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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조선의 경제 이해하기 : 시장경제와 재분배경제

lemi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9.16 10:24:17
조회 1520 추천 16 댓글 19
														


제가 전근대 한국 경제사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2021년에 한국의 축성기술사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 수공업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축성기술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수공업자의 경제활동과 국가권력과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조선의 바늘생산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면서 구체적으로 경제사에 대해서 파고들었죠.


그 과정에서 고대 한국사회에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도입된 조용조 체제, 특히 공납과 요역을 통해 국가가 필요로하는 현물을 직접적으로 획득하는 경제체제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용조 체제에 기반한 중앙집권화와 수공업자와 농민에 대한 노동력 수취, 그리고 이를 통해 획득한 현물을 국가가 직접 재분배하는 체계가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했으며, 이것이 수공업자의 삶과 생산성에 지대한 역할을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선물경제는 이 조용조에 기반한 노동력 수취체계가 단순히 국가수요만이 아니라 민간수요까지 충족시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역시 시장경제의 발전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제 주장은 상당히 격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비판이 있었지만 핵심적으로 2개를 소개해보겠습니다.



1. 조용조 체제와 선물경제가 시장경제 발전을 지연시킨게 아니다?


중앙집권화된 조용조 체제와 선물경제를 포함한 재분배경제에 대해서 단순한 억말책이나 현대 국가의 시장개입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이건 고려, 조선사회의 조세제도와 수취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용조 체제는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도입된 당나라의 조세수취를 비롯한 국가운영체제를 말합니다. 국가는 피지배층에게서 노동력과 현물을 직접적으로 수취하고, 이를 국가가 통제하는 유통체계를 통해서 운송하고 재분배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피지배층에 대한 직접적인 인신지배입니다. 피지배층은 호적대장에 등록되어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보유한 토지에 대한 세금(租)과 가호에 배당되는 국가가 필요로하는 다양한 현물(貢)을 납부하며 국가가 정한 역(役)을 수행합니다.


조용조 체제하에서 통일국가인 신라, 고려, 조선은 고도의 재정체계를 구축하지 않고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피지배층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여 그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려, 조선시대에 등장한 선물경제는 이러한 수취체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전 연재글 고려의 선물경제는 합법적인 수취제도에서 시작된다.(링크) 에서 조용조를 포함해 신라시대부터 이어지는 노동력 및 현물수취체제와 선물경제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설명한바 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조선의 중앙집권화된 조용조체제(선물경제가 포함된)가 시장경제의 발전을 지연시켰느냐에 대해서 답안을 구하는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시장경제의 발달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실물공납경제(實物貢納經濟)가 강화되었으며 이는 시장경제를 위축시켰음이 틀림없다. 공납제에 의하여 쌀과 포목(米布木)과 같은 실물화폐뿐만 아니라 관부(官府)와 왕실에서 사용하는 각양각색의 물자를 현물로 수취하여 그대로 사용하거나 원료로 삼아 제작하여 사용하는 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김재호, 11-19세기 일본과 한국의 경제성장과 ‘소분기’


전남대학교 경제학 교수 김재호는 조선의 공납제에 기반한 현물재정이 시장경제의 발달을 위축시켰다고 여러 연구들을 통해서 반복해서 지적합니다.


김재호는 "부패와 시장경제의 발전, 1400-1945"에서 공납제가 단순히 현물을 국가가 직접 유통시킴으로서 시장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위축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개인에게 강제로 생산을 명령하거나 징발함으로서 시장경제의 기초 중에 기초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제도였다고 지적합니다.


김재호는 방납이라는 부패행위를 통해 시장경제가 이러한 제약 하에서도 틈새를 찾아 발전했다고 설명하지만, 조용조 체제가 근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위축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되지 않습니다.


이건 단순히 방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재산권을 침해하고 경제의 발전을 위축시키는 구조적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시장과 화폐 경제의 매우 완만한 성장은 한국 전근대 경제사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왜 시장이 완만히 성장하였을까?

