지도 않았을테지.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이냐...!'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따닥따닥 두드리던 이방과에게 최승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금성대군이 오기로 한 날이옵니다, 전하."


"음, 벌써 그렇게 됐나?"


일전의 연회에서 무예를 배우고 싶다는 금성대군의 청을 수락한 이방과는 그가 정기적으로 인덕궁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해줬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던 것이다.


"손님맞이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요."


"그러도록 하게."


'뭐 당장 아무 일도 없는 게 다행인 건 맞지만...'


이방과가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며 잡생각을 떨치려던 무렵이었다.


"대, 대상왕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성삼문의 집에 파견나가 있는 감시병과 인덕궁 사이의 연락책을 맡은 자가 허겁지겁 달려들어와 이방과의 앞에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이방과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물었다.


"무기를 소지한 일단의 패거리들이 좌사간의 집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치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 백주대낮에 말이냐?!"


최승이 황당하다는 듯 외쳤지만 이방과는 단숨에 아! 하고 이해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여진족 추장들이 대거 상경해 주상이 그들과 더불어 연회를 즐기는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모든 병력들의 주의가 왕궁 쪽으로 쏠린 틈을 타서 일을 감행한 게 틀림없었다.


'듣자하니 좌사간의 집을 지키는 인원들의 수도 꽤 줄었다고 했었지. 제 그놈이 그간 잠잠했던 건 이걸 노렸던 것이었구나!'


"최 집사! 당장 호위무사들에게 일러 무기와 말을 준비해 집결하라고 하게! 즉시 좌사간의 집으로 갈 것이네!"


"예, 전하!"


최승이 서둘러 달려가는 사이 이방과 역시 본인의 활과 칼을 챙겨들었다.


"대사께서는 여기 계시구려."


"소승도 따라가겠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소이다."


"소승도 부족한 실력이나마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됩니다. 오히려 지금은 사람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틈은 없었기에 이방과는 허락했고, 탄피대사는 석장을 쥔 채 따라나섰다.


인덕궁 앞의 공터에는 어느 새 무장을 완료하고 집합한 호위무사들이 말에 탑승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이방과는 그들 중 한 명이 고삐를 쥐고있는 자신의 말에 훌쩍 올라탔다.


"모두 듣거라! 불의한 것들이 감히 조정 관료의 집을 범했다 하니 어찌 이를 좌시할 수 있겠느냐! 즉시 좌사간의 집으로 가서 놈들을 소탕할 것이다!"


"예, 대상왕 전하!"


"가자!"


이방과가 선두에서 달려나가자 탄피대사와 호위무사들도 즉시 말을 몰아 뒤따랐다.


"아니, 종조부님! 어디 가십니까?!"


마침 말을 타고 인덕궁에 오고있던 금성대군 이유는 뜬금없이 무장한 채 급히 말을 몰아 달려나가는 이방과와 호위무사들을 보고 당황했으나 그 역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대동한 두 건장한 호위들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사달이 난 모양일세. 종조부님을 도와드리고자 하니 자네들도 따라오게!"


"예, 대감!"


애초에 이방과에게 무예를 배우러 오던 길이었기에 이유는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고, 두 호위들도 경호 목적에서 무기를 소지한 만큼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방과 일행을 뒤따라 말을 몰았다.


******


"신왕께서 즉위하셨다는 소식이야 들었네만 이리 후한 물선까지 하사해주실 줄이야! 금상께서는 성군이심이 분명하네, 하하하!"


"듣자하니 금상의 숙부가 반란을 일으켰었는데 금상께서 이를 진압하셨을 뿐만 아니라 반란의 수괴를 뒤주에 가둬 숙청해버리셨다더군! 보령이 많지 않으실 뿐이지 가히 천하를 호령할 호걸다운 패기를 지니신 분이 틀림없네."


"허어, 그게 정말인가? 역시 이성계 어르신의 피를 물려받으신 분은 남다르시다 이건가!"


