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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높성한국 팬픽) 그날이 오면

ㅇㅇ(49.174) 2022.05.23 15:56:00
조회 2212 추천 47 댓글 8
														

샌프란시스코 펠 스트리트에 사는 사람들 중 킨 아저씨네 세탁소(Uncle Kin's laundry)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불혹의 나이에도 배가 나오지 않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세탁소 주인장 킨 아저씨는 순혈답지 않게 미국계 일본인들을 배신자취급하지 않고 동포로 대우하는 것도 모자라 백인계, 심지어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흑인들과 중국인들까지 동등하게 대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덕인지 아저씨네 세탁소에는 유난히 순사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들은 누구나 한 번씩 이 '비국민 의심자'의 불온사상을 밝혀내기 위해 애썼지만, 그들이 고난 끝에 밝혀낸 사실이라곤 킨이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당시에 하와이 해방전쟁 최전선에서 제국을 위해 싸우다 상처를 입고 전역하여 무려 제국 육군성에서 훈장까지 받은 명예로운 참전용사라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그리고 어느 때나. 서슬퍼런 순사들의 방문은 세탁소 벽에 자랑스럽게 걸린 군도를 보고 한번 눈이 튀어나오고, 다음으로는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훈장을 보고 한번 더 눈이 튀어나오고, 마지막으로는 '평등과 평화야말로 진정한 무사도 정신'이라는 아저씨의 일갈에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부리나케 차를 타고 도망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 일이 서너 번 일어나고 나니, 아저씨네 세탁소는 국적을 불문한 옛 대동아전쟁 참전자들이 찾아오면 찾아왔지 일본 경찰과 치안유지군들의 무리는 감히 발을 디디지 못하는 일종의 성역이 되어 있었다.


킨 아저씨는 과연 훌륭한 성품으로 유명한 사람답게 일.본인 참전용사뿐만이 아니라 미국인 참전용사들도 후하게 대우했다. 그는 언제나 주변 이웃들에게 '진정한 화해란 서로의 나쁜 기억을 내려놓고 내일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리하여 아저씨는 지난 1954년부터는 일 년에 수 번은 대동아전쟁의 참전용사들을 국적없이 불러모아 작은 파티를 열어 그들의 아픈 기억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파티가 끝날 때마다 참전용사들이 인종과 연령에 상관없이 기분 좋게 불콰한 얼굴로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고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은 어느새 펠 스트리트의 연례 풍경이 되었다. 적잖은 펠 스트리트 사람들은 그 풍경을 볼 때마다 제국의 폭압적인 통치가 끝나고 황인과 백인이, 백인과 흑인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노력과 바람에도 소용없이 전쟁의 겁화는 다시 한번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그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 같았다. 지난 1962년 3월, 갑자기 조선반도와의 통신이 단절되고 온 태평양합중국이 충격에 빠질 무렵.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된 건가-하고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저녁 식사자리에서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던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 평행세계에서 온 미합중국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연합군은 어제 일본제국 수도 도쿄를 점령하고 천황의 무조건항복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으로 폭압과 야만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을 어지럽히던 일.본제국의 무리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아시아는 전체주의의 군홧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일.본열도에는 당분간 연합군의 군정이 실시될 것입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rand HeadQuarters)는 열도에서 군국주의와 전체주의 세력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본인들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인정되는 때까지 일.본국의 통치권한을 대행할 것이며, 최고사령관 김유진 대장이 초대 GHQ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일.본의 탈파시즘화와 탈전체주의화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서부 캘리포니아의 압제받는 미국인 여러분. 일.본 제국은 항복하였습니다. 다시 알립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빼앗고, 여러분의 국기를 빼앗은 일.본제국의 무리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잠시간 한반도에 자리했던 미합중국 임시정부는 곧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철폐할 것이며, 사라졌던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부활시킬 것이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빼앗겼던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여러분께 돌려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다시 여러분들의 대표가 될 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 대표들, 그리고 주의 대표인 주지사를 선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투표권을 가지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여러분들뿐만이 아닌 모든 미국인들이, 자유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워싱턴 D.C는 더 이상 폐허가 아닌 합중국의 적법한 수도로서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여러분들께 드리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그간 정말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곧 여러분께로 찾아갑니다.