첫째, 한국은 반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외 교역은 기복이 심하여 대부분의 시기 동안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둘째, 집권 국가 체제가 발전하여 재정, 곧 국가적 재분배 체제를 통해 물자 유통을 전국적으로 조직하였는데, 현물 재정은 시장을 통한 물자 유통을 대체하여 위축시켰다. 특히 집권 국가 체제를 정비한 조선은 재정 통합을 진전시키고 토산물을 공물로 납부하는 조세 비중을 높임으로써 현물 재정을 더욱 강화하였다.

대외 교역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현물 재정 위주로 재정을 통합한 크지 않은 나라에서 시장이 역동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이헌창,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문화사 8권, 화폐 통용책 좌절의 원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이헌창 교수 역시 국가가 현물을 직접 수취하고 유통하여 재분배하는 조용조체제가 시장경제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며 이로 인해서 화폐경제의 발전이 어려웠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조선왕조의 經濟統合體制와 그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조선에서 국가가 경제 순환을 장악하고 현물재정을 강화함으로서 시장경제의 발전이 위축되고 국가재분배가 강화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저는 조선이 신라나 고려에 비해서 특별히 시장경제를 억압하였던 국가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헌창, 김재호 교수의 설명처럼 조선이 이러한 양상을 더 "강화"했다기보다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유지되었던 제도가 잠깐 이완되었던 것을 조선이 "계승 및 재정비"했다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현물과 노동력에 대한 직접적 수취와 재분배 체계인 조용조 체제는 신라시대부터 꾸준히 장기간 이어져온 것이지 조선시대에 갑자기 탄생하거나 강화된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단지 그를 상속받아서 재정비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조용조체제가 시장경제를 위축시키는 제도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해석에 저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자들이 일방적으로 하는 주장일까요?


사실 조용조체제와 현물재정이 고려와 조선 경제 전반에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인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루는 역사학자들의 연구는 매우 드뭅니다.


꽤나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조용조체제의 완화를 불러온 17세기 대동법의 도입이나 납포제로 인한 시장경제의 발전을 다루는 역사학자들의 연구는 매우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000년 넘게 계속되어온 조용조체제로 인한 시장경제 발전의 위축에 대한 언급 자체가 매우 드뭅니다.


대동법 도입으로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는 있지만 대동법이 약화시킨 조용조 체제의 노동력수취, 현물재정이 시장경제를 위축시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발전의 지연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이 암묵적인 금기이기 때문일까요?


채웅석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중세사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역사에 대표적인 연구자로 꼽힙니다. 그의 조용조 체제와 현물수취 체계에 대한 견해를 살펴봅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유통경제가 일정 수준으로 발달하였고 그 기반위에 상세의 징수도 고려할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 전기의 화폐유통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어디에 연유한 일일까?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수취체계가 현물과 노동력 위주로 편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액화폐의 주요사용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직접생산자들의 교환경제가 앞서 살핀 한계 내에 머물면서 활성화되지 못하였던 사정을 들 수 있다....

소(所) 제도의 운영을 비롯한 국가의 현물중심, 노동력 중심의 수취방식은 관영수공업의 발달과 함께 생산물의 상당부분을 생산자 자신의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수탈품으로서 또는 일단 중앙에 집중시킨 후에 상품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생산자 중심의 유통경제 발달이 억제되는 대신, 관부(官府), 권귀(權貴) 중심의 도시유통경제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채웅석, 고려전기 화폐유통의 기반


1988년 논문의 글이라 읽기가 좀 어려우시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국가의 현물과 노동력 수취를 통해 현물을 직접 획득하고 재분배하기 때문에 민간의 시장경제로 생산물이 유입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또한 생산자에게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수탈적 성격을 가진다고 지적하죠.


채웅석이 "생산자"에 대한 수탈을 강조한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수탈적 구조는 피지배층인 생산자가 이 거래관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수탈보다 "수취"가 맞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착취행위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제도로서의 수취체제니까요.


