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고민] 갓 20살, 내 정체성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11.234) 2024.05.12 01:12:21
조회 265 추천 0 댓글 10
														

대학에 붙고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게임을 처음 배웠다. 여친이 제발 친구를 사귀고 사회성을 기르라며 애원을 하길래 의식적으로라도 말도 걸고 웃어주고 분위기 맞춰 주려 했고, 인생 첫 술자리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친구를 사귀고 술자리도 계속 간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대학에서도 생각처럼 친구를 사귀고 어울릴 수 없었다. 동기의 사는 곳, 출신 고교나 관심사, 강의나 교수와 같은 주제의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친목은 번번히 실패하고, 더듬는 말과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어 버리는 나의 미숙한 사교 기술은 스스로도 부자연스러웠음을 인지가 가능할 정도였다. 저주받은 사회성에 나는 도대체 어떤 놈인가 하는 고민,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망과 아무런 친구도 없다는 현실의 자아 불일치는 이내 우울증으로 번졌고, 기숙사에서 두문불출하여 교양과목들은 출석 부족으로 F를 맞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환경이 변해서 생기는 단순 우울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근본적인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이르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득 나무위키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내용을 봤다. 물론 나는 그저 소심하고 사람보다 책에서 에너지를 얻는 내성적인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ASD의 진단 기준인 사회 기술 부족, 제한된 관심사, 특유의 사고방식이 공감이 가서 마음에 걸렸다.


자가진단으로 AQ도 36으로 나오고 어릴 때 했던 이상한 행동이나 소리를 상상해보니 의심은 점점 커졌다. 몇달 전이었다면 별 생각 없이 넘겼을 내용이지만 머릿속에는 아스퍼거와 자폐라는 단어가 가득 차게 되었다.

  

다만 감각예민에 관한 서술을 보고 또 혼란이 생겼다. 나는 특히 촉각, 후각에 예민한 편은 맞고, 여친이 날 간지럽히니 지나칠 정도로 오바하거나 볼일보고 화장실 문을 열어두는 습관 때문에 지린내를 풍기는 룸메한테 잔소리를 여러 번 퍼부은 적도 있다. 그런데 특정 소리를 듣고 이게 예민해진다는 것인지도 모르고, 검색하면 나오는 전형적인 아스퍼거들의 반응은 심장이 내려앉거나 귀마개를 껴야 하거나, 패닉이 오거나 해서 그걸 회피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지만, 나는 긴장 되거나 좀 많이? 놀라는 수준이고, 오래 있으면 피곤해져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멜트다운이라는 것도 다른 아스피들의 사례에 비교하니 나의 증상?은 새발의 피도 안 되는 듯 하다. 또한 이불 뒤척이는 거나 쩝쩝, 후루룩 소리에 불쾌하고 귀를 막고 싶은 건 다들 그렇지 않은가? 싶은 의문도 계속 들었다. 일반인이 느끼는 수준의 예민함인지 자폐만의 예민함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다만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니 청바지 입기 싫다고 떼를 쓴 것, 상표가 걸리적거린다고 옷 입기 싫어했던 것을 보면 예민인지 아닌지는 나의 기억력과 판단력으로는 확정이 불가능한 것 같다. 스승찾기로 초등학교 선생님을 찾아서 면담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중학교 때 동급생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상동행동과 증상을 억눌러야겠다고 자각하고 많이 사라졌기에 지금의 나와 초등학생의 나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과 교류한 경험이 드물어 '객관적으로' 예민한 게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각예민이 있는지 불확실한 것이 혼란을 준다. 나는 아스퍼거 진단을 받더라도 분명 경증일 것이다. 아니라고 진단받을 확률도 있고, 그렇다면 나는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표류할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혼란해진 정체성으로 근심 걱정이 가득 찬 채로 MT 날짜가 다가왔고, 그때와 다름없이 술과 안주를 까고 술 게임을 즐겼다. 소주 반병이 들어간 상태임에도 확연히 억지로 웃는 기분이 강해짐을 느낀다. 술을 먹고도 이렇게 차갑고 냉철할 수 있는지 스스로가 놀랍기도 하고, 뭔가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립할 희망이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과 노력이 전부 허상일 수도 있다는 허망감과, 분위기를 맞추려 하고 타인에 녹아드려 했던 지난 날의 나에게 현타가 씨게 온다.