오롱초 알타리 수령 이귀야를 비롯한 여진 족장들은 경회루에서 주상 이홍위를 알현하고 활쏘기 등 무예시연을 마친 후 주상이 손수 따라주는 데운 술을 마시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진귀한 물선들까지 하사받고 만족해서 북평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홍위는 계유화변 혹은 이유의 난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한 차례 내홍을 겪었던 만큼 외번인 여진족들에게 위엄을 과시코자 후한 하사품을 내렸던 것이었지만, 이미 계유화변의 전모를 풍문으로나마 접했던 여진 추장들은 강자를 숭앙하는 풍습답게 숙부를 주살하고 왕좌를 지킨 이홍위를 영웅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추장들 중에는 태조 이성계를 따라 전장을 누볐던 자들의 아들이나 손자들도 있었기에 개중에는 이홍위를 모처럼 태조를 빼다박은 무인형의 군주라 여기고 그의 치세에 과거의 영광이 재현되는 게 아닐까 기대하는 순진한 자들까지 있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물론 금상께서 보기 드문 영웅이신 건 맞지만 그래도 어디 이성계 어르신께 비한단 말인가!"


"그 말이 맞다. 어르신 같은 분이 또 어딨다고!"


호군 동남라가 어딜 감히 이성계에 빗대냐고 투덜거리자 마찬가지로 호군 직위에 있는 숙부 동모다치가 거들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물론 나도 어르신이 이 세상에 안 계신 건 안타깝지만 그분이 이미 돌아가신 이상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자고로 최선이 아니면 차악을 고르라고 했네."


추장 동속로첩목아의 말에 다른 추장들도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마 입 밖으로는 못 꺼낸 말이지만 '어르신만 계셨어도...' 란 생각은 여전히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이성계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그에게 충성을 바친 대가로 여진족들이 누려왔던 최상의 대우는 이성계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지금도 조선에 입조하면 하사품을 받아갈 순 있지만 이성계의 가신 자격으로 누렸던 풍족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대우 좀 잘해줬다고 이홍위를 태조와 동일시하려는 자들이 나왔겠는가?


오늘도 그리운 그 이름 이성계를 마음 속으로 연호하며 발길을 돌리려던 중 이귀야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그의 반응에 다른 추장들이 일제히 그를 돌아봤다.


"왜 그러나?"


"저...저기 이성계 어르신이...!"


"이 사람 약주가 과했던 모양이지? 어르신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지 않나. 정신 차리게."


다른 추장들이 낄낄거리며 비웃었지만 이귀야의 시선은 한데 못박힌 채 떨어질 줄을 몰랐고, 그제야 일동은 그의 시선을 따라 한 곳을 주목했다.


멀리서 흙먼지를 휘날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몰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저들이 말타고 달려오고 있다는 것만 간신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초원에서 나고 자란 여진 추장들은 특유의 범상치 않은 시력으로 선두에 선 기수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 저거...!"


검은색 무복을 입고 활을 비껴맸으며, 허리에는 칼을 찬 그 자는 뒤따르는 부하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만큼 기골이 장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얼굴은 부리부리한 눈에 위엄있는 호걸상이었으니 과연 틀림없는 이성계였다!


"맙소사! 정말 어르신이었잖아!"


"대체 이게 무슨...!"


'이성계'는 부하들과 함께 말을 달려 순식간에 지나쳐갔지만 여진 추장들의 시선은 한 순간도 그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성계'와 그 부하들이 저만치 멀어지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던 중 누군가가 정신을 차렸다.


"나, 나도! 나도 어르신을 따라갈 거야!"


"아, 치사하다! 어르신의 오른팔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이 몸이란 말이다!"


"어르신이 한창이실 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놈이 무슨 놈의 오른팔!"


서로가 이성계의 심복이라고 자처하며 다투는 와중에도 여진 추장들은 말고삐를 거머쥐고 '이성계'가 향한 쪽으로 급히 말을 몰기 시작했다.


