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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ㄱㅇㄷ)해방전 조선 영화계: 기원과 영화관 그리고 변사

정신세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1 19:35:19
조회 237 추천 14 댓글 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983389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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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잔 중에서


환등기 개화기 이전 에도시대에 들어온 이 환등기는

일본식 조어 영상의 기원이 되었다.


지금은 영상하면 동영상(움직이는 영상)을 대체했지만

원래는 상이 비친 이미지를 뜻했다.



해방전 조선 영화는 당시 인기였던 수입한 서구 활극 영화와

기술을 배워오던 일본 문법과 스케일의 조합이었다.



당시 문화 예술인과 엘리트들의 영화계 참여는 활발했는데


어느 예술보다 대중적 파급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고

예술성을 반영할 수 있는 매체 본연의 힘과

최첨단 근대예술인 영화예술계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자부심

어느 예술보다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등등이 있다.


그러나 조선의 영화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선발되어야 했던 것이 존재했는데

그 문제란 바로 조선에는 극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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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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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희대



이에 옥내 극장이 들어서는데


이는 공동체의 결속과 위안을 주던 연희가 완전히 자본주의 소비상품으로 전황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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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연예기획사 협률사(1902~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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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상설 영화관 경성고등연예관(1910 설립)




활동사진의 최초 문헌자료


<황성신문> 1901년 9월 14일자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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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활동승어생인활동(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

활동사진’이라는 용어가 발견된 최초 문헌 자료이다.



"사람들이 활동사진을 보고 신기함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참으로 묘하다고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사진이란 곧 촬영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배열되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

가히 ‘움직이는 그림(活畵, 동화)’이라 할 만하다. …

사람들이 영화에서 활동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

진실로 바라는 것은 백성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




첫 활동사진의 민간 공개

1903년 6월23일 『황성신문』

위 링크의 한성전기 주식회사에서 상영한 활동사진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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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안의 전기회사 기계창에서 상영하는 활동사진은 일요일과 비 오는 날을 제외한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계속되는데, 대한 및 구미 각국의 생생한(生命) 도시, 각종 극적인

장면(劇場)의 절승한 광경이 준비되었습니다. 입장 요금 동화 10전.”


상영: 요시자와 상점(1897년 경 설립)


이 동대문활동사진소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1898년 한성전기회사 차고 안에 설치한 가설무대가 그 전신

1907년 6월 흥행단체인 광무대가 인수 ‘광무대’ 이름으로 운영

1908년 박승필이 광무대를 임대하여 광무대가 연희극장으로 사용되기 시작

- 전통 연희극장으로 변모(판소리와 창극 보호)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 광무대는 일본와사전기회사의 소유로 귀속

1913년 일본와사전기회사 사업확장으로 폐관

1913년 일본인 소유 극장 연기관을 임대하여 다시 광무대라 칭하고 공연을 재개

1910년 시대추세에 따라 활동사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단성사를 인수 영화관으로 개관

1920년대에 들어서서는 신파극이나 신극단체에도 대관 - 1925년 토월회와 전용대여

1930년 방화사건으로 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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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파테 로고-



아스터 하우스: 조선에 들어온 파테 영화

https://brunch.co.kr/@sangeonhan/207
참고한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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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아스터 하우스(프랑스인 마탱이 운영)


아스터 하우스에서는 1년간 매일 저녁 활동사진이 상영되었고 그 영화들은 프랑스 파테사에서 제작되었다.


1899년 경인선 개통으로 외국인을 위한 호텔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1899년 재물포에서 노량진 까지 운행하는 경인선과 1년후 한강철교가 놓이면서 경인선은 서대문 정차장까지 연장되었다.
서대문 정차장까지 기차가 다니게 되자 기차역앞에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호텔이 지어졌는데
처음 이름은 스테이션 호텔, 우리말로는 정거장 호텔이었다.

원래는 외국인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면 인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서울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기에 개항 직후부터 대불호텔, 스튜어드 호텔, 꼬레 호텔 등이 존재했는데

경인선이 개통되자 시간을 잘 맞춘다면 인천에서 숙박하지 않고 바로 서울로 올라갈 수 있게 되면서
인천의 호텔업이 침체되고 한성의 호텔업이 성장하였으며 이때 만들어진 호텔이 스테이션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원래 영국인 선교사 엠블리가 지은 곳으로
1905년 프랑스인 마탱이 인수하였으며 지금도 존재하는 아스터 하우스 체인에 합류하여 이름을 개명한다.