그것은 마치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이 항복했다, 미합중국 행정부가 살아있다, 일.본을 물리친 그들이 곧 본토로 돌아올 것이다, 돌아와 다시 한번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 더럽혀진 나라에 드높이 들어올려 사람들을 치유할 것이고, 다시 역겨운 나치 놈들의 궁둥짝을 걷어차 유럽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치욕스러운 유럽으로 우리를 이끌어 세상을 더럽혀 온 나치 놈들에게 비로소 불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일본 대사관-미국인들은 대부분 쪽바리 총독부라고 불렀지만-은 다음날부터 이 불온한 방송을 완벽한 거짓선전으로 규정하고 주동자를 찾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전차와 장갑차를 타고 어깨에는 총을 둘러맨 군인들은 온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은 검거한 '주동자'들을 공개처형하면서 제국에 반항하는 자들의 말로는 이런 것이라며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기실 그들은 방송에 고무되어 뛰쳐나온 언제나처럼의 얼치기 저항군들이었겠지만, 잔혹한 처형은 확실히 미국인들의 투쟁심을 한풀 꺾는 것에 성공한 것 같았다. 처형이 있기 전이면 순사들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다들 희망에 처절할 정도로 부풀어오른 얼굴로 그 연설에 대한 이야기만을 나누던 사람들의 대화주제가 처형이 있은 다음에는 언제나처럼의 체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설 소동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누가 봐도 제국의 배들이 아닌 수없이 많은 배들이 성조기와 처음 보는 흰 바탕에 태극과 검은 줄들이 그려진 국기를 휘날리며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함대의 선두에 선 것은 척 봐도 엉망이 된 배 한 척이었다. 제국 함대의 자랑이라던 카이다이호(改大鳳)급 항공모함 하쿠류(白竜)가 형편없이 그슬린 몰골로 마스트에는 성조기와 그 처음 보는 태극 깃발을 달고 항만으로 다가왔다. 그 거대한 항모 마치 비참한 패배자가 정복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파도를 가르며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명백한 패배의 상징, 그 명백한 승전의 상징에 도시의 통제는 그대로 마비되었다.


"이겼다..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가 이겼던 거야?"


"정말로..망명정부가 존재했었다고? 정말?"


"저 거대한 항공모함을 봐..저건..지난 대전쟁에서도 해군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배인데.."


"합중국이..합중국이 살아있었다고?"


"미합중국 만세!! 연합군 만세!!"


"이제 쪽바리 놈들은 물러가라! 정당한 지배자가 잃어버린 대지에 돌아왔으니!"


대체 어디에 숨겨뒀던 것인지 저마다 성조기를 하나씩 든 군중의 무리가 도시를 뒤덮었고, 바다 저편의 함대에서 출격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미려한 전투기들이 황급하게 출격한 제국 공군을 일격에 초살하고 도시 상공을 가르는 것을 보며 공포에 굳어버린 군대는 군중의 고함과 소리에 압도당해 형편없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F/A-18E/F 슈퍼호넷 두 대가 기수를 낮춰 저공으로 날며 날개의 별을 자랑스레 지상에 보이자 군중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이제는 그야말로 인종과 연령에 관계없이 하나로 뭉친 거대한 시위대가 온 샌프란시스코 도로를 점령한 채 일본 대사관저로 행진했다. 아직도 누군가 기억하고 있었는지, '별이 빛나는 깃발'의 첫 소절을 누군가 부르기 시작했다.


"O see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헉, 헉, 헉.."


그 광경의 한가운데에서 소년 나카무라를 선두로 일련의 동양인들이 달뜬 숨을 내뱉으며 킨 아저씨의 세탁소로 달렸다. 주변에는 이미 약탈당하거나 방화당한 일본인들의 상점이 연기와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누군가는 솟아오르는 애국심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평소에 받아오던 차별에 대한 증오에, 또 누군가는 어두침침한 물욕에 날뛴 탓이었다.


