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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호붕이 인터뷰 (4)

가자미(212.102) 2023.02.20 18:16:06
조회 1060 추천 34 댓글 15
														

하지만 그분은 나를 택하셨지.


비할 데 없는 영광이지. 허나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어. 그분과 나 사이의 특별한 친밀감이, 그 완벽했던 삼십 년간이, 두말하면 잔소리일 뿐인 내 위업이, 그분이 나를 택하신 이유겠지. 허나 그것 뿐만은 아닐 걸세, 올리톤 양, 내 생각에 그분이 나를 택하신 까닭은 내게...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모두가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붙임성이 있어서일 걸세. 나는 모든 이들과 어울릴 수 있네. 생귀니어스가 나보다도 훨씬 더 고결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 허나 그가 지닌 속세를 초월한 듯한 천상의 속성이, 그가 사람들에게 우러러보아지는 이유 그 자체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들어. 그의 완벽함이 오히려 그가 선택받지 못한 까닭이 되었네. 나의 불완전함이 나를 더 나은 대안으로 만들었지.


나는 임명받았을 때 솔직히 안도했네. 이건 여태껏 자네 말고 다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 안도했어. 그분께서 올바른 선택을 내리셨노라고. 지금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건지 솔직히 나 스스로도 놀랍네. 머세이디Mersadie, 자네한테는 무엇인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내가 툭 터놓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나는 안도했어. 그리고, 내가 누구를 제치고 선택받았는지 나 스스로도 잘 알았던 까닭에, 나는 그분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노라 맹세했지. 아버지와 그 아들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으응? 항상 서열과 규칙이라는게 있는 법이네. 조심조심 잘 살펴야 하는 복잡한 혈연과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단 말이야. 이제 나도 아들들을 둔 아비가 된 까닭에 이를 잘 알게 되었어.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들 모두 특별히 더 아끼는 녀석이 있기 마련이거든.


에제카일이냐고? 오, 이건 정말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건데. 자네가 보고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게. 그래도 이건 말해주겠네. 에제카일은 내가 결코 하지 않을 일들을 할 것이야. 그가 앞으로 일구어낼 업적에 있어서 날 한참 앞지를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네. 그런데 그가 내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일까? 올리톤 아가씨, 그건 자네의 척도에 달렸어. 자네가 우리 가족간의 관계도를 어떻게 살피냐에 따라 달렸지. 그들 모두가 내가 사랑하는 아들들이라네. 에제카일은 가장 강하고, 가장 단호하고 완강한, 가장 나와 닮은 아들일세. 허나 세야누스는 다른 방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지. 에제카일을 나의 루퍼칼, 내 첫째 아들이라고 한다면, 세야누스는 내 길리먼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세디레Sedirae는 나의 돈Dorn이고, 토가돈은 나의 페러스겠지.


그리고 로켄이 있지, 아무렴. 자네도 만난 적이 있지? 그는 아주 많은 면에서 나하고는 달라. 그가 가장 총애받는 아들일세. 자네 말고 다른 누가 물어보면, 나는 부인할 걸세. 내가 누군가를 특별히 더 아낀다는 게 드러나면 안 되거든. 그래도, 자네와 나 사이에서만의 비밀이지만, 가 내 생귀니어스일세.


아버지로써, 나는 그들 모두를 믿고 사랑한다네. 그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자아내고 문명을 일구는데 사용될 충성스러운 도구instruments이니까. 그들 모두를, 심지어는... 실례하겠네, 리멤브란서 양... 심지어는 내가 자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알고도 남으면서도 내 방문을 두드리는 여기 말로거스트 이 친구조차도 말일세.


에쿼리equerry, 무슨 일인가? 내가 바쁜 게 보이지 않나?

말을 하게, 이 친구야.


'꼭 오셔야만 합니다, 워마스터시여.'


