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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료글] 현대전에 오기까지 [3] [가독성 개선]

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2 21: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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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이전에 현대적인 전쟁 방식을 익힌 군대로는 영국 외에도 일본이 대표적이다. 1905년의 일본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례인데, 먼저 전쟁의 초반부터 분산, 화력점, 제병, 대포병과 같은 전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 이걸 누가 딱히 알려주거나 한 것도 아닌데 사실 자기가 알아서 그걸 해버렸다는 점이다.


1900년 초 일본군은 프로이센의 제도에 큰 영향을 받아 참모 제도와 소부대의 독립성이 높은 편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사회에 식자층과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인구층이 늘면서 이러한 제도를 뒷받침해줄 부사관과 초급장교 풀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조건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사실 1차 대전 이후 등장하는 현대적인 전술은 거의 완전히 구현했다.



1. 분산과 화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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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전장에서 기본적으로 화력이 휩쓸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적용된 전술은 확장 대형의 일반화다. 확장 대형은 기존의 1~2m 간격이 아니라 5~10m 까지 개인 간 간격을 늘려서 포병에 취약성을 줄이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럼에도 확장 대형이 드물게 적용된 것은 병력 통솔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은 부사관과 초급 장교의 풀과 권한이 당대 군대에서도 느슨한 편이라 전쟁 초반부터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압록강 전투 이후 본격적으로 분산과 소부대 기동을 적용하였다. 1905년 7월 Chiao-tou 전투에서 일본군은 10명 이하의 반(Section)으로 나뉘어진 확장 대형을 적용했다. 같은 해 8월 30일, 랴오닝 전투 초반에는 높게 자라난 작물들 사이로 몸을 숨긴 채 전진했다. 1030 고지 공격에서 중대 간에 간격은 100m 정도였고, Yentaoniu-lu 전투에서는 러시아군의 화망을 2~3명의 인원으로 쪼개진 조로 돌파하기도 하였다.


지금 보면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앞선 글에서 본 것처럼 아직 영국군도 밀집 대형을 구사하던 시기로 부터10년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면 꽤 급진적인 수준이었다. 당시 Temple Hill (1904년 10월 11일) 전투를 참관한 영국군 장군(Ian Hamilton)도 이런 점을 지적하였다. 일본군의 대형은 "조(Section)이나 반 개조 정도 짝지어진 독립적인 집단들이 장교와 부사관을 통해 통솔하면서 화포나 기관총으로도 손쉽게 치명상을 가하기 힘든 대형"을 구사한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대열은 적의 방어진지와 500m 남짓한 거리에서 앞뒤로 3 페이즈 정도 거리를 둔 산병선을 구성하여 적에게 돌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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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여기에 더해 초보적인 화력점 개념도 도입하였다.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최종 돌입을 하기 위해 노출된 순간에 일제 사격을 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는데 이로 인해 피해가 커지자 이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일본군의 교리는 적의 방어선에 산병 대형으로 접근한 이후 소대 단위로 교차 진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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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 하나가 100~150여m까지 전진하는 동안 나머지 2개 소대는 적에게 제압 사격을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화력점은 현대 전술의 기초적인 방식 중 하나로 1차 대전 참호 습격에서 화력조와 돌파조의 구분이나 Bounding Movement에서도 쓰이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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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대대 규모를 제압 사격에 동원하기도 하였는데, 1904년 8월 31일 랴오닝의 요새에 진격할 때는 대대 전체가 능선 위에서 진격하는 아군을 위한 제압사격에 동원되었다. 이는 보어 전쟁 이후에도 화력점을 두고 영국군 내에서 논쟁하던 것을 생각할 때 상당히 선진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교차 기동 이후 부대는 곧바로 간이 참호를 빠르게 구축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참호선에서 포복한 보병들은 러시아군의 제압으로 부터 어느정도 견뎌내는 것이 가능했다. 전진 간 제압이나 보조를 하던 조는 앞서 구축된 참호를 이용함으로서 엄폐물이 부족한 구간에서도 제한적이나마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참호선은 방어 작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는데. 일본군은 러시아군이 근접시 예비 진지로 이동하여 적과 간격을 벌리고 기존 진지를 포기하는 대신 적에게 화력을 투사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교차 기동과 화력점의 목표도 상당히 인상적인데, 각 중대나 대대의 목표는 상대 진지의 측면이나 돌파였다. 일본군 교리에서 공격 전면이 좁은 경우 후속조나 소대를 통한 우회 공격이 권고 되었으며, 만약 적의 방어 전면이 넓다면 돌파하라고 지시한다. 당연해 보이는 이런 이야기가 대단한 점은 이런 것을 1900년대초 소부대에게 요구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군이 교차 전진이나 화력점에 회의적이었던 까닭은 결국 잘 살려서 적의 대군에 보내는 것이 고작 몇 푼도 안되는 소대 분대 밖에 안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산병을 잘한다고 하더라고 궁극적으로 공세는 적의 대군을 몰아내는 것인데 이걸 소규모 부대로 할 수가 있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이런 문제에 있어 1904년 제병 훈련 교리와 다르게 제법 분명하게 소부대의 제압 사격과 포병의 제압력을 해법으로 명시하고 미래로의 방향성을 잡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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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일본군의 전쟁 기관총 운용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당시 방어전에 주로 동원되던 기관총은 종종 보병진 뒤에서 머리 넘어 고각 사격을 하곤 하였다. 물론 이런 방식은 지금 와서는 절대 금기시 되는데, 포병의 연장선 상에서 기관총을 취급하던 당시에는 상당히 애용되던 운용 방식이었다.


