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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viii 말카도르 최후의 고통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30 13: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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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viii 말카도르 최후의 고통



죽음.


나조차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신, 나는-





너덜너덜해진 우주가 나를 짓이기고 짓뭉갠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이 빚어진 현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 원자보다 작은 조각으로 토막낸다.





단 한 번의 끔찍한 발작 앞에 은하 전체가 치솟고 돌며 추락한다.




질량을 초월한 힘이 조밀한 나노초의 순간으로 영원을 압축한다. 불가능한 중력 속에서 영원이 끈과 타래처럼 뻗쳐나간다. 영원히 감김이 반복되는 순간, 다시 스스로를 만날 공간과 시간의 굴곡진 무한을 지나는 우로보로스. 모든 차원이자 어느 차원도 아닌 것. 묵시 속에 결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등시적 회선으로 뒤엉킨다.





어떻게 내가 아직 살아 있는가?




옥좌는 비명을 지르는 송장 파먹는 귀신이다. 녹아내린 바위의 강에 실린 불타는 잿더미다. 그것이 내 뼈와 이어져 있다. 내 골수 속에 파고든 금빛 광채다. 내 부서진 영혼의 파편을 쏟아내는 불폭풍이다.


옥좌는 나를 내던져 자리에서 풀어내려 한다. 나를 이미 끝장냈고,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했으리라. 야생의 오록스(Auroch)처럼 몸부림치며 내 붙든 손을 늦추려 한다. 싸움에 나선 뱀처럼 몸부림치며 채찍이 되어 나를 후려친다. 내 새로이 움켜쥔 손을 풀어내고, 나를 옆으로 휘감아 돌아서 내 목구멍에 제 송곳니를 들이대려 한다. 이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이 그러하듯 너무도 거대하기에, 내 이름을 기억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처럼 그 고통이 고통 자체를 휘감은 끝에 내 지각을 넘어선다.


나는 인내한다. 내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에 새겨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무시하고 인내한다. 내게 남은 것이 너무도 적기에 남은 단 하나, 즉 내 의무에 집중하는 것이 차라리 더 쉽기에 인내할 뿐이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사라져 가던 힘이 갑자기 강화되었고, 나는 약간이나마 통제력을 회복한다. 미약한 힘이고, 실망 속에서 울부짖는 옥좌는 그것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옥좌는 나의 전권을 담은 권위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한다. 뱀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다만 내 주위를 휘감은 채 수축할 뿐. 나를 조이며 짓이길 뿐이다.


녹아내린 이성이 눈물을 쏟아낸다. 나는 백열하는 옥좌 위에 올라 쩍 벌어진 워프의 족사 너머로 나아간다. 파열된 물질의 선수파가 내 주위를 휘감으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꿈이 펼쳐진다. 그 아래로 환각적인 비물질의 공허가 펼쳐진다. 통곡하는 불생자가 나를 추격한다. 검은 증오의 망토를 두르고, 순전한 악의로 짜인 갑주를 걸친 채다. 밀려오는 혼돈이요, 지옥의 야생이 나를 덮쳐 온다. 사악한 눈초리의 얼굴은 불타버린 별의 잿더미로 빚은 전쟁의 물감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 하얗게 부서진 시간의 가루가 올라앉은 채다. 그 입김에서 무너진 제국의 절망과 소멸한 종족의 분노가 느껴진다. 놈들은 나를 쓰러뜨리고 끝장내기 위해 자칼처럼 다가온다.


이제 나의 육신도, 피도, 조직도 모두 녹아내린다. 나는 그저 미물에 불과하며, 그저 나의 기억에 붙들린 불변의 지각일 뿐이다. 내 전생의 삶이 담아낸 조상으로 빚어진 아케이로포이에톤(Acheiropoieton, 각주 1)에 불과하다. 나를 구성하던 모든 인간적 요소는 사라진 뒤다. 오직 내 의지가 남았을 뿐.


그리고 나는 내 의지를 발한다.


옥좌는 저항한다. 내 움켜쥠을 뿌리치려 한다. 최대 출력에서 걸린 망가진 터빈처럼 헐떡이며 내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내가 광기에 굴복하기를 갈망한다. 차원 밖의 에너지로 부풀어 오른 채 분열을 바라고 누출을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화했은즉. 나는 인내한다.


지금이 없기에 그러하다. 아니, 차라리 지금만 존재한다고 해야 하리라. 등시적인 순간이다. 모든 과거, 모든 지금, 모든 미래, 심지어 오직 암울한 암흑에 휩싸인 머나먼 미래까지도 동시성 속에 시간의 실패 속에 휘감긴 타래가 되어 하나의 단단한 공처럼 뭉친 채다. 끝도 시작도 고를 수 없는, 워프 속 한 줄기 깃털처럼 흩날리는 시간의 공. 나는 그것을 닻으로 삼는다. 시간의 정지점이 생겨난 것이 아닌, 시간 자체가 고요해진 지금을 닻으로 삼는다. 나는 나 자신과 폭주하는 옥좌를 영원히 이어질 고요의 티끌 속에 고정시키고서 기계의 광란을 진정시킨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임무다. 안정을 유지하는 것. 옥좌의 괴물 같은 폭력성을 제어하고, 웹웨이에 넘쳐드는 워프를 억제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것. 이 자리 위에 앉았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지만, 이제 오랜 시간도, 그보다 더 오랜 시간도 없다. 이제 시간의 길이가 사라졌기에 그러하다. 선형적 시간이 무너졌음이 나의 유일한 자산이다. 나는 옥좌 위에 앉은 순간 죽었으되 아직 죽지 않기도 하다. 의지의 힘으로서, 나는 스스로를 끝나지 않는 지금의 벼랑 위에 붙들어 맨다.