경인선의 종점인 서대문 정차장이 지금의 서대문 로터리 인근인지라 외교공관이 몰려있게 되었고
가까이에 프랑스 영사관과 이탈리아 영사관이, 역에서 내려서 5분만 걸어가면 되는 정동에서는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영사관이 밀집되어 있었고 기리하여 서대문 정차장은
외국 영사관이 둘러쌓인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경인 철도의 주된 사용인물들은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외국인들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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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한매일신보 활동사진을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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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대한제국 황실이 만든 희대 ‘협률사‘

- 국악예술 공연 중심


1908년 이인직(1862~1916)이 ‘원각사' 개명
- 고전 창극공연과 영화 상연

1914년 화재로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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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극장가 형성 구도


(민족별 이용객)극장형성


일본인 주도의 영화가 흥행하였으며

구역은
북촌(종로)-조선인 거주지
남촌(충무로)-일본인 거주지로 나뉜다.

북촌은 연흥사(1907), 장안사(1907~1908?), 우미관(1912), 단성사(1918) 등이 있으며

남촌에는 가부키 전용 극장이 다수였고
활동사진 전용관은 경성 고등 연예관(1910), 유락관(1915)이 있다.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전용관은 경성 고등 연예관으로 1910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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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2층 목조 건물. 600여 명

영화 수입: 프랑스 파테영화사

요금: 특등선 1원, 일등석 50전,

이등석 30전, 삼등석 20전,

사등석 10전

단체관람 할인

- 자본주의 영화 유입현상 확대

- 시설의 고급화와 대형화




조선인 전용 3대 활동사진관은 안타깝게도 일본인 흥행사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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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관(1910)



일본인 동업으로 설관하였으며


1910년 고등 연예관으로 설립되어

1915년 우미관으로 이름을 바꾼다.


개관 당시에는 일본 직수입 형태를 띄었으며

15년 닛카쓰 영화를 상영하였고

16년 일본 하리마 유니버설과 계약을 맺어 서양영화 전문관으로 흥행하였고

1928년 국내 최초로 토키영화(유성영화)를 상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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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1907)


대한민곡 최초의 본격 상설 영화관

1907년 종로 3가에 목조 2층 건물인 연예 단성사로 개관


1918년 광무대의 운영자이자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인 박승필(1875~1932)이 인수하였고

최초 상설 영화관으로 변모하였다.


일류 변사와 전속 관현악단을 기용하였다.


1919년 10월 27일 최초로 국내 자본으로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을 상영하였고

(이에 10월 27일은 한국 영화의 날로 지정되었다.)


자체 제작, 상영 배급을 하였고

덴카쓰, 쇼치쿠, 유니버설에서 필름을 공급했으며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등 무성영화의 주옥과 같은 작품을 상영했다.

장화홍련전(1924)같은 조선인들이 만든 최초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새로운 문화매체로서의 역할인 다양한 공연의 무대를 재공했다.


아리랑(1926)상영으로 민족의 울분을 토해냈으며

2년 연속 상영이라는 대기록과 흥행으로

명실 상부 최고의 상설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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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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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1902~1937) 감독, 각본, 주연



1945년, 8.15 해방 뒤에도 1950년 6.25 전쟁 전까지 전국을 돌며 상영되어 서울에서만 9번이나 개봉되었고,

1952년 9월 <영남일보> 광고에 따르면 만경관에서도 1주간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에 영화 필름이 소실되었고 일본에만 남아있다는 소문만이 남았다.




1926년 ‘대륙극장으로 개칭

광복 후 다시 단성사로 복귀하여 악극을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연혁



2001년 구 건물이 철거됨.

2005년 지하 4층, 지상 9층-7개관의 멀티플렉스 재개관

3개관을 추가하여 총 10관에 1,806석 규모 극장.

2008년 4월 멀티플렉스 체인인 씨너스 단성사

11월 아산엠그룹이 인수 후 아산엠단성사로 출범.

2012년 법원, 경매 개시 결정.

2016년 단성골드빌딩으로 명칭 변경.

단성골드주얼리센터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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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극장(1922~1936)


위치는 종로구 인사동


연극 공연을 겸한 고급 영화 상설관을 표방하였으며

제일 늦은 만큼 최신식 극장이었다.


