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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메카니쿰: 2.02 (3) - [깨어나다]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7.07 15:02:10
조회 242 추천 17 댓글 4
														

 사내는 눈을 뜨고 비명을 지르려 했다. 가슴 안쪽에서 다시 한 번 끔찍한 격통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손바닥으로 매끄러운 유리 표면을 두들겼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끈적하게 들러붙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흐릿한 분홍색이어서, 눈을 깜빡여 시야를 깔끔하게 닦아내려 했다. 손을 뻗어 눈을 비비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는 감각은 걸쭉하고 끈끈한 물 속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어떤 형상이 일렁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시선을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몸이 부력이 높은 어떤 액체 속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전신에서 무중력 통증이 느껴졌지만, 가슴 속에 엉긴 비통한 슬픔에 비하면 그조차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에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면 적어도, 통증이 누그러져 있었던 어둠 속의 시간이 기억났다. 하지만 가슴 속에 느껴지는 이 끔찍하고도 초점 없는 슬픔만은 그 어떤 것도 진정으로 달래 주지 못했다. 자신이 이전에도 이곳에서 깨어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득히서 대화 소리가 들려오며, '기적'이라느니, '뇌사'라느니, '경색'이라느니 하는 단어들이 파편처럼 들려왔던 것도 기억했다. 전체적인 맥락 없이는 각각의 단어들은 무의미했지만, 그 단어들이 자신의 상태에 대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더 많은 단어들이 들려오자, 사내는 눈을 깜빡이며 그 의미를 분간해내려 애를 썼다.


 목소리에 집중하려 애를 쓰며, 자신의 세상을 채운 젤리 같은 액체 속을 헤엄쳤다.


 조금 전의 형상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 혼자 그 목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힘이 없어, 꼭 고장난 오그미터를 통해 걸러져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사내는 두꺼운 유리판에 얼굴이 닿을 때까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야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하고, 유리판 너머로 매끄러운 도자기 타일이 깔리고 금속 들것들이 놓인 무균실의 모습이 보였다. 거미 같은 기계 장치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가운데, 액체로 가득 찬 유리 수조 여럿이 멀찍이 떨어진 벽면의 황동 소켓에 끼워져 있었다.


 눈앞에 서있는 것은 청색과 은색 로브를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여성의 모습은 액체 때문에 일렁이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여성의 모습이 눈물 날 것 같이 반가웠다.


 "카발레리오 프린켑스님, 제 말 들리십니까?" 여성이 물었다. 여성의 목소리가 불현듯 선명해졌다.


 대답을 하려 했지만, 입 속이 액체로 가득 차 있었던 탓에, 제대로 된 소리를 내려 애쓰는 입가에서 거품만 생겼다.


 "프린켑스님?"


 "그래." 카발레리오는 말했다. 마침내 언어 기능이 돌아오고 있었다.


 "프린켑스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젊은 여성이 방 안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여성의 목소리에서 들린 안도감에, 자신이 고작 말 한 마디 했다고 왜 저리 기뻐하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카발레리오는 물었다.


 "메디카이 시설에 계십니다, 프린켑스님."


 "메디카이? 어디의?"


 "아스크라이우스산입니다." 여성이 말했다. "프린켑스님은 고향에 계십니다."


 아스크라이우스산... 레기오 템페스투스의 요새 산.


 그래, 여기가 내 고향이었지. 이곳이 자신이 거의 2세기 전에 프린켑스 직위를 정식 수여 받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덜컹거리는 승강기에 올라타 조종석에...


 가슴에 격통이 밀려들고, 카벨레리오는 헛숨을 들이켰다. 산소가 함유된 액체가 폐 속 가득히 흘러 들어왔다. 의식은 액체로 숨을 쉰다는 개념에 반발했지만, 몸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패닉은 점차 누그러져 갔지만 통증은 아니었다.


 "자넨 누군가?" 호흡이 정상화되자, 카발레리오는 물었다.


 "제 이름은 아가시-Agathe입니다. 프린켑스님의 파뮬로스-famulous죠."


 "파뮬로스?"


 "보좌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프린켑스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시중드는 사람이죠."


 "내가 왜 파뮬로스가 필요하단 말인가?" 카발레리오는 말했다. "내가 무슨 장애인도 아니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프린켑스님. 프린켑스님께서는 방금 막 트라우마성 의식 단절 상태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적응하시려면 도움이 필요하실 거예요. 제가 프린켑스님께서 적응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카발레리오는 말했다. "내가 어쩌다 여깄는 거지?"


 아가시는 머뭇거렸다. 카발레리오의 질문에 대답하길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아가시는 입을 떼어 말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어떨까요, 프린켑스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좀 가지시고 나서요."


 "제대로 대답하거라, 빌어먹을." 카발레리오는 유리창을 두들기며 고함을 쳤다. 


 아가시는 방 안의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힐끗 바라봤다. 어물쩍 얼버무리려 하는 모습에 카발레리오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내게서 시선을 돌리지 말거라, 아이야." 카발레리오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나는 폭풍의 군주이며, 너는 내게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좋습니다, 프린켑스님." 아가시가 말했다. "얼마나 기억하고 계시나요?"


 카발레리오는 미간을 찡그렸다. 거품이 얼굴을 스치고 위로 떠올랐다. 깨어나기 전까지의 기억 중에 마지막으로 기억 나는 것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레기오 모르티스의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향해 접근하던 것.


 빅토릭스 마그나의 심장이 맹렬하게 박동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한 끝에 파열하던 것.


 아르귀레 마고스가 파열한 심장과 함께 소멸하며 내지른 단말마.


 그리고 자신을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며 아가리를 벌리는 새까만 심연.


 자신의 타이탄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체험하자, 뜨거운 격통이 카발레리오 프린켑스의 가슴 속을 들이쳤다. 핏방울 섞인 양막 탱크의 현탁액 속에서, 카발레리오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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