피와 석화된 빛이 뒤섞인 안개 너머, 내 육체 근처의 지금이 보인다. 옥좌실의 바닥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도제들은 돌보던 기계들 사이로 쓰러지고, 그들이 교체를 위해 끌려가는 순간 그 시신에서 흘러나온 꿈, 희망, 의지가 바닥에 묻어난다. 불칸이 나를 지원하기 위해 내린 끔찍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각주 2)와도 같은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불칸의 고통, 후회, 주저, 나를 강화하고 파멸을 연장하기 위해 그가 내린, 그에게 강요된 명령에 대해 품은 혐오까지,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의 남은 삶 동안, 그 명령을 내렸음이 그를 괴롭히리라. 그리고 그의 그 노력이 나를 지탱하고, 이미 필멸의 모든 정의를 채워버린 내 육신에 힘이 된다.


가련한 불칸의 노력으로 나는 지금 조금 더 많은 것을 손에 쥔다.


그리고 그 지금 속에서, 나는 다른 지금들을 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판과 달라진 새로운 판이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단지 만약의 경우에 불과했던 새로운 요소, 새로운 지금이 존재한다. 호루스가 승리한 지금, 호루스가 승천하여 밤의 주인이 된 지금이 균열 속에서 비틀리며 융합하고 거품이 솟는다. 그 지금은 더 이상 확실한 지금이 아니다. 등시적인 총체의 더 밝은 심지가 비추는 빛 속에 그 지금이 붙들린다. 하나의 떠오르는 별이 눈부신 빛을 드리운다. 치명적이고 순수한 빛, 맹렬하고 굳건한 존재, 직접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격노한 별. 내가 눈 멀고 죽음이 다가온 순간에 보았던 바로 그 별이다. 워프의 손에서 힘을 취한 황제, 은하계에서 가장 빛나는 이. 그의 빛이 온 사방에 뻗친다.


그 빛이 모든 지금을 감싼다. 테라의 전장이 백색으로 화한다. 발도르의 무장이 그리는 선을 취하고, 그의 지나치리만큼 변형된 생각의 단단한 가장자리에서 번쩍인다. 돈이 몸을 감춘 채 혼잣말하는 붉은 벽 아래 그림자를 서서히 먹어 치운다. 빛이 없는 지하의 묘실 깊이 묻힌 생귀니우스의 영혼을 불길로 감싼다.


어둠의 왕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것은 그 빛인즉.


나는 말하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할 수 없다. 굳건한 빛은 모든 곳에 뻗친다. 모든 지금에, 그리고 모든 가능했던 지금에. 고대에 속하는 인외의 존재들조차 제 업을 멈춘 채, 반쯤 조립된 복잡한 장치로부터 시선을 든 채 치솟는 빛을 피하려 눈을 가린다. 놈들이 통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지금, 형체 없는 공허한 세상 속, 심연의 얼굴 너머 어둠이 움직인다. 굳건한 빛은 내가 있겠노라 말한다. 그리고 빛이 도래한다.


또 다른 지금, 그리고 또 다른 지금, 또 다른 무한한 지금들 속에 오직 빛이 있을 뿐이다. 완전히 개화한 빛은 불경스러운 강렬함으로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 빛이 뚫지 못하는 것은 오직 지금, 암울한 부패의 시간인 지금이다. 그림자와 촛불의 영역이고, 파멸과 황폐함이 거하는 암울한 어둠, 인간은 오직 고대의 의무에 속박된 채 불완전한 기억 속에 강박적으로 제 의무를 다하며, 옛 영광의 금박은 벗겨지고, 한때 자랑스러웠던 위엄의 상징은 희미하게 깜빡이는 조명 아래 흐릿할 뿐인 곳. 기계의 기능도, 인간의 목적도 잊히거나 잘못 이해된 채 기계적으로 기억되고 의식과 의례로 전락한 곳, 삶의 의미를 포함한 모든 것이 연습된 전통이자 무의미한 의식에 지나지 않는 지금이다.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빛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새로이 부어진, 예상치 못한 힘의 조각들을 붙잡아 나의 닳아가는 의지를 발하고 아직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인도할 따름이다. 그들은 이제 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그들의 이름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내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부르고,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각주 1 :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성화(이콘)를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 손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는 그 얼굴이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에 기적적으로 새겨졌다는 전승에서 유래한 것.


각주 2 : 테세우스 신화. 자신의 침대 사이즈에 맞지 않는 손님을 찢어죽이거나 늘려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강도. 불칸이 내린 결정의 가혹성을 드러내는 용어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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