일본군은 공세 간에 포병 사격이 끊어지면 보병의 최종 돌입까지 기관총이 제압역을 맡았다. 전쟁 후반에 들어서 기관총은 보병과 같이 동행하여 전선 앞에서 적 진지를 제압하는 현대적인 운용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발전이 다소 일본군 내에서도 기관총이 보병 역할을 한다면서 '직무유기'했다는 자평을 했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까지 해답에 도달 했다는 것과 그것이 허용되는 분위기는 상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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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는 2차 대전의 헛짓거리라고 평가받는 야간 기습도 이 당시 많이 영향을 받았다. 현대전에 와서도 야시경이 없는 군대 입장에서 함부로 야간 기동을 수행했다가는 적과 접촉도 하기 전에 부대가 와해 되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화력에 의한 소모가 극심해지자 일본군은 소부대 기동과 분산을 야간전과 병행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점을 꽤 대단하게 생각해 볼만한 이유는 많다. 아직 임무형 지휘가 생소하던 시기에, 야밤에 소대 단위로 야간에 병력을 통솔해서 지휘관의 의도를 전투 끝까지 실행할 수준의 부사관과 장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야간전의 효과와 별개로 이런 점은 당시 일본군의 질적 수준이 꽤 대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히 야간 침투가 앞서 말한 화력점과 결합될 때 파괴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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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904년 10월 12일 774 고지에 대한 공격에서는 야음을 틈타 40m까지 보병 부대를 적 방어선에 접근시켜 호루라기 신호와 함께 일제 제압 사격을 실시하였다. 동시에 후방에 지원 부대는 조 단위로 병력들이 방어선 측면에 침투하여 적 참호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 내버리는데 성공한다.


물론 보병만 잘나서 일본군이 러-일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일본군 포병대의 활약은 보병에 못지않게 꽤 무서운 것이었다.


2. 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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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제병 협동이라고 하면 전차와 항공부대와의 작전을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병종의 조율된 작전은 제병 협동이라고 부른다. 19세기까지 포병과 보병 (그리고 기병)은 조율하기 편리한 구석이 하나 있었다. 포병 부대가 지휘관과 조율한 보병 부대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지휘관은 보병 부대 측면에 포병 장교나 본인이 자리 잡고 적당한 때 사격 명령과 표적 선정을 내리면 되었는데 보어 전쟁 시기 이전부터 이미 이런 짓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포병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고폭탄이 대량 적용되면서 포병은 적포병의 제 1 표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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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병의 문제가 19세기 후반에 불거진 것은 결국 포병 사거리가 늘었다고 안전한 곳에 포병을 배치하면서 제병의 문제가 심화된 것에서 출발한다. 이제 포병은 적의 사격에 덜 노출되지만 무전기도 없던 시대에 보병의 진격을 보조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1차 대전 초반에도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서 완성된 것이었다.


일본군은 러-일 전쟁 당시 보병과 제병 뿐만 아니라 간접 사격, 적 포병 유도 및 대포병 사격처럼 지금 생각하기에도 제법 영리한 작전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편이었다.