  
내가 자폐이든, 그냥 비언어적 학습장애거나 성향만 극 I인 일반인일지든, 호남지역 최고 명문대라서 특이한 취향 가진 애들도 있겠다고 기대도 했는데 관심사가 너무 이질적이고 사회성 스킬도 초보라서 도저히 어울릴 수 없어 너무 아쉽고 실망이 들었다. 다들 숨기고 사는지 정말로 내가 너무 특이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1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2862 AD 희귀 정령 획득 기회! <아스달 연대기> 출석 이벤트 운영자 24/05/23 - -
15735 공지 [필독] 갤러리 이용 규칙 [10] 손민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1.20 710 1
7210 공지 본 갤러리는 사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갤러리입니다 [2] 상담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2.15 1526 2
6169 공지 자가진단 요령 [1] 상담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8.08 3916 4
17898 일반 이거 만성우울증이야? 쿠로미(218.154) 22:40 7 0
17897 일반 자폐1급이 진짜 이정도 수준임? [2] 안녕하세요전김(112.153) 21:06 36 0
17896 일반 고집을 부리고 나서 죄책감이 들어 ㅇㅇ(211.234) 18:43 37 0
17895 일반 우리형 제발 아무 말 안하고 입좀 닫고 다녔으면 좋겠다 쿠로미(218.154) 18:43 36 0
17894 일반 남자친구가 아스인거같아서 찾아보다가 아갤러(14.43) 17:24 31 0
17893 일반 백신과 캠트레일 그리고 자폐 아갤러(1.254) 17:03 18 0
17892 고민 도서관, 수업시간 마우스 소음 [2] 만렙을보며달려온세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36 27 0
17891 정보 Autism Speaks는 백신 음모론 주장하는 곳이 아니야. [6] ㅇㅇ(211.241) 16:25 32 0
17890 일반 어렸을때 왕따 당했을때 동네 질이 안좋아서 그런거라고 믿었음 [3] 히말라야립(175.125) 15:54 36 0
17889 관심사 이왕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다면 덴마크 가자 히말라야립(175.125) 15:39 25 0
17887 일반 약속하자 다음생에 부잣집 자녀로 태어나기로 [4] ㅎㅎ(119.197) 15:22 43 0
17886 일반 푸른바람님은 어디 살았음? [5] ㅇㅇ(180.68) 14:24 43 0
17883 일반 자폐증은 경증, 중증 구분이 반드시 필요해. [21] ㅇㅇ(211.241) 10:15 140 0
17882 일반 아스퍼거는 눈맞춤 아예 불가능함? [5] 아갤러(39.7) 09:57 63 0
17881 일반 중증 자폐와 경증 자폐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어. [8] ㅇㅇ(211.241) 09:11 93 0
17880 고민 공무원 시험 고민중인데 뭐가 나을까? [1] 아갤러123(14.32) 08:47 48 0
17879 정보 교육기관에서 체계적 스티그마를 경험하는 한국 아스퍼거 당사자들 3부 [5] ㅇㅇ(180.68) 08:42 75 3
17878 정보 교육기관에서 체계적 스티그마를 경험하는 한국 아스퍼거 당사자들 2부 [1] ㅇㅇ(180.68) 08:41 34 3
17877 정보 교육기관에서 체계적 스티그마를 경험하는 한국 아스퍼거 당사자들 1부 [9] ㅇㅇ(180.68) 08:40 65 3
17875 고민 아스퍼거가 늘어만 가네 [2] ...(203.87) 05.24 87 0
