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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ㄱㅇㄷ) 3.1운동에 대한 조선내 일본인 식자들의 반응(스압)모바일에서 작성

마이클콜린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09 13: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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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내 일본인 대표 김겨울양(본명 마유즈미 후유코)




1919년 이후 우리는 많은 정착민 전문가들이 조선의 독립시위운동을 무지한 대중을 견인하려는 한 줌의 선동자들 탓으로 돌리는 것을 봐왔다. 그러나 가장 심한 편견을 가진 동화 이데올로그들조차 1920년대에 잇따랐던 민족주의 활동의 조류가 뭔가 더 큰 것이 진행되고 있는 신호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의 민족주의는 급진적 민족주의의 주변부나 사대주의 정신의 잔여물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식민지 민족들의 세계적 투쟁의 일부라는 새로운 독해가 생겨났다.


예컨대, 호소이는 조선의 역사적 몰락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계속 전파했지만, 당대 조선 청년들의 마음에 아일랜드 민족주의에서부터 공산주의, 레닌주의, 그리고 심지어 마하트마 간디의 사티아그라하(비폭력저항)에 이르는 근대 혁명사상들의 혼합물이 들어 있는 것을 봤다. 이 사상들은 호소이가 "사상의 [유포를] 막을 국경을 설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라고 인정한 근대 통신수단 덕에 초국적 순환로를 흘러다녔다.*

* 사이토 총독에게 보낸 호소이 하지메의 의견서(1923년 9월 17일), p.614. 일본 본국에서도 "온 세상의 온갖 이념들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라고 본 호소이는 일본의 지도 아래 '세계의 작고 약한 민족들을 끌어안는 하나의 큰 유색인종 동맹'을 창출하는 범아시아주의적 해결책을 제안했다(호소이 하지메, 1923, pp.615, 663).


"일본은 지금 폭탄을 끌어안고 자고 있다"라고 그는 관동대지진 뒤 사이토 총독에게 경고했다. 청년투르크당처럼 조선인들은 '폭력혁명'을 일본제국을 뒤엎기 위한 최신모델로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소이는 조선의 민족주의운동이 더 큰, 세계적 반제국주의 담론의 지역적 변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식민지 이데올로그들은 점차 그런 봉기 시나리오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선연구회 회장이요 비할 데 없는 동화의 옹호자인 아오야마 쓰마타로조차 동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 민족주의의 절정기에 쓴 총독통치에 관한 자신의 논문에서 아오야기는 두 가지 특별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할 '적극적 동화'정책을 촉구했다. 먼저,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들이 충성스런 제국의 신민들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목표달성에 실패했다고 본 그는 "조선어를 말살하고 조선인들이 일본어를 쓰게 만들며, 교과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그들을 일본식으로 교육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민족융합의 힘을 가하기 위해 "[더] 많은 일본 민족을 조선에 정착시키는" 과업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동화정책에 대한 확신의 이면에서 아오야기도 자신의 구상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1925년에 발간된, 조선 통치에 대해 쓴 또 다른 두꺼운 분량의 논문에서 아오야기는 자신이 제안한 적극적 동화를 거듭 거론했으나, 앞에 놓인 장애들에 대해 훨씬 더 길게 설명했다.

...(중략)...

조선인 동화의 또 다른 어려움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근대 정치 사상의 핵심적인 두 이념적 기둥이 조선반도에서 점차 충돌하게 된 점에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오야기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잠시 조선인 입장이 된 자신을 상상해보라고 요청했다. "일본인 여러분, 우리 섬 민족이 미국에 합병당해 그들의 교육정책 아래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여러분은 일본이라 불리는 민족적 운명과 관계를 단절한 채 일본인의 마음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조선 민족이 처해 있는 상황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라며 그는 혼잣말로 이어갔다.


"나는 조선 민족의 전통적 심리가 (천황 중심의 국가와 공감을 함양하기 위한) 일본의 교육정책으로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세계상황에서' 민족이 모든 형태의 정체성을 능가하는 듯 보일 때, 일본의 국가이념인 국체가 국경을 초월해서 민족 개념을 대신할 수 있을지 아오야기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아오야기의 의심의 밑바탕에는 당시의 동화정책 실패가 일본이 늘 안고 있는 약한 국력 때문이라는 가슴 아픈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을 여전히 서양에 뒤진 '2류나 3류의 열등국가'라고 본 아오야기는, 일본이 미국을 이기지 못하는 한 조선인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일본의 노력은 영원히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가까운 조선인 친구들'의 이야기에 은연중에 동의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일본이 '세계제국'이라고 했던 사람에게 이는 근본적인 재평가였다. "조선총독부가 지금의 사상 흐름을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본에 대한 조선 민중들의 저항 정신은 엄청난 힘, 즉 최근의 독립운동보다 10배, 100배 더 강한 힘으로 폭발할 게 틀림없다"라고 그는 경고했다.

...(중략)...

그러나 제국의 브로커들이 조선 민족주의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갔다면, 그들과 대립한 조선인들도 그에 못지않게 자신들의 조직적 단결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강화된 언론통제와 경찰의 급진세력 단속강화로 1920년대 말의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대립각을 누그러뜨릴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사업들 모두 온건해짐에 따라 새로운 중간지점이 출현할 조건이 갖춰졌다.