저는 고려후기에 일시적으로 발전한 대외무역이 실질적으로 시장경제 발전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대외무역의 수출품들이 상호 동의하의 "거래"보다는 권력에 의한 "수취"를 통해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려후기는 상요(常徭)와 잡공(雜貢)을 비롯한 국가재정에서의 현물수취의 비중이 증가하고 과렴(科斂)과 같은 임시로 다양한 현물을 징수하는 사례가 증가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역시 채웅석 교수가 말하는 "수탈적 성격"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대외교역 자체보다는 생산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거래", 즉 시장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훨씬 중요합니다.


전자는 일부 권력자와 이에 결탁한 상인집단에게만 이익을 부여하지만 후자는 생산자의 생산의욕을 자극하고 분업을 유도해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개선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현물 및 노동력 수취 체제는 민간유통경제, 즉 시장경제 발전을 억제시키고, 국가권력에 의한 재분배경제를 발달시킵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필요로하는 현물과 노동력을 피지배층에게 직접적으로 수취하는 조용조 체제와 현물재정이 시장경제를 위축시키거나 지연시켰다는 주장에 대한 역사학계 내부에서의 반론은 적어도 제가 찾아본 한도 내에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글에 가해진 다른 비판은 1번보다는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이라서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답변이 되기 어렵습니다.




2. 자급자족적 농업사회에서 상공업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전근대 사회의 자급자족적 농업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발전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관점에서의 비판이 꽤나 나왔습니다.


전근대 국가에서 농업에 비해서 상공업의 비중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사실 내용이 충실하진 않았으나, 제가 여기에 살을 붙여보겠습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전근대 한국 경제사의 추이를 주로 농업생산력에 초점을 두고 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경제사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농업생산력이 미발달하여...", "농업생산력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실 고대부터 조선후기까지 한국사에서 상업국가라 할만큼 대외교역이 활성화되고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농업생산력의 발달 여부는 전근대 한국 경제의 변화를 설명할 때 항상 중점적으로 다뤄지죠.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14세기 고려후기에 지방시장(村市)이 등장한 이유는 농업생산력이 발달했기 때문이고, 15세기 후반 장시(場市)의 등장도 농업생산력의 발달로 농민들이 잉여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며, 17세기 이후 시장경제의 급격한 발전도 이앙법등을 비롯해서 농업생산력이 발달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토지소유권이 발달하지 못한것도 재산권이 발달하지 못한것도 농업생산력이 부족해서라는 설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전근대 한국 경제사에서 시장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다 때려치고 농업생산력 발달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서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현물재정 때문에 민간 유통경제의 발전이 위축되었느니, 수공업자의 생산의욕이 감퇴되어 생산성이 떨어지느니, 재산권이 어쩌구 해봤자...


대체 자급자족적 농업사회에서 그 비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지요?




경제학과 역사에 대한 경제적 이해의 필요성


사실 저는 이러한 반론이 전근대 한국의 역사 속에서 경제라는 분야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경제학"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은 농업사회라서 아직 상업이나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거나 전근대 사회에서는 사실상 의미없는 주장이라거나 하는 오해들이 일반 대중 사이에서 존재하죠.


이건 일반 대중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고려, 조선의 경제관련 역사, 예를 들어 경제통사나 농업사, 상업사에 대한 연구들 상당수는 만족스러운 "경제적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역사학 연구자들이 경제관련된 내용을 다루지만 경제사나 경제학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충분하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은 내용들이 많은 편이거든요.


이런 충분하지 않은 설명과 "농업생산력"이 남용되다보니 마치 농업생산력이 사회구조나 농업 이외의 생산부문과는 무관한 것처럼 대중들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조용조 체제에 기반한 중앙집권화가 시장경제의 성장을 지연시켰다"라는 표현을 살펴봅시다.


먼저 "시장경제"란 뭘까요?


시장경제를 상업 그 자체로 생각하거나 현대에 와서야 등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시장경제란 그것이 물건일 수도 있고, 서비스일 수도 있는 생산(Product)을 공급자와 수요자가 상호 동의된 조건으로 거래함으로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 서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거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김재호가 시장경제의 기초가 재산권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유롭게 거래하려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하니까요.


