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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xii 고르곤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04 18:26:04
조회 567 추천 29 댓글 10
														




6:xxii 고르곤



고르곤 뒤의 어둠은 마치 물결치는 공단처럼, 그림자 위의 그림자처럼 알아볼 수 없게 움직인다. 생귀니우스는 그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속삭임을 듣는다. 다른 육신의 열기가 발하는 퀴퀴한 냄새를 느낀다. 그리고 그 육신 모두가 살아 있는 것은 아니리라. 처절한 고통의 냄새다. 그의 피부 위로 소름이 지나친다.


“나는 아닐세.”


생귀니우스가 입을 연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


페러스 매너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지만, 답을 하지는 않는다.


“날 지나가게 해 주겠나?”


생귀니우스가 묻는다.


“아니면-”

“난 자네를 막을 생각이 없네.”


페러스가 답한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군.”


생귀니우스가 입을 연다.


“자네가 나를 막거나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었네. 그래서-”

“물론 자네가 맞네.”


페러스의 은빛 눈은 강렬하다. 이제 그의 입이 말과 호흡을 맞춘다.


“이 모든 것은, 힘의 시현일세.”

“내가 생각한 대로-”

“아니, 생귀니우스. 아닐세. 자네가 생각한 대로가 아니야. 그것이 내가 말하려는 바였네. 어쩌면 경고일지도 모르지. 자네는 그가 얼마나 되는 힘을 가졌는지 모르네.”

“루퍼칼 말인가?”

“그래, 루퍼칼.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오직 그의 의지의 힘 때문일세.”


그림자가 다시 꿈틀대며 부스럭거린다.


“하지만 나는 속임수가 아닐세.”


페러스의 말이 이어진다.


“나는 비물질이 빚어내어 자네를 속이려는 환상이나 속임수 따위가 아니야. 자네도 알 것 같지 않나? 자네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음이 보이네. 나는 죽었어, 생귀니우스. 하지만 난 여기 있지. 진짜 실체를 가지고, 나 자신으로서 여기 있는데도, 나는 죽었네. 그런데도 나는 여기 있어. 그것이 그가 가진 힘이네. 그는 나의 환상을 만들거나, 마법을 부려 나처럼 보이는 환영을 빚을 필요가 없어. 그의 안에 거하는 워프의 힘은 그 정도일세. 필멸의 저편에서 나를 그냥 간단히 꺼내온 거라고.”

“나와 싸우게 하기 위해서 말인가? 아니면 나를 멈추려고?”

“아니, 형제여, 절대 아닐세. 자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 걸세. 과시하는 거지.”

“그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치지.”


생귀니우스가 답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죽일 걸세.”


고통스러운 미소가 서서히 페러스 매너스의 단단한 얼굴에 균열을 새긴다. 생귀니우스가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했던 그 미소는 상처를 입은 채다. 생귀니우스의 심중에 고통이 새겨진다.


“그리고 나는 자네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지켜보지.”


페러스의 눈이 빛난다. 하지만 그의 입은 더 이상 말과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


페러스의 번쩍이는 손은 서로를 쥔다. 그의 시선은 생귀니우스에 못박힌 채다.


“그것이 바로 워프의 문제지.”


페러스가 입을 연다.


“그리고 우리 처음 발견된 형제는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네. 그는 워프의 힘에 너무 취해 있어. 그는 이제 무엇이건 할 수 있네. 그의 의지가 바라는 어느 것이라면 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 그는 세상을 하늘 위에 녹일 수 있네. 시간을 민들레 홀씨처럼 날려버릴 수도 있고. 우주의 모든 물질을 하나의 공처럼 얽어 필연적인 도시들을 불러낼 수도 있지. 죽은 자들을 그 무덤과 그 시간에서 끌어내 그들이 살았던 방식으로 살게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떤 우아함도 없네. 어린이의 장난질에 불과하지.”

