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주의 말이 주변으로 퍼지더니 곧 하나의 거대한 함성이 되어 울려퍼졌다.

+거짓 황제에게 죽음을! 거짓 황제에게 죽음을! 죽음을! 죽음을!+

그 진실된 함성을 듣는 네 명의 프라이마크들도 미소를 지었다. 차갑고, 음울하고, 조소 어린,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충만한 미소였다. 그것이 이제껏 그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의 전부였다. 

로가가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했다. 홀로그램 테이블이 활성화되더니 툰드라 지대로 뒤덮인 행성의 이미지를 출력했다. 강철빛, 밤하늘색, 청록색, 그리고 진홍빛과 회색빛의 헬멧을 쓴 이들이 홀로 이미지를 주시했다. 사각형 모양으로 이미지화 된 지형은 가로 세로가 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이었다.

"우르갈 저지대라...우리의 사냥터가 될 곳이군."

로가의 형제들 중 한 명이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콘라드 커즈, 나이트 로드 군단의 군주는 한 때 제왕이라고 불릴 만한 위엄이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러한 위엄이 모두 사라졌다. 지금 홀로 이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잔혹함만이 남은 밤의 유령일 뿐이었다. 가장자리가 광이 나지 않는 청동색으로 도색된 검은 파워 아머를 입은 커즈는 네 개의 칼날이 달린 파워클로를 들어올려 지도에 나타난 협곡 하나를 가리켰다.

"저 곳의 이미지를 확대해라."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서비터가 명령을 따랐다. 3D 홀로 이미지가 잠시 흐려지더니 협곡을 확대한 이미지가 정보와 함께 재출력되었다. 협곡의 끄트머리에 플라스틸, 세라마이트, 락크리트 등으로 보강된 요새가 보였다. 보이드 쉴드가 작동하고 있어서 궤도 폭격으로도 타격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 주변으로 수도 없이 많은 바리케이드와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참호가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요새를 감싸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모두가 저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천연의 요새, 방어 진지의 정점이었다. 저 곳에서라면 설사 적의 병력이 수천 수만배라 할 지라도 능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협곡의 다른 끝에는 건쉽과 드랍포드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허나 지휘실에 있던 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건쉽과 드랍포드의 물결이 아닌 협곡의 중앙이었다.

두 군대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양쪽은 전선을 이루며 싸우다 점차 뒤엉키더니 곧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쳤다. 커즈가 다시 명령했다.

"중앙을 확대해라."

이미지가 흐려졌다가 다시 재출력되었다. 헌데 이번에는 이미지가 제대로 출력되지 않았다. 허나 커즈는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의 입이 벌어지며 무수히 많은 이빨이 보이고 눈이 번뜩였다.

"내전이로군. 양쪽의 힘이 엇비슷해. 우리의 형제들인 데스 가드, 월드 이터, 선 오브 호루스, 그리고 엠페러스 칠드런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아이언 핸드와 샐러맨더, 레이븐 가드쪽이 숫적으로는 더 우월해."

아르겔 탈은 숨을 쉬려고 했으나 입가에 뭔가가 흘러 넘쳐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대신해 나왔다. 옆에 있던 군단원이 자신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일부러 무시했다.

+형제여? 괜찮은가?+

"목이 마릅니다."

아르겔 탈은 개인 무선으로 들어온 에레부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목이...마르다?+

"에레부스 경. 나는 아스타르테스의 피를 맛본 적이 있습니다. 결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풍미가 진하지요. 유전적 성스러움이 가득 담긴 피가 혀 끝을 감싸는 그 느낌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스트반 V에서 다시 그 맛을 경험할 것이오."

선임 채플린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겔 탈은 에레부스가 코르 파에론에게로 몸을 돌리는 것을 보았고, 둘이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르겔 탈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둔한 머저리들. 조악한 야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방구석 늙은이들일 뿐이었으며, 권력에 미친 하등한 것들일 따름이었다. 아르겔 탈은 잠시 저런 무지몽매한 것들에게 둘러 싸여 40년 가까이 고통 받았을 자신의 프라이마크를 위해 기도했다.

유전적 아버지를 떠올리자 그의 분노가 잠시 수그러들었다. 여태껏 저들이 해온 것이라는 게 대체 무언가? 코르 파에론은 자신이 커스토디안들을 떼어놓느라 진정한 군단에게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그 말은 생각보다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말이었다. 아르겔 탈의 그르렁거림이 점차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변했다.

+조용하게+

옆에 있던 세바타가 투덜거렸다. 아르겔 탈은 그 말에 더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고자 사력을 다해야 했다. 그에게 달라붙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무시 당하거나 하대 받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아르겔 탈이 아닌 아르겔 탈/라움 듀오 쇼가 펼쳐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