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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1: xiv 파편들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3.06 11: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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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xiv

파편들



불타버린 하늘에서 화염이 비처럼 내린다.






반역자들의 군세가 팔라틴 저지대의 거리를 따라 거품처럼 밀려든다. 수천, 수십만의 무리가 거미 형체의 기계들이 벽으로 자아낸 유리화된 폐기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 임페리알리스로 쏟아져 내려오며 까만 홍수를 이룬다. 우뚝 솟은 장벽이 얼마나 많이 뚫렸는지, 셀 수조차 없다.


지옥의 아랫배처럼 검은 불꽃으로 하늘이 물든다. 아직 남은 임페리알리스의 탑과 첨탑들은 온통 구멍이 뚫린 상처투성이다. 검은 그을음과 화염으로 뒤덮이긴 마찬가지다.


반역의 군세는 검디검다. 지옥의 불길 속에서 쏟아진 끔찍한 악마들이 한꺼번에 모여든다. 흑단같은 갑주. 도살자의 갈고리. 음탕한 군기. 썩어드는 악취. 발효가 일어 솥처럼 부푼 갑주. 지글대는 날파리의 구름. 늑대 이빨이 새겨진 검은 투구는 사냥개의 해골을 본떠 멧돼지의 어금니가 솟아 뿔 달린 주둥이를 한다. 흑색과 흑색이 격돌하고,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불생자들을 향해 악어를 연상시키는 쉿쉿거림이 들려온다.


테라에 대한 학살(Terracide)이다. 완전한 종말이요, 영원한 죽음이다.


어둠 속에서 솟구친 형상들이 덩어리를 이룬다. 살점이 빚어지고 눈을 깜빡이며 낑낑대듯 일어난다. 새로 태어난 놈들이 점점 굳어가는 감각과 사지의 기능을 익히며 낯선 육체에 적응한다. 8미터에 이르는 모아를 연상시키는 다리, 껍질 벗긴 야자열매에 육박하는 크기의 발톱들이다. 염소와도 같은 사지로 버텨 선 놈도, 뼈 없이 반짝이는 연체의 근육으로 지탱되는 놈도 있다. 딱딱한 뿔과 키틴질로 빚어진 껍질 아래서 육중한 육신이 비틀댄다. 시체를 맞이한 독수리처럼 겅중거리며, 백조와도 같은 목이 뒤흔들린다. 따오기를 연상시키는 부리가 딸깍인다. 땅을 킁킁대며 시체를 갉아낸다. 지골을 연상시키는 뼈대에 괴사한 피부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진다. 공기를 붙든 채 도약하며 울부짖는다. 터지는 물집처럼 부화한 놈들이 눈의 거품을 쏟아내며, 말미잘과도 같은 혀에 돋아난 종기가 떨려온다. 증오와 역정을 토해내고, 산과 고름을 흘린다. 침흘리는 핏불과도 같은 주둥이에서 으르렁거림이 솟아난다. 소리가 말을 이루고, 말이 말을 더하고, 새로운 종교의 경전을 빚어낸다. 그 경전에서 광기어린 새로운 섬김과 직분을 만든다. 그들만의 스파라그모스(Sparagmos, 각주 1) 의식이 치러지고, 소름끼치는 화려한 춤이 세상을 오간다. 제 이름을 존재하는 온갖 언어로 공중에 대고 떠들며, 투관침같은 발톱으로 제 이름을 도시의 돌 위에 새긴다. 하나의 이름이 거듭 쓰여진다. 모든 것의 위에, 공포 속에서 쓰여지고 기쁨 속에서 읽힌다. 그 이름은 호루스 루퍼칼이 아니다.


무에 이른 죽음의 독(Thanatoxic Neverness). 시간은 다 했다. 그때이자 지금이고 언제 이를지 모를 그 시간이다. 워프가 예언한 약속의 시간이 도래했다. 파멸을 예언한 이름의 시간이 지금 이르렀다.