하나의 신호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조선과 만주》의 사쿠오 슌조와 《동아일보》의 송진우라는 식민지 언론의 오랜 맞수 사이에서였다.

1928년 2월, 총독의 신년회에서 그 두 언론인들은 내선융화에 대한 '너무 억지스럽고' '혐오스러운' 영화 상영장에서 나온 뒤 우연히 식민정책에 대한 일대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 중에 샤쿠오와 송진우는 자신들이 그 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송진우는 조선의 독립이 "우리 가슴속 깊이 묻어둔"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걸 인정하면서 자신의 온건한 정치적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가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조선인의 언론의 자유', 그리고 관료조직과 회사에 입사할 때의 민족차별을 없애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식민체제 내 조선인의 권리와 기회의 확대인데, 샤쿠오에게 이는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들은 합의점을 찾아냈다. 두 사람은 국가가 조선의 독립이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급진적 담론에 대해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조선어 언론매체들에 대한 가혹한 통제는 완화해주기를 바랐다. 또한 그들은,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기질과 지력을 개선'해야 하고,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야비한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샤쿠오가 송진우에게 왜 그날 밤에는 유달리 '온건'하냐고 묻자, 그는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우리는 온건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샤쿠오는 그것이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송진우의 본심이라고 믿었으며, 그런 그를 "입만 열면 언제나 일본을 욕하고 일본인들을 철천지원수라고 이야기하는 조선일보의 신석구와는 조심스럽게 구분했다.*

* 조선과 만주, 1928년 2월호, p.35. 송진우와 일본인 언론인들 간의 더 진한 친밀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에서 샤쿠오는 송진우를 "놀랍게도 조선인들의 특징인 교활함이 거의 없는", 자기 민족을 위해 '끝까지 싸울' '진정한 조선의 지사'로 묘사했다. (같은 책, 1928년 4월호, pp.61~63).

...(중략)...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이 중간지점 추구는 자신들의 실용적 타협을 반영한 것이었다. 조선민족 통일전선의 결성노력이 흔들리는 한편으로, 검열통제 강화가 노골적인 저항의 입장을 견지하려던 조선어 신문들의 능력과 결의를 파괴하려는 재정적, 심리적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선택지가 좁아지면서 조선어 신문들은 경영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계속적인 정치투쟁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그 나름의 위기를 겪고 있던 일본인들 역시 그들만큼이나 열심히 중간지점을 추구했다. 조선인들의 저항의 깊이와 복잡성을 헤아리기 시작하면서 정착민 전문가들은 동화에 대한 자신들의 초기 열정을 누르고 식민주의 사업을 진지하게 재고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샤쿠오 같은 열렬한 제국주의자조차 일본인들이 조선 신문들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문화적 정복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수준을 점차 낮췄다. 그 자신이 동화의 수사의 노예가 되어버린 총독부가 개혁되지 않는 데에 대한 좌절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가차없이 조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던 호소이 하지메도 1923년에 이미 총독부에 내지연장 정책과 조선인들이 단지 '행정명령만으로도' 일본인으로 바뀔 수 있다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가정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인 비판자들에게 동조하면서 호소이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영국 식민지 인도의 '백인들의 식민주의 정책을 흉내 내는 데'에 토대를 둔 '착취도구'라며 그 해체까지 주장했다.

아오야기의 비관주의는 더 깊어갔다. 그의 글에 종종 기어들던 자기 회의는 1920년대 말에는 동화에 대한 신념의 위기로 발전했다. 조선 역사에 대한 그의 생각은 바뀌어 자신의 초창기 모든 글에 토대가 되었던 이론적 전제를 부정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1928년 이후의 아오야기는, 조선인들을 동화시키기 어려운 까닭을 일본인과 조선인이 몇 세기에 걸쳐 '완전히 갈라진 혈통'으로 발전한 탓으로 돌렸다. 아오야기는 이제 '고대의 조선인의 피가 야마토 민족으로 통합'된 부분이 '아주 적'다고 의미를 축소하명서 그 갈라진 민족정신이 '조선의 혼'과 '야마토의 혼'으로 현존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오야기는 "조선은 2,000년의 역사, 2,000만 명이나 되는 큰 민족, 유전적으로 한 민족이라는 생각과 오랜 관습, 그리고 당당한 민족언어를 지니고 있다"면서 "새로운 교육이 그들의 민족사상을 확장함에 따라 조선의 혼이 야마토의 혼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때까지 역사의 힘이 조선인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던 아오야기는 이제 점차 조선인들에 의해 역사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와 함께 조선의 장래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두 민족정신 간의 임박한 충돌을 내다보면서 아오야기는 조선의 자치사상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조선통치론에서 일축했던 사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조선] 민중이 자신들의 모국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현실을 보고 있다"라면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아마도 나는 10년이나 15년 안에 '성과없는 동화정책들'을 지지하는 대신에 "분명히 그리고 솔직하게 (조선의) 자치에 대한 주장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동화에 대한 아오야기의 근본적인 사고전환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발언은 없다. 자신의 완전한 입장전환을 예고하면서 아오야기는 예전에 자신이 절대적으로 거부했던 바로 그 박영효의 결론 -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른 조선 민중을 동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 을 수용하는 쪽으로 다가갔다.



출처: 제국의 브로커들, 우치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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