억지를 부리는군. 자네답지 않네, 말Mal. 말해 보게. 내가 왜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벌써 시간이 오래 지체되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지금 자네 말하는 투가 썩 거슬리네, 말로거스트. 내 손님 앞에서 주제넘게 무슨 짓인가. 그녀는 어디로 간 거지? 바로 저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꼭 오셔야만 합니다, 워마스터시여.'


그만 징징거리게, 말로거스트. 그 여자는 어디로 간 건가? 자네가 매달리는 꼴을 보고 겁먹기라도---


'이렇게 간청합니다, 나의 워마스터시여. 꼭 오셔야만 합니다.'


꼭 오셔야 한다고? 감히 나한테 이라고?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허나 반드시 오셔야만 합니다. 저희는 이제껏 줄곧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워마스터가 필요합니다. 이 전쟁이 워마스터를 필요로 합니다.'


전쟁이라고? 제노비아Xenobia는 제1 중대장이 코골며 자면서도 감당할 수 있을 손쉬운 합병이잖는가, 말---


'이렇게 빕니다, 주군.'


방 안은 따듯하다. 뼈와 고기의 악취가 방 안을 맴돈다. 당신은 감겨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눈을 뜨고 부서진 빛줄기를 본다. 얼굴. 메아리치는 목소리. 당신이 자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지난 며칠간 당신은 피곤했다. 매우 피곤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피곤했던 나날이었다. 하지만 당신을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들 누구에게도, 당신의 아들 누구에게도. 당신은 루퍼칼이다. 당신은 워마스터다. 당신이 방금 그 젊은 여성에게 말했듯이.


'명상 중이었다.' 당신은 말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하기 위해 잠시 내면으로 침잠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말로거스트?'


얼굴이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 앞에서 겸손한 모습이, 당신을 향한 존중이 보인다. 하지만 언뜻 염려 또한 엿보인다.


'아르고니스입니다, 주군,' 얼굴이 말한다. '아르고니스.'


당신은 몸을 일으켜 앉는다. 입안에서 시큼한 맛이 감돈다. 방 안을 맴도는 시큼한 냄새와도 같은 시큼한 맛이.


'그렇지,' 당신은 말한다. '실례했네. 잠깐 한눈을 팔았어.'


'아닙니다, 주군.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주군께서 휴식을 취하시는데 감히 방해하게 되어서 송구스럽슨디ㅏ.'


당신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든다. 당신의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말로거스트는 어디 있지?' 당신은 묻는다. 목에 가래가 끼어 있다. 말하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여기 없습니다, 워마스터시여. 저... 저는 아르고니스입니다. 주군의 에쿼리입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네. 자네가 방금 말했잖는다. 그리고 무언가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얼굴이, 남자가, 아르고니스가, 망설인다. 그의 갑주가 검은색으로 보인다. 기이한 일이다. 그는... 키노어 아르고니스, 바로 그거다. 좋은 사람이다. 좋은 전사다. 좋은 아들이다. 그는 어째서인지 불안해 보인다.


'말하게, 키노어,' 당신은 말한다. 좀더 온화한 어조를 쥐어짜낸다. 종종 하급 군관이 당신과 직접 독대할 일이 생겼을 때에는 참을성 있게, 아버지다운 모습으로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논의가... 회담이 있었습니다,' 아르고니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연다. '제가 직접 주군께 연락드려야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주군을 필요로 했습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 "우리"라는 게 누구인가, 에쿼리여?'


아르고니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이 일어서는 동안 그는 저편으로 눈길을 돌린다.


'전쟁에 대해 말해보게나 그럼, 내 아들아,' 당신이 말한다. 당신은 전사의 뺨을 쥐고는 머리를 돌려 반억지로 그와 눈을 마주친다. 눈 속에 감도는 건 공포인가? 왜,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우리는 막바지에 왔습니다,' 아르고니스가 망설이며 대답한다. '몇 가지... 고려와 판단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직 워마스터께서만이 내리실 수 있는 결정 말입니다. 부디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주군의 명령이 갈급합니다.


