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x 어둠 속에서 종말을 기다리다

어둠이 드리운 올가미가 888번 수집품을, 그리고 지옥과 멸망을 담은 흐릿한 초상들을 감싸고 조여든다. 로켄이 떠난 이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도서관의 첨단 기후 조정 장비에도 불구하고 온도는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 벽면에 있는 시스템 패널에 따르면 주변부의 온도와 습도는 일정한 상태지만, 신더만은 뼛속 깊은 곳까지 치미는 한기를 느낀다.

일행은 로켄이 돌아올까 싶어 잠시 기다리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신더만은 자신이 앉아 있던 벤치를 떠난다. 81세기 조각가의 기이한 작품이 부드러운 빛의 원뿔 아래 매달려 있다. 신더만은 로켄이 떠난 해치로 향한다. 얼마나 오래 기다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몇 시간은 족히 지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계가 모두 멈춰버린 채다. 그의 회중 크로노는 숫제 거꾸로 감기는 중이다. 마우어와 기록관이 그를 지켜본다.

해치는 단단히 봉쇄되어 있다. 신더만이 마침내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해치를 건드린다. 잠금장치는 응답이 없다. 차갑다. 해치 전체가 차갑고, 해치가 매달린 벽 자체가 차갑다. 그 위로 얼음이 엉기는 것이 보인다. 해치 너머, 헤아릴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진다. 텅 빈 우주의 절대적인 추위다. 도서관의 열기를 그대로 서서히 빨아들이는 것 같다.

신더만은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파멸에 수반되는 열의 죽음일지도. 시간이 정체되고, 장소가 겹쳐지고, 현실을 구성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공처럼 뭉친 채 열과 빛을 피처럼 흘리며 느린 붕괴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더만은 일행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마 돌아오지 않겠지요, 그렇죠?”

마우어가 묻는다.

“가비엘 보기에는 말이네만.”

신더만이 답한다.

“아마 아주 잠시 떠나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신더만은 일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진심이십니까?”

마우어가 다시 묻는다.

“정말 그러니까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이…”

마우어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네.”

신더만이 답하고, 마우어는 몸을 떨며 고개를 젓는다.

“자네는 질서와 규율을 따르는 피조물이지, 보이타르크.”

부드럽게 신더만이 말한다.

“하지만 훌륭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니, 그건 좀 놀랍군.”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실 수 있죠?”

마우어가 되묻는다.

“아니, 전혀 침착하지 않다네.”

마우어에게는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답이 튀어나왔다.

“지금 우주가 겪고 있는 이 혼돈은 완벽하게 불안하지. 어떻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본 증거를 고려하면, 지금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네. 굳이 당황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군.”

신더만은 지친 듯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면, 당황할 기력조차 없는 거라고 해야겠군.”

신더만이 덧붙인다.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마우어가 대답한다.

“마우어, 지난 몇 달을 생각해 보게.”

신더만이 마우어 곁에 앉으며 입을 연다.

“정말 많은 것을 봐 왔지 않던가.… 우리의 신념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들이었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고. 하지만 자네는 그것을 직면하고 맞서 싸웠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받아들일 여력이 없는 건가?”

“괴물들, 악몽들을 수없이 봤죠.”

마우어가 중얼거린다.

“그런 거라면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잖아요. 이 세상의 근본 구조가, 규칙이, 물질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고요.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기댈 수 있는 것도 전혀 남지 않았어요. 우리가 디딘 땅도, 공기도, 흘러가는 시간도, 심지어 제 정신조차 확신을 걸 수 없단 말입니다.”

신더만이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말이네만.”

슬프게, 신더만이 입을 뗀다.

“황제 폐하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신 걸세.”

기록관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신더만을 본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준비시키셨어야 했네. 말씀하셨어야 하고, 가르치셨어야 했어. 자네와 나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말일세. 이 모든 것을 증명할 기록을 전부 가지고 계시지 않던가. 먼 과거로부터의 경고들이었지. 하지만 그분은 그걸 그냥 감추고만 계셨네. 우리를 가르쳐서 준비시키셨어야 했어. 우리가 준비될 수 있도록, 알고 계신 것을 나누셨어야지.”

신더만은 한기를 쫓으려는 듯 손을 비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지. 우리는 그분의 손에서 영적 인식을 거세당했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직면하기에는 지극히 부적합하고 자격조차 없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