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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대구 메트로 2033 챕터1 : 진천역

ㅇㅇ(37.19) 2023.12.10 05:18:07
조회 287 추천 6 댓글 7
														

매번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 써봅니다..


메트로 2033의 팬픽입니다.


메트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당시 신선한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에 큰 충격을 받고 메트로 시리즈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언제나 제가 나고 자란 도시 대구를 배경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갔습니다.


'모스크바 지하철이 아닌 대구 지하철이라면 어떨까?'  라는 상상은 너무나 즐거웠고, 언젠가 이 상상을 글로 옮겨보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습니다.


마침 최근에 무직백수가 되었기에 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를 조금씩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소설을 써 보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낌없는 비판 기다리겟읍니다...



###


터널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경찰용 방석복의 빈 틈으로 들어와 온 몸을 휘감았다. 대원들을 스쳐 지나간 바람은 터널 뒤쪽으로 세차게 빠져나가며 소름 끼치는 휘파람 소리를 냈다.

성준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번 임무는 이제 막 20살이 된 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K-2 소총의 총열덮개를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다 해진 인조가죽 장갑을 통해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목구멍이 바짝 마르는 것 같은 갈증이 느껴졌다. 아쉬운 대로 침을 삼키고는 자신의 앞뒤에 선 대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뒤에 있는 대원은 경직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대원들은 철로에 얹어져 있는, 반쯤 불타 그을린 흔적이 만연한 전동차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선두에 있는 대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의 모습은 실루엣만 보였다. 낡은 헤드 랜턴의 옅은 빛은 대장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짙은 어둠 속에서 희석되어 사라졌다. 성준은 집중하는 듯 눈을 희미하게 뜨고는 대장의 오른손을 유심히 살폈다.

대장이 간단한 수신호를 하자 대원들은 앞으로 뛰어 나왔다. 묵직한 군홧발 소리가 침목을 두드렸다. 성준의 앞뒤에 서있던 대원 둘은 기둥 사이의 버려진 참호에 몸을 던졌다. 참호 속에 무언가 보았는지, 대원 한 명이 헉, 하며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성준은 대장이 있는 흙더미로 달려갔다. 대장은 무너진 터널 벽면에서 쏟아져 나온 흙더미에 몸을 숨긴 채 앉아쏴 자세로 30m 앞의 어두운 승강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뭔가 보이나요?”

성준이 속삭였지만 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장인 박경후 하사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군인이었다. 그런 그의 육감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도 경고하고 있는 걸까?

성준은 당장이라도 뒤쪽에 있는, 아늑하고 따뜻한 집으로 연결된 터널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적에게 죽기 전에 대장이 그를 죽일 것이 분명했다. 대장의 무시무시한 강철 갈고리 손을 생각하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 때, 10m 앞의 철로 가장자리에 뚫린 개구멍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무언가 사각사각 긁는 듯이 들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며 찔걱찔걱하는 관절 움직이는 소리로 변했다.

대원들은 거의 동시에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성준은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소리의 주인이 무엇일지 추론했다. 그냥 쥐새끼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터널에 온갖 돌연변이 괴물이 산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상에는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었다. 건장한 남성이라도 방사선 차폐복 없이는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했다.

땅 위에 살던 동물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땅 밑에 살던 동물이나 작은 곤충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생물들은 모두 지하철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방사능이라는 악마의 힘을 빌어 지하에서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스스로의 외모를 변화시켰다. 단 몇 세대 만에 급진적인 진화가 일어났다. 지하철은 더 이상 인간들만의 영역이 아니었다.

지하철을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기를 휴대해야 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역이나 인적이 드문 터널에서는 높은 확률로 기괴하게 변이한 괴물과 마주쳤다.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성준은 보부상에게서 총탄을 튕겨내는 벌레에 대해 들은 것이 떠올랐다.

곧 괴상한 생명체가 개구멍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네와 딱정벌레를 섞어놓은 듯한 거대한 벌레가 1미터가 넘는 길쭉한 더듬이로 바닥과 벽을 훑으며, 길을 찾고 있는지 머리처럼 보이는 부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기다란 몸체에는 도대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많은 다리의 무수한 관절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몸체 마디 마디는 희고 투명해서 속에 있는 장기를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놈은 몇 시간 전에 포식을 했는지 위장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꾸물거리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놈은 시력이 없는지 헤드 랜턴의 불빛에 반응하지 않았다. 성준은 혹여나 놈이 소리를 들을까 숨을 참고는 - 저것에게 귀가 있다면 말이다 - 소총의 조정간을 천천히 연발로 옮겼다.