반면 고려, 조선의 조용조 체제나 선물경제를 경제사학자들이 재분배경제(Redistributive economy)라고 부르는건 생산품이 자유롭게 거래되는게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서 수취되고 국가에 의해, 그리고 구성원의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서 분배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아니라면 이러한 재분배는 전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전근대 국가가 영역 전체에서 재화를 수취하고 재분배할 권력을 전국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권력에 의해 재산권이 제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아니라 재분배경제라고 하는 겁니다. 중국이나 홍콩 경제사 연구자들은 중국경제사에서 유사한 시스템을 명령경제(Command economy, 命令经济)라고도 분류합니다.


조용조 체제가 시장경제의 성장을 지연시켰다는 표현에는 국가가 직접 컨트롤하는 현물수취와 재분배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 상호 동의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규모가 작았고 위축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표현은 추가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성장(Growth)"의 지연이죠.


경제적 성장(Economic Growth)란 해당 경제단위가 이전보다 더 많은 생산물(Product)를 생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생산하는 양이 느는 겁니다.


제가 한 표현은 조용조 체제는 단순히 시장에서의 교환만을 위축시키는게 아니라, 경제 자체의 성장속도를 지연시켰다는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용조 체제하의 재분배경제가 시장경제보다 성장(Growth)에 불리하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생산량을 늘리는데 비효율적이고 불리하다는 관점이죠. 저는 이게 상공업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재분배경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들이 고대부터 조선후기까지 한국사에서의 농업발전을 지연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보거든요.


제가 한 주장이 맞냐 틀리냐, 설명이 충분하냐를 떠나서 이건 "경제적 설명"입니다. 생산된 재화가 분배되는 방식에 따라서 그것이 생산성이 높고 낮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업을 포함해서 말이죠.


저는 김재호나 이헌창의 한일 비교사 연구를 보고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됐습니다. 위에서 김재호나 이헌창이 설명한 국가주도의 재분배경제가 시장경제를 위축시키고 발전을 지연시켰켰다는 "경제적 설명"에 납득했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 경제적 설명을 납득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김재호, 이헌창의 설명은 굉장히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있습니다. 그 논문들은 경제학적 배경지식과 이해를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니까요.


교수들이야 이건 당연한 거니까 이렇게 설명하면 알아듣겠지라고 저렇게 쓴거지만..


듣는 사람은 잘 이해가 안가거나 함축된 내용을 몰라서 납득이 안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러한 "경제적 관점"에서 고려에서 조선까지 이어지는 조용조 체제와 선물경제를 포함한 재분배경제가 끼친 영향에 대해 저도 좀 더 잘 이해하고, 그리고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 역시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기초적인 고전경제학의 원칙들에 대해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이 원칙들은 일명 캘리포니아 학파, 18세기 중국 경제가 유럽 못지 않게 성장한 상태였다고 주장하는 포메란츠, 로빈 웡을 비롯한 수정주의 경제사학자들에게서도 일명 스미스적 성장(Smithian Growth)라고 해서 핵심적인 근거이자 주제로 다뤄집니다.


조선의 경제발전과정을 캘리포니아 학파의 견해를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면 먼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경제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부터 이해하는게 우선입니다.


이를 통해서 전근대 한국 역사에서의 농업, 상업, 수공업을 포함한 경제의 발전과정을 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를 단 1명 골라야 한다면 저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1790년)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많이 나왔지만, 애덤 스미스처럼 꾸준히 회자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애덤 스미스는 완벽히 옳은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그가 세운 몇가지 경제적 원칙들은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해 인류가 일할 필요조차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가치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산업혁명 이전의 전근대 한국 경제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경제적 관점"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 포함된 몇가지 원칙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부론은 18세기에 쓰여져서 원문을 보면 시발 이게 뭔소리야 라는 생각이 드는 복잡한 미사여구와 장황한 표현, 갑자기 엉뚱한 주제로 빠지는 등 요즘 출간했으면 욕을 쳐먹었을 글솜씨를 선보입니다.


때문에 해당 내용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국내에 1978년 유인호 번역본과 에이던 버틀러의 "축약된 국부론"과 다른 연구들을 참조해서 몇가지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원칙들만 발췌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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