폭탄이 터져 주위를 방해한다. 날카로운 파편 조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가테는 뺨에 손을 뻗었다. 손을 넣으면 이를 만질 수 있을법한 구멍이 뚫린 채다. 아가테는 주저앉는다. 한 군인이 달려온다. 상처를 꿰매는 군인의 손이 금세 피에 젖는다. 흐느끼고 있다. 아가테의 상처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진통제를 거절한 아가테는 그냥 상처를 봉합하고 인조 살점으로 덮어달라고 요청한다.


아가테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군인들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기다린다. 짜증 속에서 아가테가 손짓을 보낸 뒤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웅얼거린다.


“각하…?”

장교 한 사람이 확신 없이 말을 꺼낸다.


“그냥 계속하게.”


아가테의 부관이 입을 뗀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 자네들 소속이 어디인지 말하고 있지 않았나.”

“4-0-3입니다.”


장교가 대답한다. 더럽혀진 얼굴에 형편없는 장비, 하지만 지금 멀끔한 사람도 있나?


“403부대 소속입니다. 각하께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잠시 장교가 멈춘다.


“마샬 알다나 아가테이십니까?”


장교의 물음에 아가테가 고개를 끄덕이며 툴툴거린다.


“그러하다.”


부관 파이크스(Phikes)가 대답한다.


“안티오크 마일스 베스페리 연대의 마샬, 아가테시다.”


파이크스 역시 베스페리 연대 소속이었다. 베스페리에 무슨 다른 의미라도 있다는 듯이 자부심에 넘치는 어조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지금 아가테가 지휘하는 8천의 군대는 구할 수 있는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다 붙여 놓은 너절한 군세다. 한 때는 달랐다. 하이브 군세의 지휘관이었고, 콜로시에서는 발도르, 랄도론, 그리고 대칸 그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 창백한 왕의 최악의 순간과 마주했고, 그때는 그런 위업이 가능한 때였다.


하지만 그 시절은 옛 시절이다. 아가테가 듣기로 대칸은 전사했다. 용맹한 랄도론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 아가테는 그저 죽어가는 도시의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소년의 손으로 얼굴의 상처를 꿰매이고 있는 더러운 영혼에 지나지 않는다.


”403부대라고 했나?“


파이크스가 아가테가 묻고 싶은 걸 대신 묻는다.


”403부대, 정식 부대명은? 잘 모르겠는데.“”그게 중요합니까?“


장교가 되물었다.


”중요한 건 내가 판단한다!“


파이크스가 날카롭게 받아치고, 병사들은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저희는 갤로우힐 수용소 출신입니다.“


장교가 입을 연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2주 전 소집 통보를 받았습니다. 복무하게 되어 기쁩니다.“

”갤로우힐?“


호기심에 찬 어조로 파이크스가 물었다.


”구치소 말인가? 구치소 경비대였나?“


병사의 손가락이 입에 들어가 있는 통에 말을 할 수 없었던 아가테는 투덜대며 손을 흔들어 파이크스의 주의를 끌려 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아닙니다.“


장교가 대답했다.


파이크스가 눈살을 찌푸린다. 마침내 사실을 끼워맞춘 눈치다.


”설마… 죄수들인가? 형벌 부대라고?“

”그렇습니다.“

”403부대가 형벌부대란 말이군, 정확한가?“

”그렇습니다.“


장교는 수치스러운 듯이 말했다.


”제403 긴급편성보병연대입니다.“


파이크스는 아가테를 곁눈질로 쳐다본다. 아가테는 눈빛으로 명확한 대답을 쏘아 보낸다.


”흠.“


파이크스는 콧방귀를 뀌고선 경멸을 숨기지 않고 다시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다 해도 필요하겠지. 몇이나 되지?“

”대략 1천 명 정도입니다.“


장교가 대답한다. 회색 피부에 회색 튜닉을 두른 채다. 그의 수하들까지도 헬멧을 쓴 이는 찾기 어렵다. 그저 팔라틴 아퀼라의 조각이 수 놓인 더러운 약모를 쓰고 있을 뿐이다.


”오는 길에 흩어진 중대 몇 개와 결합했습니다. 안테리오르 쪽에서 온 낙오병들과-“


파이크스는 흥미를 느끼지 않기에, 말을 끊는다.


