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 중앙에 한 남자가 무릎 꿇고 있었다. 남자는 나체였으며 빛이 땀에 젖은 피부에서 반짝거렸다. 삭발한 머리는 복종의 뜻을 보이며 숙여진 채였다. 주변에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이들이 로브를 입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금속 가면을 쓰고 있었다.

엔진의 울림이 벽을 떨리게 했다.

로브를 입은 자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무릎 꿇은 이를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가 말을 시작했을 때,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얇고 고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오디오 필터를 거친 듯한 목소리였다.

‘그라멘 출신의 후보생 중 단 한 명, 너만이 평원의 시련을 살아남았다. 이 사실에 담긴 교훈은 무엇인가?’

무릎 꿇은 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무엇이냐?’

‘모르겠습니다, 경.’

‘교훈 따위는 없다. 너는 선택받은 자가 아니다. 너는 특별하지 않다. 어떤 해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다. 어떤 해에는 많은 이들이 돌아온다.’

무릎 꿇은 이는 계속 머리를 숙인 채 있었다.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체격은 인상적이었다 – 키가 크고 탄탄한 근육질이 빼어난 몸을 이루고 있었다. 살갗에는 수많은 흉터들과 갓 생긴 상처들이 보였다.

‘너는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에서 운명을 찾지 마라. 중요성을 찾지 마라. 오직 제 기능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만이 존재한다.’

‘알겠습니다, 경.’

로브를 입은 거인은 긴 강철 검을 꺼냈다. 검은 전투용이 아니었다 – 너무 깨끗했고, 너무 연약했다. 검은 마치 의식적인 목적을 가진 수술용 도구처럼 보였다.

‘너는 이를 배울 것이다. 너는 네 삶의 길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네 삶은 오직 전체 중 일부로서만 의미가 있다. 너는 체계 안의 요소다. 기계 안의 부품이다.’

칼날이 가까이 다가왔다. 무릎 꿇은 남자는 왼팔을 앞으로 뻗어, 주먹을 꽉 쥔 채 굳건하게 들었다. 그의 고개는 여전히 숙여진 채였다.

‘시간이 지나며 이 말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네가 시험의 유일한 생존자였음을 잊을 것이다. 너는 오직 시험 그 자체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절차를 기억할 것이다. 너는 절차가 될 것이다.’

거인은 나체의 남자 앞에 무릎 꿇었고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팔뚝에 검을 대었다. 땀으로 반짝이는 피부 위에 날카로운 칼날이 놓였다.

‘이것이 그 절차의 첫 번째 표시다. 계속하기를 바라는가?’

질문은 어울리지 않았다.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선택권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그 질문은 어떤 옛 시절 의식의 잔재일 것이다. 개인의 결단이 지금보다 더 중요했던 시절의 의식 말이다.

‘바랍니다.’ 대답이 돌아왔다.

칼날은 피부 속으로 깊이 파고들며,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근육에 깨끗한 절단면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남자는 고통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숨을 들이쉬었다. 피가 빠르게, 진하고 뜨겁게 솟아올랐다.

그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그의 통제력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거인은 일어서며 피가 칼날을 타고 흐르게 놔두고는 검을 거두었다.

‘이것이 표시다.’ 그가 말했다. ‘더 큰 절개가 그곳에 이루어질 것이다.’

칼날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어나라, 후보생 모르복스. 이제 너는 이전의 네가 아니다. 이 순간부터 너는 아이언 핸드 클랜 라우칸의 전투-형제가 되거나,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