인덕궁을 나설 때만 해도 이방과와 탄피대사를 비롯해 고작 15명에 불과했던 무리는 금성대군 일행과 여진 추장들에 그 호위들까지 가담하면서 순식간에 20명이 훌쩍 넘는 대인원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


"뭔가 꼬리가 많이 붙은 것 같습니다만!"


말을 달리는 중이라 바람소리에 묻히지 않게 탄피대사가 목청껏 외쳐서 이방과에게 알렸다. 이방과는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며 외쳤다.


"우리의 적은 아닌 듯 하니 내버려두시오!"


인덕궁과 꽤 거리가 있는 성삼문의 집으로부터 이방과의 수하가 알리러 온 시간을 고려했을 때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괜히 시간을 뺏길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피, 피해!"


"어, 엄마야!"


거칠게 말을 몰아 짓쳐드는 이방과 일행을 피해 길가던 사람들이 황급히 좌우로 비켜 선 덕분에 속도를 줄이지 않은 그들은 어느 새 저만치 성삼문의 집이 보일만큼의 거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방과는 말에 더욱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두 발로 등자를 딛고 우뚝 섰다. 동북면 잠저 시절 여진족들과 어울리며 그들 못지 않은 초인적인 시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방과는 시야가 확보됨과 동시에 성삼문의 집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쪽도 못해도 스무 명은 되어보이는군. 중앙에 대여섯 명을 놓고 포위하고 있으니 저들 중 한 명이 성삼문의 여식인 모양이다.'


이방과는 등자를 딛고 선 채로 활을 들어 침입자 중 한 놈을 겨누었다. 놈이 포위하고 있는 대상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르려 하는 게 보였던 것이다.


쉬익-!


매서운 파공성을 울리며 날아간 화살은 놈의 등을 정확히 관통해 숨통을 끊어버렸다.


놈이 쓰러지자 다른 놈들이 주춤하는 걸 확인한 이방과는 다시 안장에 착지하곤 뒤따르는 수하들에게 외쳤다.


"무뢰배들이 좌사간의 여식과 그 호위들을 마당에서 에워싸고 있으니 너희들은 이대로 우회해 대문을 통해 돌입하라! 나는 먼저 들어가 저들의 포위를 흩어놓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이방과는 더욱 속도를 높여 말을 몰아갔는데 그 방향에는 높은 담벼락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 대상왕 전하! 그쪽은 위험합니다!"


"종조부님!"


이방과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돌진하자 호위무사 중 한 명이 기겁해서 외쳤고, 간신히 따라잡은 금성대군 이유도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방과는 담벼락을 향해 더욱 속도를 높여 달려들 뿐이었고, 모두들 그가 그대로 부딪힐 거라 여겼다.


히히힝-!


하지만 담벼락을 아슬아슬하게 10보쯤 앞뒀을 무렵 이방과가 그대로 고삐를 잡아채며 몸을 곧추세웠고, 주인의 의사를 알아들은 듯 말도 그대로 앞발을 허공으로 치켜들며 높이 도약했다.


돌진하던 가속도와 말의 도약력에 힘입어 허공에 높이 떠오른 이방과는 허리춤에 차고있던 칼을 뽑아들었는데 마침 햇빛을 받아 검신이 빛을 발하니 마치 천상의 신장이 지상에 내려오는 듯 했다.


과거 이성계는 말에 탄 채로 집의 담을 넘나드는 묘기를 과시한 바 있었는데 마치 말과 사람이 하나되어 하늘을 나는 듯 했기에 말을 모는데는 천하에 비길 자가 없다던 여진족들조차 찬탄할 만큼 대단한 경지였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고사가 재현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성계가 살아돌아왔다는 걸 믿지 않던 추장들조차 이 광경을 보고는 확신했다.


전신(戰神) 이성계가 마침내 염라지옥조차 쳐부수고 현세에 재림했음을!


감격에 벅찬 한 추장은 눈물까지 펑펑 흘리며 외쳤다.


"어르신이다! 이성계 어르신이 돌아오셨다! 그분이 날 전장에 데려다주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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