'보여주게나.'


'저희가 현재 가진 도구로 뽑아낼 수 있는 전술 자료 전부를 여기 띄워놓았습니다.'


'간섭이라도 있었나? 방해라도?'


'어... 물론 그렇습니다, 주군이시여.'


당신은 방대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검토해본다. '이게 제노비아 합병에 대한 분석 전부인가?'


'제노비아? 아니, 아닙니다. 제노비아가 아닙니다.'


'그럼 내가 무얼 보고 있는 건가?'


'테라입니다, 주군.'


그 이름이 오래도록 방 안을 맴돌았다.


'물론 그렇지. 그렇고말고,' 당신은 말한다. 당신은 여유 있는 것처럼 들리도록 애쓴다. 당신은 웃음을 터뜨리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 애쓰지만, 당신에게서 웃음이란 것은 이미 박탈당하고 없다. 당신은 힘없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 된다. 특히 이 남자와 같은 하급 군관 앞에서는. 그들은 당신을 숭상한다. 당신 혀 뒤쪽에서 느껴지는 이 맛은 무엇이지? 이건 피인가? 당신 입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지금 보기로 하지,' 당신은 말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려해보세. 에쿼리, 세야누스에게 당장 오도록 전하게. 그의 조언이 필요할 테니.'


'저는... 주군이시여.'


'그리고 그 여자를 찾게나. 그 리멤브란서 말일세.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전하게.'


사방에서 벽이 숨쉰다. 에쿼리가 황급히 물러난다. 당신은 그가 떠나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지조차 않는다. 당신의 온 정신은 오직 눈앞의 디스플레이에만 사로잡혀 있다. 여기가 바로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다. 당신이 여태껏 줄곧 있었던 곳이다. 이제부터 당신이 계속 있을 곳이다.


테라. 옛 지구. 맨 처음이자 맨 마지막.


당신은 정신을 가다듬어야만 한다. 당신은 집중해야만 한다. 이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당신은 왜 그런지 기억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순간 당신은 기억해낸다. 갑작스레. 무너져내리는 빙하로부터 녹아내린 물이 뿜어져 나오듯이 기억이 당신의 머릿속에 몰아친다. 당신의 살과 뼛속을 휩쓸며, 쑤시고 욱씬거리고 지끈거리는 고통을 일깨운다.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당신은 바뀌었다. 당신조차 당신 스스로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 모서리에 도사린 그림자가, 따뜻한 어둠이 켜켜히 쌓인 구석에서, 속삭이고 있다. 당신은 그 모든 그림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는 테라다. 여기가 바로 마지막이며, 다가오는 임종의 순간이다. 지금 이것이 바로 당신의 일생에 있어 가장 중대한 과업, 오로지 당신이 힘의 고삐를 움켜쥐고 과업을 완수한 후에 찾아올 것만이 비견될 만할 일이다.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로지 당신만이 이 일을 위해 만들어졌다. 다른 누구도 여기에 필요한 비전vision이나 통찰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지금으로써는, 이것은 그저 간단한 합병, 슬프게도 깨달음을 강제할 수밖에 없게 된 작업일 뿐이다. 이 행성에는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운한 일이다. 오해와 착오로부터 생겨난 실수다. 신뢰와 이해가 필요한 사안이다. 쉬운 일이 아니고, 당신은 분명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애석해하고 있다. 깊히.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낙관적이고, 차분하고 유능하다. 이 앞에 놓인 길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당신이 여기 이곳에서 하려 했던 일을 하려면, 당신은 신속하고 확실해야 했다. 바로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었던 방식처럼.


신속하고 확실하게. 유감스럽고 실망스럽게 진행된 사태를 앞에 두고도 흔들림 없이. 당신은 합리적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 사실이 제대로 기록되길 바란다. 그 여자가 꼭 적어두도록 당부해야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기 앉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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