저것이 공격해온다면 이길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저 많은 다리로 얼마나 빨리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또, 오래된 소총은 쉽사리 기능 고장을 일으켰다. 연발 사격은 항상 말썽을 부렸다. 혹시 총알을 튕겨내면 어떡하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동안 주변을 더듬던 그 놈은 길을 잘못 들어왔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개구멍의 심연 속으로 머리를 돌렸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성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따뜻한 입김이 반면형의 방독 마스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되돌아와 입과 코 주변의 피부에 닿았다. 마스크 안에 차가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벌레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대장이 벌떡 일어서서 승강장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성준은 울고 싶었다. 온갖 흉측한 소문으로 점철된 저 역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은 성준의 애원하는 듯한 표정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 낮은 채도의 어둠이 다가왔다.

승강장 바로 앞의 5m 지점에서 성준은 고개를 들어 터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 매달린 누리끼리한 현수막에는 “진천역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물감이라도 뿌려 놓은 듯 현수막 중간중간 덧칠된 검은 점들이 사실은 직경 6mm의 탄환 구멍이라는 사실을 눈채챈 성준은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앞서 간 대장이 빨리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성준은 조심스럽게 승강장의 대리석 타일을 밟았다.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전투화 밑창이 대리석에 미끌리자 삐익- 하는 불쾌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승강장은 스산하고 꿉꿉했다. 오래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벽과 바닥의 타일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그 틈을 따라 정체 모를 덩굴 식물이 자라나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메트로놈 박자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며 승강장 전체에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안내판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그것은 깨진 아크릴 판 뒤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진천”이라는 색 바랜 역 이름이 헤드 랜턴에 반사되었다.

얼핏 보기에도 이 역은 한때 사람이 살았던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성준은 진천역이 버려진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들려오는 소문은 다 달랐다. 원혼이 깃든 역이라던가, 역 아래에 북한군의 땅굴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허튼 소리였다.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는 돌연변이 개미와의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진천역과 대곡역 사이의 터널은 옛날에 무너졌다. 오래된 터널이 빗물을 잔뜩 머금은 지반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은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대곡역에 거대한 여왕개미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그 개미는 자기를 닮은 거대한 개미를 무수히 낳아 지하 왕국의 통치자로 군림했다. 개미굴은 인간이 판 것보다 더 깊은 땅 속으로 뻗어나갔다. 개미 왕국은 무너진 터널 너머의 인간 마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부주의한 일개미 한 마리가 무너진 터널의 흙더미를 파고 나와 진천역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거대한 벌레를 보고 기겁하며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곧 진천역과 개미 왕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죽이는 데는 도가 튼 종족이다.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납 덩어리는 개미의 단단한 외골격을 우습다는 듯 뚫고 지나갔다. 빗발치는 총알 아래 수백 마리의 개미가 죽었다. 수류탄이나 클레이모어와 같은 흉악한 것들도 동원되었다. 진천역에서는 총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았고, 종족을 관류하는 이 전쟁에서 인간은 승리를 목전에 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승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탄약이 다 떨어진 것이다. 무기가 없는 인간은 곰 앞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원숭이 신세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악에 받친 개미 군대에게 잡아먹히거나, 깊고 어두운 개미 왕국으로 끌려가 비축 식량이 되었다. 도망쳐 나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성준은 개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소문에 등장하는 거대한 식인 개미 따위가 아니라, 갈라진 벽과 바닥의 틈에 사는 작은 곤충들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굴을 팔 수 없었다. 생존자들은 지난 시대의 인간들이 파둔 굴에서 비루하게 연명할 뿐이었다. 하지만 개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굴을 파며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각 개체는 연약하고 무력했지만, 군집을 이룬 개미는 하나의 강력한 유기체가 되어 자신들의 문명을 건설해 나갔다. 그들이 흙더미 속에 창조한 미로 같은 도시, 그 작고 신비로운 세계를 상상하면 성준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한한 경외심이 솟아올랐다.

성준은 이 역 너머에 정말로 거대한 개미 왕국이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자 반대편 터널에 들어가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곳에 가면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전쟁의 참상을 증명하는 거대한 개미의 사체를 목도하게 될지도 몰랐다.

발에 채인 무언가를 비추어 본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몸통이 없는 해골의 시커먼 눈구멍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이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서도 느껴졌다.