당시 일본군 포병 교리에서 우선되는 임무는 진군하는 보병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공격은 포병의 사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격은 단순히 적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군 보병이 진군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압 사격을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군 보병이 방어선에 접근하면 포병은 목표를 점진적으로 적의 후방으로 전환하여 적의 증원군을 차단하고 후퇴하는 적을 소모시키고 통신선을 차단하는데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압록강 전투에서 일본군 포병대의 야포는 간접 사격을 통해 러시아군 후방을 타격하여 후퇴하는 병력에 심대한 소모를 야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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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8월 30일 같은 전투에서 1030 고지 전투에서는 일본군이 보병의 최종 돌입 이전까지 적 방어선을 타격하였다. 집중된 포병 사격은 일부 진지에서 러시아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까지 성공했다. 더 중요한 것은 보병의 기동이 포병 사격과 조율되었다는 점인데 당시 일본군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포병 사격이 그친 이후 최대한 빠르게 진격하여 제압 효과를 최대화 시키고자 하였다.


1904년 10월 12일 Shihliho 전투에서 일본군은 900m를 밖 러시아군 참호선을 포병의 지원하에 진격했다. 500m 거리에서 러시아군이 일제 사격을 취하려고 하였으나 일본군의 제압사격으로 인해 오히려 참호를 포기하고 후퇴하기까지 하였다.

La-ta Shan


1904년 10월 13일에 La-ta Shan 전투에서는 이런 제압 사격이 단순히 1차 대전 초기 격멸 사격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적게는 며칠 길면 일주일에 걸친 1차 대전 초기 포병 사격과 다르게 일본군의 제압 사격은 45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이뤄졌다. 보병은 일부 아군의 화망에 휘말릴 정도로 포격과 근접한 거리까지 접근하였다. 포격이 그치자 다른 전투에서 처럼 보병은 가까운 거리에서 돌입하였다.



러-일 전쟁 다시 일본군의 포병은 분산 된 러시아군과 다르게 2~3개 포대가 뭉치거나 혹은 포병 연대를 구성하여 집중 운용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렇게 집중된 포병은 1차 적으로 적 포병 제압과 아군 보병이 최종 돌입 지점까지 도달하기 까지 제압 사격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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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5월 14일 Telissu 전투는 일본군 대포병 전술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일본군 포병대는 전투 초기에 포대 일부만 동원하여 일부러 러시아군의 포격을 유도하였다. 한 시간 정도에 걸친 포병 전투 끝에 러시아군의 포병 진지가 확인되자 일본군은 보병 부대로 탐색 공격(Proobing Attack)을 하여 주의를 돌린 이후 나머지 포병대로 러시아군의 포병을 무력화하였다. 당시 전투에 있던 프랑스 측 참관 장교는 양측이 기존의 직접 사격 교리를 완전히 버리고 간접 사격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3. 결론


여기까지 본다면 일본군은 아마 많은 부분에서 많이 나아졌다는 영국군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 군대로 비춰져 보인다. 보병부대는 이미 후티어 전술로 대표되는 침투 전술을 소대 아래의 단위까지 실행 가능한 경지에 도달했었다. 포병 부대는 적의 격멸이나 단순히 분산된 화력 지원 도구가 아니라 중앙화되고 작전에 통합된 제압을 통한 제병전에 핵심 자산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를 위한 핵심은 1차 대전 이전에 이미 수많은 각 나라 군대들이 스톰트루퍼 전술 혹은 후티어 전술로 대표되는 임무형 지휘, 제병협동, 침투 전술 그리고 소부대 기동과 같은 현대적 전투 방식을 스스로 찾아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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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내가 이 부분을 공부할 때 가장 의문인 점은 사실 일본군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적응했느냐 보다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뛰어난 군대를 20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짦을) 시간 사이에 우리가 아는 그 모양으로 도태되어 버렸냐는 점이다. 우리가 광기로 치부하는 2차 대전의 수많은 일본군 기행들은 사실 많은 부분 현대전의 정답을 극단적으로 왜곡해버린 결과였다.


참모진들의 폭주와 단순해 보이는 돌격 정신 그리고 단순히 야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믿음들은 1905년 선배들의 다음 세기에 대한 해답을 그저 외향만 베껴버린 결과였다. 이는 단순히 일본군의 몰락이 아니라 지역 강대국으로서 일본의 지위를 21세기 지금까지도 박탈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난 개인적으로 국군이 러-일 전쟁으로 배워야 할 교훈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일본군을 파멸에 몰고 가게 한 것은 그렇게 두려워 하던 물질적 열세나 국력이 아니라 20세기 초 어쩌면 가장 앞서 있던 군대를 도태 시켜버린 자기 스스로 였다는 점을 말이다.



참고자료

Thomas A. Bruno, Ignoring The Obvious: Combined Arms And Fire And Maneuver Tactics Prior To World War I (2015 Verdun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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