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누런 피부를 한 동양인들이었다. 일본인도 있었고, 일본계 미국인들도 있었고, 한국계도 있었고, 중국계도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시내의 시위대에 합세해 전진했지만, 이 틈을 타 약탈을 하려는 자들과 증오를 풀려는 자들에게 해를 입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세탁소로 피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킨 아저씨는 원래부터 인품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고, 또 제대 군인들과 광범위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이라도 킨 아저씨네 세탁소를 건드는 얼치기는 거의 없을 것이고, 동시에 만약 그런 얼치기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저씨나 친구 제대군인 아저씨 할아버지들 손에 정리되었을 게 분명했다. 피난민들이 보기에 킨 아저씨의 세탁소는 지금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나카무라 소년이 숨가쁘게 달린 끝에 드디어 세탁소 간판이 보이자 숨이 가쁜 와중에도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세탁소는 그들의 예상대로 이 아비규환 속에서도 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세탁소의 문에 'Closed'라는 팻말이 걸쳐진 것을 보자 사람들의 얼굴이 파래졌다. 이 상황에서 '일본인'이라고 짐작되는 인간들이란 인간들에게는 모조리 해를 가하고 다니는 시위대 사이에 숨은 폭도들을 만나면 그들은 아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쪽바리'로 몰려 나쁜 일을 겪게 되리라는 것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소년이 절박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같이 뛰어온 부모님도, 옆집 중국집 추 아저씨와 메이 아주머니도, 평소 '나는 한국계!'라고 외치고 다니시던 최씨 아저씨네도. 생선집 조 아저씨와 유이 아주머니까지 모두가 최후에 찾아온 대피소가 잠겼다는 것을 알고 절망의 기색을 얼굴에 띄고 있었다.


나카무라가 세탁소 문을 두드리며 절박하게 외쳤다.


"아저씨!! 킨 아저씨!! 살려주세요!! 저희 가게들..가게들을 시위를 틈타 몰려나온 폭도들이 약탈했어요. 이대로 바깥에 있으면 저도, 부모님도, 최 아저씨도, 유이 아주머니도 모두가 다칠 거에요! 제발, 제발 문을 열어 주세요! 킨 아저씨!!"


통! 통!


유리로 된 문을 절박하게 두드리던 소년의 목소리를 안쪽에서 들은 것인가, 누군가 어두침침한 가게 안에서 걸어나왔다.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펠 스트리트의 명물인 탄탄한 몸매를 본 사람들이 너나할것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았다.


유이 아주머니는 염주를 끌어안고 부처님께 감사했고, 추 아저씨는 가슴 속에 숨겨둔 십자가를 꼭 쥐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최씨 아저씨는 아주머니와 양손을 맞잡고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소년의 부모님은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가게 안의 조명이 들어오며 킨 아저씨가 입은 옷을 보기 전까지는.


"킨..아저씨?"


소년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출입문 자물쇠를 여는 아저씨의 이름을 불렀다. 참전용사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저씨가 군복을 입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군복이 제국군의 것이 아닌 줄은 정말로 꿈에도 몰랐다.


검은 바탕에 왼쪽 가슴을 덮은 휘장, 양 어깨에는 노란 테두리에 초록 견장, 마지막으로 옷깃에 선명하게 금색으로 빛나는 U.S라는 글자까지. 미 육군의 정복을 곱게 차려입은 킨 아저씨가 소년을 보며 안경쓴 얼굴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려무나, 나카무라 군. 그리고 여러분들도요."


얼떨떨한 사람들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게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킨 아저씨가 가게 셔터를 내리고 그들을 윗층의 집으로 인도하는 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이 알기로 킨 다메키치라는 인물은 오래 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일본인 가문 사람이었다. 대동아전쟁 당시 하와이 해방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은 인물이었고, 퇴역한 후에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태평양합중국으로 넘어와 세탁소를 차려 성공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킨 다메키치는 사라진 나라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킨 아저씨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거실에 들어서자 더욱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나이가 든 남자 하나가 미합중국 육군의 군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노령의 나이에도 차려입은 장군의 정복이 놀랍도록 어울리는 노인은 쭈그렁 모자를 쓴 채 입에는 콘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그보다는 나이가 덜 들긴 했지만 여전히 일흔은 넘어 보이는 남자 하나도 군복을 입은 채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머리는 거의 벗겨졌지만, 그의 눈 속에서 멈출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것은 그 자리의 사람들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해군복을 입은 자도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바닷바람이 만들었을 주름살 위로 걸친 안경을 낀 노인이 소파에 앉은 채 나카무라 소년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 외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넓지 않은 거실에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군복을 입고, 몇몇은 아예 어깨에 총까지 둘러멘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 중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유이 아주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글라스..맥아더! 분명 뉴스에서는 10년 전에 잡혀서 처형되었다고 했는데..!"