“통제력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 그는 확실히 통제력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워프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지. 그는 천공의 영여을 찢어 열어버렸네. 그리고 그가 무언가를 가지고 놀거나 기쁨을 누리고 새 기술을 익히는 동안, 그 거친 파동을 따라 천공의 힘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지. 지금 그는 자네를 맞이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나를 여기 두었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군. 자넬 놀라게 하려고 한 거였을까? 아니면 죽음이 항상 가까이에 있음을 자네에게 상기시키려고? 어쩌면, 처음 자네가 잃은 형제의 모습이 자네를 누그러뜨리거나, 아니면 미쳐버리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누가 알겠나? 어쩌면 내가 자네를 유혹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유혹이라니?”


페러스가 머뭇거린다.


“글쎄, 그와 함께 하라는 유혹을 하리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되면 그는 아주 기뻐하겠지. 그는 자네를 사랑하니까.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 자네도 알지 않나? 파괴하는 것에는… 도전 따위는 없네. 너무 자주 했던 일이니, 만족감도 금방 사라지겠지. 하지만 자네를 변하게 한다? 자네가 그의 곁에 서게 한다? 그것은 실로 도전이겠지. 진정 보람이 있을 것이고. 대단한 일 아니겠는가? 인류제국을 찬탈한 것으로도 모자라 가장 충성스러운 제국의 수호자를 전향시키다니? 그들이 대의를 포기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만든다? 실로 대단한 성취겠지. 제대로 된 노력이 필요할 테고.”

“글쎄, 형제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페러스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지만, 저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솟아난다.


“그래, 일어나지 않겠지. 그의 대의가 아무리 대단해도 말이야.”

“한번 해 보게.”


첫 잃어버린 프라이마크는 주저한다.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군.”

“아니, 한번 내게 그의 대의를, 그의 유혹을 베풀어 보게.”


생귀니우스가 말한다. 페러스는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 그가 이겼네. 모든 것이 끝났어. 그를 멈출 방법은 없어. 자네도, 우리 아버지도, 로갈도, 빌어먹을 콘스탄틴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카오스가 이겼고, 파멸의 승리가 우리 목전에 있네. 그러니 계속 고집스럽게 싸우는 이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죽음뿐일세… 아니면, 항복할 수도 있지.”

“자네가 그것보단 나를 더 잘 알 것 같은데.”

“그렇지, 실로 그러하네. 하지만 항복에는 한 가지 이득이 있네. 그는 자네를 위해 자리를 남겨 두었어, 알겠나? 지금 이 순간부터 별들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파멸일세.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 그러니 자네에게 남은 선택지는 죽는 것, 혹은 항복하고 그 안의 일부가 되는 것뿐이지. 그의 편에 서게. 그를 인도하는 존재가 되라고. 자네라면 그도 귀를 기울일 테니까. 자네는 그렇게 차이를 만들 수 있네. 물론 자네가 원하는 미래는 아니겠지. 자네가 전심전력으로 막으려 했던 미래일 수도 있어.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미래지. 그러니 그의 편에 서게. 그를 도와서, 가장 나은 파멸의 시대를 열어 주게.”


생귀니우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젠 정말 자네의 말처럼 들리지 않는군, ‘형제’여.”


생귀니우스의 말이 이어진다.


“이젠 정말 속임수처럼 들리네. 거짓을 늘어놓는 그의 대변인처럼 말이지.”


페러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는 강한 손으로 사과의 뜻을 담아 손짓한다.


“형제여, 제발.”


실망한 듯 그가 입을 연다.


“나는 그러라고 부탁할 생각은 추호도 없네. 자넬 설득할 생각도 없어. 다만 그의 대의를 말해보라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의 대의를 늘어놓았을 뿐일세. 나는 자네가 그에게 맹세를 바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네. 날 믿어주게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나는 결코 그의 편에 서지 않겠네.”


생귀니우스가 답한다.


“나는 그런 유혹을 느낀 적도 없고,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꿀 생각도 없어. 비록 우리가 졌다고 해도 말이지.”

“좋군. 자네가 다르게 말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걸세.”

“나는 내 마지막 호흡까지 싸우겠네.”


생귀니우스의 대답이 이어진다.


“은하계가 불타는 그 순간까지. 내가 그걸 멈추지 못한다 해도, 나는 싸우겠네.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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