해골의 몰골은 끔찍했다. 그는 녹이 슨 방탄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 방탄 헬멧에는 무언가가 엄청난 힘으로 내려찍은 것처럼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총탄이나 폭발에 의해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탄피가 굴러다녀 예전에 여기서 교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성준이 멈춰 서니 대장이 돌아봤다. 그는 굳어버린 성준과 해골을 번갈아 보더니, 뭘 이런 걸 보고 일일이 놀라냐, 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준은 마음 속으로 해골 주인의 명복을 빌며 황급히 대장을 따라갔다.

두 사람은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성준은 소총을 계단 위로 겨누며 엉성하게 경계 자세를 취했다. 대장이 다시 수신호를 하자 참호에 숨어 있던 두 명의 대원이 달려와 합류했다.

방독 마스크의 필터를 뚫고 대장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 상병이랑 성준이는 여기서 대기하고, 민재는 나랑 같이 올라간다.”

박 상병이라고 불린 대원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넷이 같이 올라가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 위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대장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해 말했다.

“너희 둘은 여기서 쥐새끼 한 마리도 올라오지 못하게 지켜. 만약 우리가 10분 뒤에도 내려오지 않으면 바로 복귀해서 임무 실패라고 보고해.”

박 상병은 항변하려는 듯 목을 빼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은 차라리 대장과 함께 대합실에 올라가고 싶었다. 이 끔찍한 승강장에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남아서 무려 1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번 임무에 자원한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단순히 “다른 역 조사 임무”라는 말만 듣고 헐레벌떡 지원하는 게 아니었다. 세부 사항을 브리핑 받고 임무의 실체를 알게 된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1분이 1시간처럼 흘러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물방울 소리는 어느샌가 멎어 있었다.

박 상병이라는 사람은 가끔 손목 시계를 보는 것 말고는 소총을 든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성준은 이 적막이 너무 싫었다. 뭐라도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박 상병의 눈빛이 무서워서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준은 “군대 괴담”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핵전쟁 이전에 군복무를 한 아저씨들은 자기만의 “군대 괴담”을 들려주곤 했다.

화자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야기의 플롯은 거의 비슷했다. 한밤중에 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무언가를 목격한다.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땅 위를 둥둥 떠다니거나, 몸의 일부가 없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이 귀신임을 드러낸다. 병사들은 그것을 보고 기겁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소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자살한 곳이라거나, 오래전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장소라는 것처럼 말이다.

성준은 지금 상황이 “군대 괴담”의 도입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것이 귀신이든 돌연변이 괴물이든 말이다.

한기와 함께 팔다리를 따라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을 쫓아 내고자, 그는 일부러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돌연변이 괴물과 귀신 중에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일까? 아마 돌연변이 괴물일 것이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죽이지는 못할 테니. 총알을 튕겨 내는 벌레가 진짜 존재할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방사능 속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태어났으니까. 소총으로 귀신을 사살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한창 의미 없는 자문자답을 하고 있는 그때였다. 갑자기 그그긍-,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역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성준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마 지진인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부쩍 지진이 잦았다. 장대한 대지가 자신의 몸 속에 사는 기생충들을 쫓아버리려고 하는 듯, 때로는 몇 시간 간격으로 땅울림이 반복되기도 했다. 지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은 혹시나 천장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낡은 책상과 녹슨 열차 밑에 숨어서 벌벌 떨어야 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가벼운 진동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 것은 달랐다. 점점 진동이 세지더니,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발 밑이 울려댔다. 성준은 비틀거리다가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바로 옆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홱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탁한 표면의 오래된 형광등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위험합니다! 빨리 내려오십쇼!”

박 상병이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파열음에 묻혀 사라졌다.

성준은 주변에 몸을 숨길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승강장은 진동 때문에 생긴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헤드 랜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두터운 먼지 안개를 뚫지 못하고 몇 센치미터 앞에서 흩어졌다.

본능적으로 소총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소총은 몸을 숨기기에는 너무 작았지만, 가벼운 낙석 정도는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그 희망에 응답이라도 하듯, 소총의 개머리판 끝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떨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 대장과 다른 대원이 계단을 미끄러지듯 타고 허둥지둥 내려왔다. 대장의 왼쪽 갈고리 손에는 갈색의 무언가가 잔뜩 눌어붙은 서류 가방이 걸려 있었다.

“물건을 확보했다! 당장 복귀한다. 모두 터널로 뛰어가!”

대장의 외침에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터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진동 탓에 제대로 달리기는 어려웠지만, 반쯤 무너진 터널의 나머지 부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걸 보고 있으니 종아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대원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마지막 대원의 발 뒤꿈치가 떠나자마자 터널은 굉음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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