17874 일반 직장내 괴롭힘 당한 기억이 떠올라서 괴로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4 50 0
17873 정보 아스퍼거 증후군은 민법 상 이혼사유가 될 수 있어. [3] ㅇㅇ(211.241) 05.24 91 0
17872 일반 아스퍼거나 경지는 인간혐오 걸릴만 하지 [3] ㅇㅇ(203.81) 05.24 75 0
17871 일반 내가 그 동안 시도한 자폐 치료와 향후 시도할 치료들 ㅇㅇ(211.241) 05.24 32 0
17870 일반 한국에 살면서 눈맞춤으로 지적받은적이 없는데 [2] ㅇㅇ(222.100) 05.24 71 0
17869 일반 날도 더워지는데 옷 뭐 입으면 돼?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24 30 0
17868 일반 아스퍼거 모여있는거 상상하면 좀 웃김 ㅋㅋ [5] ㅇㅇ(218.154) 05.24 103 0
17867 일반 정상에 목을메며 장애인차별하는 사람한테 할말 중 어느게 가장 기분나쁠까? [6] 쿠로미(223.39) 05.24 75 0
17866 일반 내 주변에 지적장애인♡비장애인 커플 있는데 [3] 쿠로미(223.39) 05.24 96 2
17865 일반 북한이 아무리 독재 저개발국이라도 한민족은 맞나보네 [3] ㅇㅇ(220.127) 05.24 62 0
17862 일반 혐오가 만연한... 그런 중에 희망 [3] 히말라야립(175.125) 05.24 45 0
17861 일반 한국은 너무 지나치게 많은걸 강요해 [1] ㅇㅇ(58.124) 05.24 58 5
17858 일반 한국인 아스피들도 아스퍼거 자조단체를 만들어야 한다 [7] ㅇㅇ(220.127) 05.24 75 0
17857 일반 보건복지부 고시로 자폐 배아의 산전검사가 가능함. [2] ㅇㅇ(211.241) 05.24 71 0
17856 고민 장애등록 못하는 자폐가 한국사회에선 제일 살기 힘든것같다 [1] ㅇㅇ(220.127) 05.24 39 0
17855 정보 한국에서는 장애 혐오로 고소 불가야. [2] ㅇㅇ(211.241) 05.24 68 0
17853 일반 충동조절약 먹은 후기 쿠로미(223.39) 05.24 39 0
17852 일반 소속감 느껴본 적 있음? [3] 히말라야립(175.125) 05.24 70 0
17851 일반 아스퍼거 뉴스 굳이 찾아보지 마라 [4] ㅇㅇ(180.68) 05.24 99 1
17850 관심사 아스퍼거 뉴스만 찾아봄 구글로 [12] 히말라야립(175.125) 05.24 94 1
17849 일반 철도 커뮤니티는 아스퍼거란 단어는 어디서 주워들은거냐 [8] ㅇㅇ(180.68) 05.24 64 0
17848 일반 자폐 스펙트럼이 음식에 예민하긴 한가보다 [1] 히말라야립(175.125) 05.24 63 0
17847 일반 퍼거 붙이는 욕들 너무 많아 [2] 히말라야립(175.125) 05.24 62 1
17846 일반 신경다양성의 전제인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비판 ㅇㅇ(211.241) 05.23 30 0
17845 일반 횃불투쟁게이는 시위 안함? [4] ㅇㅇ(180.68) 05.23 71 0
17844 일반 @스퍼거 라는 말 자체가 [7] 히말라야립(175.125) 05.23 104 0
17843 일반 자폐인과 NT가 대화가 안되는 이유 [2] 쿠로미(218.154) 05.23 106 0
17842 고민 왜 사람들은 자폐성장애 가진 사람들은 동등한 인간으로 안 보는거냐 [3] ㅇㅇ(180.68) 05.23 70 3
17841 일반 근데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병역 어떻게 되냐? [3] ㅇㅇ(180.68) 05.23 57 0
17839 일반 피의분노와서 대가리 깨질거같고 우울한데 날씨도 더워서 ㄷ질뻔함 [2] 쿠로미(218.154) 05.23 5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