한국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토월회를 기반으로 진행하였으며

(1922년 토월회 창립 공연)


1930년대 영화 상설 극장으로 전환하였으나 동양극장(1935)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1936년 방화로 폐관되었다.








무성영화시대의 목소리이자 최초의 연예인/ 당시 최고의 스타는 바로 변사라 하겠다.


당시 조선의 최고의 스타는 서상호 변사였다(189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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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17일 조선일보


1920년 여름 조선일보 경북지국이 주최한 영화 상영회를 알린 사고(社告).

인기 변사 서상호의 사진을 싣고 그가 해설한다는 사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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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영화 상영의 관행은 변사(辯士): 전설(前說)/해설(解說).이 있다.


최종적 창작자로 최초의 영화 스타이며 전통 연행의 유산이 되었다(1인 진행)


복합적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본편+단편들+막간 공연 등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1920년대 무성영화 극장의 삼사로는


영화의 활동을 가능케 한 기사

관객과 대면하며 영화의 흥행을 좌우한 변사

음악으로 관람 분위기를 돋운 악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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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십자로>(1934)

감독: 안종화(1902~1966)



<청춘의 십자로>(2008)

연출: 김태용

변사: 조희봉





누가 뭐라 하더라도 무성영화의 꽃은 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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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최후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 감독


마지막 변사 신출(1928~2015)의 연기




변사는 설명 변사와 연극 변사로 나뉘었는데


설명 변사는 상영시 자막을 읽어주거나 내용을 설명했으며

-조선 변사는 주로 설명 변사였다.-

연극 변사는 일본 영화 중심으로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변사의 기원과 역할


변사의 기원 일본(1896~1939)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변사는 (1899~1940)


"그저께 밤 오후 여덟시 중명전에서 활동사진을 열어 황제폐하, 황태자전하와 태자비

그리고 영친왕 저하와 황귀비께서 관람에 임하셨는데 '전무과 기사 원희정' 씨의 설명으로

빙활(氷滑), 군함의 수병이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모습, 다양한 사람들의 풍경, 해수욕장의 광경 등

20여종을 모두 관람하셨는데 전쟁영화는 하나도 없었다.“


만세보, 1907.12



"애국부인회에서 오늘부터 관인구락부에 모여서 일본에 유학하시는 황태자 전하의 활동사진을

거행한다는 것은 이미 보도했었다. 어제 오후 한 시에 내무대신 송병준(宋秉畯, 노다 ) 씨가

변사 정운복(鄭雲復) 한석진(韓錫振) 김상연(金祥演) 세 사람을 내부로 초청하여 활동사진 대한 연설 방침을 협의하였다”


황성신문, 1908.06.24


“총독부 활동사진을 태람(전략) 이왕가에서는 수년간 상중이신 때문에 사용치 않으셨던 인정전을

오래간만에 화려하게 꾸미시고 배관자는 귀빈으로 이우공 전하 기타 윤 자작, 민 자작 이하의 친척 일동이며

또 부인석에는 여관과 및 이왕 직원 가족 등 약 백명이 배관하였는데 사진영사 기계는 최근 총독부에서 사드린 절대 방화(防火)의

안전품으로 사용하고 영화설명에 대하여 총독부로부터 전중 통역관과 이왕직으로부터 박 사무관이 통역을 하여 드렸는데

영화중에 경마대회 같은 것은 삼일 전에 촬영한 새 사진이며 이왕가로부터 애마(흐흐) 세 머리가 출장하였고 또 명고옥성은 연전에

이왕 전하께서 내지(일본)에 여행할 때 체재하옵시던 인연이 계시던 이궁(離宮)이신 때문에 흥미가 깊으셔서

사진을 비추일 때 누누이 질문이 계셔서 만족히 어람을 하셨더라.“


매일신보, 1921.05.3



변사의 역할-통역자와 해설

비평작업: 영화를 분석하고 설명할 내용을 검토

통역관 역할: 영화 내용을 설명




변사 영화사적 의미


무성영화 상영과 변사 – 현장성, 일회성, 관람성 창출


변사는 일본과 한국만의 독특한 영화미학과 영화 산업, 문화구축

- 조선 근대적인 엔터테이너


공연자로서 조선변사는 마당놀이라는 전통극의 특징을 나타냄
일본변사는 해설자 역할에 국한

청각 이미지와 시각이미지가 결합된 종합예술



혼종적인 공간인 극장: 공연물 +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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