노인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잽(JAP)들과 크라우트(Kraut)들 주제에 맥아더를 죽인다니 그거야말로 웃기지도 않는 노릇이군. 보시듯 살아 있었소. 죽지 못해 살아있었지만."


"원수님, 경사스러운 날에 말은 좀 가려서 해 주시겠습니까?"


"이보게, 아이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에게 예의를 기대하나?"


맥아더의 말을 들은 대머리 노인이 노원수에게 핀잔을 주자 맥아더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 대화에 대머리 노인의 정체를 안 몇몇 사람들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최씨 아저씨가 노인을 떨리는 눈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아..아이젠하워, 설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당신, 분명히, 분명히..!"


"선배님 말씀하시던 기분을 알겠군요."


"그렇지?"


아이젠하워가 씁쓰레하게 웃으며 말하자 맥아더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방 안에 있던 중늙은이들과 늙은이들도 저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피식거리거나 하면서 저마다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 광경의 한가운데에서 나카무라 소년이 킨 아저씨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킨 아저씨가 몸을 숙여 소년의 얼굴을 마주보고 말했다.


"안심하렴. 너와 사람들을 해치거나 하지는 않을 거란다. 그건 나치와 일본제국군이나 하는 전쟁범죄니까."


"아..아저씨, 분명히 저한테는..제국군..제국군이셨다고.."


"미안하게 되었구나. 너와 이웃들에게는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단다."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소년이 물었다.


"아저씨..그럼 아저씨..진짜 이름은..뭐에요?"


킨 아저씨가 대답했다.


"김영옥, 미합중국 육군 중령."


"미..군? 미군..이셨다고요..?"


아저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숙였던 등을 들어 소년의 뒤에 선 부모님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카무라 씨."


"킨..중령님."


"이곳은 안전할 겁니다. 저와 이분들은 곧 작전행동에 들어가야 하니, 그동안 제 집을 잠시 맡아 주시겠습니까?"


소년의 아버지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킨 아저씨, 아니. 김영옥 중령이 웃으며 나카무라 씨의 어깨를 툭툭 친 뒤 다시 표정을 굳히고 뒤에 말없이 서 있던 해군 정복차림의 노인을 돌아보았다.


"알레이 버크 제독님."


"해군은 모두 준비되었네. 아이오와(BB-61)는 돌아온 전우들을 맞을 준비가 되었어. 지난 수 년간, 우리는 그녀의 치욕을 풀어주기 위해 준비해 왔지 않던가."


영옥이 말없이 노제독의 말을 경청했다. 제독은 속에 쌓아놓고 꺼내지 못하고 있던 말을 다음 한 마디로 끝냈다.


"비록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일이 되었으나, 이것이 그녀와 우리에게 있어 원래보다 아득하게 명예로운 일이라 다행이야."


마침내, 벅찬 얼굴의 버크가 대답을 끝내자 영옥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이어 그가 뒤에 선 오랜 전우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췄다. 그들과 그는 정말로 오랜 시간을 함께 싸워왔다. 유럽 전선에서부터 뉴욕 방어전, 덴버로의 치욕적인 후퇴부터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놈들의 자칭 V-A day라는 저항군 최후의 날까지.


그날, 대부분의 동료들이 스러지고, 나치 독일에 거짓항복을 한 브래들리 원수의 치욕을 감수한 투쟁이 배신자 프레덴달의 역모로 완전히 분쇄된 날. 그날 이후 미국 재건의 꿈과 한국 해방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그 날 이후로는 전우들과 함께 이 살기 싫은 세상에 섞여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듯, 죽어있는 듯 살아가려 했건만.


그렇기에 일본군 승리의 상징으로 항만에 묘박된 아이오와를 몰래 복구해 주포사격으로 빌어먹을 야마모토 신사를 날려 버리고 자신들은 죽겠다는 버크 제독의 자살적인 계획을 들었을 때도 이번 일을 끝으로 다시 죽은 사람이 되어 살겠다는 생각이었건만, 회색과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던 세상에 이렇게도 갑자기 찬란한 태양빛이 비치다니. 세상이란 언제나 절망만은 없는 것 같았다.


곧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최후의 미 육군참모총장에게 그 시선을 향했다. 시선을 받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벅찬 얼굴로 오랜 전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우 제군, 해방의 전화(Fires of Liberation) 작전을 시작하세."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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