”허가는 받았나? 표식은?“


장교와 그의 수하들이 흡사 대본에 적힌 행동을 취하듯 일제히 옷깃에 스테이플러로 부착된 표식을 보인다. 그들의 순수성과 건강 상태를 보이는 표시다. 소위 ‘프리펙투스’의 지휘를 받는 군수부대가 병사들의 건강과 감염 징후, 그리고 비물질적인 오염에서 발생하는 물집이나 자국을 검사한 흔적이다.


모두들 적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살인자, 도둑, 탈영병까지 섞여 있을 무리지만, 현재의 기준으로는 ‘순수’한 병사들이다.


”모든 보완점을 확인하겠다.“


파이크스가 입을 연다.


”그러셔도 됩니다.“


장교가 터놓고 대꾸한다.


”네 허락 따위는 필요치-“


파이크스가 으르렁거린 순간, 아가테는 입을 닫은 채 다들 입을 닥치라고 명령한다. 흡사 성난 콧김이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마샬?“


장교가 묻는다. 아가테는 손가락을 들어 기다리라는 지시를 보내고서, 뺨을 찌르는 무딘 바늘의 감각을 무시하려 애쓴다.


병사의 봉합 작업이 끝난다. 일어선 아가테는 수통을 쥐고서 입을 헹군 뒤 판석 위에 분홍색 물을 내뱉는다.


”이름은?“


말할 때마다 통증이 몰려온다. 발음은 엉성하다.


”미카일(Mikhail)입니다.“


그가 답한다.


”대위 미카-“

”뭘 할 수 있지, 미카일?“


모든 자음의 발음이 뭉개진 채 그녀가 묻는다.


”야포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카일이 답한다.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군. 아가테는 자기 배치 계획을 설명하지만, 한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아가테는 손짓을 해 바로 뒤에 있는 거주용 건물 쪽으로 모두를 불러모은다. 단순한 손가락 표시, 랜드마크의 지적, 단순화된 계획이다. 기본적인 선을 그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상을 설명한다. 적은 여기와 여기에 모인 채다. 지원 기갑부대가 차단과 포위를 시행한다. 돌파 후 기갑부대는 후퇴한다. 우리는 여기 있으리라. 이 지점으로 야포를 가져온다. 아가테의 손가락이 적을 가리키는 검은 얼룩을 거칠게 문질러 십자가를 그린다. 이것이 포화가 그려내야 하는 호선이다. 이 측면을 타격해야 한다. 이곳이 우리의 살육 지점이 될 것이다.


죄수 출신 장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가테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의 후퇴선을 그리기 위해 아가테가 뒤를 돌아본다. 갑자기 벽의 촉감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벽돌의 촉감도, 먼지의 촉감도 아니다. 부드러운 해면체를 만지는 기분이다. 흡사 뺨의 피부에 닿은 느낌이다.


아가테가 빠르게 손을 떼고서 벽을 응시한다. 모두가 벽을 응시한다. 벽의 표면은 흡사 늘어진 살이나 생가죽처럼 느껴진다. 원래의 이음새와 회반죽으로 빚어진 모서리 주름에서 억센 털이 돋아난다.


아가테는 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그녀의 뒤에서 파이크스의 마른 구역질이 들려온다. 그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얼룩덜룩한 살점이 아니다. 그녀가 그려냈던, 먼지 속의 자국이다. 아가테가 그린 계획은 사라지고, 이제 얼룩은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두 어절.


”마샬께서 쓰셨습니까?“


아가테는 고개를 젓는다. 아가테는 ‘어둠의 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라자비(Razavi) 전선에서 전사한 제국 정규군 부사관의 찢어진 잡낭에서 타로 카드가 떨어진다. 거센 전쟁의 바람 속에 나부끼며, 갈라진 채 피로 흠뻑 젖은 포장로 위로 낙엽처럼 흩날린다.


몇은 찢기고, 몇은 구겨졌으며, 몇은 얼룩진 채다. 그리고 한 장이 불타고 있다.





각주 1 :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의 하나, 제물을 갈기갈기 찢어 바치는 희생제.


헬릭 갈로어, 아가테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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